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BTS는 그저 K-POP 아이돌이라는 수식어로 가둬두기에는 너무 큰 아티스트가 되었지요. 빌보드와 영국 오피셜 차트에서 정상을 차지한 방탄소년단은 세계 문화를 이끌어가는 선두주자가 되었어요. 방탄소년단의 성공에는 여러 요인들이 있지만, 그중 가장 큰 것은 그들의 음악이라고 할 수 있을 거예요. 이들의 시도는 대중문화와 순수 예술 사이의 경계를 허물었다는 평가도 듣고 있어요.
방탄소년단(BTS)의 이번 앨범은 매우 특별하다. 지난 2월 21일 발매된 정규 4집 ‘맵 오브 더 솔(MAP OF THE SOUL): 7’은 이들이 그간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새로 써 온 모든 기록을 갈아치웠다. 선주문만 410만 장에 달한 이 앨범은 발매 첫 주 337만장이 팔려 나갔다.
지난해 4월 발매된 미니앨범 ‘맵 오브 더 솔: 페르소나(PERSONA)’로 한 해 동안 371만장의 판매고를 기록하면서 1995년 김건모 3집(330만장) 이후 24년 만에 기네스 한국 기록을 경신한데 이어 또 다른 신기록을 예고하고 있는 셈이다.
2013년 데뷔한 방탄소년단이 수많은 K팝 아이돌 그룹 중 하나를 벗어나 세계 음악 시장 지형도를 바꾸게 된 ‘키 플레이어’가 된 것은 2018년부터다. 정규 3집 ‘러브 유어셀프전 티어’로 한국뿐 아니라 아시아 가수 최초로 미국 빌보드 앨범 차트 정상을 차지하면서 새로운 문화 현상을 일컫는 대명사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방탄소년단은 2017년 5월 빌보드 뮤직 어워드에서 첫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6년 연속 ‘톱 소셜 아티스트’로 선정된 저스틴 비버를 꺾고 이룬 쾌거다. 그러나 그때까지만 해도 몇몇 사람들은 방탄소년단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비롯한 디지털 세상 속 톱스타로 여겼다. 그러나 이제 방탄소년단은 실제 음악 산업에 영향력을 발휘하는 존재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이후 새 앨범이 나올 때마다 이들의 영토는 더욱 넓어졌다. 이번 앨범으로 양대 팝 시장인 미국 빌보드와 영국 오피셜 차트에서 각각 4연속, 2연속 정상을 차지한 데 이어 독일과 프랑스 공식 차트에서도 첫 1위를 기록했다. 보수적이기로 유명한 유럽 차트를 차례로 정복한 것.
통산 5번째 정상을 차지한 일본 오리콘 차트까지 포함하면 세계 6대 음악 시장 앨범 차트를 모두 석권했다. 91개 국가 및 지역 아이튠스에서 1위에 오르는 등 전 세계에서 방탄소년단의 노래가 울려 퍼진 셈이다.
국제음반산업협회(IFPI)가 지난해 4월 발간한 ‘글로벌 뮤직 리포트 2019’에 따르면 세계 음악 시장 규모는 미국·일본·영국·독일·프랑스·한국 순이다. 2014~2016년 3년간 8위에 머물렀던 한국은 2017년부터 호주와 캐나다를 제치고 6위로 올라섰다.
세계 음악 시장에서 실물 음반 판매량이 꾸준히 감소하는 것과 무관하게 한국에서는 엑소·방탄소년단·워너원 등 보이그룹을 필두로 밀리언셀러를 넘어 더블, 트리플 밀리언셀러를 연이어 탄생시킨 덕분이다. 팬덤 간 경쟁은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 음악 시장의 파이를 키웠다.
이번 앨범은 타이틀 ‘7’처럼 지금의 방탄소년단만이 만들 수 있는 앨범이라는 데 가장 큰 의의가 있다. 올해로 데뷔 7년 차를 맞은 일곱 멤버가 아니면 불가능했을 앨범이라는 얘기다. 이번 시리즈는 분석심리학의 기초를 세운 스위스 출신 정신과 의사 칼 구스타브 융의 이론을 30년 동안 연구한 머리 슈타인이 쓴 개론서 [융의 영혼의 지도]에서 모티브를 따온 만큼 심리학 용어가 대거 등장한다. 전작에서 사회적 가면인 ‘페르소나’에 주목했다면, 이번엔 자아와 그림자를 뜻하는 ‘에고(Ego)’와 ‘섀도(Shadow)’가 주요 개념으로 사용된다.
“개인적 이야기 담은 음악이 범 시대성 가능케 해”
그룹 리더 RM은 앨범 발매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왜 두 가지 개념을 통합시켜서 앨범을 내는지 궁금해하는 분들이 많은데 지난해 8~9월 장기휴가를 떠나게 되면서 컴백이 예정보다 미뤄지게 됐다”고 밝혔다. 그래서 “내 안의 어두운 섀도를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앞으로 나아가겠다는 의지를 뜻하는 에고를 합치게 됐고, 7이라는 다소 거창하면서도 무게감 있는 타이틀을 붙이게 됐다”는 설명이다. 슈가는 “방탄소년단이라는 이름으로 7년이라는 시간을 보내면서 가끔은 휘청일 때도 있고 중심을 잡지 못하고 방황할 때도 있었지만 이제 무게중심을 찾는 법을 알게 됐다”고 덧붙였다.
지난 앨범 발매 당시 “무대 위 밝은 조명 아래 서 있고 그 위치가 높아진 만큼 더 커진 그림자와 길어진 그늘도 감수해야 한다”고 밝혔던 RM은 이번에도 “우리가 느끼고 있는 고민이 비단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가 비슷하기 때문에 개인적인 이야기를 담은 음악이 범 시대성을 띨 수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영화 [기생충]으로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등 4관왕에 오른 봉준호 감독이 밝힌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이라는 수상 소감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그 말인즉슨 봉 감독의 가슴에 그 말을 새기게 한 영화계의 거장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부터 세계적 팝스타 반열에 오른 방탄소년단까지 시대를 막론하고 통용되는 진리란 얘기이기도 하다.
방탄소년단이 현재 직면한 고민은 “나는 누구인가 평생 물어온 질문”이라는 가사로 시작하는 ‘인트로(Intro): 페르소나’ 등 앨범 곳곳에서 묻어난다. “날 따라오는 저 빛과/ 비례하는 내 그림자/ 두려워 높게 나는 게 난 무섭지”(‘인터루드(Interlude): 섀도’), “힘든 대로/ 또 슬픈 대로/ 위로가 됐고/ 날 알게 해줬어”(‘아우트로(Outro): 에고’) 등 가감 없이 속내를 털어놓는다. 각각 도입·간주·결말에 해당하는 트랙은 총 19곡이 수록된 앨범의 서사를 더욱 탄탄하게 다지는 역할을 한다. 지난 미니 6집에 수록된 5곡에 신곡 14곡이 더해지면서 완결성을 갖췄다.
‘네 자신을 사랑하라’부터 ‘영혼의 지도’를 그리기까지
이는 이들이 지난 7년간 음악을 매개로 시리즈를 전개해온 방식이기도 하다. “날 알게 해줬어”라는 가사에서 엿볼 수 있듯 ‘영혼의 지도’를 찾아 나서기 전 이들의 화두는 ‘러브 유어셀프(LOVE YOURSELF)’, 즉 ‘네 자신을 사랑하라’였다. 2017년 9월 발매한 미니 5집 ‘러브 유어셀프 승 허(承 Her)’부터 정규 3집 ‘러브 유어셀프 전 티어(轉 Tear)’, 3집 리패키지 ‘러브 유어셀프 결 앤서(結 Answer)’에 이르기까지 이들은 스스로를 들여다보는 데 집중한다. “어쩌면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게 나 자신을/ 사랑하는 거야”(‘앤서: 러브 마이셀프’)라는 맺음말처럼 결코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다소 난해해 보이는 앨범명은 주제-단계(기승전결)-소재 순이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같은 해 유니세프와 손잡고 ‘러브 마이셀프(LOVE MYSELF)’ 캠페인을 시작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서울이 아닌 지방에서 태어난 일곱 멤버들은 자신의 고향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부터 시작해 어떻게 음악을 꿈꾸게 됐고, 어떻게 꿈을 실현하게 됐는지 그 성장 과정을 세세하게 공유해 왔다. 출발점을 분명하게 하는 것은 이들이 추구하는 힙합에서도 중요한 부분이다. 맹목적으로 미국식 힙합을 따라 하기보다는 자신의 지역색을 드러내고 주체적인 생각을 담아내는 것이 제대로 된 진정성을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인 탓이다.
빅히트엔터테인먼트를 이끌고 있는 방시혁 대표를 비롯해 프로듀서와 멤버들이 나눈 대화를 토대로 전체 주제를 잡고, 이들이 직접 작사·작곡에 참여해 함께 만들어가는 스토리텔링 방식의 진가는 여기서 빛을 발한다. 데뷔 초기 ‘학교 3부작’에 포함된 ‘팔도강산’(2013)이나 ‘어디에서 왔는지’(2014) 등 고향 사투리로 랩을 선보이면서 자연스럽게 마이너리티로서 정체성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중소 기획사에서 출발한 이들이 약자를 품고 다양성을 추구하는 것도 매끄럽게 이어진다. 세상에서 가장 약한 영웅을 노래한 ‘앙팡맨’(2018)이나 태양계 행성에 속해 있다가 지위를 잃어버린 소행성을 기린 ‘134340’(2018) 등이 전혀 이질감 없이 맞붙는 것이다.
마침 시대도 새로운 변화를 원하고 있던 터였다. 백인·남성·영어 등 기성문화를 이끌어오던 제한적인 계층에서 벗어나 더욱 다양한 주체가 전면에 나서는 움직임이 형성되고 있었다. 방탄소년단의 성공을 언급할 때 유튜브 최다 조회 수인 66억 뷰를 기록한 푸에르토리코 출신 가수 루이스 폰시의 ‘데스파시토’(2017)나 제작비의 8배에 달하는 2억3800만 달러의 수익을 올린 영화 [크레이지 아시안](2018)의 사례가 함께 등장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라틴팝과 아시아 영화라는 장르적 특성이 시대적 요구와 맞아 떨어지면서 특정 문화권 안에 갇히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더 많은 문화권과 만날 수 있는 발판이 되어준 셈이다.
2018년 9월 RM이 대표로 나선 유엔 연설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빌보드 1위 같은 화려한 업적 대신 “어제 실수했더라도 어제의 나도 나이고, 오늘의 부족하고 실수하는 나도 나이며, 내일의 좀 더 현명해질 수 있는 나도 나”라고 고백했다. “어느 나라 출신이든, 피부색이 무엇이든, 성 정체성이 어떻든 여러분에 관해 얘기해달라”며 연설을 마무리했다. 연설 주제였던 ‘스피크 유어셀프(SPEAK YOURSELF)’는 팬덤 아미(ARMY)에게도 스스로 돌아볼 기회가 됐다. 1년 2개월간 23개 도시에서 62회에 걸쳐 월드투어 ‘러브 유어셀프’와 그 확장판인 ‘스피크 유어셀프’가 진행되는 동안 이들의 공연을 관람한 206만여 관객은 앞다퉈서 자신의 경험을 ‘간증’했다.
자신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의 의미를 오랫동안 학습해온 이들은 거리낌이 없었다. 영국 런던 웸블리 공연을 보기 위해 스웨덴에서 날아온 모녀는 팬심 앞에 나이는 아무 상관이 없음을 고백했고,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 공연장을 찾은 여성 관객들은 하나같이 “아바야는 이제 강제 착용이 아니다. 자의에 의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적·연령·성별·종교 등 각기 다른 환경으로 인해 편견이 생기는 것을 원치 않을뿐더러 서로에 대한 이해를 높임으로써 그것이 해소될 수 있으리라 믿는 것이다. 그곳이 어디든 아미가 모인 곳은 곧 토론의 장이 됐다.
‘학교 3부작’과 상관관계… 이들은 왜 리부트를 택했나
‘영혼의 지도’ 시리즈를 시작하면서 ‘학교 3부작’ 리부트에 나선 것도 눈에 띈다. 지난 앨범 타이틀곡 ‘작은 것들을 위한 시’의 영어 제목은 ‘보이 위드 러브(Boy With Luv)’다. 미니 2집 ‘스쿨 러브 어페어(Skool Luv Affair)’의 타이틀곡 ‘상남자’(2014)에 붙은 영제 ‘보이 인 러브(Boy In Luv)’와 연결된다. 당시 이들이 “되고파 너의 오빠/ 너의 사랑이 난 너무 고파”라고 외치는 치기 어린 소년이었다면, 이제는 “모든 게 궁금해/ 뭐가 널 행복하게 하는지”라고 묻는 성숙한 어른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된 것이다.
이번 앨범 타이틀곡 ‘온(ON)’은 미니 1집 ‘O!RUL8,2?(Oh! Are You Late, Too?)’의 타이틀곡 ‘N.O’(2013)를 뒤집은 제목이다. “좋은 집 좋은 차 그런 게 행복일 수 있을까(…) Everybody say NO”라고 외치던 이들은 “제 발로 들어온 아름다운 감옥”에서 “고통을 가져오라(bring the pain)”고 이야기한다. “일등이 아니면 낙오로 구분”되고, “친한 친구도 밟고 올라서게” 하는 세상에서 “더는 남의 꿈에 갇혀 살지” 않길 바란 소년들이 이뤄낸 성과다.
데뷔 앨범 ‘투 쿨 포 스쿨(2 COOL 4 SKOOL)’에 수록된 ‘위 아 불릿프루프(We Are Bulletproof) PT.2’는 ‘위 아 불릿프루프: 디 이터널(the Eternal)’로 재탄생했다. “나만치 해봤다면 돌을 던져” “나 보여줄게 칼을 갈아왔던 만큼”이라고 패기 넘치게 외쳤던 이들은 이제 “부정적인 시선에 맞서 우린 해냈구/ 나쁜 기억도 많은 시련도/ 다 호기롭게 우린 막아냈지”라고 웃으며 말한다.
2013년, “사회적 편견과 억압을 막아낸다”는 뜻의 ‘불릿프루프보이스(Bulletproof Boys)’로 시작한 이들은 2017년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리뉴얼하고 ‘비욘드 더 신(Beyond the Scene)’이라는 의미를 덧붙였다. 2018년 유튜브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번 더 스테이지(Burn the Stage)’, 지난해 콘서트 실황을 담은 다큐멘터리 ‘브링 더 소울(Bring the Soul)’까지 그 이름이 갖는 의미도 시대에 맞춰 확장해 온 셈이다.
사실 리부트는 방탄소년단처럼 커리어의 정점에 있는 팀이 굳이 꺼내들 선택지는 아니다. 하지만 이들은 ‘어제의 나’도 안고 가는 길을 택했다. 정규 1집 수록곡 ‘호르몬 전쟁’(2014)이나 RM믹스테이프 수록곡 ‘농담’(2015) 등 일부 가사를 두고 여성혐오 논란이 일자 “불편함을 느끼신 모든 분께 죄송하다. 더욱 노력하는 자세로 조언에 귀 기울이겠다”고 사과한 것처럼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고 실패를 자산 삼아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빅히트 수석 프로듀서인 피독은 2017년 기자와 인터뷰에서 “‘학교 3부작’을 마치고 나서 고민이 많았다”고 고백했다. 생각했던 것만큼 반응이 오지 않은 상황에서 다음 작업을 계속 시리즈로 전개하는 것이 맞는지, 다음 시리즈 주제로 준비한 ‘청춘’이란 서사가 이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확신이 없었단 얘기다. 하지만 “어른이 되고 싶지 않다”는 슈가의 말에 영감을 얻은 방시혁 대표와 피독 프로듀서는 ‘청춘 2부작’에 해당하는 ‘화양연화(花樣年華)’ 시리즈를 전개했고, 방탄소년단의 성장세에도 탄력이 붙기 시작했다.
그해 기자간담회에서 방시혁 대표가 꼽은 변곡점도 대부분 이 시기의 곡이다. 방 대표는 유튜브에서 ‘쩔어’(2015) 뮤직비디오를 본 해외 팬들이 리액션 영상을 만들고 스스로 영업(홍보)에 나서면서 ‘불타오르네’(2016)를 통해 팬덤이 급증했다고 했다. 각각 ‘화양연화 pt.1’과 ‘화양연화 영 포에버(Young Forever)’ 앨범에 수록된 곡이다.
이어 정규 2집 ‘윙스(WINGS)’ 타이틀곡 ‘피 땀 눈물’을 통해 대중성을 확보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제는 5만석 규모의 올림픽주경기장에서 4일간 공연하는 아티스트가 됐지만 구 악스홀(1000석)부터 핸드볼경기장(5000석), 체조경기장(1만 석), 고척돔(2만석)을 차례로 채워왔기에 더욱 뜻깊다.
언어·국적·인종의 장벽을 넘어 경계를 허문다는 것
그래서일까. “목표보다는 목적, 기록보다는 성취가 중요한 시기”라는 슈가의 말처럼 점차 영미권 팝 시장을 향했던 음악 방향도 바뀌었다. 강력한 팬덤을 기반으로 빌보드 앨범 차트(빌보드 200)를 정복하고, 미국 3대 음악상인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와 빌보드 뮤직 어워드에서 각각 3관왕, 2관왕에 오른 이들에게 남겨진 과제는 빌보드 싱글 차트(핫 100) 1위와 그래미 수상 정도.
2012년 7주간 싱글 2위를 기록한 싸이의 ‘강남스타일’처럼 누구나 아는 대중적인 히트곡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되면서 ‘아이돌’(11위)이나 ‘작은 것들을 위한 시’(8위)처럼 라디오 프렌들리한 곡을 내놓을 것이란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온’은 보기 좋게 예상을 비켜 나갔다. 이들은 다국적 댄서 30여 명과 UCLA 마칭밴드 12명이 협업한 대작을 선보였다. 김윤하 대중음악평론가는 “마칭밴드와 협연이나 가스펠을 연상케 할 정도로 강조된 코러스는 팝 음악은 물론 기존 K팝 문법과도 거리가 멀다”고 밝혔다. 한국 조지메이슨대 이규탁 교수는 “‘작은 것들을 위한 시’가 현재 유행하는 팝 트렌드에 가까운 곡이라면, ‘온’은 방탄소년단 색깔이 보다 명확하게 드러나는 곡”이라고 분석했다.
음원 다운로드 및 스트리밍 못지않게 라디오 방송 횟수가 중요한 싱글 차트를 고려하면 의외의 선택이다. 라디오 등 전통 플랫폼에서의 약세를 극복하기 위해 미국 아미는 트위터 계정(@BTSx50STATES)을 개설해 50개 주에 있는 지역방송국을 전수 조사해 이들의 노래를 신청하는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다.
현지 반응을 묻자 빌보드 칼럼니스트 제프 벤저민은 “팬들의 지속적인 노력에도 ‘온’이 라디오에서 덜 방송된 것은 사실”이라고 답했다. 그럼에도 싱글 차트에서 4위를 차지하면서 자체 최고 기록을 경신한 것에 대해서는 “다른 항목에서 부족한 점수를 상쇄할 만큼 더 큰 영향력을 갖게 된 것”이라고 풀이했다.
대신 경계를 허무는 것에 더욱 집중했다. 각각 니키 미나즈와 할시가 피처링에 참여한 ‘아이돌’과 ‘작은 것들을 위한 시’에 이어 협업 상대는 더욱 다양해졌다. ‘온’ 리믹스 버전에는 호주의 시아가 피처링, 수록곡 ‘라우더 댄 밤(Louder than bombs)’에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트리오 시반이 작사·작곡에 참여했다. 한국어 음악으로 언어·국적·인종의 장벽을 초월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이들이 주체가 되어 초국적 음악을 빚고 있는 셈이다.
‘키네틱 매니페스토 필름’이라는 낯선 명칭으로 ‘온’의 첫 번째 뮤직비디오를 공개한 데 이어 첫 방송으로 미국 NBC ‘더 투나잇 쇼 스타링지미 팰런’을 택한 것도 상징적이다. 뉴욕 기차역인 그랜드 센트럴 터미널에서 대규모 퍼포먼스를 펼침으로써 대중의 이목을 집중시킨 것. 이규탁 교수는 “미국 대학에서 행진할 때나 스포츠 경기에서 등장하는 화합의 상징인 마칭밴드를 K팝에 녹여내고, 다국적 댄서와 협연하면서도 그 중심에 한국인 방탄소년단이 위치함으로써 일종의 문화적 선언을 하는 느낌”이라고 평했다.
방탄소년단의 도전은 멈추지 않는다
현대미술 애호가인 RM과 현대무용을 전공한 지민 등 멤버들의 관심사를 반영해 활동 영역을 넓혀나가는 것도 주목할만하다. 앨범 발매 시기에 맞춰 5개국에서 순차 진행한 공공미술 프로젝트 ‘커넥트, BTS’나 슬로베니아 현대무용팀인 엠엔 댄스 컴퍼니와 협업한 아트 필름은 대중음악을 새로운 단계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BTS 예술혁명]의 저자 이지영 세종대 초빙교수는 “방탄소년단은 잇단 협업으로 고급예술과 대중예술 간의 경계를 흐릿하게 만들고 있다”며 “수직적 구조에서 벗어나 수평적으로 되돌리는 노력이 각 예술 장르에 더 많은 사람을 유입하는 효과를 가져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올해 스물여덟살이 된 진을 시작으로 맞닥뜨리게 될 입대 이후에 대한 고민도 엿보인다. 보컬 라인(진·지민·뷔·정국)과 래퍼 라인(RM·슈가·제이홉)이 선보인 유닛곡 ‘00:00’과 ‘욱’ 외에도 지민과 뷔의 듀엣곡 ‘친구’, RM과 슈가가 함께한 ‘리스펙트(Respect)’ 등 다양한 조합을 시도했다. 솔로곡으로 빌보드 싱글 차트에 오른 정국의 ‘시차’(84위)와 지민의 ‘필터’(87위)도 눈에 띈다.
이미 2018년에 빅히트와 7년 재계약을 체결한 만큼 앞으로 방탄소년단의 새 앨범을 만나게 되지 못할까 봐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청춘에 아로새긴 그 이름이 아니었다면 이토록 치열하게 살지 못했을 테니 말이다.
방탄소년단의 음악을 즐기기 위해 이 모든 사실을 알아야 할까. 그럴 필요는 없다. 그저 이들의 노래를 듣다 보면 자신에 대해 한번 생각해 볼 기회를 갖게 될 것이다. 우리 모두 학창시절과 청춘을 거쳐 지금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자신을 사랑하는 것도, 영혼의 지도를 파악하는 것도, 그들뿐 아니라 우리 모두 앞에 놓인 숙제다. 어쩌면 진정한 ‘화양연화’는 아직 오지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 가장 빛나는 순간을 묻는 말에 “계단식으로 성장해온 덕분에 현재라고 답할 수 있어 다행”이라는 슈가의 답변처럼 그게 언제든 ‘바로 지금’이 될 수 있기에 말이다.
민경원 중앙일보 기자 story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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