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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

‘LOL’(리그오브레전드)의 세계, 온라인게임의 진화

아이들이 롤롤~ 하는 소리를 들어봤는지? 그들의 ‘롤(LOL)’은 리그오브레전드의 줄인말이다. 스타크래프트만큼, 아니 그 열풍을 뛰어 넘은 롤 신드롬에 대해 알아본다. 


지난 10월19일 마포구 상암동의 월드컵 경기장에 사람들이 꽉 들어찼다. 유명한 가수의 공연도 아니고, 국가대표 축구 경기가 있는 것도 아닌데 그 많은 사람들이 상암 월드컵 경기장 만원관중을 기록한 건 리그오브레전드의 신드롬이라 할 만하다. 




롤은 ‘롤드컵’, ‘롤폐인’ 등의 신조어를 만들어내며 관전형 e스포츠(온라인게임으로 승패를 겨루는 경기 혹은 리그를 가리킴)의 대명사가 됐다. ‘롤드컵’은 ‘롤’과 ‘월드컵’의 합성어로 이번 롤드컵에선 전 세계의 롤게임 강자들이 서울 상암벌에서 토너먼트 경기로 일합을 겨뤘다. 이번 롤드컵 결승전은 예약분 티켓이 순식간에 동이 났고, 경기 당일에도 티켓 매출이 15억원을 훌쩍 넘었다. 유료 관중이 벌떼처럼 서울월드컵경기장으로 몰려들었다.


롤은 미국 게임개발사 라이엇게임즈(Riot Games)에서 제작한 온라인게임이다. 한국에는 2011년 12월부터 서비스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정식 서비스 전부터 한국 접속자 수는 이미 30만 명을 넘어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리그오브레전드 - 롤드컵


롤은 한국에서 출시되자마자 불과 3개월 만에 PC방 게임 점유율 1위를 기록했다. 리니지 등 한국 게임이 주종을 이루던 기존 게임업계 판도를 단숨에 갈아엎고 외국산 게임으로는 6년 만에 1위에 올랐다. 그 후 몇 번의 등락을 거쳤지만 지난해 7월 25일부터 2014년 11월 현재까지 140여 주 동안 ‘부동의 1위’를 달리고 있다. 순위뿐 아니라 점유율도 괄목할 만해 지난해 6월 이후 40% 안팎을 기록 중이다. 지난해 11월 7일에는 45.06%의 점유율을 기록해 정점을 찍기도 했다. 이는 국내 게임 사상 역대 최고의 점유율로 기록돼 있다.


롤은 게임 장르로 보면 MOBA(Multiplayer Online Battle Arena·여러 명이 제한된 구역에서 배틀을 벌이는 방식)다. 롤은 5대 5로 팀을 나눠 상대의 본진을 파괴하면 승리하는 게임이다. 1대 1 대결이 중심인 스타크래프트와 달리 5대 5 팀 대항전으로, 개인 실력보다는 팀워크가 더 중요하다. 




한 게임당 20~40분간 대결하게 되는데 잔인한 장면도 없고 피 한 방울 안 나온다. 기성세대가 어린 시절 동네에서 축구나 자치기 등을 하면서 친구들과 어울려 놀았다면, 요즘 아이들은 가상세계에서 롤을 통해 친구들과 어울리는 셈이다.


롤에는 청소년들을 끌어당길 만한 몇 가지 흥행 요소가 있다. 먼저 121개에 이르는 캐릭터다. 이 중 나만의 캐릭터를 골라서 성장시키는 롤플레잉 게임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또 흔히 ‘머리싸움’이라고 일컫는 전략 게임의 요소가 있고, 여기에 화려한 액션을 즐길 수 있는 전투액션 요소가 녹아 있다. 다른 게임과 달리 ‘신드롬’으로 불릴 정도로 어린 세대를 사로잡은 비결이 여기에 있다.


청소년들이 롤에 열광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재미있어서’다. 롤은 5대 5 대전으로 ‘혼자가 아닌’ 팀플레이로 한다. 각자 담당하는 포지션에서 자신이 맡은 역할을 수행함과 동시에 팀원과의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실시간으로 전략을 만든다. 


게임 속에서 개개인의 실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팀원과의 협력이 이뤄지지 않으면 대전에서 승리하기가 매우 어렵다. 이 때문에 친구들끼리 PC방에 모여 게임을 할 때는 주저 없이 롤을 선택하는 것이다.



리그오브레전드 - 롤드컵


롤은 랭크게임 모드에서는 게임 실력에 따라 ‘계급(티어·tier)’이 부여되는데, 이런 점이 서로를 구분 짓기 좋아하는 청소년들의 심리를 자극한다는 분석도 있다. 롤은 유저의 실력에 따라 계급이 브론즈-실버-골드-플래티넘-다이아몬드 순으로 높아진다. 다른 게임이 비싼 아이템을 사들이는 것으로 계급을 높일 수 있는 것과 달리 롤은 오직 자신의 실력만으로 계급을 높일 수가 있다. 이런 점이 감수성 예민한 청소년들의 입맛에 딱 들어맞는다는 것이다.



한 가지의 인기 요소는 롤이 단순히 한국을 넘어서 전세계 유저를 하나로 묶어준다는 점이다. 유럽축구를 보거나 FIFA(국제축구연맹) 월드컵을 보는 것과 다름없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롤 팬들은 마치 축구나 농구 같은 스포츠 경기를 보듯 e스포츠경기장이나 체육관에서 무대가 설치된 대형 모니터의 게임방송 중계를 실시간으로 보며 프로게이머들의 경기를 즐기고, 응원한다. 이것이 바로 ‘롤드컵’이라는 별칭으로 주목받는 ‘롤 e스포츠’다.


라이엇게임즈는 2011년 12월 한국에서 롤을 출시한 직후 2012년 봄부터 e스포츠 대회를 운영해오고 있다. 연 3회 결승이 진행되는 한국리그는 매번 1만여 좌석이 늘 만원을 기록한다. 용산 e스포츠상설 경기장에서 열리는 ‘롤 챔피언스’ 경기에는 매번 교복을 입은 학생들로 북적댄다. 여기에 연예인들도 롤의 인기를 높이는데 한몫하고 있다. 


‘슈퍼주니어’ 등 아이돌 스타나 장동민·유상무 등 인기 개그맨들은 ‘롤폐인’을 자처하면서 롤에 등장하는 캐릭터 의상을 입고 공식석상에 나타나기도 한다. 미국의 유명 록밴드 ‘이매진 드래곤스’도 멤버들이 모두 롤 팬이다. 이 밴드는 올해 롤드컵의 공식주제가를 직접 부르기도 했다.


축구에서 각 나라 1~3부 리그에 국가간 월드컵이 있는 것처럼, 롤 e스포츠 대회 역시 PC방 토너먼트부터 프로게이머 리그, 세계 대회인 ‘롤드컵(롤 월드챔피언십)’까지 단계별로 이어진다. 롤을 즐기는 누구나 동네 PC방에서 대회에 참가할 수 있다. 여기서 실력을 인정을 받게 되면 한국 국가대표를 선발하는 대회뿐만 아니라 세계무대에서도 뛸 수 있다.


리그오브레전드 - 롤드컵


직업 프로게이머를 보유한 프로게임단도 있다. 한국의 경우 SK텔레콤, KT, 삼성전자, CJ 등 대기업이 프로게임단을 운영한다. e스포츠 규모가 커지면서 기업들의 후원도 자연스레 뒤따랐다. 젊은 세대와 소통하는 데 롤 만한 것이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세계적인 음료업체 코카콜라를 비롯해 글로벌 피자 브랜드 파파존스, 일본 자동차 브랜드인 닛산 등 다양한 기업이 해외 리그 및 팀 후원을 하고 있다.


전 세계 대표팀이 모여 펼치는 롤드컵은 이제 글로벌 핫이슈다. 10월 19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펼쳐진 ‘2014시즌 롤월드챔피언십’ 결승전은 e스포츠 역사상 최초로 유료 관객 4만 명 ‘전좌석 완판’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올해 롤드컵 결승에서는 한국의 ‘삼성 화이트’와 중국의 ‘로얄클럽’이 100만 달러(10억6천만원)의 상금과 세계 최고라는 명예를 걸고 맞붙었다. 결과는 삼성 화이트가 3대 1로 이겨 우승 트로피를 품에 안았다. 경기 관전 티켓은 실버석(2만5천원), 골드석(4만원), 플래티넘석(5만원), 다이아몬드석(5만5천원) 네 종류였다.


지난 8월부터 10월 초까지 순차로 판매 했는데, 1차 판매분은 30분, 2차분은 15분, 추가분은 2시간 만에 모두 팔려나갔다.역대 롤드컵 유료관객의 추이는 폭발적인 증가세다. 시즌2(2012년)에는 8천 명이었지만, 시즌3(2013년)에 1만2천 명이었다가 올해 4만 명이라는 엄청난 수로 상승하면서 일반스포츠 못지않은 티켓 파워를 입증했다.




라이엇게임즈 본사의 마크 메릴·브랜든 벡 공동 창업자와 더스틴 벡 부사장은 “서울월드컵경기장은 역대 e스포츠 대회가 치러진 곳 중 가장 큰 규모의 경기장”이라며 감탄을 연발했다. 권정현 라이엇게임즈 코리아 전무는 “주최 측인 우리들도 입장권 완판 열기에 놀랐다.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e스포츠 최대의 축제인 롤드컵이 열린다는 것 자체가 영광이다. 인기로만 보면 롤드컵과 월드컵이 같은 반열에 오른 느낌”이라며 웃었다.



리그오브레전드 - 롤드컵


올해 서울에서 열린 롤드컵의 경우 싱가포르, 대만에서 조별예선을 거친 뒤 부산에서 8강, 서울에서 준결승과 결승전을 치렀다. 서울월드컵경기장 결승전에서 나온 유료관객 4만 명은 당분간 깨지기 힘든 기록이 될 것으로 보인다.


10월 롤드컵 결승전 관중의 약 10%가 넘는 4천여 명이 해외 팬이었다. SK텔레콤 T1 K 소속의 ‘페이커’ 이상혁 선수의 유튜브 플레이 영상은 전 세계 롤 플레이어가 가장 선호하는 콘텐트 중 하나다. 지난 5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롤 올스타 2014’ 대회의 경우, 이탈리아·독일·네덜란드·스위스·영국 등 유럽 전역에서 롤 대회 관람을 위해 찾았다. 롤은 이제 지역을 불문하고 같은 세대를 이어주는 하나의 놀이문화로서 역할을 한다.


처음 e스포츠를 접한 온라인게임 1세대는 어느덧 자녀를 둔 부모가 되었다. 이 때문에 롤 e스포츠 현장에는 자녀와 함께 온 부모들도 적잖이 눈에 띈다. e스포츠는 직접 하는 재미에서 ‘보는 재미’로까지 게임의 경험을 확대한다. 임요환으로 대표되던 프로게이머의 인기는 이제 롤로 이어지고 있다. 팬들은 직접 플레이하지 않더라도 실력과 외모를 겸비한 홍민기(CJ), 이번 롤드컵의 승리 주역인 구승빈(삼성 화이트) 등 프로 롤 선수들을 위해 선물과 각종 응원문구를 만들어 경기장을 찾는다.


롤을 비롯한 온라인게임은 아직 한국에서 정식 스포츠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올해 전국체전에 롤을 비롯한 몇 개 게임이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었지만 게임의 중독성에 대해 우려하는 시각이 여전히 많다. 게임도 엄연한 ‘스포츠’라고 생각하는 10, 20대 젊은 세대와 ‘중독성이 있는 오락’이라고 걱정하는 기존세대의 간극은 여전히 크다. 이를 좁혀가는 게한국 게임계가 짊어진 숙제다.


박명기 (게임톡 편집국장)

[월간중앙 2014년 1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