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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

게임이론 팃포텟(TFT) 전략으로 신뢰사회 만든다?!

2011년 개봉한 영화 <인 타임>. 인류는 인구 증가 억제를 위해 팔뚝에 '카운트 바디 시계'를 심어 남겨진 시간만큼만 살 수 있게 한다. 무상으로 주어진 1년치의 시간이 소진되어 시계가 영(0)이 되는 순간 심장마비로 죽게 되는 것. 수명을 연장하려면 일을 하든, 빌리든, 훔치든 간에 추가 시간을 보충해야 한다.


그야말로 시간이 곧 돈인 세상에서 부자들은 몇 세대에 걸쳐 영생을 누리는 반면, 가난한 자들은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힘겹게 살아간다. 시간 빈민층에 속하는 윌(저스틴 팀버레이크)의 어머니는 갑자기 올라버린 버스요금 2시간이 모자라 윌의 눈 앞에서 사망하고 마는데...


인 타임


▨ 일회성 게임 vs 반복 게임


게임이론에서 다루는 게임은 크게 일회성(One-shot) 게임과 반복(Repeated) 게임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일회성 게임은 한 번 하고 말기 때문에 게임 참가자 누구나 체면이고 후환이고 따질 것 없이 노골적으로 본색을 드러낸다. 죄수의 딜레마에서처럼 이기심에 눈이 멀어 제 발로 함정에 빠지는 행동도 불사한다.


하지만 똑같이 게임이 여러 번 반복되는 반복게임에서는 얘기가 달라진다. 이번 회에서의 나의 행동이 다음 회에서 상대방의 행동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좀 더 고차원적인 행동 조율이 가능해진다. 특히 한 몫 크게 챙기고 관계를 끝장내기보다는 욕심을 조금 줄이며 관계를 지속하는 것이 이득이 된다면, 자발적인 협력이 싹을 튼다.


영화 속 '시간 빈민층'은 누구나 생명시간이 빠듯하기 때문에 극도로 편협하고 이기적인 행동을 한다. 모두가 일회성 게임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이다. 하지만 부유층들은 시간이 넉넉하기 때문에 우아하게 예의를 갖추고 협조적 행동을 한다. 반복 게임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 우리 앞에 놓인 현실 상황은 일회성일까 반복일까?


아쉽게도 적정 선에서 타협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상황임에도 현실에서는 사람들이 눈 앞의 작은 이득에 너무도 쉽게 무너져 내린다. 여당과 야당, 노와 사, 대기업과 중소기업, 아래층과 위층, 입주민과 경비원은 한번 보고 말 사이가 아니다. 그럼에도 매번 일회성 게임의 행태만을 되풀이한다.


갈등


방법은 있다. 게임의 규칙을 잘 설정하면 이기적이고 근시안적인 개인들 간에도 협력을 발생할 수 있음이 밝혀져 있다. 1980년 미국 미시간대학의 정치학자 로버트 액설로드 교수는 서로 다른 개인 또는 단체들 간에 어떻게 하면 협력관계가 유지될 수 있는지를 연구했다. 



▨ 눈에는 눈, 이에는 이 - 팃포탯(TFT)


시뮬레이션 결과 가장 우수한 전략(프로그램)으로 팃포탯(TFT, Tit for tat)이 선정되었다(Tit과 Tat은 모두 '가볍게 때린다'는 의미이며, 이를 합친 Tit for tat은 '맞대응'을 의미). 러시아 태생의 미국 수학심리학자 아나톨 래퍼포트가 제안한 이 전략은 극도로 단순한 것이 특징이다.


그 내용은 ①첫 회 게임은 경쟁자들 간에 협력으로 시작한다 ②다음 회에는 바로 전번 회에서의 상대방의 행동을 그대로 따라 한다(상대가 협력했으면 나도 협력, 상대가 배신했으면 나도 배신). 이러한 TFT 전략 하에서는 놀랍게도 이기적인 개인들 간에 매우 튼튼한 상호협력을 유도할 수 있었다.


함무라비 법전


TFT 전략은 기원전 1700년경 바빌로니아 함무라비 법전에 새겨진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탈리오 법칙과 매우 흡사하다. 고대인들의 지혜가 놀랍기만 하다. 그런데 TFT 전략이 작동하려면 반드시 필요한 전제가 있다. 상대방의 배신 행위는 단호하게 응징해야 한다는 것이다. 상대방의 배신에 어정쩡하게 대응하면 더 이상의 협력은 불가능하다.



▨ 무심한 듯 단호한 룰이 신뢰를 떠받친다


최근 코레일 무임승차 문제가 국회에서 논의된 적이 있는데, 지난 5년 간 무임승차로 적발된 건수가 129만 건이나 된다고 한다. 무임승차가 만연한 이유 중 하나는 응징의 강도가 약했기 때문일 수 있다. 운임의 최고 10배까지 벌금을 매길 수 있지만, 0.5배에 그친 것이 87.3%, 1배 징수가 10.9%, 2~10배 징수는 1.8%에 불과했다고 한다.


이와 달리 미국 국세청은 화끈하다. 최근 부유층의 역외 탈세 감시를 대폭 강화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는데, 2009년 이후 지금까지 적발된 사람은 70여명에 불과하다. 그런데 무려 4만3000여명이 탈세를 자진신고 했고, 벌금과 세금을 합쳐 약 60억 달러를 냈다고 한다. 적발되면 예금액의 1.5배에 달하는 혹독한 벌금을 부과했기 때문이다.


신뢰사회라고 말들은 많이 하지만, 신뢰는 말하기 좋고 듣기 좋을뿐 거저 오지는 않는다. 무심한 듯 단호한 룰만이 신뢰를 떠받치는 주춧돌이다. 팃포탯 전략, 더 합리적인 방법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