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회 홍진기 창조인상 문화예술부문 수상자는 바로 고선웅 연극 연출가예요. 고선웅 연출가는 연극에 국한하지 않고 뮤지컬과 오페라에도 발을 뻗는 등, 한 가지 장르에 얽매이지 않고 그 재능을 펼치고 있어요. 특히 지난 2018년에는 평창 동계패럴림픽 개·폐막식 총연출을 맡았어요.
방탄소년단발(發) 케이 팝(K-POP) 열풍이 여전히 뜨겁다. 4월 28일 미국 빌보드가 발표한 ‘월드앨범’ 차트에서 정규 4집 ‘맵 오브 더 솔(MAP OF THE SOUL): 7’(2월 21일 발매)이 1위를 기록했다. 4월 18일 유튜브 채널에서 온라인 생방송한 콘서트는 전 세계 162개국에서 최대 224만 명에 이르는 동시 접속자 수를 기록하기도 했다.
대중음악계에 비해선 작지만, 의미 있는 움직임이 연극계에서도 보인다. 국내에서 꾸준히 호평을 받은 작품들이 해외 진출에 나서고 있다. 민주화운동이 남긴 상처를 다룬 연극 [흑백다방](차현석 각색·연출)은 2014년 국내 초연 이후 미국·영국·일본 등지에서 공연해 주목을 받았다. 아예 해외 무대에서 초연을 펼친다는 소식도 들린다. 한강 작가의 소설을 각색한 [채식주의자]는 내년 상반기 벨기에 극장 무대에 처음 올라간다.
이런 연극계의 해외 진출 대열에서 가장 앞에 선 사람이 고선웅(52) 연출가다. 그가 2015년 11월 처음 선보인 연극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은 이듬해 중국의 초청을 받아 국가화극원에서 공연했다. 중국 원나라 때 쓰인 동명의 소설을 각색한 작품이다. 이미 국내에선 동아연극상 대상, 대한민국연극대상 대상, 올해의 연극 베스트3, 올해의 공연 베스트7(월간 [한국연극] 선정)을 휩쓸며 작품성을 증명한 바 있다.
이에 앞선 2015년 1월엔 셰익스피어의 희곡 [맥베스]를 각색한 연극 [칼로막베스]를 칠레 산티아고에서 선보였다. 역시 2010년 국내 초연과 함께 동아연극상 등 굵직한 상을 휩쓴 작품이다. 2014년 초연한 [홍도]는 2016년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 국립극장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이런 걸출한 성과를 토대로 제11회 홍진기 창조인상 문화예술부문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작품성을 기한다는 이유로 일 년에 한두 편 작품을 내는 스타일도 아니다. 코로나19로 문화예술계 전체가 침체된 지금도 그는 공연 준비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듯했다. 5월 8일 그에게 전화했을 때 “지금 리허설 중”이라며 서둘러 통화를 끝냈다. 지난 4월 19일 대학로에서 연극 [리어외전] 공연을 끝낸 지 불과 3주 남짓 지난 시점이었다.
늦은 밤 지하철 퇴근길에서 다시 전화를 받은 그는 “이달에 공연하는 작품([나는 광주에 없었다])이 있다”며 “서둘러 마무리하고 나서 또 6월에 공연 들어가는 작품을 준비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한 해에 적어도 6개 이상의 작품을 무대에 올릴 만큼 다작하는 연출가로 꼽힌다.
다작만이 아니다. 연극뿐 아니라 뮤지컬, 오페라, 전통 창극 등 공연 장르를 종횡무진 넘나든다. 그런데도 결과적으로 연극 못지않게 관객과 평단 모두를 사로잡았다. 어느새 ‘공연계의 미다스 손’이라는 별칭까지 붙었다. 비결이 뭘까? 그는 “연극이나 뮤지컬, 심지어 드라마와 영화도 모두 본질은 놀이”라고 말한다.
“연극을 영어로 번역하면 play다. 또 한자 극(劇)의 부수를 뜯어서 보면 돼지와 호랑이가 칼 들고 다투는 모습을 담고 있다. 놀이에서 연극이 나왔다는 것을 보여주는 흔적들이다. 이렇게 놀이라고 생각하면 기운이 준동한다. 이렇게 방향을 잡으니 다른 장르에서도 갈 길이 조금 보이더라.”
“연극은 끌로 나무를 파는 작업과 같아”
고 연출가는 “놀이에는 룰이 있다”며 “각자 장르에서 따르는 룰만 지킨다면 즐겁게 놀 수 있다”고 덧붙였다.
“오페라나 창극, 뮤지컬에는 제각기 음악적인 패턴과 룰이 있지 않나. 박자가 있고 장단이 있다. ‘난 놀 거야’라고 했는데, 장단이 틀리고 박자와 음정이 틀리면 그건 자기 혼자 노는 것일 뿐이다.”고 연출가는 2018 평창 동계패럴림픽 개·폐막식에서도 놀이판을 벌였다. 개·폐막식 총연출을 맡아 3년간 준비한 끝에 ‘가능한 꿈들’(개막식) ‘우리가 세상을 움직이게 한다’(폐막식)란 제목의 공연을 선보였다. 당시 국가가 아닌 사람의 이야기를 다뤘다는 이유로 크게 호평받았다. 올림픽 등 국가적 이벤트에는 개최국의 역량을 과시하는 의도가 담겨 있기 마련이다.
고 연출가는 3년 동안의 준비과정을 두고 “연극과 달리 대규모 인원이 체계를 갖고 움직이는 모습을 보며 철이 많이 들었다”며 “나를 크게 성장시킨 프로젝트”라고 돌이켰다.
개막식 당일까지 가슴을 졸였던 에피소드도 소개했다.
“무대 장치 중에 10m 크기의 공(‘공존의 구’)이 있었다. 이걸 무대 가운데 띄우고 장식해야 하는데, 날씨가 문제였다. 개막식 전날까지 강풍과 폭설 때문에 애간장을 태웠다. 3년 동안 준비한 게 허사가 될 수 있었다. 다행히 개막식 당일 기적적으로 날씨가 갰다. 속으로 ‘우리나라 만세’라고 쾌재를 불렀다.”
고 연출가는 199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창작 희곡 [우울한 풍경 속의 여자]가 당선되면서 데뷔했다. 그가 대학을 졸업한 해인 1994년과는 간격이 있다. 졸업한 뒤 4년여 동안 광고회사에서 일한 까닭이다. 그는 “극작가가 되려고 빚내서 컴퓨터를 샀는데 글만 써서는 갚을 수가 없었다”며 당시를 떠올렸다. 그는 회사에 다니면서도 글 쓰는 삶을 포기하지 않았다고 한다.
“평생 해도 진력나지 않는 일이 뭘까를 고민했다. 결국 연극이었다. 당시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안 지치니까. 지금도 연극을 생각할 때가 제일 즐겁다.”
그를 평생 동안 사로잡는 연극의 매력은 뭘까. 그는 “연극은 끌로 나무를 파내는 작업과 비슷하다”며 말을 이었다.
“매 공연 배우들의 연기가 조금씩 다르다. 관객과 리얼타임을 공유하는 장르니까 그렇다. 그렇게 같은 공연을 반복하다 보면, 삶의 군더더기는 깎아내고 알맹이만 남기는 느낌이 든다.”
문상덕 월간중앙 기자 mun.sangd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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