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경제 여건 속에서, 바야흐로 한국 소비시장은 격변기를 맞고 있다. 경제 상황이 어려워질수록 사람들은 지갑을 닫게 마련이다. 가계부채는 역대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는데다, 은퇴 후의 삶에 대한 걱정도 커지면서 돈이 있어도 쓰지 않는 상황이다.
2015년 한국 경제는 어떻게 전개될까? 현 시점만 놓고 보면 상황이 그리 녹록하지 않을 듯 하다. 각종 경제지표는 예전 같지 않은 지 오래고, 연일 보도되는 경제 뉴스를 봐도 마음이 심란하다. 이제 한국 경제는 과거처럼 호황을 기대하기 어려운 '저성장기'에 접어들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2015년에는 경제가 나아질 것'이란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 하지만 저성장기라고 꼭 절망할 필요는 없다. 저성장기의 또 다른 이름은 바로 '선진국형 소비시장'이기 때문이다. 경제 성장률이 아무리 낮다 하더라도 소비는 늘 발생하기 마련이다. 다만 그 패턴이 저성장기에 적합한 형태로 변화할 뿐이다.
▒ 선진국형 소비시장?
저성장기 시장의 가장 중요한 변화는 '소비의 구조조정'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모든 영역에서 소비를 진작시키고자 했던' 과거의 구매패턴 대신 '최소한 내가 원하는 영역에 대해서 만큼은 아낌없이 소비할 수 있기를' 바란다. 무조건 비싼 브랜드, 제일 좋은 제품을 고집하지 않고 적당한 수준에서 타협할 줄도 안다.
그렇다고 해서 아끼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경우에는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에도 망설임 없이 지갑을 연다. 과거와 다른 새로운 구매의 기준이 나타난 것이다. 이런 변화를 몇 가지로 정리해보았다.
1. 브랜드의 영향력이 과거와는 다른 형태로 바뀐다.
브랜드 지향적인 구매 태도가 약해지고 '브랜드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카테고리를 선택하는 형태'로 바뀐다. 사람들은 1등 브랜드나 2등 브랜드나 품질상의 차이는 미미하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특정 브랜드를 고집하던 과거와는 달리,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다른 브랜드가 있다면 바로 돌아서는 충성도 낮은 소비자가 등장한다.
2. 소비자의 구매의사 결정이 훨씬 더 복잡해진다.
브랜드력이 약화되고 하나의 제품 카테고리에서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이 많아졌을 뿐 아니라 유통채널까지 다양해지면서 소비자의 선택지가 더욱 증가했다. 제품 하나를 사더라도 어떤 브랜드의 어떤 모델을 살 것인가에서부터 그것을 온라인으로 살지, 오프라인으로 살지, 해외 직구를 할 것인지까지 고민해야 한다.
3. 저성장기 소비자들의 관심 소비영역이 변화한다.
물리적 제품보다는 경험적 요인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색다른 경험으로 삶을 풍요롭게 채우고자 하는 것이다. 명품백을 사기보다는 힐링을 핑계로 여행을 떠나는 것을 선호하고, 냉장고 같은 대형 내구재는 온라인으로 구매하면서도 아기자기한 소품을 구매하기 위해 오프라인 숍을 방문하는 수고는 아끼지 않는다.
▒ 더 작고, 더 세밀하고, 더 유연하게! 소비자와 만나라
이렇게 달라진 소비자를 고객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기업들의 전략에도 대대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과거에는 다수의 대중을 대상으로 더 많은 제품을 판매하는 것이 유일한 목적이었따면, 이제는 수시로 바뀌는 소비자의 취향을 따라잡기 위해 기업 전략은 더 작고, 더 세밀하며, 더 유연하게 바뀌는 이른바 '작은 전략'이 필요하다.
우선 타깃 고객을 정할 때 '얼마나 많은 사람이 우리 제품을 사 줄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작고 명확한 집단이 우리의 잠재 고객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또한 제품 자체를 잘 만드는 것보다도 서비스를 강화하는 전략이 더 유용할 수 있으며, 기능 측면에서보다도 소재나 디자인에서의 디테일한 차이를 위해 더 많은 예산을 들여야할 수도 있다. 그동안 매력적인 집단이 아니었던 시니어·남자·어린이를 노린 틈새시장을 주목하는 것도 좋다.
결국 저성장기 소비자가 원하는 것은 '내 구매가 나에게 얼마나 가치 있는가'이다. 필수재인 냉장고는 적당한 가격으로 구매하지만, 없어도 크게 문제가 없는 작은 장난감을 사는 데는 돈을 아끼지 않는 사람들이 당신의 고객으로 거듭나고 있다. 따라서 고객 지향적인 관점만이 2015년 소비자의 지갑을 여는 열쇠가 될 것이다.
이코노미스트 1368호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