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큰 타격을 받은 기업들이 많이 있어요. 정부는 항공, 해운, 조선, 자동차, 일반 기계, 전력, 통신의 7대 기간산업을 지원하기로 했는데, 정유업계가 자신들이 왜 포함되지 않았냐며 반발을 하고 있어요. 그러나 국가와 국민, 다른 산업들 모두 타격을 받은 상황에서 고통 분담 없이 정부에 손만 벌리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요?

 

강달호 현대오일뱅크 사장(왼쪽), 조경목 SK에너지 사장 / 사진:뉴스1

 

정부가 코로나19로 피해를 입은 기업에 대한 지원책을 발표하자, 산업계에서 코로나19 지원금을 두고 이전투구가 벌어지고 있다. 정유업계 안팎에서는 40조원 규모를 지원받는 7대 기간산업에 정유업계가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 노골적인 불만이 나온다. 항공업계에서는 “아시아나항공에 대한 지원 규모가 대한항공보다 큰 것은 형평성에 맞지 않다”는 목소리도 있다.

정부는 4월 22일 제5차 비상경제회의에서 항공·해운·조선·자동차·일반기계·전력·통신 등 7대 기간산업을 지원하기로 했다. ‘기간산업안정기금’을 KDB산업은행에 설치하고 40조원 이내의 기금채에 대해 국가가 보증하는 방식이다. 7대 기간산업 지원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은 아직 확정되지 않아 향후 경제 상황에 따라 지원 업종, 규모 등이 바뀔 것으로 보인다.

 

이 변동성 때문에 기업들 사이에서 “우리부터 살려라”는 아우성이 넘쳐나고 있다. 전문가들은 “7대 기간산업을 지원하겠다는 정부의 정책 방향성은 긍정적”이라면서도 “정부가 신속하게 구체적인 대응 매뉴얼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에쓰오일, 1분기 영업손실 1조원

 

 

정부 발표 지원 대상에서 빠진 정유업계는 일제히 “이러다 다 죽을 수 있다”며 아우성이다. 코로나19로 전 세계적인 소비 위축이 이어지는 데다, 국제유가 급락으로 막대한 재고평가손실을 떠안으면서 ‘이중고’를 겪고 있기 때문이다.

정유업계는 1분기에만 3조원대의 영업손실을 기록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실제 에쓰오일은 1분기 연결기준으로 1조73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해 지난해 1분기(영업이익 2704억원) 대비 적자 전환했다. 에쓰오일 측은 “유가 하락에 따른 대규모 재고 관련 손실,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정제마진 약세의 영향으로 영업손실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정유사의 수익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정제마진은 마이너스 행진 중이다. 정제마진은 휘발유와 경유 등 석유 제품 가격에서 원유가격과 수송·운영비 등의 비용을 뺀 금액을 말한다. 정제마진이 마이너스라는 것은 제품을 생산해 판매해도 손해를 보는 구조라는 얘기다. 업계에 따르면 아시아 지역의 정제 마진 지표인 싱가포르 복합정제마진은 3월 셋째 주부터 4월 넷째 주까지 6주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 중이다.

에쓰오일의 1분기 영업손실이 시장 예상보다 크자, SK이노베이션의 영업손실도 1조원을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이다. SK이노베이션의 1분기 실적 발표는 5월 6일로 예정돼 있다. SK이노베이션 측은 “코로나19로 인한 피해가 우려했던 것보다 더 심각한 상황”이라고 했다.

이 때문에 정부는 석유수입·판매 부과금(90일) 및 관세(2개월) 납부를 유예했으며 한국석유공사 여유 비축시설 임대, 전략비축유 조기·추가 구매 등의 지원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또 석유공사 비축시설 대여료 한시 인하, 석유관리원 품질검사 수수료 2~3개월 납부 유예, 대규모 석유 저장시설 개방 검사 유예(협의 중) 등도 내걸었다. 국세청은 5개 정유업체의 4월분 교통·에너지·환경세, 개별소비세 납부를 오는 7월까지 3개월 간 유예하기로 했다. 이를 통해 5개 정유업체에서 1조3745억원 규모의 자금 부담 완화 효과가 기대된다.

그러나 정유업계 안팎에서는 “정부 지원이 충분치 않다”는 볼멘소리가 넘친다. “7대 기간산업에 정유업계가 왜 빠졌나”는 불만도 그 중 하나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지원 대상에 올해 1분기 흑자 전환이 예상되는 한국전력공사는 포함됐는데, 대규모 손실이 불 보듯 뻔한 정유업계가 빠진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유통마진 상승폭 10년래 ‘최고’


그러나 엇갈린 평가도 있다. “아직은 자금 여력이 충분하다”는 목소리다. SK에너지, 현대오일뱅크 등이 지난 3월 대규모 기업어음(CP)을 발행했는데, 이를 두고 “자금 조달이 절박한 상황”이라는 의견과 “코로나19 전에도 자금 조달을 위해 CP를 발행해왔다. 지나친 확대 해석”이라는 목소리가 뒤섞인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SK이노베이션 자회사인 SK에너지는 지난 3월 8750억원의 CP를 발행한 데 이어 4월 1일부터 30일까지 3900억원을 추가 발행했다. 두 달간 1조원 이상의 CP를 찍어낸 셈이다. 현대오일뱅크 역시 3월에 7800억원 규모의 CP를 발행해 자금을 조달했다.

이에 대해 SK이노베이션 측은 “코로나19 피해와 관련해 운전 자금 확보 차원에서 CP를 발행했다”고 밝혔다. 반면 현대오일뱅크 측은 “CP 발행은 기업의 자금 조달 수단 가운데 하나로, 코로나19 피해 이전부터 자금 조달 목적으로 진행해왔다”며 “자금 조달에 문제가 있어 CP를 발행한 것은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재계 안팎에서는 일부 정유사가 급여 반납을 시행하는 것처럼 정유업계의 자구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GS칼텍스는 3월부터 임원 대상으로 급여 10~15% 반납을 시행 중이고, 현대오일뱅크는 3월 24일 비상경영체제를 시행하면서 전 임원이 급여 20%를 반납하고 있다. 현대오일뱅크는 경비 예산도 최대 70% 삭감한다. 반면 SK이노베이션 측은 “장치산업 특성상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아, 급여 반납 등으로 얻을 수 있는 효과는 미미하다”는 입장이다.

정유업계는 대표적인 고연봉 집단이다. SK이노베이션의 지난해 1인 평균 연봉은 1억1600만원이다. GS칼텍스(1억1110만원), 에쓰오일(1억1033만원), 현대오일뱅크(1억900만원) 등 정유업계의 평균 연봉은 1억원 이상이다. “업황이 좋을 때 고액 연봉을 챙기다가, 위기가 찾아오니 정부에 손부터 벌린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국내 정유사가 코로나19로 입은 피해를 소비자에게 전가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정유사가 4월 휘발유·경유의 주유소 유통비용 및 마진을 대폭 올렸기 때문이다. 에너지·석유시장감시단에 따르면 4월 첫째 주부터 넷째 주까지 정유사의 휘발유 유통비용 및 마진은 리터당 평균 116.09원으로 2019년 평균(37.9원)의 3.06배에 달했다.

 

2018년에는 리터당 평균 36원으로, 정유사 유통비용 및 마진은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정유사의 휘발유 유통비용 및 마진은 정유사가 주유소에 휘발유를 판매한 금액에서 국제유가와 관세를 제외한 금액으로, 정유사가 실제 챙기는 마진이다.

 

다만 정유사들은 이 금액에 유통비용이 포함되기 때문에 유통비용 및 마진으로 표기하는 것이 맞다는 입장이다. 같은 기간 정유사의 경유 유통비용 및 마진도 리터당 평균 82.6원으로, 2019년 평균(47.2원)의 1.75배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서혜 에너지·석유시장감시단 연구실장은 “정유사의 휘발유·경유 유통비용 및 마진을 분석한 결과, 이달 상승폭은 최근 10년간 최대치”라며 “국내 정유사가 코로나19 피해를 상쇄하기 위해 유통비용 및 마진을 대폭 올린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연구실장은 “현재 수익을 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수단인 휘발유·경유 유통비용 및 마진을 올린 것에 대해 심정적으로 이해하지만, 이렇게까지 극단적으로 마진을 올린 것은 코로나19 피해를 소비자에게 전가하는 행위”라고 했다.

 


항공업계선 지원규모 두고 ‘형평성’ 논란

 

 

항공업계에서는 지원 규모를 놓고 형평성 논란이 제기된다. KDB산업은행과 한국수출입은행은 지난 4월 24일 대한항공에 1조2000억원을 지원한다고 밝혔는데, 항공업계에서는 “산은이 아시아나항공에 1조7000억원을 지원하는 것과 비교하면 형평성에서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항공업계 전문가는 “대한항공은 규모 면에서 아시아나항공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며 “형평성을 고려한 합리적인 지원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대한항공의 지난해 연결기준 매출액은 12조6834억원이며, 같은 기준으로 아시아나항공의 매출액은 6조9658억원이다. 국토교통부 항공안전관리시스템의 항공기 등록 현황에서도 두 회사의 규모는 차이가 난다. 등록된 항공기는 대한항공이 180대, 아시아나항공이 84대다. 이에 대해 산은 측은 “지원 규모는 기업이 요청한 것을 토대로 결정되는 것이고, 우리가 자의적으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항공업계는 이번 정부 지원으로 대한항공이 급한 불은 끄겠지만, 올해 차입금 상환을 위해 2조원 이상의 자금이 더 필요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때문에 대한항공은 적극적으로 자구책을 마련하고 있다. 최대 1조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추진하고 전 직원 6개월 순환휴직, 임원 급여 반납, 비(非)수익 사업부 매각 검토 등을 진행 중이다.

대한항공이 자구 노력의 ‘진정성’을 보이기 위해 알짜 자산인 기내식사업부, 마일리지사업부, MRO(항공기 수리·정비·개조)사업부 매각을 검토 중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이에 대해 대한항공 측은 “사실 무근”이라는 입장이지만, 업계 안팎에서는 “산은이 자구 노력을 전제로 지원하겠다는 방침인 만큼 추가 자금 지원이 절실한 대한항공 입장에서는 알짜 사업부 매각 등 모든 가능성을 열어둘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대한항공이 알짜 사업부를 매각하면 코로나19 종식 이후 항공 수요가 회복돼도 기존의 수익을 창출하기 어렵다는 우려도 있다. 허희영 한국항공대 교수(경영학과)는 “항공사는 일부 국제선을 제외하면 대부분 운송이 아닌 부대사업으로 수익을 내는 구조”라며 “대한항공이 기내식사업부, 마일리지사업부, MRO사업부 등을 매각한다면 코로나19 사태가 종식돼도 이전 수준의 매출을 내기는 힘들 것”이라고 했다.

 


소상공인·중소기업 지원도 확대해야



정부 관계자는 “7대 기간산업 지원과 관련해 지원 업종이나 방식 등 세분화된 방안이 확정된 것은 아니고 현재 부처 간 협의가 진행 중”이라며 “7대 기간산업이 국가경제, 고용 등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분석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7대 기간산업을 지원하는 산업은행법 개정안은 4월 2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는데, 지원 범위를 시행령으로 확대할 수 있는 내용이 담겨 대상에 정유업계가 포함될 가능성이 있다.

박상인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정책위원장(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은 “수요가 당분간 회복되기 어려운 산업에 속한 기업은 다운사이징이 필요한데, 무조건적으로 고용 유지를 전제 조건으로 내세우면 오히려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며 “조선업 지원처럼 무조건적인 자금 투입으로 규모를 유지해 ‘좀비 기업’을 만드는 식으로 지원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또 “미국 등과 비교하면 정부 지원 정책에 중소기업·소상공인 비중이 지나치게 적은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이창훈 기자 lee.changh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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