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소설의 기준은 무엇일까요? 판매량? 문학성? 수상경력? 가독성? 이러한 모든 것들을 파괴하고 자신만의 글로 묵묵히 좋은 소설을 쓰고 있는 좋은 소설가. [위저드 베이커리]의 작가 구병모를 만나보았어요.

 

소설가 구병모는 환상·판타지를 무기로 청소년·성인 독자를 두루 사로잡는다. 환상성이 우리와 동떨어진 게 아니고 일상생활의 연장이라는 태도로 글을 쓴다. / 사진:구병모

 

좋은 소설 문장은 어떤 문장인가. 좋은 문학작품은? 좋은 문장들을 벽돌장처럼 차곡차곡 쌓아 올리기만 하면 좋은 소설을 쓸 수 있는 걸까?

소설가 구병모(44)씨의 작품들을 읽다 보면 문학에 대한 이런 근본적인 궁금증들이 줄줄이 떠오른다. 그런 의문을 품게 함으로써 구병모는 좋은 문장, 좋은 문학작품에 관한 우리의 어떤 신념에 흠집을 내고자 하는 것 같다. 훌륭한 소설 문장, 좋은 문학작품은 어떠해야 한다는 소신. 사람들이 또 평론가들이 이런 작품을 좋아해왔으니 앞으로도 소설은 이렇게 쓰면 된다는 식의 통념. 사실은 편견일지 모르는 문학에 관한 우리의 신념들 말이다.

‘등단’ 타이틀과 베스트셀러 작가라는 명성을 동시에 안긴 2009년 소설 [위저드 베이커리]부터 지난 3월 출간된 짧은 소설 [심장에 수놓은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그가 10년 남짓한 기간 동안 숨 가쁘게 쏟아낸 다채로운 소설책들을 일별하면 그런 느낌을 받게 된다.

 


장편 '파과' 60대 중반 할머니 킬러 등장시켜

 

구병모는 누구보다 열심히 글을 쓴다. 2009년 등단 이후 지금까지 소설을 모두 14권 출간했다. 1년에 한 권 이상, 예외적인 산출량이다. / 사진:구병모

 

아무래도 구병모의 어떤 작품들이 보통 우리가 잘 썼다고 하는 전형적인 모습에서 벗어나 있는 것처럼 보여서일 것이다. 가령 구병모의 어떤 소설 문장들은 너무 길다고 느껴지는데, 미숙해서일까. 그래도 40만 부 작가인데. 남들은 ‘좋은 문장의 일반 법칙’처럼 받아들이는 ‘간결하고 정확하게’가 구병모의 소설 강령에서는 후순위로 밀리는 것처럼 보인다.

 

2015년 소설집 [그것이 나만은 아니기를]의 맨 앞에 실린 단편 ‘여기 말고 저기, 그래 어쩌면 거기’에서도 그런 대목을 찾아볼 수 있다. 이 소설책의 10쪽 5번째 줄, “그 가방끈 긴 놈이”에서 시작한 문장이 다음 쪽 두 번째 줄 “내리누르기만 했다”에 이르기까지, 쉼표를 거듭하며 한 쪽 분량 넘게 이어진다.

 

만연체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자기분열적인 이인성이나 의뭉스러운 이문구처럼, 의미 있거나 아름다운 만연체의 전범(典範)을 우리는 알고 있다. ‘문장의 경제’를 거부한 대신 얻은 만연체가 전범들의 어떤 기준에, 그러니까 관습적으로 우리가 지지해온 문장 미학에 미달된다면 마찰이 발생할 것이다. 구병모 만연체의 노림수는 뭘까.

그 해명을 평론가 몫으로 남겨두고 시야를 넓히면 우리는 구병모의 소설 문장이 만연체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대표작 [위저드 베이커리]부터 그렇다. 만연체와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2013년 장편소설 [파과]나 지난해 출간한 장편소설 [버드 스트라이크] 같은 장르 소설들은 만연체에서 더욱 멀리 벗어나 있다.

 

[파과]는 60줄에 접어든 할머니 킬러가 주인공인 작품. 황석영의 대작 [장길산]이나 해외에서 각광받는 김언수의 누아르 소설 냄새가 난다. 비장한 결투 장면이 실감 나게 그려져서다. [버드 스트라이크]는 익인(翼人)이 나오는 판타지 소설. 다른 작가가 쓴 작품으로 착각할 수 있다. 모두 고속도로 탄 것처럼 쭉쭉 읽히는 간결하고 정확한 문장들 덕이다.

그러니 이렇게 정리하자. 구병모의 어떤 문장은 길지만 어떤 문장은 반대로 무척 짧다. 하나 마나 한 소리인가. 그렇다면 이렇게 다시 정리하자. 그는 만연체를 즐겨 쓰지만 그렇다고 짧은 문장을 못 쓰는 것도 아니다.

구병모의 소설 문장에 대한 탐구는 좋은 문학작품은 어떤 것인가에 대한 궁금증과 실은 이어져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구병모 소설은 좋은 소설(물론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구병모는 좋은 작가다.

그 전에 한 가지 짚고 넘어가자. 많이 팔리면 좋은 소설인가. 좋은 소설은 많이 팔리는 소설, 이렇게 역방향인 충분조건은 성립하지 않겠지만 순방향인 필요조건, 많이 팔리는 게 좋은 소설의 요건이긴 할 것이다.

 


'네 이웃의 식탁'으로 정부의 출산 정책 꼬집어

 

(왼쪽부터) 2009년 장편소설 [위저드 베이커리], 2011년 장편소설 [아가미] 2013년 장편소설 [파과], 2018년 장편소설 [네 이웃의 식탁] 2019년 장편소설 [버드 스트라이크] 2020년 짧은 장편 [심장에 수놓은 이야기].

 

 

구병모의 대표작 [위저드 베이커리]는 2020년 5월 기준으로 40만 부가 팔렸다. 1차 관문, 그러니까 좋은 소설의 필요조건은 너끈히 통과. 그런데 이 작품은 창비청소년문학상 2회 수상작이었다. 1회 수상작인 김려령의 [완득이], 2016년 제10회 수상작인 손원평의 [아몬드]. 이런 작품들과 함께 국내 독서 시장에서 아직 미분화 상태였던 청소년 문학이라는 카테고리를 독자들의 뇌리에 각인시키는 데 일조했다.

 

[위저드 베이커리]를 구입한 40만 가운데는 성인 독자, 그중에서도 한국 독서 시장의 주력 독자층인 20~30대 여성이 상당할 것으로 추정된다. 청소년만으로는 40만을 채우기 어려워 보여서다. 그러니까 구병모 소설은 청소년과 성인에게서 두루 사랑받는다.

 

구병모를 잘 모르는 분들을 위해서 [위저드 베이커리]가 어떤 소원이든 들어주는 마법의 빵, 그 빵을 굽는 마법사가 등장하는 (그러니까 Wizard Bakery, 마법사 제과다) 판타지 소설이라는 점도 짚고 넘어가자. 앞서 언급한 [버드 스트라이크], 귀 뒤편에 아가미가 뚫린 양서(兩棲)인간이 주인공인 2011년 장편 [아가미]와 함께 판타지는 구병모 소설을 지탱하는 두 기둥 중 하나다.

우리는 지금 구병모 소설의 좋은 점을 이야기하고 있다. 2018년 장편 [네 이웃의 식탁]을 예로 들고 싶다. 이 소설은 판타지도 누아르도 아니다. 단편을 묶은 2018년 [단 하나의 문장] 같은 소설집들과 함께 구병모 소설의 또 다른 기둥인 리얼리즘 소설이다.

 

판타지와 청소년 소설이라는 두 영역을 버무려 관록을 쌓아온 구병모 입장에서는 서운할지 모르겠으나 그의 소설 가운데 한 권을 추천해야 한다면 이 작품을 꼽고 싶다. 물론 이 작품에도 허들이 없는 건 아니다. 길어서 불친절해 보이는 문장들 말이다. 하지만 읽는 이를 시험에 들게 하는 것 같은 몇 순간을 무사히 빠져나온다면 만날 수 있다. 서너 시간의 독서 비용을 회수하고도 남는 게 있다고 느낄 만큼 만족스러운 순간을 말이다.

수도권 외곽에 실험적인 주거단지가 들어선다. 국가적 현안으로 떠오른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정책 방향에 따라 조성된 곳이다. 그림 같은 설계, 파격적인 분양 조건. 현재 자녀가 셋 이상이거나 앞으로 셋 이상을 두어야 한다는 출산 조항을 준수해야 하긴 하지만 살 만한 내 집 마련의 가망이 없는 젊은 부부들은 쫓기듯 앞다퉈 입주 신청을 한다.

 

한 줌 이웃들과 뜻만 잘 맞는다면 얼마든지 달콤한 우리 집이었을 아파트가 지옥 같은 공간으로 전락하는 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소설에 등장하는 네 가족(제목의 ‘네 이웃’은 중의법이다. ‘너의 이웃’ 혹은 단순히 숫자 ‘넷’)의 구성원들은 누구도 단순한 악인이거나 흠결 없는 선인이 아니라는 점에서 서로 엇비슷한 윤리의식의 소유자들이다.

 

요즘 감수성에 비추면 저지르지 말았어야 할 짓을 저지른 신재강이라는 인물을 빼면 말이다. 그런데도 단지의 실험은 성공적이지 않은 결과를 낳는다. 누군가에게 죄과를 물어야 한다면 그 대상은 알게 모르게 습성처럼 체득한 우리 안의 폭력성, 그래서 단지 사람들이 경험하게 되는 일상의 폭력성, 육아와 경제활동의 부담이 부부간에 조화롭게 균등 배분되지 않는 한 언제나 헛바퀴를 돌 수밖에 없는 문제 많은 가족제도, 그런 가정을 양산하는 이 나라의 고장 난 사회경제 구조, 이런 것들이어야 한다. 구병모는 이런 이야기를 다른 어떤 작가보다 섬뜩하게 풀어낸다.

서울 태생인 구병모는 경희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성장 과정에 대해 밝히기를 지극히 꺼리는 편인 듯. 이름도 본명이 아니다. 몇몇 인터뷰에서 어린 시절 두고두고 트라우마로 남을 만한 끔찍한 일이 있었고, 스스로 기억에서 지워버리고 싶은 청소년기를 보냈노라고만 밝힌다.

 

진부한 해석이지만, 상처가 그를 작가로 내몰았고, 탈출구의 하나로 판타지에 손댔다, 이렇게 얘기할 수 있다. 지금은 남편의 직장을 따라 경남 진주에서 가사와 창작이라는, 누구에게도 녹록지 않을 두 가지를 병행하고 있다.

 


환상은 우리 생활의 일부에 지나지 않아

 

구병모는 “가독성이라는 신화에 도전하고 싶다”고 했다. 특유의 만연체 문장은 그래서 나온다. / 사진:구병모

 

최신작인 짧은 장편 [심장에 수놓은 이야기]의 표지에 두른 홍보 띠지에 “지금 당신에게 필요한 건 구병모식 환상” 이런 문구를 출판사에서 인쇄해놓았다. 판타지는 당신 소설에서 어떤 요소인가. 당신 소설의 환상은 다른 작가의 환상과 다른가?

“구병모식 환상이라고 한 건 환상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내 태도를 반영한 것 같다. 환상, 뭐 대단할 것 없고 우리랑 분리된 다른 세계가 아니고 그냥 보통 생활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내가 그런 사고방식을 갖고 있어서. 내 소설을 두고 현실 밀착형 판타지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분명히 없는 이야기인데 어딘가에는 있을 것만 같다, 또는 어딘가에는 있었으면 좋겠다, 그런 뜻인 것 같다. [심장에 수놓은 이야기]는 중년 회사원과 판타지라는 요소가 서로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런 얘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한다는 점이 내 특징이라고 봐주시는 것 같다. 지금까지 발표한 모든 소설에 환상적인 요소가 들어 있는 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자극적이고 눈에 띄는 요소이다 보니 구병모 하면 판타지를 떠올리는 것 같고. 아직 대표작은 쓰지 못했으니 기다려주시기를.”

판타지는 비현실적일 수밖에 없는데 현실의 모순을 회피하는 무책임한 태도 아니냐고 누군가 지적한다면.

“판타지도 여느 리얼리즘 소설 못지않게 현실을 돌아보고 고민하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당면한 현실을 당장 해결해주지 못한다는 점에서는 판타지나 리얼리즘 소설이나 마찬가지 아닌가. 당연하게도, 현실의 문제는 소설 밖에서 살아 있는 인간들이 싸워서 해결해야 하니까. 환상성은 그 싸움의 필요성을 알도록 만드는 여러 방식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청소년과 성인 독자 모두에게 두루 읽힐 만한 소설을 쓴다. 경계선상에 있다고 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청소년 문학을 주로 권장 도서목록이라든지 교육이나 독서 토론의 재료 같은 것으로 여기다 보니 고유의 작품성을 인정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가령 ‘청소년 소설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좋았다’, ‘청소년 소설로 국한시킬 게 아니다’, 이런 리뷰를 가끔 접한다. ‘SF인 줄 알았는데 인간 보편의 문제를 다루더라’, ‘추리소설인 줄 알았는데 고도의 심리극이더라’, 이런 반응과 유사한 맥락이다. 한 수 아래로 내려다보는 그런 시선이 존재하는 한 청소년 문학이 하나의 카테고리로 정착하고 활성화돼서 존재감을 드러내는 일은 요원하다고 생각한다. 이건 한국문학만의 문제도 아니고 하루 이틀 있었던 일도 아니라서 이제는 그러려니 하고 약간 내려놓은 편이다. 그러든지 말든지 작가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계속 써나가니까.”

다른 많은 작가들처럼 당신 소설에서도 신랄한 시선이 두드러지는데.

“나 자신을 둘러싼 현실이 총체적으로 불만스럽고 그래서 불편할 때가 많은데 그런 감정을 가능한 한 자중해서 정제된 표현으로 그리려 하다 보니 내 소설의 그런 시선이 만들어진 것 같다.”

어떤 현실이 그렇게 총체적으로 불만스러운가?

“작가에게 불만은 습관을 넘어 일종의 숨쉬기에 가까운 거라고 믿는다. 구체적으로 뭐가 불만이고 어떤 것들이 개선되기를 바란다는 식의 정치적, 사회적 얘기가 아니라 나 한 몸 숨 쉬는 것 하나하나까지 모두 불만이라고 하면, 좀 그런가. 구체적인 불만의 목록은 끝이 없으니 지금 당장의 불만 세 가지를 꼽는다면, 전염병으로 인한 실존의 위협, 사람을 대하는 기본 마인드는 결여돼 있으면서 미래의 납세자가 될 아이를 많이 낳아야 한다고만 하는 정부, 계속 미뤄지는 n번방 명단 전체 공개, 이런 것들이다.”

소설 문장 얘기를 해보자. 만연체 문장을 고수하는 이유는?

“문장과 관련된 결심 중 하나는 ‘쉽게 읽히지 않겠다’는 것이다. 목적지까지 뻥 뚫린 고속도로를 내는 게 아니라 울퉁불퉁한 자갈길로 안내하는 것, 거치적거리는 문장으로 독자들의 길을 가로막고 쾌속 질주하지 못하게 하는 게 내 목적이다. 굉장히 고약한 방법 같지만 이 방법 말고 가독성의 신화에 저항하는 수단을 알지 못한다.”

 


언어 자체와 싸움 벌이는 외국 작가 좋아해


가독성의 신화에 왜 저항하려 하나?

“명료하게 잘 읽히는 짧은 문장이야말로 좋은 것이라고 모든 사람이 인식한다면, 별다른 갈등 없이 그에 동의해서는 재미없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냥 삐딱선을 타고 싶다.”

좋아하는 작가를 꼽는다면.

“한국 작가들을 드는 것은 좀 그렇고, 외국 작가 가운데 실비 제르맹, 예니 에르펜베크, 조르주 페렉, 제발트, 파스칼 키냐르 같은 작가들이다. 이런 작가들은 언어를 단지 ‘서사를 실어나르는 수단’으로 여기지 않는 것 같다. 이야기를 효율적으로 전달하겠다는 목적보다는 언어 자체와 싸우거나 친교하는 느낌, 그런 느낌이 좋다.”

문학은 당신에게 구원인가?

“구원이나 탈출 같은 크고 깊고 무거운 말은 되도록 아끼고 싶다. 처음 소설을 쓰기 시작했을 때는 그런 이유도 분명 있었겠지만 지금은 일단 노동이자 생활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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