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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영국은 왜 코로나19에 무너졌나?

휴브리스 연구는 최근 글로벌 코로나19 팬데믹에 대처하는 국가를 대상으로 영역을 넓혔어요. 세계적 과학 잡지 네이처에 인문학의 일부라 할 수 있는 휴브리스 개념을 도입한 매우 독특한 연구가 게재됐어요. 마사 링컨 캘리포니아주립대 샌프란시스코의 문화·의학·인류학자가 발표한 ‘국가별 코로나19 대응에서 오만의 역할 연구(Study the role of hubris in nations’ COVID-19 response)’는 게재 이후 학계와 언론의 뜨거운 주목을 받았어요.

 

구급차 직원이 2021년 2월 4일 영국 런던 소재 로열런던 병원으로 코로나19 감염 환자를 수송하고 있다. 영국 NHS(National Health Service)는 영국 전역 병원의 병상수가 줄어들며 심각한 압박을 받고 있다. 영국에서 매일 약 1000명이 코로나19 감염으로 인해 사망하고 있다. / 사진:EPA

 

코로나19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기 전만 해도 미국은 SARS-CoV-2(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코로나바이러스 2) 같은 바이러스에 가장 잘 대처할 수 있는 국가로 간주됐다. 포괄적 GHS(Global Health Security, 글로벌보건안보) 지수에서 가장 잘 준비된 국가 그룹에는 미국을 포함해 영국, 브라질, 칠레 등이 속해 있었다. 

 

하지만 이 국가들은 코로나19 대유행에서 최악의 결과를 보였다. 미국은 전체 확진자와 사망자 수가 세계 최고 수준이다. 브라질의 사망자 수는 미국에 이어 두 번째다. 칠레의 1인당 누적 발병률은 남아메리카에서 두 번째로 높으며 영국은 G7 국가 중 인구당 코로나19 사망률이 가장 높다. 이 국가들은 처참한 실패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마사 링컨 교수 / 사진:Scholars Strategy Network

 

캘리포니아주립대 샌프란시스코에 재직 중인 마사 링컨 교수는 이 국가들의 공통점으로 ‘예외주의(exceptionalism)’를 꼽았다. 자국에 대한 평가를 다른 나라들의 일반적 기준에서 벗어나 이상치로 여긴다는 점이다. 이 국가들의 코로나19 대응은 예외주의 세계관이 공중보건 관리에서 안 좋은 결과를 야기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예외주의와 방역의 연관성을 조사하면 더욱 효율적으로 전염병에 대비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으며 방역의 성공과 실패를 훨씬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는 가설 아래 연구가 시작됐다.

대표적으로 영국이 유럽연합에서 탈퇴하기로 결정한 것은 독자 노선을 추구하겠다는 의지의 방증이다. 코로나19 초동 대응에서도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악수를 삼가야 한다는 조언을 무시했고 심지어 영국 정부는 집단 면역을 위해 바이러스가 퍼지는 것을 허용하는 방안까지 고려했다. 링컨 교수는 “공중보건 위기에 이러한 국가 능력에 대한 휴브리스가 처참한 결과를 가져왔다”고 분석했다.

미국 백악관도 세계보건기구(WHO)에서 탈퇴하고 바이러스가 ‘기적처럼’ 사라질 것이라고 주장하는 등 여러 예외주의적 세계관을 보였다. 코로나19에 대응하는 국가 능력의 과신은 전염병 대비 프로그램, 마스크 착용 거부 운동 등 사회 모든 수준에서 노출됐다.

브라질도 포퓰리스트 지도자인 자이르 볼소나루 대통령이 지난해 3월 브라질 국민은 감염에 버틸 정도로 강하기 때문에 필수 예방 조치가 필요하지 않다고 공언했다. 결국 수뇌부의 안일한 인식이 치명적인 감염 확대를 불러일으켰다. 칠레의 예외주의는 안정적 민주주의, 유능한 사법권, 자유시장경제의 번성 등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하지만 코로나19는 사회 취약계층인 저소득층에 퍼지면서 급증했다. 칠레는 탄탄한 의료 시스템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코로나19 역학조사 결과는 심각한 불평등 수준을 그대로 드러냈다. 국가적 자부심을 자극하는 지도자들은 바이러스의 취약성을 과소평가하는 휴브리스로 귀결됐다.

연구자들은 팬데믹과 휴브리스의 공중보건 효과에 대한 실험을 시작했다. 휴브리스 연구자들은 예외주의적 세계관을 측정하고 비교하기 위해 대중을 대상으로 설문조사와 인터뷰를 실시했다. 예외주의는 국가 지도자가 국민에게 보내는 메시지에서 주로 확인할 수 있다. 대국민 메시지는 ‘자국의 전문성을 강조하는가’ 아니면 ‘국제사회의 일원임을 강조하는가’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연구에서는 ‘예외주의 국가들의 특징은 다른 국가로부터 학습 가능성이 적을 것’이라는 가설을 세우고 전염병 대응 방식을 검토했다. 연구는 미디어 분석을 통해 더 많은 휴브리스 증거를 포착할 수 있었다. 뉴스 기사에서 ‘자국의 경험을 독특하다고 묘사하는지’, ‘다른 경험과 유사하게 묘사하는지’에 따라 예외주의가 질병통제에 미치는 악영향을 예측할 수 있는지 여부를 탐구할 수 있었다.

분석은 체리피킹(cherry picking, 어떤 대상에서 좋은 것만 고르는 행위)으로 인한 왜곡을 방지하기 위해 전염병 결과에 대해 여러 가능한 요인을 조사했다. 그 결과 연구진은 여러 사례에서 유의미한 교훈을 얻었다고 발표했다. 2019년 GHS지수는 베트남을 195개국 중 50위로 평가했지만 2020년 9월 기준 사망자 수는 불과 35명이다. 최근 미국 기반 뉴스기관 FP그룹이 발표한 36개국의 코로나19 대응 분석에서 중저소득 국가인 세네갈은 2위를 차지한 반면 미국은 31위에 올랐다.

베트남도 질병 관리 면에서 선진적 시스템을 갖췄다고 볼 수 없다. 하지만 베트남 지도자는 중국 우한에서 집단 폐렴이 발병했다는 보고를 받자마자 초기 확진자의 접촉자를 격리하고, 검사 및 추적을 위한 조치를 단호하게 시행했다. 이와 같이 일반적 인식과 달리 코로나19에 모범적으로 대응한 국가로 2020년 말 기준 사망자 수를 두 자리로 유지한 쿠바와 태국이 있다.

링컨 교수는 질병통제에서 휴브리스 세계관은 그리스 신화에서 네메시스(업보, 복수의 여신)의 벌을 받듯이 국가적 위험을 초래한다고 강조했다. 국가 전문성에 대한 과신은 대응 준비 부족으로 이어지고, 글로벌 보건기관과의 협력을 방해하며 타국의 경험을 보고 학습할 기회를 제한했다.

 

학자들은 전염병 방역 정책에서 자국평가방식과 같은 누락된 변수를 식별함으로써 질병과 싸우는 데 과학과 기술뿐 아니라, 휴브리스와 같은 인문학 척도가 더욱 정밀한 지표를 개발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충고했다.


이진원 기자 lee.zinone@joongna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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