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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

코로나19로 들어나는 일본경제의 위기, 아베노믹스의 결말은?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리더십이 도마 위에 올랐어요. 그동안 유례없는 초장기 집권을 할 만큼 많은 지지를 받던 아베 총리의 민낯이 이번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속속들이 드러나게 되었지요. 방역 실패라고 하는 책임론, 결국 미뤄진 올림픽 등은 아베 총리에게 사면초가로 다가오게 되었어요. 과연 아베 총리는 이 위기를 극복하고 벗어날 수 있을까요?

 

일본은 5월 초 닷새의 연휴를 맞았다. 휴일은 2일 토요일을 시작으로 3일 헌법기념일, 4일 녹색의 날, 5일 어린이의날에 이어 6일 대체휴일까지 이어졌다. 일본에서는 이를 오곤슈칸(黃金週刊)이라고 하는데, 통상 영어 골든위크(Golden Week)의 일본식 발음인 ‘고루덴 위쿠’라고 말하며 줄여서 GW로 쓴다.

 

4월 29일도 공휴일인 쇼와(昭和)의 날이라 만일 30~1일 이틀 휴가를 내면 기술적으로는 최장 8일까지 쉴 수 있는 기회다. 코로나19로 피로감이 가중되는 가운데 맞은 소중한 휴식의 기회다.

그런데 이런 GW가 끝날 무렵인 5월 4일 일본인들은 청천벽력과도 같은 발표를 들어야 했다. 아사히·요미유리 등 일본 신문에 따르면 아베신조(安培晋三) 총리는 이날 전국 47개 도도부현(都道府·광역지방자치단체) 전체를 대상으로 ‘신종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감염 확대에 따른 긴급사태 선언의 기한을 애초 5월 6일에서 31일로 미룬다고 발표했다. 일본의 아베 총리가 본부장을 맡고 있는 정부대책본부의 결정에 따른 것이다.

아베 총리는 연장 이유에 대해 “감염자 감소가 충분한 수준이라고 할 수 없고 의료현장의 어려운 상황이 개선되려면 1개월 정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루 확진자 발생이 100명 이하가 돼야 안정적이라고 할 수 있는데 아직 그런 상황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일본 정부는 하루 신규 확진자 100명을 현행 의료체계가 코로나19 사태를 적절하게 관리할 수 있는 기본선으로 여긴다. 그 이상이면 의료체제를 압박해 환자를 제대로 관리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아베 총리의 말마따나 일본의 확진자와 사망자 발생 속도는 여전히 불안한 상태다. 연장을 발표한 5월 4일까지 누적 확진자가 1만5058명에 이르렀으며 누적 사망자는 536명이었다. 이날까지 직전 7일간 하루 평균 확진자가 217명에 이르렀다. 특히 발표 하루 전인 5월 3일 하루 306명의 확진자가 나왔다.

 

직전 7일간 사망자는 23명이었으며, 특히 바로 그날 하루 역대 최대치인 49명이 숨졌다. 일본에선 코로나19가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는 셈이다. 아베는 정치적으로 ‘방역에 성공한 지도자’가 되지 못한 셈이다.

 


경제 피해 대책 갈팡질팡 속타는 아베노믹스

 

 

경제적인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아베는 긴급사태 선언의 장기화에 따르는 경제적 영향도 고려해 감염 확대가 심각하지 않은 33개 현에 대해 사회경제적 활동을 재개하도록 용인했다. 전문가들에게 분석을 맡겨 확진자 수 증감 추세 등 상황에 따라오는 14일을 목표로 지역별 긴급사태 해제 기준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확진자 증가세가 계속 둔화하면 31일 이전에라도 지역별로 긴급사태 완화 조치를 추가한다는 이야기다. 코로나19에 대한 조심스러움과 경제 압박 완화에 대한 초조함이 동시에 묻어 나오는 대목이다.

아베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코로나19 감염 확대와 긴급사태 선언으로 인해 수입이 대폭 감소한 음식점 등에 대해선 임대료를 경감해주고, 휴업으로 아르바이트를 할 수 없게 된 학생들에게는 생활비를 지원하는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기업이 직원들에게 지급하는 휴업 수당도 일부 국가가 보조하는 고용조정 보조금의 확충도 검토하겠다고 덧붙였다.

아베는 일본 제약업체가 개발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치료제인 아비간을 코로나19 치료제로도 쓸 수 있도록 5월 중 승인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아비간은 주로 경증 코로나19 환자에게 투여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아베는 “아비간 투여가 3000건 정도 이뤄지는 등 임상 시험이 진행되고 있다”며 “유효성이 확인되면 의사의 처방에 따라 사용할 수 있도록 약사승인을 내주려고 한다”고 밝혔다.

아베가 이렇게 긴 리스트의 대책을 내놓은 이유는 간단하다. 그만큼 경제 문제가 심각하며 앞으로 더욱 악화할 것으로 우려된다는 의미다. 요미우리에 따르면 당장 긴급사태 선언이 연장되면서 일본 경제는 악영향이 확대될 전망이다. 외출 자제와 기업의 휴업 연장으로 개인 소비가 감소해 국내총생산(GDP)이 대폭 줄어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일본 제일생명경제연구소의 구마노 히데오(熊野英生)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요미우리에 “긴급사태 시한이 5월 말까지 연장되면 물가변동 요인을 제외하고도 일본의 실질 GDP가 23조1000만 엔 줄어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5월 6일까지 지난 1개월간 감소효과는 21조9000만 엔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이를 합칠 경우 긴급 사태 선언으로 인한 일본의 GDP 감소효과는 45조엔으로 연간 실질 GDP의 8.4%에 해당한다.

 


일본 마이너스 성장 하반기에도 이어질 전망


아베 정권은 지난 4월 1인당 10만 엔을 지급하는 등의 긴급 경제대책을 발표했지만 이 정도로는 불충분하다는 지적이다. 미쓰비시(三菱)UFJ모건스탠리 증권의 카노 다츠시(鹿野達史) 시니어 이코노미스트는 “성장률 저하를 상쇄하는 10조엔 정도의 정부 추가 지출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일본의 최대 민간 기관투자가인 일본생명이 설립한 닛세이 기초연구소의 시츠시마 코지(失嶋康次) 수석이코노미스트는 “대부분의 기업이 사업 축소, 자산 매각, 정부와 일본은행의 자금지원을 활용하려고 하는데 이 정도로는 불충분하다”며 “장기전으로 이어지면 기업의 도산을 피할 수 없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노무라(野村) 연구소의 키우치 도우에이(木內登英) 총괄 이코노미스트는 “6월 이후에도 외출자제와 휴업 등의 요청이 일시에 해제될 것으로 생각하기는 곤란하다”며 “실질 GDP는 7~9월까지 마이너스 성장이 계속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아사히 신문은 “긴급사태가 연장되면서 경제가 더욱 악화하는 것이 불가피하게 됐다”며 “GDP가 최대 33%까지 감소할 것이라는 예상도 있다”고 보도했다. BNP파리바 증권의 고노료카로(河野龍太郞) 치프 이코노미스트는 “4~6월의 GDP 성장률은 전년 동기 대비 33.3%로 예상했다.

 

리먼 쇼크 당시인 2009년 1~3월 기록인 마이너스 17.8%를 크게 넘어선다. 아사히는 소비가 얼어붙고 기업은 수중에 현찰을 확보하기 위해 설비투자를 줄이면서 경제활동이 대폭 정체될 것으로 예상했다.

아사히가 예상한 업종별 경제상황을 살펴보자. 코로나19 사태와 관련한 기업체 도산은 3월에 31건이었으며 4월에는 108건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항공 업계의 경우 대형 2개사의 여객 숫자가 3월에는 국제선 70%, 국내선 60%가 줄었는데 4월에는 국제·국내선 모두 90%가 감소할 것으로 보인다.

 

신차 판매대수는 3월 9.3%가 줄었으며 4월에는 28.6%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 백화점의 매출은 3월에 33.4%가 줄었는데 4월에는 대형 4개사가 70~80%가 줄 것으로 보인다. 외식 매출은 3월에 17.3%가 감소했으며 특히 실내 선술집은 41.4%가 줄었다. 4월에는 더욱 악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마디로 심각한 정도가 더욱 가중될 것이라는 어두운 예상이 지배적이다. 아사히는 긴급사태 연장으로 기업들이 장기전 채비에 들어갔다고 전했다. 아베 총리는 이날 “책임을 통감한다”며 긴급사태 기한 연기에 대해 사과했다.

 


‘디지털 한국 배워라’ 감염 급증에 뿔난 일본 국민

 

 

아베가 긴급사태 연장과 추가 대책을 발표한 다음날인 5일자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은 1면에 게재한 오오키 신이치(靑木愼一) 과학기술부장의 ‘아날로그 행정에 머나먼 출구’ 칼럼을 실었다. 이 칼럼은 일본 정부가 검사 확충도, 의료체제의 강화도 하지 않아 경제재개에 반드시 필요한 조건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이는 경직된 행정 시스템 때문이라고 질타했다. IT나 민간협력의 도입이라는, 21세기의 세계표준을 따르지 않고서는 바이러스와의 싸움에서 이길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빅데이터와 스마트폰을 적극 활용한 대만과 한국을 예로 들었다. 대만은 건강보험 자료와 출입국 자료를 활용했으며 스마트폰으로 건강 상태를 감시했다. 한국은 인공지능 등을 활용해 검사를 대폭 확대하고 접촉자 관리에 스마트폰을 활용했다고 소개했다. 반면 일본은 보건소 직원이 전화로 환자에게 질문해 감염경로를 조사하다 보니 초기에 감염자가 급증했다. 검사는 하루 2만 건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있다.

일본은 8일 0시까지 코로나19 확진자가 1만5253명에 사망자가 556명에 이르렀다. 인구 100만 명당 확진자 121명에 사망자 4명이다. 5월 5일 175명의 확진자가 새로 발견됐으며 20명이 숨졌다. 이날을 기준으로 7일간 하루 평균 확진자는 194명이며 평균 사망자는 20명이다. 다만 5월 4일 49명의 사망자가 발생해 하루 규모로는 가장 많았다.

문제는 일본의 코로나19 검사 규모가 인구와 경제규모에 비해 지나치게 작다는 점이다. 검사 건수는 18만 6343건으로 인구 100만 명당 1473건에 지나지 않는다. 인구 1억2616만(2010년 추계)인 일본의 검사 건수는 인구 413만인 쿠웨이트(19만6397건), 536만인 노르웨이(19만1946건)보다 약간 적고 563만인 싱가포르(17만5604건)나 998만인 아제르바이잔(16만9790건)보다 약간 많은 수준이다.

 

일본의 인구 100만 명당 검사 건수는 카리브해의 작은 섬나라인 인구 9만6000의 앤티가 바부다(1562건)나 139만이 사는 트리니다드 토바코(1538건)나 인구 3600만의 북아프리카 국가 모로코(1493건)보다 조금 적고 88만이 거주하는 남태평양의 피지(1450건)나 2160만이 사는 인도아대륙의 스리랑카(1426건)보다 약간 많다. 경제 규모에서도 일본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나라들이다.

이렇게 명백하게 수치로 드러나는 검사 관련 데이터는 곧바로 아베 정권의 ‘방역 성적표’일 수 있다. 부족한 검사 성적은 행정력을 동원해 과학적이고 기술적이며 창의적인 코로나19 대응을 하지 못했다는 명백한 증거이기 때문이다. 돈과 기술이 넘치는 일본에서 아날로그 행정과 지도자의 의지 부족이 코로나19에 대한 대응에 발목을 잡고 있는 셈이다.

 


저조한 방역성적표에 흔들리는 아베 리더십


코로나19 사태는 아베의 염원인 개헌도 뒤흔들고 있다. 집권 자민당은 올해 6월 17일까지 통상국회(정기국회) 기간 중 중의원과 참의원의 헌법심의회에서 이를 논의하고, 국민투표법 개정안을 심의한 뒤 헌법심의회에서 개헌안 등을 논의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로 이 과정 자체가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가을의 임시국회에서 이론적으로는 개헌안 논의를 할 기회가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불투명하다. 코로나19로 인한 국민 생활 대책, 경제 회복 정책, 의료 강화 방안, 추가 예산심의 등 의제가 쌓여있기 때문이다.

해를 넘겨 2021년 1~6월의 통상 국회도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이 시기에 헌법심의회가 개헌안을 심의하고 국회에서 이를 발의해 국민투표를 거쳐 개정 헌법을 확정하고 시행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시간이 촉박하다. 7~9월엔 도쿄 올림픽과 패럴림픽 때문에 개헌 일정을 진행시키기가 쉽지 않다.

 

게다가 9월 30일에는 아베의 자민당 총재 임기가 만료되고 10월 21일에는 중의원의 임기가 끝난다. 아베는 자민당 당헌을 고쳐 자신이 다시 총재가 되고 중의원 선거에서 승리해 다시 총리를 하는 방법이 남아있다. 이를 통해 마지막으로 개헌을 시도할 수 있다.

 

하지만 이번 코로나19 대처 과정에서 드러난 아베의 리더십에 국민의 불만이 터져 나올 가능성이 크다. 아베 총리의 재임 기간 중에 개헌을 마무리하자고 주장하는 정당도 자민당과 유신회 정도다. 연립 여당인 공명당조차 어중간한 입장이다.

 

결국 아베 총리는 방역과 경제 모두에서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평가는 물론 보수파의 지지를 얻는 바탕이었던 개헌에서도 일을 제대로 못한다는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다. 아베는 그야말로 사면초가다. 코로나19가 아베에게 결정적인 ‘독소’가 되고 있다. 이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한 아베의 다음 수는 무엇일까.


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 기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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