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교육의 전성시대가 열렸다. 지난 6·4 지방선거를 통해 17개 시·도 중 13개 시·도에서 진보 성향의 교육감 후보들이 당선했다. 대한민국 교육을 견인해온 수도권 3개 시·도에서 교육감 직선제 이후 진보 교육감이 모두 당선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이청연 인천시교육감, 이재정 경기도교육감이 그들이다. 3인에게는 각자의 색깔이 있다. 조희연 교육감은 전형적인 학자 출신이다. 오랜 학자적 고민을 통해 정립한 이론을 현실에 녹이려 한다. 이청연 교육감은 전교조 소속 초등교사였다. 현장 경험을 밑거름삼아 느리더라도 열 사람의 한걸음을 중요하게 여긴다. 이재정 교육감은 정치적 경험으로 쌓은 감각이 남다르다. 현실을 바라보고 정책을 수립하는 안목이 넓고 거침이 없다.
당선과 함께 곧바로 이슈의 중심에 선 그들 중 조희연 교육감에게 대한민국 교육이 가야 할 길을 물었다.
조 교육감은 사회 참여에 활발한 사회학자 출신이다. 그는 1994년에 박원순 서울시장과 함께 참여연대 창립을 주도했다. 특히 이번 선거에서 함께 당선한 이재정 경기도 교육감과 인연이 깊다. 혁신대학의 모델이 된 성공회대학교 설립 과정에서 브레인 역할을 했다. 조 교육감 스스로도 “이재정-조희연 커플이 지금의 성공회대 정체성을 만드는 데 기여했다”고 자평한다.
그는 교육감으로 취임하자 ‘일반고 전성시대’를 열겠다고 천명했다. 자율형사립고등학교(이하 ‘자사고’)의 역할을 줄이는 대신 혁신학교를 늘려 공교육의 몰락을 막겠다는 취지다.
자사고는 전국에 40여 개뿐이다. 고등학교 전체에 영향을 미칠만큼 많지 않은데 왜 자사고가 문제인가?
“자사고는 서울에 25개가 밀집돼 있다. 일반고(183개교)의 10%가 넘는다. 자사고는 일반고 중에서 기둥 역할을 하는 학교들을 빼간 거다. 특수목적고는 집의 정원에 있는 보물이나 보석 같은 존재다. 그건 뽑아가도 공교육이란 큰 집이 무너지진 않는다. 근데 자사고는 공교육의 기둥 역할을 하는 일반고를 뽑아가니까 집 전체가 흔들리는 거다. 일반고 중심의 중등 공교육 체제가 근간부터 위태로워진다.”
학비를 좀 더 부담하더라도 양질의 교육을 받고 싶어하는 학부모들의 선택권도 보장돼야 하는 권리 아닌가?
“바로 그 점이 문제다. 자사고는 돈이 가로막는다. 물론 중산층 학부모는 그 정도 학비쯤 부담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중·하층은 진입하기가 어렵다. 사회통합전형(옛 사회적배려대상자 전형)이 있지만 들어가면 돈에 의해 교육 차별이 시작된다. 교육이 사회이동, 계층 간 이동의 통로로 건재하지 않으면 그 사회는 병들게 돼 있다. 대한민국의 역동성을 살리는 것은 교육이 그 통로의 역할을 지속적으로 해야만 가능하다.
그런데 지금은 부모의 경제력이 아이들의 학업 성취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 사회로 흘러가고 있지 않나? 중·하층 부모를 둔 자녀들의 잠재적 재능은 유실되어 간다는 말이다. 이게 10년, 20년은 괜찮지만 100년, 200년씩 고착화하면 심각해 진다. 조선왕조의 붕괴 원인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개천에서 용이 나는 게 예외가 아니라 상식처럼 존재하는 사회가 되어 야 하는 이유다.”
일반고를 강화한다는 건 혁신학교를 확대한다는 뜻인가?
“혁신학교 수의 많고 적음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현재 초·중등교육에서 실현하지 못하고 있는 미래지향적 과제들을 관료적 제약이 적거나 사회구성원들의 저항이 적은 상태에서 실현하자는 게 혁신학교의 취지다. 꼭 혁신학교에만 있는 건 아니다. 정부가 추진하는 자유학기제도 맥락은 같다. 이런 실험들이 전 학교로 확산돼야 한다. 그것을 혁신학교라고 말해도 좋고, 행복교육이라고 해도 좋다.
적극적인 교사와 자발적인 학생이 함께 하는 창의적인 교육실험, 이게 교육혁신의 정신이라고 생각한다. 이재정 경기교육감과도 성공회대에서 했던 혁신대학의 학교운영정신을 수도권에서 적용해보자고 얘기했다.”
실험이 많아지면 학생과 학부모가 혼란스럽지 않을까?
“우리 사회는 대안에 목말라 있다. 그래서 혁신학교, 자사고와 같은 여러 가지 실험에 학생과 학부모가 열광하는 거다. 특히 혁신초등학교의 만족도가 높다. 교사가 적극적으로 수업을 하고, 학생 개개인에 대해 다각도로 생활지도를 하면서 창의적 체험교육을 하니까. 이것이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로 이어져 혁신적 인간이 나와야 된다고 본다. 기업도 그런 인재를 원한다. 문제는 현재의 학벌 중심의 대학입시 경쟁구조가 가로막고 있는 거다.
산업화 시대엔 파이가 적어서 파이를 키우기 위한 교육에 중점을 뒀다. 선진국을 따라잡으려면 좌고우면(左顧右眄)할 틈이 없었다. 놀지 말고, 쉬지 말고, 가능한 잠을 줄이면서 공부에 매진해야 했다. 또 한 가정의 구성원들이 큰오빠의 학비를 대고, 큰오빠가 대학 가고 좋은 직장에 가면 온 집안이 잘 될 거란 희망이 있었고 사회적 합의가 있었다. 지금은 어떤가? 부의 양극화는 심화됐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이는 점점 커지고 있다. 험악한 현실이 기다리고 있으니 더 좋은 학교에 가려고 몸부림칠 수밖에 없고, 그게 거대한 입시전쟁으로 나타난다. 분배구조를 완화하고, 명문대학이 갖는 사회적 특권을 절반 정도는 줄여야 한다. 그러면 교육경쟁의 압력도 완화될 수 있다. 지금이라도 임시정부의 3대 정신 중 하나인 ‘교육의 균등’을 실현하는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최근의 교육 이슈와 더불어 아직 끝나지 않은 논란이 하나 더 있다. 역사교과서 문제다. 조 교육감은 “우리 아이들을 ‘미래의 아베’로 키워선 안 된다”고 국정교과서 전환을 반대했다. ‘미래의 아베’라는 건 무슨 의미일까?
“사회는 갈수록 다원화한다. 다양한 역사서술을 허용하는 건 세계적인 다원화 흐름에도 맞다. 만약 국정교과서를 도입했다고 치자. 다음에 야당 정부가 들어서 진보적 역사 서술만 강요하면 그게 옳은 일인가? 일본의 자폐적인 극우민족주의적인 역사인식에 찌들어 있는 아베 총리의 역사관에 분노하면서 우리 아이들에게 획일화하고 편협한 역사관을 주입한다면 얼마나 이율배반적인가?”
“역사교과서 채택을 정치적으로 막는 것은 조심스러운 일이다. 특히 문제되는 부분은 일제강점기에 대한 인식의 차이다. 식민지 경험이 복합적 성격을 띠는 것도 인정한다. 뉴라이트적 인 시각이 있을 수도 있다. 기존의 역사교과서가 진보적으로 획일화되어 있다면 다원화하는 게 맞다고 본다. 진보와 보수가 역사교육의 시장에서 경쟁하도록 내버려두는 게 좋겠다.”
인터뷰 내내 그는 우리 교육체제의 불평등한 구조에 대해 설명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사회학자로서 당연한 일일 거다. 서울시 초·중등교육의 책임자로서 비교적 가벼운 생각이 궁금해졌다. 이재정 경기도교육감이 공약한 ‘9시 등교’에 필적할 만한 ‘히트상품’을 준비한 게 있는지 물었다.
“9시 등교는, 찬사와 비판을 받으며 경기도교육감께서 실험하고 있으니 우린 한 학기 정도 시행착오를 지켜본 뒤에 생각해보려고 한다.(웃음) 앞으로 4년간 서울시 교육을 한 문장으로 정의한다면 ‘적당히 쉬고, 적당히 놀고, 충분한 잠이 보장되는 교육’이라고 하면 될 것 같다. 지금껏 우리는 놀지 않고, 쉬지 않고, 잠을 줄여가며 숨가쁘게 달려왔다. 이젠 교육 패러다임을 바꿀 때가 됐다.
창의교육이란 그렇게 바쁘게 움직여서 나오지 않는다. 태어난 집은 달라도 배우는 교육은 같아야 하지 않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