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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생물로 암 치료해요’ 면역항암제 개발한 지놈컴퍼니

유산균이 몸에 좋다고는 알았는데 항암제가 될 수도 있다고 해요. 그것도 부작용이 거의 없는 항암제라고 해요. 다국적제약사가 세계 최초로 몸속 미생물 기반 면역항암제 개발을 진행하면서 한국 지놈앤컴퍼니를 파트너로 삼았어요. 이들을 홀린 배지수, 박한수 지놈앤컴퍼니 대표를 만나보았어요.

 

지놈앤컴퍼니는 서울대 의대 동기인 배지수 대표(오른쪽)가 경영을, 박한수 대표가 연구개발을 총괄하고 있다.

 

다국적제약사가 한국 스타트업과 손잡았다. 지난 1월 13일 지놈앤컴퍼니는 독일 머크(Merck), 미국 화이자와 ‘임상시험 협력 및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한국 회사 지놈앤컴퍼니가 보유한 마이크로바이옴 GEN-001를 머크와 화이자가 보유한 면역항암제 ‘바벤시오(성분명 아벨루맙)’과 함께 암 환자에게 투여하는 임상을 미국에서 진행하기로 한 것이다.

 

지난 4월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병용요법 1/1b상 임상시험계획(IND)을 승인받았다. 다국적제약사가 면역 항암제 병용 임상을 진행하는 것은 전 세계적으로 다섯 번째고, 아시아 기업과 손잡는 건 이번이 최초다. 마이크로바이옴은 인간의 몸 안에 있는 미생물 군집을 통칭하는 말로, 미생물과 유전체의 합성어다. 장내 유산균을 떠올리면 쉬운데 이게 이제 식품이 아니라 치료제가 된다는 얘기다.

이번 임상 계약이 갖는 의미는 뭘까. 지난 5월 18일 판교 지놈앤컴퍼니 사무실에서 만난 박한수(47) 각자대표는 “1년 6개월 이상 걸린 이번 임상 계약은 전 세계 2000여 개 이상 경쟁사를 제친 결실”이라며 “이번 계약은 마이크로바이옴이 우리가 익히 아는 유산균 정도의 건강기능식품에서 항암제로 거듭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설명했다.

 

옆에 있던 배지수(49) 각자대표는 “머크와 화이자가 보유한 면역항암제 ‘바벤시오’를 사서 임상을 진행했다면 100억원이 더 들었을 것”이라며 “비용을 크게 줄인 것은 물론 임상 1·2상을 총괄하기에 임상 개발 역량을 더 높일 수 있게 됐다”고 거들었다.

2015년 설립된 바이오 기업치고는 눈부신 성과다. 업계에선 지놈앤컴퍼니에 포진한 맨파워를 그 비결로 꼽는다. 이 회사에선 서울대 의대 동기인 배지수 대표가 경영을, 박한수 대표가 연구개발을 총괄하고 있다. 의대 졸업 후 두 사람은 좀 다른 길을 걸었다.

 

배 대표는 서울대병원 정신과 전문의를 거쳐 듀크대학교에서 경영학석사(MBA)를 수료했다. 이후 글로벌 경영 컨설팅 회사 베인앤컴퍼니에서 컨설턴트, 글로벌 제약회사 MSD의 대외협력 이사로 일했다. 박 대표는 서울대 의대 대학원에서 생화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는데 당시 석박사 지도교수가 서정선 마크로젠 회장이었다. 이후 하버드의대 연구원, 잭슨랩 수석팀장을 역임했다. 잭슨랩은 노벨상 수상자를 20명이나 낸 세계 최고 수준의 동물 질병모델 연구소다. 그만큼 온전히 연구원의 길만 걸어왔다는 얘기다.

임직원도 화려하다. 고려대에서 분자생물학 박사학위를 딴 뒤 하버드의대, 매사추세츠 종합병원에서 연구원으로 일했던 윤경완 부사장, 고려대의료원 내과 전문의 출신이자 베인앤컴퍼니 컨설턴트였던 서영진 부사장이 있다. 특히 서울대 약대를 졸업한 약학박사로 한미약품 임상총괄이사, 차바이오텍 개발팀 전무, 종근당 제품개발실 상무를 역임한 박경미 부사장은 현재 지놈앤컴퍼니의 임상을 총괄하고 있다. 이번 머크·화이자가 중요시한 임상 분야에서 높은 점수를 받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당장 이들이 치료제를 만들 수 있는 건 아니다. 아직 변변한 매출도 없다. 그래도 다국적제약사는 수천개가 넘는 회사 중 임상 협력사로 지놈앤컴퍼니를 택했다. 다국적제약사를 사로잡은 ‘미생물로 암을 잡는 법’에 대한 얘길 더 들어봤다.

현재 지놈앤컴퍼니는 독일 머크, 미국 화이자사와 마이크로바이옴을 활용한 면역항암제 임상에 착수했다. 이로써 두 다국적제약사와 병용 임상 계약을 체결한 아시아 최초 기업이 됐다.

 

미생물이 정말 암을 잡나.

박한수 대표(이하 박 대표): 몸속 유익균으로 암을 잡겠다는 건 뜬구름 잡는 얘기가 아니다. 물론 유익균을 포함한 인체 내 미생물의 존재는 우리가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하지만 어떤 균이, 어떤 세포가 어떻게 결합해 화학작용을 하며 질병 치료에 효과적인지 그 과정을 살피는 건 쉽지 않다. 물리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 화학적 반응이 일어나면서도 수많은 요소가 생겨나는데 경우의 수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다. 우리는 유전체 정보를 분석해 세균 속 특정 미생물이 가진 염기서열을 가려냈다. 머크와 화이자도 지놈앤컴퍼니가 미생물을 구분해내는 기술이 가장 탁월했다고 했다.

처음부터 치료제를 염두에 뒀나.

배지수 대표(이하 배 대표): 치료제 개발은 상당히 멀고 큰 꿈이라 생각했다. 박 대표가 면역항암제를 얘기하며 창업하자고 했을 땐 사실 믿지 않았다. 어쨌든 의기투합하기로 했고, 투자사를 만나러 다녔는데 의외로 투자사들이 꿈을 크게 가지라며 독려(?)했다. 건강기능식품을 표방하면 성장세가 주춤할 수 있지만, 치료제 개발이라면 수조원이 될 수 있지 않겠냐는 얘기였다. 성질 급한 투자사가 이런 얘길 하다니 놀라웠다. 그 와중에 박 대표가 관련 데이터를 충실히 쌓고 있었고, 사업 방향을 틀어 다시 사업계획서를 만들어 들고 갔더니 투자해줬다. 멀고 험난한 길이 될지도 모를 일인데, 한국 투자사들은 그만큼 신약 개발에 대한 이해도가 높았다. 그게 2015년이었다.

당장 미생물 치료제가 시장에 통하기 어려울 텐데.

배 대표: 그렇다. 이미 검증된 약을 쓰고 있는 환자들이 새로운 치료제를 무턱대고 쓸 리는 없다. 먼저 마이크로바이옴을 활용해 면역항암제 효과를 더 끌어올리는 식으로 접근하는 이유다. 면역기능을 높여 암을 잡는 면역항암제는 기존 항암제의 부작용인 소화불량, 구토, 백혈구감소증, 탈모 등을 크게 줄일 수 있다. 하지만 20% 미만의 환자에게만 효과가 있는 데다 환자마다 유익균의 분포와 양이 다르기 때문에 면역 효과도 달라진다. 이번 임상 계약도 면역항암제와 마이크로바이옴을 병용해 인체의 면역신호를 증강하는 식이다.

원리를 좀 더 자세히 설명해줄 수 있나.

박 대표: 3세대 면역항암제으로 대표적인 게 PD-1 억 제제다. PD-1은 면역세포 ‘T세포’의 표면 단백질을 억제한다. 암세포의 일부 단백질(PD-L1, PD-L2 등)이 PD-1에 반응하면 면역세포가 암세포를 공격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암세포에 있는 PD-L1 단백질을 직접 억제하는 약도 개발됐다. 우리는 3세대 항암제와 병용 시 치료 효과를 높이는 마이크로바이옴 균주를 동정(후보물질이 될 세균을 골라 키움)했다. 이게 머크와 화이자와 손잡고 미국 FDA 임상 1상에 들어가는 의약품이다. 배 대표 말대로 3세대 면역항암제에 반응하는 환자군이 20% 미만이라 그 반응 대상을 넓히는 데 균주를 쓰는 거다.

임상을 시작하면 보통 7~8년 걸리지 않나.

배 대표: 우리가 흔히 임상 1상 시험에 들어간다고 하면 3~5명 정도의 특정 환자를 대상으로 한다. 그리고 임상 2상, 3상으로 가면서 시간이 꽤 길어진다. 후보물질마저 그다지 효과를 보지 못하면 다시 시작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가 이번에 미국에서 하는 임상 1상은 처음부터 100여 명 규모로 진행한다. 접근법도 다르다. 기존엔 특정 질환에 대한 치료 후보 균주만 골라 연구했으나 이번엔 환자군과 정상군 사이의 마이크로바이옴 구성의 차이를 분석하고 두 군에서 차이를 보인 균주를 해당 질환에 치료 균주로 쓰는 식이다. 이렇게 되면 폐암·흑색종·대장암 등 다양한 암 질환을 대상으로 임상 1·2상까지 커버할 수 있다. 2년 내 임상 1상이 끝나고 제대로 된 결과가 나오면 머크, 화이자와 라이선스 아웃(기술수출) 논의에 들어갈 수 있다.

면역이 정말 활성화됐나.

 

 

박 대표: 동물실험 결과에서 ‘GEN-001’을 단독 투여한 경우, ‘PD-L1’ 단백질을 억제해 암세포를 죽이는 면역 항암제와 병행 투자하는 방식 모두 장, 면역기관, 혈액 등에서 면역이 활성화됐다. 수치로 보면 종양이 80%나 줄었고, 단독으로 투여해도 대조군보다 절반 이상 줄었다. 수천 개 후보사 중에서 우리를 택한 다국적제약사도 굉장히 고무돼 있다. 사실 마이크로바이옴 연구는 많이 이뤄진 상태지만, 임상 결과를 발표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래서 우리 동물실험 결과에 상당히 놀라워했다.

당장은 매출이 없을 텐데, 투자금이 몰렸다.

배 대표: 지금까지 460억원 넘게 투자받았다. 지난 2017년 12월 한국투자파트너스, 파라투스인베스트먼트, DSC인베스트먼트 등으로부터 56억원 규모의 시리즈 A 자금을 유지했고, 2018년엔 같은 곳을 포함해 기관투자자 몇 군데가 더 자금을 보태 총 110억원 규모의 시리즈 B투자가 이뤄졌다. 지난해 8월엔 약 300억원 규모의 시리즈 C투자를 유치했다. 대부분 미국 임상에 쓰일 자금이다. 시리즈 C투자를 유치할 당시 기업가치도 3382억원 정도로 인정받았고, 같은 해 말 코넥스(시가총액 2640억원, 코넥스 2위 *2020년 5월 18일 종가기준)에도 상장했다. 앞서 말했지만, 한국 투자사들의 바이오 분야에 대한 이해도가 상당히 높아 놀라웠다.

어떤 때 가장 힘들었나.

박 대표: 이번 임상 계약이 아닐까 싶다. 전임상, 임상 1상, 2상, 3상 등 신약 시판 허가를 얻는 과정에 필요한 거의 모든 절차를 거친 것 같다. 그만큼 까다로웠다. 미국 문턱이 닳도록 가서 그들이 요구하는 내용과 각종 데이터를 모아 제출하고 설명하길 반복했다. 1년 정도가 넘어갈 무렵엔 ‘아! 이거 안 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더군다나 한국의 이름 모를 회사가 과연 임상을 총괄할 수 있을지 우려하는 의구심을 불식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임상연구를 총괄하는 맨파워가 왜 중요한지 깨닫는 기회였다.

그래도 한국에서 신약 개발에 회의적인 시선은 여전하다.

배 대표: 알고 있다. 신라젠, 헬릭스미스 등이 임상 3상에 실패했다는 소식이 증권업계에 충격을 안겨준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난 좀 다르게 본다. 한국에서 여태껏 임상 3상까지 가본 적이 있었나. 기초연구, 초기임상, 라이선싱아웃(L/O)까진 잘해왔는데 임상 3상은 첫 경험이었던 거다. 모든 산업엔 러닝(배움)이 필요하다. 내가 10년 전쯤 MSD 대외협력 이사로 일하면서 돌아본 한국 바이오 기업은 구멍가게 수준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한국 바이오업계 자체가 ‘급’이 달라졌다. 임상 3상 경험이 바이오업계에 공유되고, 경험을 쌓은 기업들이 업계에 포진하게 되면 한국 바이오산업은 진일보하게 성장할 수 있다는 데 한 표를 던지겠다.

현재 지놈앤컴퍼니는 마이크로바이옴 면역항암제, 화장품, 건강기능식품 등 사업다각화 방안을 상당히 구체적으로 마련한 상태다. 이를 기반으로 빠르면 올해 말 코스닥 이전상장도 할 계획이다. 다양한 사업계획과 연구개발을 논했던 두 대표는 “지놈앤컴퍼니가 ‘의약품 연구개발 전문 기업’임은 꼭 알아달라”고 입을 모았다. 박한수 대표는 여기에 달라진 한국의 위상을 전하며 ‘당부’를 얹었다.

“전 세계 바이오 기업 중 미국 베단타, 이벨로, 영국 4D파마 정도가 우리 경쟁사로 꼽힙니다. 연구하는 미생물의 종류가 조금씩 다를 뿐 연구 수준은 우리가 앞서는 게 많습니다. 막 창업했던 2015년만 해도 미국 학회에 가면 무시 아닌 무시를 당했죠. 지금요? 기조연설, 발제까지 의뢰합니다. 올해 초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렸던 JP모건 헬스케어 콘퍼런스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연출됐습니다. 최근 ‘K바이오’ 열풍이 분다지만, 이들은 순전히 우리가 내놓은 연구 결과를 보고 온 겁니다. 이제 한국도 임상개발 분야에서 많은 투자와 경험을 쌓았고 역량을 갖춘 인재가 많습니다. 기초연구는 ‘브랜드’ 없었던 한국 바이오업계에 든든한 방패가 돼줄 겁니다.”


김영문 기자 ymk0806@joongang.co.kr

사진 전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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