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상회담의 인기가 심상찮다. 미녀들의 수다 남성판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한국의 문화와 가치에 대해 각 나라의 가치관에 맞춰 이야기하는 외국인 패널들의 이야기는 우리를 세계 다른 국가의 문화와 생각을 엿볼 수 있게 해준다. 특히 각 나라의 가치관이 가감없이 드러나면서 인기는 더욱 높아지고 있다. 자신의 생각을 유창한 한국말로 이야기하는 세계의 젊은이들을 보면 그 자체만으로 더욱 재미있다. 이중 인기를 끌고 있는 4명의 패널들에게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생각을 들어봤다.
이슬람 문화에 기반을 둔 보수적인 사상을 가진 에네스 카야(30·터키·이하 에네스)는 ‘터키 유생(儒生)’으로 불린다. 모델부터 연기까지 섭렵한 멀티테이너 줄리안 퀸타르트(26·벨기에·이하 줄리안)는 활발한 성격과 개방적인 말투로 ‘벨기에 전현무’라는 별명이 붙었다.
미국 명문대를 졸업하고 현재는 서울대석사과정에 재학 중인 타일러 라쉬(25·미국·이하타일러)는 한국인 MC들과의 사자성어 대결에서도 결코 뒤지지 않는 실력을 발휘해 ‘척척박사’라는 별명이 생겼다. 다국적 아이돌 그룹 ‘크로스진’의 멤버인 데라다 타쿠야(22·일본·이하 타쿠야)도 11명 중 두명뿐인 아시아 대표로 색다른 매력을 뽐내면서 인기를 끈다.
Q. 각 나라의 ‘대표’ 자격으로 출연하면서 부담감은 없었나요?
에네스_ “사실 우리가 11개 나라 대표로 참여했지만 ‘우리나라 전체가 다 이렇다’는 건 아니거든요. 내가 살아왔던 환경이 이랬고 나는 이런 환경에서 이런 마인드로 자라서 지금의 내가 됐다는 전제 하에 내 생각을 말하는 거예요. 그런데 조심할 것은, 시청자 분들은 ‘에네스가 이렇구나’ 하고 보지 않고 ‘저번에 방송에서 터키사람을 봤는데, 이런 얘길 하더라’는 식으로 인지한다는 거예요. 개인적으로는 터키를 대표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시청자들은 저를 ‘에네스’가 아닌 ‘터키인’으로 보기 때문에 조심해야 해요. 제가 행동 한 번 잘못했다간 터키가 욕먹는 수가 있으니까요.”
줄리안_ “솔직히 내 나라 전부를 대표할 수는 없잖아요. 벨기에에도 양 극단의 사람들이 있거든요. 어느 정도 일반화해서 보여주려고 하지만 제 입장도 무시할 수는 없어요. (저보다) 좀 더 보수적인 사람도 나와서 ‘유럽 사람들이 다 개방적이지는 않다’는 걸 보여줬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요.”
타일러_ “고민을 많이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우리가 개인적으로 하고 싶은 얘기도 많지만 대표로 나왔기 때문에 다 할 수는 없어요. 방송이다 보니 말 한마디가 큰 영향력을 미치잖아요. 제 말이 미국의 이미지를 바꿀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조심스럽고 어렵긴 하죠.”
타쿠야_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개인의 생각과 대표로서의 발언을 가르는 선을 지키기 너무 어려운 것 같아요.”
Q. 한국 와서 적응하기 힘들었던 부분도 물론 있었겠죠?
에네스_ “한국 사람들은 터키 사람들이 물 마시는 것보다 술을 더 많이 마셔요. 더 특이하다고 생각했던건 술을 마셔야지 친해지고, 일이 진행되는 한국의 술자리 문화였어요. 대학을 졸업할 때 동기가 98명이었는데 그중 저랑 친한 사람이 많아야 12명 정도 밖에 안됐어요. 제가 종교 때문에 술을 못 먹어서 술자리를 일부러 안 갔거든요. 그래서 친해질 기회가 많이 없었어요. 처음엔 술을 안 마시면 사회생활이 어렵다는 점을 몰랐으니까요. 만약에 그걸 알았더라면 술자리는 무조건 갔을 거예요.”
타일러_ “적응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던 건 ‘사생활’에 대한 부분이에요. 어학당에 다닐 때 수업시간에 ‘결혼을 언제하고 싶어요?’, ‘결혼 했어요?’ 같은 질문을 돌아가면서 하는 거예요. 우리 문화에서는 친해도 잘 알려주지 않는 부분인데 너무 직접적으로 물어보니 당황스러웠어요. 미국과 달리 개인공간과 공적 공간의 구분이 모호해서 어려웠어요.”
줄리안_ “형·동생 문화요. 그런 호칭 때문에 거리감이 느껴지더라고요. 특히 형이라는 이유로 어린 사람을 무시하기도 하잖아요. 나이 많은 사람들을 존경하는 건 좋은데, 반대로 어린 사람을 무시하는 건 아니라고 봐요. 특히 제가 어릴 때 와서 더 적응하기 힘들었던 것 같아요. 많은 사람이 ‘내가 형이니까 더 안다’면서 막 대하곤 했거든요. 아직까지는 잘 적응이 안 돼요. 동생의 얘기도 잘 들어줬으면 좋겠어요.”
Q.한국에 살면서 피부색 혹은 나라에 따른 ‘차별대우’를 경험하신 적은 있나요?
줄리안_ “백인을 조금 더 호의적으로 바라보는 건 있어요. 그런데 외국 여자들을 좀 쉽게 보는 경향도 있어요. 남자는 그렇지 않은데, 외국 여자들은 다 그냥 ‘원나잇’ 같은 것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줄 알아요. 오해가 조금 있더라고요. 외국 여자들은 적극적이고 쿨하다는 생각들이요. 꼭 그렇지만은 않거든요.”
에네스_ “백인이면 1등, 동양인이면 2등, 중동이면 3등 이런 순서는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터키 사람은 조금 예외에요. 터키는 ‘형제의 나라’라고 하면서 양 국가 간의 우정이나 정이 있으니까요. 제가 한국에 처음 와서 택시 탔는데 기사님이 어디서 왔느냐고 물어봤어요. 형제의 나라라고 대답 하니까 터키사람이냐고 하면서 빵·주스·껌 꺼내주시고 요금도 반은 안 받으셨어요. 우리에게 정말 고마운 나라라고 잘 대접해줬던 기억이 남아요.”
타쿠야_ “일본과 한국 간에 정치적인 문제는 많지만 제가 한국에 살면서 그것 때문에 차별을 느낀 적은 없어요. 오히려 얼굴 생김새도 비슷하고 같은 아시아라 문화도 비슷하다 보니 더 잘 해주는 것 같아요.”
Q. 평소에도 <비정상회담>처럼 여럿이 모여 토론하는 자리를 자주 가지는 편인가요
줄리안_ “프랑스나 벨기에에선 여러 나라 사람이 모여서 토론하는 것에 굉장히 익숙해요. 차이가 하나 있다면 <비정상회담>은 한국말로, 꽤 높은 수준의 대화를 한다는 거예요. 11개국 사람이 서로의 차이점을 말하면서 한국과의 차이도 덧붙여서 더 재미있어요. 우리 문화에 대해 제가 직접 설명해주기도 하고 다른 나라 문화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서 타국에 대한 오해도 풀게 돼서 좋아요.”
타일러_ “미국은 술자리에서 토론을 해요. 그게 일반적이에요. 그런데 한국 친구들끼리 모여서 토론하려고 하면 ‘왜 그런 이야기를 해, 게임을 해야지’라고 말해요. 이것도 적응하기 어려운 점 중에 한 가지였던 것 같아요. 저희는 다른 사람하고 토론을 함으로써 그 사람을 더 알아가는데 그런 분위기가 없고 술 마시고 게임을 하니까요. 그럼 어떻게 친해지지? 하는 고민을 많이 했어요.”
에네스_ “그래서 우리 프로그램이 더 성공적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한국은 토론이 일반화되어 있지 않고 깊은 대화를 하는 건 진지한 사람들이거나 정치인뿐이라고 생각하니까요. 친구들끼리 만났을 때 ‘동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니’ 같은 진지한 이야기를 하지 않잖아요. 생각은 있어도 말은 하지 않아요. 그 대신에 우리가 얘기해주는 거예요.”
줄리안_ “저는 사람들이 이 프로그램을 보다가 친구들에게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며 자연스럽게 토론으로 이어갔으면 좋겠어요. 한국은 너무 토론문화가 없어요. 우리나라에 ‘밤새도록 세상을 다시 만들었다’는 말이 있는데, 밤을 새며 세상에 관련된 모든 일에 대해 얘기를 나누는 토론문화에서 나온 말이에요. 한국도 이 프로그램을 통해서 토론하는 문화가 조금이라도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대화한다고 생각이 바뀌지는 않지만 한 번 더 생각하는 계기가 되니까요.”
타쿠야_ “일본에도 토론문화가 많이 없어요. 그래서 <비정상회담> 같은 프로그램은 일본에서도 해야 할 것 같아요.”(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