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설팅업계 선후배가 만났어요. 한 사람은 제조업으로 갔고, 한 사람은 컨설팅업계에 남았어요. 두 사람은 혁신을 맞닥뜨린 제조업에서 클라이언트와 컨설턴트로 인연을 맺었어요. 두 사람에겐 언제나 한국 제조업의 경쟁력을 고민하는 게 화두라고 해요. 바로 박찬구 셋방전지 고문과 박종식 캡스톤컴퍼니 대표의 이야기예요.

 

컨설팅계 선후배가 제조업에서 합을 맞췄다. 요즘도 두 사람이 만나면 한국 제조업이 어떻게 하면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지 고민한다. 사진은 박찬구 세방전지 고문(왼쪽)과 박종식 캡스톤컴퍼니 대표다.

 

“우리 회사, 혁신해야 하는데 들어와서 일할 생각 없나?”
- 박찬구 세방전지 고문

“산업 컨설턴트로서 더 일해보고 싶습니다. 일 얘기라면 언제든 돕겠습니다.”
- 박종식 캡스톤컴퍼니 대표

2008년 8월 어느 날 경북 구미 웅진케미칼(현 도레이첨단소재) 공장에서 짤막한 대화가 오갔다. 당시 박찬구(57) 세방전지 고문은 웅진케미칼에서 전략기획본부 본부장으로 일하고 있었다. 미국 아서디리틀(Arthur D. Little), 국내 이언그룹과 같은 굴지의 컨설팅사에서 이름을 날린 그가 제조업 현장에 건너와 맡은 첫 프로젝트였다.

 

생산원가를 줄이라는 것. 컨설팅 분야에서도 오퍼레이션 부문은 나름 전문적인 영역이라 외부 업체의 힘이 필요했다. 그때 컨설팅사 맥큐스(McQs)에 다녔던 박종식(46) 캡스톤컴퍼니 대표를 만났다.

당시 상황을 물었다. 박찬구 고문은 “내가 컨설팅업계에서 주로 담당했던 분야는 전략기획이었다”며 “막상 제조기업에 와보니 공장 현장을 개선해 원가를 줄이라는 얘기는 전혀 다른 분야였고, 회사 측에 오퍼레이션 컨설팅 부문의 전문가가 필요하다고 요청했다”고 했다.

 

컨설팅에 돈 쓰는 데 인색한 제조기업 경영진이 선뜻 박찬구 고문의 손을 들어줬다. 이어 그는 “예나 지금이나 한국 제조업엔 외부 컨설턴트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팽배하다”며 “너무 컨설턴트에 의존해 실패하기도 하고, 매출 5000억~1조원 사이의 기업 중에 컨설팅을 딱 한 번만 받고 방법을 찾았다고 끝을 맺는 경우도 많다”고 덧붙였다.

 


생산 현장에서 만난 컨설팅계 선후배

 

 

박종식 대표가 컨설팅계 베테랑인 박찬구 고문을 만난 건 행운이었다. 박종식 대표는 “본래 기업가치를 제고하는 프로젝트를 맡았고 프로젝트 매니저 역할이었다”며 “하지만 공장 현장을 다니며 생산원가를 절감하려는 계획이 맞는지 검증하면서 현금흐름을 극대화하는 프로젝트로 구체화했다. 공장에서 먹고 자며 이 잡듯 공장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일로 엮인 두 사람은 서로를 알아봤고, 박찬구 고문이 자리(?)를 제안했다. 하지만 박종식 대표는 컨설팅업에 남기를 원했다. 그렇게 두 사람은 다른 길을 걷게 됐다. 박찬구 고문은 그러다 웅진케미칼 대표로 올라섰고 도레이첨단소재에 인수돼 도레이케미칼 대표, 세방전지 대표로 자리를 옮기며 제조업 전문경영인으로서 자리를 굳혔다.

박종식 대표는 운영 혁신 컨설팅 전문 기업 코너스톤파트너스로 자리를 옮겨 원가경쟁력, 구성원 변화관리 등 기업 내부의 변화를 이끌며 경험을 쌓았다. 그러다 2016년 캡스톤컴퍼니로 완전히 독립했고, 지난 3년간 업계에 이름을 알렸다. 동원F&B, CJ제일제당, 하이트진로, 삼양, 대상, 한국타이어, 금호타이어, 이수페타시스, 효성, 일진, SK케미칼, SKC, 현대제철 등 국내 굴지 대기업이 캡스톤컴퍼니의 고객사다.

물론 박찬구 고문이 있던 세방전지가 캡스톤컴퍼니의 공식 고객은 아니다. 하지만 두 대표의 관계는 더 공고해졌다. 제조업 현장을 누비며 최고경영자 자리에 올랐던 박찬구 고문과 오퍼레이션 컨설팅 분야에서 입지를 다져온 박종식 대표 모두 ‘제조업 혁신’을 갈구하는 열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웅진케미칼 프로젝트는 그들의 열정에 불을 지른 계기였다. 이미 10년 전부터 한국 제조업에 감돈 원가절감 압박은 ‘변해야 산다’는 절실함의 발로였다. 특히 웅진케미칼은 부침이 많은 기업이었다. 고(故) 이병철 회장이 만든 제일합섬공업이 전신인데 1995년 새한으로 넘어갔고, 웅진그룹에 매각돼 ‘웅진케미칼’이란 이름을 달았다.

 

그 후 웅진그룹의 워크아웃으로 일본 도레이의 국내 100% 자회사인 도레이첨단소재가 다시 인수했고, 회사명도 도레이케미칼로 바꿨다. 웅진케미칼은 손이 바뀔 때마다 ‘혁신’이란 이름 아래 허리띠를 더 꽉 조였다. 그도 그럴 것이 웅진그룹이 새한에서 인수한 웅진케미칼은 인수 직후 매월 적자가 났다. 경영진도 ‘원가절감’ 카드를 꺼낸 상태였다.

박찬구 고문이 와서 첫 번째로 맡은 임무이기도 했다. 불행 중 다행인 건 웅진케미칼은 외부 컨설턴트를 적절히 활용하는 회사였다. 전략 컨설팅 전문가인 그는 과감하게 오퍼레이션 전문 컨설턴트 업체와 협력을 추진했고, 박종식 대표가 속한 맥큐스와 계약을 맺으며 인연이 시작됐다.

두 사람의 발길은 곧바로 구미공장을 향했다. 통상 제조기업은 생산과 품질관리 조직으로 나뉜다. 두 조직의 균형이 관건인데, 생산 부서의 입김에 세면 불량률이 높아지고, 품질 부서의 입김이 세면 생산단가가 오른다. 어느 한쪽으로 기울면 제품은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게 된다.

 

박찬구 고문은 “당시 웅진케미칼에는 일반적인 기업에 있는 품질관리 조직이 없었다. 품질을 관리하는 조직이 나름 독립성을 유지해야 하는데 생산 부서에서 다 관리하고 있었다”며 “힘드니까 줄인 거였다. 일단 생산, 영업 포트폴리오, 구매, 공정안전관리(PSM), 유통·판매본부(SPM) 분야를 재검토하는 일부터 박종식 대표와 함께했다”고 했다.

실제 박종식 대표도 박찬구 고문과 웅진케미칼의 거의 모든 사업을 재 검토했다. 구미공장은 웅진케미칼의 주력 사업 7개 중 6개 분야 부품을 생산하는 전초기지였다. 솜, 실, 직물, 직조, 정수기 필터, 전자산업용 마이크로 필터, 포장용 필름 등이었다. 특히 당시엔 2000년대 초반까지 국내 화섬 업계의 주력 수출 품목으로 꼽혔던 폴리에스터 원면 사업의 원가를 줄이는 게 최대 과제였다.

 

박찬구 고문은 “폴리에스터 원면 사업에서 원자재 값이 80% 가까이 됐다”며 “박종식 대표가 공장에서 살다시피 했는데 한 달 후 생산원가가 내려가는 걸 봤다. 당시 30년 경력의 사업본부장도 그 사업의 생산원가가 내려가는 건 처음 봤다 할 정도”였다. 칭찬이다.

하지만 박종식 대표에겐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말 그대로 ‘이론과 실제가 다른’ 상황이었다. 30대 중반에 접어들었던 박종식 대표에겐 더 그랬다. 그는 “생산원가를 줄이는 건 단순히 부서를 통폐합하고, 일하는 사람을 내보내면 되는 일이 아니었다. 나조차도 본사에서 발표할 땐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내며 분명 할 수 있다고 외쳤다”며 “하지만 막상 현장에 가보니 재무회계, 관리회계로는 절대 찾지 못하는 일이 많았다. 기계공학도였던 난 컨설턴트란 직업을 잊고, 원가절감을 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공정별 생산팀장한테 달라붙었다”고 했다.

원가절감 효과가 바로 나타나는 건 아니다. 예를 들어 매출 1조원짜리 제조기업이 원가 8000억원에서 판매관리비 1500억원을 제하고 500억원 정도를 남긴다 치자. 원가절감 프로젝트가 시작되고 생산팀과 외부 컨설턴트가 400억원을 아낄 수 있다는 아이디어를 내면 총 900억원을 남길 수 있다는 계획이 나온다. 400억원은 생산원가 8000억원을 쥐어짜낸 결과다. 최소 단위 100만원짜리 절감 아이디어 수백 개를 모아 품질을 지키는 수준에서 하나씩 타당성 검토에 들어간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1년 후 원가절감 효과가 나오는데 재무회계에 반영되는 건 또 다른 문제다. 목표치가 100% 반영될 수 없다. 현대 회계 시스템으로 절감 효과를 100% 측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모든 설비에 센서를 부착하는 사물인터넷(IoT) 얘기가 나오고, 전 공정을 클라우드에 연결한 스마트 공장 도입으로 얘기가 이어진다.

두 대표가 머리를 맞댔던 ‘원가절감’은 혁신의 실마리였던 셈이다. 이후 박찬구 고문은 혁신을 고민하는 경영자로 올라섰고, 박종식 대표는 이론과 실제의 격차를 한층 줄여나가며 오퍼레이션 컨설턴트로 활약했다. 신성장동력을 찾는 기업도 많아졌다. 한국 제조업이 일종의 방향성 찾기에 나선 것이다.

그들이 배우고 익혔던 컨설팅도 함께 진화했다. IT 기술이 발전하고, 평소 알지 못했던 데이터가 쌓이기 시작했다. 데이터를 분석하고, 오프라인과 온라인이 만나면 제조업은 또 다른 전환기를 맞는다. 시장 주도권이 생산 체제를 갖춘 제조업에서 온라인 사용자를 끌어들일 수 있는 온라인으로 넘어간 것이다. 제조업도 이들을 좇고 있다. 박종식 대표는 이를 ‘운영 효율화’라고 표현하며 “스마트 공장을 구축하기 위한 빅데이터가 공정 혁신을 이루고 있다”고 강조했다.

 

두 사람은 “제조업이든 컨설팅이든 이제 모호한 미래 전략이나 비전 같은 뜬구름 잡는 얘기는 그만해야 한다”며 “한국 제조업은 작지만 강하게, 강한 것은 더 단단하게 만드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박찬구 고문도 맞장구쳤다. 그는 “클라이언트로서 컨설팅을 만나면서 매년 공정이 변한다는 걸 알았다”며 “박종식 대표가 얘기하는 운영 효율화는 주로 연구개발(R&D) 분야에서 이뤄졌는데 빅데이터 파워가 업계에 알려지면서 생산 혁신에서 사업 방향 전체로 검토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박찬구 고문은 막연한 ‘신성장동력’ 찾기로 이어지는 건 경계했다. 애플과 삼성, 두 기업을 예로 들었다. 그는 “신성장동력을 찾자는 건 뭔가 불안하다는 얘기다. 업계에서 제일 잘나가는 애플은 신성장동력 찾기에 골몰하지 않는다”며 “하지만 삼성이 바보라서 신성장동력을 찾는 데 골몰하는 게 아니다. (기술)코어가 되기보단 코어 주위를 흐르는 전방위 사업을 구축하는 장점이 있다. 애플이 따라 할 수 없는 능력”이라고 했다. 위기 극복 노력이 누군가의 뒤꽁무니를 따라가기보단 자신만의 특성을 강화하는 쪽에서 찾아야 한다는 뜻이다.

박종식 대표도 평소 멘토인 박찬구 고문의 생각과 궤를 같이했다. 박종식 대표는 오너 경영자로서 한 발 더 나갔다. 박찬구 고문의 조언에 따라 캡스톤컴퍼니도 ‘제조업 오퍼레이션’에 초점을 두고, ‘빅데이터 트랜스포메이션’에 집중하고 있다.

 

쌓아놓기만 했던 제조 현장의 빅데이터를 활용해 기존에 파악하지 못한 주요 공정문제 원인을 도출하고, 이를 새로운 관리 프로세스로 업데이트해 제조 경쟁력을 향상하는 프로젝트다. 그의 광범위한 컨설팅에는 박찬구 고문과 현장에서 갈고닦은 경험이 고스란히 담겼다.

실제 결실도 있었다. 지난해 7월 이수페타시스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이수페타시스는 통신장비, 서버·스토리지, 우주항공, 슈퍼컴퓨터에 사용되는 고품질 MLB PCB(고다층인쇄회로기판) 제품을 주력으로 하는 국내 기업이다. 특히 고성능·고집적·고효율 IT 제품에 대한 수요 증가에 발맞춰 차세대 초고다층 PCB, 5G 시장에서도 탄탄하게 입지를 다졌다.

 

박종식 대표가 표방한 ‘빅데이터 트랜스포메이션’은 제조공정에서 생산·품질 관련 주요 공정변수를 선별하고, 응용통계적 요인 분석 알고리즘을 통한 품질 사전예측하며, 공정을 정리하면서 실제 현장을 최적화하는 작업이었다. 박종식 대표가 나름의 특기를 잘 살린 케이스였다.

이렇게 두 사람은 두어 시간 더 얘길 나눴다. 제조업 현장에서 일어나는 변화 자체가 그들에겐 화젯거리였고, 일과 인생 그 자체였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인터뷰를 마치며 박찬구 고문은 “제조업이든 컨설팅이든 이제 혁신을 하겠다며 내놓은 모호한 미래 전략이나 비전 같은 뜬구름 잡는 얘기는 그만했으면 좋겠다”며 바람을 꺼냈다.

“컨설팅사를 거쳐 웅진케미칼, 도레이케미칼, 세방전지. 국내 굴지의 제조업 기업에서 일해봤습니다. 저조차도 유학을 다녀와 어떻게 하면 국내 제조기업이 세계 1위에 올라설 수 있을까 고민만 했던 적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단숨에 세계적인 미국 듀폰이나 독일 바스프를 꺾는 건 무리죠. 작다고 승부에서 지거나 실패한 게 아닙니다. 제조업 오퍼레이션의 강점을 살린 캡스톤컴퍼니가 골드만삭스나 JP모간을 이기지 못한 게 아니듯이 말이죠. 한국 제조업이 나아갈 길도 작지만 강하게, 강한 것은 더 단단하게 만드는 일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영문 기자 ymk0806@joongang.co.kr

사진 김현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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