창업가와 교수가 의기투합했어요. 세포를 염색하지 않고, 3D 홀로그래피로 세포를 ‘라이브’로 볼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죠. 필터로 시작한 기술은 완제품이 됐고, 바이러스 연구 방식 패러다임에 일대 전환을 가져왔어요. 어쩌면 코로나19 바이러스 백신·치료제 개발에 단초가 될지도 몰라요.
‘미국 매사추세츠 공대(MIT), 하버드 의대, MD앤더슨 암연구소, 존스홉킨스 의과대학, 독일 암센터, 분당서울대병원, 서울아산병원, 한미약품…’
모두 토모큐브가 만든 3D(입체) 홀로그래피 현미경을 쓰는 곳이다. 이뿐만 아니라 국내외 연구소·병원, 다국적 제약사 등 총 21개국 30여 개 기관에서 사용 중으로 100여 대 이상 팔려나갔다. 토모큐브가 세계 최초로 만든 제품이라 3D 홀로그래피 현미경 시장에서 점유율을 따지는 건 무의미하다.
“급성 패혈증이나 폐렴의 경우 최대한 빨리 감염 박테리아를 판독해야 합니다. 보통 7일 걸리는데 환자분들은 2~3일을 못 버틸 수 있어요. 이 현미경으로 관찰하면 몇 초 안에 알아내 처방할 수 있습니다.”(박용근 토모큐브 CTO)
“2014년 블루포인트파트너스 공동창업자 시절 박 대표를 처음 만났습니다. 그땐 현미경이 아니라 필터를 가지고 투자 유치에 나섰죠. 저도 광학 장비사를 창업했다가 엑시트(Exit, 투자금 회수)했던 터라 그 필터에 유독 관심이 갔습니다. 기술이 새 시장을 열 거란 확신이 섰고, 같이하기로 했죠.”(홍기현 토모큐브 대표)
지난 3월 12일 대전 유성구 토모큐브 본사에서 만난 홍기현(47) 대표와 박용근 최고기술책임자(CTO)가 3D 홀로그래피 현미경을 보여주며 한 말이다. 홀로그래피가 뭘까. 고전 SF 영화〈스타워즈〉의 초반부에서 레이아 공주가 자신을 구해달라는 메시지를 3차원 입체 영상을 이용해 전달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게 바로 3D 홀로그래피다.
이 기술이 기존 질병 연구의 프로세스를 확 바꿔버렸다. ‘감염’됐다고 하면 바이러스가 적당한 세포를 만나 자리를 잡았다는 뜻이다. 치료하려면 세포부터 들여다봐야 하는 데 투명해서 안 보인다. 일반 광학현미경으로 보려면 세포를 얇게 썰고, 염색하거나 유전자를 조작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세포가 죽는 탓에 살아 있는 세포를 관찰할 수 없다.
하지만 토모큐브의 3D 홀로그래피 현미경을 쓰면 이 과정이 필요 없다. 살아 있는 세포를 그대로 관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수백 개 박테리아 정보를 학습시킨 인공지능(AI)을 접목해 기존 박테리아 정보와 일일이 대조해야 하는 과정도 불필요해진다. 최대 7일까지 걸렸던 박테리아 규명 과정이 수초 만에 끝난다. 급성 백혈병, 패혈증, 폐렴 환자들에겐 희소식이다.
투자금도 몰렸다. 토모큐브가 지금까지 한미사이언스, 소프트뱅크벤처스, 데일리파트너스, 블루포인트파트너스 등으로부터 받은 누적 투자금은 230억원. 두 대표는 이 자금으로 라이브로 세포를 보는 것에서 나아가 진단으로까지 영역을 넓힐 참이다.
단순히 현미경이라기보단 광학진단장비라고 해야 할 것 같다.
박용근 CTO(이하 박용근): 엑스선 컴퓨터단층촬영(CT)의 레이저 버전으로 생각하면 된다. CT는 인체를 여러 각도에서 엑스선으로 투영하고 컴퓨터로 재구성해 인체 내부 단면을 보는 기계다. 토모큐브 현미경은 엑스선 대신 레이저를 사용한다. 세포 형상을 다양한 각도에서 촬영해 컴퓨터로 복원한다.세포 샘플을 올려두고 입체적으로 세포 내부 구조를 보는 데 걸리는 시간이 1초다. 그것도 세포가 살아 있는 상태로 말이다. ‘AI를 내장한 스마트 현미경’ 정도로 표현하면 어떨까.
처음 내놓았을 때 시장 반응은 어땠나.
홍기현 대표(이하 홍기현): 처음 해외 전시회에 들고 갔을 땐 아무도 믿지 않았다. 그럴 리가 없다는 반응이었다. 시연하면 놀라워했다. 특히 광학장비에선 세계 최강국에 속하는 일본 전시회가 인상적이었다. 기술과 솔루션을 설명한 후 시연하니 일본 내 광학장비 딜러들이 행사 부스 앞에 줄을 섰다. 물론 다른 전자장비처럼 마케팅을 대대적으로 한다고 해서 팔리는 게 아니다. 그나마 스위스의 나노라이브가 비슷한 기술을 가진 회사인데 이들 장비가 대당 1억원 이상이다. 대학, 병원 같은 기관에서 쓸 연구 장비는 무척 고가인 데다 도입 과정도 간단치 않다. 아무리 빨라도 1년 정도는 걸린다.
미국 MIT와 하버드대학엔 어떻게 공급했나.
박용근: 전략적인 차원에서 무상 임대 형태로 사용을 권했다. 6개월간 써보더니 계약하자고 하더라. 홍 대표 말대로 마케팅한다고 잘 팔리는 장비가 아니다. 이 장비를 통해 연구 업적인 논문이 나와야 연구진이 움직인다. 실제 지난 2월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광주센터 이성수 박사 연구팀과 중앙대학교 시스템생명공학과 박경순 교수 연구팀이 우리 장비를 활용한 연구 성과가 나노분야 국제학술지 ‘ACS 나노’에 실려 우수성을 인정받았다. 지방세포가 우리 몸속에서 야기하는 퇴행성 질환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세포 분화과정을 추적한 것이다.
인공지능을 탑재하려면 축적 데이터가 필수다.
박용근: 패혈증 하나만 예를 들어보자. 삼성서울병원·카이스트와 공동 연구한 결과 총 19개 패혈증 박테리아를 분류할 수 있었다. 우리 현미경에 학습시키고, 샘플과 비교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0.3초, 정확도는 95%다. 어떤 항생제가 효과가 있는지 실험할 필요도 없이 데이터 근사치로 결과 추정값을 모니터에서 확인할 수 있다. 패혈증 말고도 급성 간염 등 6개 질병 진단에 대한 임상을 준비 중이다. 미국 진단 관련 기업은 물론 미국 식품의약국(FDA)과도 임상 논의를 할 예정이다.
앞으로 현미경 수요가 폭발하겠다.
홍기현: 현미경 자체가 우리 목표는 아니다. 현미경에 감지된 생명 현상의 데이터들이 더 중요하다. 바이오·제약 분야에서 활용 잠재력이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이런 기술 면에서도 우리가 최고라는 걸 믿어 의심치 않는다. 박 대표는 현재도 카이스트 물리학과 교수로 있으면서 ‘홀로그래피’ 활용 연구를 진행 중이다. 2017년엔 ‘홀로그래피 광학 집게 기술’을 개발했다. 단순히 레이저로 관찰만 하는 게 아니라 물체에 힘을 가해 3차원 입자를 움직일 수 있게 된 것이다. 내 역할은 우리 기술과 시장 사이에서 최적의 접점을 찾은 일이다. 물론 의료기기 제조업은 기술뿐만 아니라 영업, 마케팅, 생산, 관리 등 신경 쓸 게 한둘이 아니다.
본사를 대전에서 서울로 이전할 계획은 없나.
박용근: 아직은 없다. 초기 출발점이 카이스트였다. 카이스트뿐만 아니라 각종 국책 연구기관이 포진한 대전은 꽤 훌륭한 인재 집합소다. 하지만 인공지능 기술을 정교화하기 위해선 참신한 소프트웨어 인재가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앞으로 하드웨어를 담당하는 본거지는 대전에, 소프트웨어는 서울에서 개발하는 방향을 검토 중이다.
두 대표와 그렇게 한두 시간을 더 얘기 나눴다. 앞으로 내놓을 신제품부터 활용될 분야와 세계 최고의 광학기기 업체 독일 칼 자이스가 혁신해왔던 얘기까지. 기술, 산업, 시장과 관련된 아이디어가 쏟아졌다. 연쇄 창업가와 교수가 만난 덕에 이 현미경은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인터뷰를 마치며 홍기현 대표가 기억 한 토막을 꺼냈다.
“한국 연구진이 가진 기술적 잠재력이 세계 어디 내놔도 손색이 없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시장은 또 다른 세상이라는 걸 다시 창업해보니 새삼 느낍니다. 이런 문제도 있었죠. 운송비를 줄이려 현미경을 가볍게 만들었더니 배송 도중 던져서 파손되는 일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무겁게 만들었습니다. 창업하면 핵심 기술 말고도 생각지도 못한 문제에 맞닥뜨리고 해결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겁내진 마세요. 한국엔 도와줄 선배 창업가가 많습니다.”
김영문 기자 ymk0806@joongang.co.kr
사진 김성태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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