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지역마다 각 특색이 있고 이야기가 다르다. 그 중에서도 최근 새롭게 부상하고 있는 관광메카 지역이 있는데, 바로 경상북도 '문경'이다. 곳곳에 스토리텔링이 있는 관광자원과 고품격 웰빙, 힐링의 문화도시로 성장하고 있는데, 그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오늘 소개해보려고 한다.
아직 문경에서 도자기의 가문을 이어오고 있는 장인이 있다. 바로 도예가 김영식 씨. 김씨의 집안은 대대로 사기장을 했는데, 8대조 할아버지 김취정은 240여 년 전 충북 단양에서 가마를 열어 사기장 일을 처음 시작하고 9대조부터 문경에 정착해서 사기장 일을 시작하였다고 한다. 그는 이미 대중화된 가스가마나 기름가마를 이용하지 않고 조상들이 오래전부터 사용해온 문경 고유의 망댕이가마를 고집스럽게 고수하고 있다.
경상북도 문경시청 청사 앞에는 '聞喜慶瑞'(문희경서)라고 새겨진 기념비가 있다. 문경(聞慶)의 옛 이름이 바로 문희(聞喜)이며 경서(慶瑞)는 경사스러운 일을 이르는 것이니 문경을 찾는 이들의 발걸음이 기쁘지 않을 수 없다. 옛 사람들이 전하는 소식마다 각기 개성적인 등장인물이 있고, 희로애락이 있는 문경의 다양한 이야기와 문화를 살펴보도록 하자.
가장 먼저 이야기할 주제는 바로 문경의 문화와 장인이 살아있는 '도자기 문화'이다. 문경에는 국내 도예 명장으로 지정된 7명의 도예가 중 3명이 문경에서 배출되었을 정도로 문경의 도예장인들은 명성이 높다. 문경의 도자기 문화는 광복 전후부터 한국전쟁 중이던 1953까지가 전성기였다.
당시 36개의 가마가 문경에 있었는데, 양은그릇이 나오면서 도자기에 대한 수요가 줄기 전까지 문경은 밥그릇과 사기그릇을 다량으로 생산해 전국에 공급했다. 문경의 도자기 문화를 말하기 위해서는 8대를 이어져 내려온 한 사기장 집안의 역사속을 살펴보아야 한다.
아직 문경에서 도자기의 가문을 이어오고 있는 장인이 있다. 바로 도예가 김영식 씨. 김씨의 집안은 대대로 사기장을 했는데, 8대조 할아버지 김취정은 240여 년 전 충북 단양에서 가마를 열어 사기장 일을 처음 시작하고 9대조부터 문경에 정착해서 사기장 일을 시작하였다고 한다. 그는 이미 대중화된 가스가마나 기름가마를 이용하지 않고 조상들이 오래전부터 사용해온 문경 고유의 망댕이가마를 고집스럽게 고수하고 있다.
망댕이란 사람 장딴지와 같은 모양의 길이 20~25cm의 진흙덩어리를 말하는 문경의 사투리인데, 이 망댕이를 촘촘히 박아서 반구형의 가마 칸 3~8개를 나란히 연결한 것이 망댕이 가마이다.이 망댕이 가마는 무려 170여 년간 그 원형이 보존돼 현재 '경상북조 민속자료 135호'로 지정돼 있다.
문경이 도자기로 유명해진 이유는 문경에 좋은 백자를 만들만한 흙이 풍부했으며 도자기 재료인 유약토와 땔감이 소나무가 많아 도자기를 구울 만한 최적의 지역이었다고 한다. 또한 남한강과 낙동강을 이용해 서울과 예천, 영주 등으로 이동이 쉬워 지게꾼들이 도자기를 팔러 다니기에도 좋았다고 한다. 그리고 또한 문경의 도예명장의 이야기가 있는데, 바로 문경출신 천한봉(81) 도예명장이다. 그는 이도다완(井戶茶碗)을 재현해낸 마지막 조선 도공으로 꼽힌다. 천한봉 선생이 찻사발을 재현해낸 과정은 매우 흥미롭다.
문경이 도자기로 유명해진 이유는 문경에 좋은 백자를 만들만한 흙이 풍부했으며 도자기 재료인 유약토와 땔감이 소나무가 많아 도자기를 구울 만한 최적의 지역이었다고 한다. 또한 남한강과 낙동강을 이용해 서울과 예천, 영주 등으로 이동이 쉬워 지게꾼들이 도자기를 팔러 다니기에도 좋았다고 한다. 그리고 또한 문경의 도예명장의 이야기가 있는데, 바로 문경출신 천한봉(81) 도예명장이다. 그는 이도다완(井戶茶碗)을 재현해낸 마지막 조선 도공으로 꼽힌다. 천한봉 선생이 찻사발을 재현해낸 과정은 매우 흥미롭다.
그는 "이런 것을 한번 만들어보라"며 책을 한 권 꺼내보였는데, 그것은 일본의 국호 2호로 지정된 이도다완에 대한 책이었다. 일본 국보인 이도다완을 재현해내면 돈도 벌고 성공할 수 있다는 사쿠라가와의 말을 듣고 천 선생을 책 속의 그릇과 똑같은 그릇을 만들기 위해 연구를 거듭했다. 일본에 건너가 1년 동안 도자기 공부도 하며 일본의 도자기 공장을 다 돌아본 후에 귀국하였따. 하지만 아무리 문경의 질 좋은 흙을 아무리 빗어 정성을 쏟아도 이도다완은 만들어지지 않았다.
찻사발축제에서 물레를 돌리며 그릇을 만들어보는 외국인
어느 날, 이도다완의 생산지인 경남 진주와 하동, 김해 등지의 흙을 가져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찻사발은 밥그릇과 달리 찻물이 배어서 소박한 아름다움이 나와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문경의 흙에 남쪽 지방의 흙을 섞어서 만들어야 했던 것이다.
그는 오랜 노력 끝에 문경의 흙과 남족 지방의 흙을 섞어서 이도다완 못지 않은 기가막힌 그릇을 만드는 데 성공한다. 일본인들이 찾아와서는 천 선생이 만든 다완을 보고 탄성을 질렀다고 한다. 천 선생을 재현이 어렵다는 일본왕실 화병도 전통방식으로 만들기까지 성공해서 일본정부로부터 문화 훈장도 받게 된다.
현재 '문경요'를 운영하는 천한봉 선생의 문하에는 40여 명의 제자가 있고, 그의 딸 천경희 씨가 무형문화재 전수자로 전통 방식의 찻사발을 만들어내고 있다. 문경시에서는 이러한 문경 도자기의 전통을 살려 매년 전통찻사발 축제를 개최하고 있으며 문화의 계승과 발전을 도모하여 찻사발 관련 유ㆍ무형자산을 널리 알려 문경의 문화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있다.
현재 '문경요'를 운영하는 천한봉 선생의 문하에는 40여 명의 제자가 있고, 그의 딸 천경희 씨가 무형문화재 전수자로 전통 방식의 찻사발을 만들어내고 있다. 문경시에서는 이러한 문경 도자기의 전통을 살려 매년 전통찻사발 축제를 개최하고 있으며 문화의 계승과 발전을 도모하여 찻사발 관련 유ㆍ무형자산을 널리 알려 문경의 문화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있다.
문경시가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시작한 전통차사발 축제 역시 국민들의 호응을 얻으면서 2009년에는 문화체육관광부 지정 우수축제로, 2012년부터 2014년까지 3년 연속 최우수 문화관광축제에 선정됐다. 지금 문경에 가면 도예명장들이 만들어낸 도자문화의 진수를 맛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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