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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톰’을 꿈꾸는 이족보행 로봇 휴보

인간과 가장 유사한 외형의 이족보행 로봇, 즉 두 발로 걷는 로봇을 만드는 곳은 세계적으로도 손에 꼽을 정도예요. 현재 이족보행 부문에서 기술적으로 가장 앞섰다고 평가받는 미국 보스턴다이나믹스의 ‘아틀라스’ 등이 휴보, 아시모와 함께 휴머노이드 로봇의 대표 주자로 꼽히고 있지요.

 

 

지난 2015년 6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퍼모나시(市)에 전 세계 로봇 분야에서 난다 긴다 하는 엔지니어들이 모여들었다. 미국 국방성 산하 국방고등연구계획국(DARPA)이 주최한 재난구조용 로봇 대회 결선 현장으로, 세계에서 재난구조에 가장 뛰어난 로봇을 뽑는 자리였다.

 

대회에 참가한 팀들의 면면도 화려했다. 미국 나사(NASA)와 록히드마틴이 출전 명단에 이름을 올렸고 카네기멜론대학, MIT를 비롯해 일본에선 도쿄대, 한국의 서울대도 도전장을 냈다. 이 밖에 독일, 이탈리아 등에서도 ‘로봇 좀 만든다’는 기관과 학계, 기업들이 뛰어들어 자웅을 겨뤘다.

사람처럼 두 발로 걷는 이족보행 로봇들은 이날 직접 차량을 운전하고, 드릴로 벽에 구멍을 뚫고 밸브를 잠그며 계단을 오르는 미션을 수행해나갔다. 현존하는 최고 수준의 로봇 기술이 집약된 현장에서 최종 우승의 영광을 안은 나라는 어디였을까? 쟁쟁한 경쟁자들을 멀찌감치 따돌린 건 미국도 일본도 아닌 한국이었다.

 

카이스트(KAIST)와 로봇 전문기업 레인보우로보틱스가 함께한 ‘팀카이스트’가 그 주인공이다. 레인보우로보틱스가 개발한 이족보행 로봇 ‘DRC-HUBO’는 이날 우승으로 세계 최고의 재난구조 로봇으로 우뚝 섰다.


세계 재난구조 로봇 챔피언 된 휴보


DRC-HUBO가 마지막 관문인 계단 오르기에 성공하자, 이를 지켜보던 관중들의 환호와 박수가 쏟아졌다. 대회 주인공이 된 DRC-HUBO는 레인보우로보틱스의 작품으로, 지난 2004년 카이스트가 국내 최초로 선보인 ‘휴보(HUBO)’가 전신이다. 휴보는 일본 혼다의 ‘아시모’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개발에 성공한 이족보행 로봇이다.

인간과 가장 유사한 외형의 이족보행 로봇, 즉 두 발로 걷는 로봇을 만드는 곳은 세계적으로도 손에 꼽을 정도다. 1996년 일본 혼다가 내놓은 ‘P2’ 모델을 효시로 2000년 들어 아시모가 등장했다. 한국도 카이스트가 2002년부터 연구를 시작해 2년 후인 2004년 들어 첫 이족보행 로봇 휴보를 내놓으며 경쟁에 뛰어들었다.

 

현재 이족보행 부문에서 기술적으로 가장 앞섰다고 평가받는 미국 보스턴다이나믹스의 ‘아틀라스’ 등이 휴보, 아시모와 함께 휴머노이드 로봇의 대표 주자로 꼽힌다. 보스턴다이나믹스는 최근 현대자동차에 인수돼 화제를 뿌리기도 했다.

레인보우로보틱스는 카이스트에서 출발한 ‘실험실 벤처’다. 현재 카이스트 기계공학과 석좌교수로 재직 중인 오준호 교수를 중심으로 2000년대 초반 학내에 휴머노이드연구센터가 설립됐고, 2011년 들어 레인보우로보틱스라는 사명으로 독립했다.

 

현재 회사를 이끄는 이정호 대표 역시 카이스트 공학박사 출신으로, 연구센터 초기부터 오 교수와 휴보 개발을 함께했다. 연구센터 시절 박사과정 대학원생이었던 이 대표는 2013년부터 레인보우로틱스 대표이사를 맡아 휴보를 비롯한 다양한 로봇 개발에 힘을 쏟고 있다.

이족보행 로봇은 그 자체로 해당 기업의 기술력을 상징한다. 현존하는 관련 기술이 집약된 가장 높은 수준의 로봇 플랫폼이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인간을 대신하는 기계장치라는 로봇의 핵심 개념을 생각하면 사람처럼 두 발로 걷고 양팔을 사용하는 휴머노이드야말로 인류가 꿈꾸는 궁극적인 로봇”이라고 설명했다. 레인보우로보틱스가 휴보 개발에 집중해온 것도 로봇 제작을 위한 거의 모든 기술이 이족보행 로봇에 적용되기 때문이다.

“자동차 회사들이 왜 돈도 못 버는 F1 경기에 뛰어들까요? 극대화된 기술 발전을 양산 차량에 적용하기 위해서입니다. 이족보행 로봇도 마찬가지입니다. 핵심 부품을 직접 개발·생산하려면 이를 테스트할 수 있는 플랫폼이 필요합니다. 휴보라는 플랫폼을 통해 다양한 로봇 제품의 완성도를 높이고, 이를 바탕으로 다시 기술력과 완성도를 높이는 선순환이 가능해집니다.”

실제로 레인보우로보틱스는 이족보행 로봇을 개발·생산하는 전 세계 기업 가운데 양산과 사업화에 성공한 유일한 곳이다. 혼다가 일찍이 1978년부터 휴머노이드 개발에 뛰어들었지만, 아시모를 일부 연구용으로 제공해 공동개발에 나설 뿐 일반에 판매하지는 않는다.

 

보스턴다이나믹스도 자체 개발한 로봇 관련 정보를 일절 공개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에 반해 휴보는 지금까지 카이스트와 서울대를 비롯해 미국 MIT, 컬럼비아대 등에 판매됐다. 미국 해군연구소와 구글도 휴보를 구입했다. 현재 휴보의 누적 판매대수는 30대, 누적 매출액은 100억원에 달한다.


산업용 로봇의 새로운 기준, 협동로봇

 

2015 DARPA 로보틱스 챌린지에서 우승한 ‘팀카이스트’ 멤버들이 시상대에 올랐다. 우승 상금 피켓을 든 이정호 대표와 오준호 CTO(왼쪽부터).

 

이 대표는 “레인보우로보틱스를 설립한 이유 역시 휴보 판매를 위해서”라고 말했다. 사업 초기 전체 임직원이 10여 명에 불과했을 때는 휴보를 제작해 파는 것만으로도 회사 운영이 충분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사업 범위와 스케일업에 대한 고민이 커졌다. 이 대표는 “휴보 제작과 판매가 우리가 추구한 목표와 가치였는지 고민했다”고 돌이켰다.

“휴보로 쌓은 기술력을 좀 더 다양하게 활용하기 위해 2018년부터 협동로봇 개발에 나섰습니다. 본격적으로 제품 개발에 뛰어든 지 16개월 만에 개발을 완료했고, 지난해부터 양산과 판매에 들어갔어요. 휴보와 마찬가지로 핵심 부품과 운용 소프트웨어를 자체 개발했습니다.”

협동로봇은 흔히 생각하는 ‘로봇팔’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 기존 산업용 로봇은 산업안전보건법상 사람의 접근을 제한한 공간과 설비 내에서만 운용된다. 자동차 제조공장에서 용접이나 조립에 쓰는 로봇팔이 대표적이다. 반면 협동로봇은 인간과 로봇이 같은 공간에서 작업할 수 있는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안전 펜스나 격벽 없이 로봇과 인간이 한 공간에서 서로 협력하는 것을 말한다. 이를 위해선 고출력 구동 시스템은 물론 충돌감지를 위한 안전 모듈 등을 갖춰야 한다. 레인보우로보틱스가 2020년부터 판매한 협동로봇인 ‘RB시리즈’는 핵심 부품과 운용 소프트웨어 대부분을 자체 개발·조달한 제품이다.

“이족보행 로봇은 기본적으로 수주 사업입니다. 구입을 원하는 상대가 있어야 판매가 가능하죠. 이에 비해 협동로봇은 훨씬 광범위한 시장 창출이 가능합니다. 제조 현장은 물론이고 교육, 서비스 등 활용할 수 있는 분야가 무궁무진하죠. 양산 첫해인 2020년 54억원 정도의 매출을 올렸습니다. 올해는 협동로봇 판매 확대를 기반으로 흑자전환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국내 로봇 기업 중 레인보우로보틱스의 인력 규모는 가장 작은 축에 속한다. 하지만 이 대표는 “연구 역량만큼은 세계적으로도 레인보우로보틱스가 톱클래스”라고 자부했다. 로봇 제작에 들어가는 대부분의 부품과 운용 소프트웨어를 자체 생산하기 때문이다. 로봇을 만들기 위한 핵심 부품은 구동기(모터), 센서(엔코더), 브레이크, 제어기, 감속기 등이다.

 

이와 함께 실시간 제어를 위한 소프트웨어, 즉 운영체제가 필요하다. 현재 레인보우로보틱스는 감속기만 외부에서 조달하고 있다. 이 대표는 “감속기는 부품 자체보다 양산 기술이 더 중요하다”며 “현재 감속기 자체는 개발을 완료했고, 이를 양산할 수 있는 장비를 개발 중”이라고 밝혔다.

레인보우로보틱스는 사업 초기부터 로봇에 들어가는 부품의 자체 제작에 공들 들였다. 핵심 부품을 외부에서 조달할 경우, 단순 조립공장 처지가 될 거란 우려 때문이었다. 실제로 로봇업계에선 “완제품 가격은 로봇 제조사가 아니라 부품업체가 결정한다”는 우스갯소리가 흔하다. 미국, 독일, 일본 등 제조 선진국의 부품 업체들이 대표적이다.

일반적으로 로봇 완제품의 원재료비에서 핵심 부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65% 정도로 알려져 있다. 이 대표는 비슷한 사양의 경우, 레인보우로보틱스 제품 가격이 경쟁사 제품에 비해 60% 정도 낮다고 설명했다. 제조원가 비중을 판매가 대비 40% 중후반대로 낮췄기 때문이다. 핵심 부품을 자체 생산·조달하는 경쟁력 덕에 남들보다 싸게 팔면서 이윤은 더 많이 남기는 구조가 가능해졌다.

“부품을 직접 생산하지 못하면 시장 대응력이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어요. 정해진 사양에 맞추다 보니 시시각각 변하는 고객의 니즈에 바로 대응하기 어려운 거죠. 기술이 부족하니 가격경쟁력도 갖추기 어렵죠. 항공 촬영을 예로 들어볼까요? 수천만원 들여 만든 항공촬영 시스템이 드론의 출현으로 수백만원대로 낮아졌어요. 기술이 패러다임 자체를 바꾼 예죠. 로봇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술경쟁력이 곧 시장에서 성패를 좌우하는 열쇠입니다.”


천문 마운트에서 의료용 로봇까지


이족보행 로봇 휴보에서 시작해 협동로봇으로 사업 범위를 넓힌 레인보우로보틱스는 핵심기술을 기반으로 사족보행 로봇, 천문 마운트 시스템, 의료용 로봇 등 다양한 로봇을 개발, 생산하고 있다. 지난 2017년에는 협동로봇 개발을 위해 KTB네트워크, 한국투자파트너스, SBI인베스트먼트 등 벤처캐피털에서 투자금 100억원을 유치하기도 했다.

천문 마운트 시스템도 레인보우로보틱스의 기술경쟁력을 보여주는 제품으로, 다른 로봇 제품 라인업과 구분하기 ‘레인보우 아스트로’라는 별도 브랜드를 사용한다. 천체 관측용 마운트(Mount)란 지상에서 지구 밖, 즉 천체에 있는 물체(행성, 항성, 인공위성)를 관측하기 위한 정밀 장치를 말한다.

 

흔히 천체 관측용 망원경의 렌즈 부분을 경통, 그 밑에 무게추와 조정나사, 핸들 등이 뭉쳐 있는 곳을 마운트(가대)로 구분한다. 레인보우로보틱스의 마운트는 감속기, 구동기, 엔코더 등 로봇 제작에 필요한 핵심기술을 적용해 기존 제품에 달린 무게추 등이 필요 없는 획기적 제품이다.

 

국내에서 천문마운트 시스템의 개발, 생산, 유지보수, 소프트웨어까지 커버하는 곳도 레인보우로보틱스가 유일하다. 해외시장 개척도 활발해 미국, 일본, 이탈리아 등 천문 선진국에 수출하고 있다. 현재 국내 천문 마운트 조달 시장의 70%를 점유하고 있는 레인보우 아스트로는 초정밀 지향 장치 기술을 적용한 방위산업으로 사업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이 대표는 독보적인 로봇 분야 전문성을 바탕으로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를 추가할 계획이다. 카페에서 음료를 제조하는 F&B 로봇, 자율주행 기술과 협동로봇(로봇팔)을 접목한 자율이동 로봇(Mobile Manipulator), 레이저시술용 의료로봇 등이 제품 개발과 출시를 앞두고 있다.

“레인보우로보틱스는 이족보행 로봇 플랫폼을 기반으로 20년 넘게 로봇만 연구해온 전문기업입니다. 기술력에선 세계 최고라고 자부하죠. 휴보 개발에서 얻은 기술과 다양한 제품 라인업으로 시장을 선점하고 있다는 게 우리의 가장 큰 경쟁력입니다. 자본과 영업력에서 앞서는 경쟁사도 많지만, 경쟁력 있는 제품으로 1등 기업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이 큽니다.”

레인보우로보틱스는 지난 2월 3일 코스닥시장에 상장하며 자본력을 확충했다. 상장을 통해 확보한 자금은 260억원 수준이다. 이 대표는 “R&D에 드라이브를 걸고, 앞으로 크게 늘어날 시설자금으로 활용하겠다”고 밝혔다.


장진원 기자 jang.jinwon@joongang.co.kr

사진 김성태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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