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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

괴물투수 류현진, 그의 미래는?

LA다저스에서 한국인 투수의 위용을 뽐내던 류현진. 올해 초 어깨수술로 인해 시즌아웃을 발표하며 국내의 많은 야구팬들에게 안타까움을 주었다. 한국 리그를 말그대로 몬스터처럼 휩쓸고 미국을 점령하러 떠난 몬스터, 미국의 리그에는 같은 몬스터가 많았던 것일까? 그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예측해보자.


아무리 강한 팔꿈치와 어깨라도 닳아서 없어지는 분필과 같은 것… 한국에서보다 평균 3km이상 빠른 공 던지며 피로 누적된 결과일 것


▤괴물투수 류현진의 부상

류현진 부상


우리는 그를 ‘괴물’이라 불렀다. 파괴되지 않은 신체와 정신을 가졌다 해서 ‘금강불괴(金剛不壞)’라고 부르기도 했다. 대한민국 최고의 투수 류현진(28·LA 다저스)은 한국프로야구가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수출품’이었다.

그가 쓰러졌다. 류현진은 5월 22일(한국시간) 미국 LA에서 왼쪽 어깨수술을 받았다. 돈 매팅리 다저스 감독은 “수술이 잘된 것 같다. 류현진이 내년 스프링캠프에서 공을 던지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다저스 구단은 “어깨의 관절와순이 손상돼 수술했다”고 전했다.

수술 가능성이 제기되고 류현진이 수술대에 오르기까지는 불과 사흘이 걸렸다. 수술 사실이 알려지기 직전까지 그는 “아프지 않다”고 했다. 좋은 체격과 유연한 몸을 가진 류현진은 적어도 30대 초반까진 끄떡없을 거라고들 했다. 그러나 류현진은 투수 생명을 위협하는 어깨수술을 결심할 수밖에 없었다.


▤이상 징후와 수술, 그리고...


류현진 부상일지


지난 2월 말 류현진은 애리조나주 글렌데일의 다저스 스프링캠프에 합류했다. 본격적인 훈련에 앞서 그는 자기공명영상(MRI) 검진을 받았다. 지난해 두 차례나 어깨 부상으로 로테이션에서 이탈했기 때문에 다시 점검한 것이다. 결과는 ‘이상 없음’. 류현진은 공을 던지기 시작했다.

류현진은 3월 13일 시범경기 첫 등판을 했다. 2이닝을 던지는 동안 별 문제가 없었다. 같은 달 18일 시범경기 마운드에 다시 올랐을 때 어깨 통증이 생겼다. 당시 외신은 류현진이 어깨 염증 탓에 피칭을 중단한다고 전했다. 염증 완화를 위해 주사 치료를 받은 뒤 다시 캐치볼(서서 공을 주고받는 훈련)을 시작했으나 통증은 사라지지 않았다.

류현진의 부상에 대해 다저스는 대수롭지 않은 것처럼 대응했다. 류현진은 15일짜리 부상자명단(Disabled List)에 올랐고 4월 중 복귀할 것으로 공식 코멘트를 했다. 국내 언론도 류현진이 곧 돌아올 거라는 희망적인 뉴스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당시 상황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과거 어깨 부상을 입은 적이 있지만 시즌 시작 전부터 아픈 건 처음이었다. 전력피칭에 앞서 공을 던지지 못할 정도의 통증을 느꼈다면 쉽게 가라앉기를 기대하는 건 무리였다.

류현진의 공백이 길어지자 다저스의 공식 발표만 믿을 수는 없게 됐다. 류현진을 잘 아는 국내 의료진과 인터뷰를 해보니 심각성은 더 크게 느껴졌다. 이상훈 CM충무병원 원장은 “통증이 심해 공을 던지지 못하는 투수의 MRI 자료를 보면 큰 이상이 발견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냥 기다릴 게 아니라 특별한 관리와 치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난 2004년 류현진의 재활훈련을 도왔던 한경진 선수촌 병원 재활원장은 “어깨 통증은 고질적이다. 지난해부터 류현진이 어깨 통증을 느끼는 빈도가 잦아졌다. 현지에서는 회복 기간을 2~3주라고 했지만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류현진은 두 번째 불펜피칭을 하면서 통증을 느낀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일정이 모두 취소됐다. 3월 말 단계로 돌아온 것이다. 통증의 원인을 정확히 모르니 의혹이 커지기 시작했다. 미국 CBS 스포츠의 존 헤이먼은 “어깨 관절와순이 마모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썼다. 메이저리그의 대표적인 소식통인 헤이먼은 류현진의 에이전트인 스캇 보라스와도 가깝기 때문에 그의 주장이 꽤 설득력 있게 들렸다. 다저스 구단은 주치의인 닐 엘라트라체 박사와 류현진의 치료법에 대해 논의했고, 류현진의 부친(류재천 씨)도 국내 병원과 여러 가지 상담을 했다.


시간이 지나도 통증이 사라지지 않자 류현진은 결국 수술을 결심했다. 참고 기다려서 마운드에 복귀한다고 해도 부상이 재발할지 모른다는 결론에 이른 것이다. 류현진은 왼쪽 어깨 관절경 수술(Arthroscopic Surgery)을 받았다. 렌즈가 부착된 관을 넣어 어깨 관절와순을 검사하니 다행히 마모 상태는 아니었다. 찢어진 곳을 꿰매고 정리하는 ‘청소술(淸掃術)’을 했다. 최상의 결과(단순 염증)는 아니었지만 최악의 시나리오(마모)만은 피했다.


수술을 받은 류현진은 오히려 홀가분해 보였다. 그는 “수술을 피하려 했지만 계속 이렇게 (통증 원인을 정확하게 알지 못한 채) 가는 것보다 수술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자기관리 실패? 에이스라면 누구나


류현진 완봉


선수가 수술을 받기 사흘 전까지 다저스 구단은 현지 취재진에 아무것도 알리지 않았다. 관절와순 부상이라고 추정했지만 어깨를 열어 보기 전에는 100% 확신할 수 없어서였다. 게다가 류현진이 마지막까지 수술 결정을 망설인 것도 발표가 미뤄진 이유였다.


야구 팬들은 류현진이 적어도 4~5년 동안은 매 시즌 15승 정도를 올려줄 거라 기대했다. 2013년(192이닝)과 2014년(152이닝) 두 시즌 동안 28승 15패 평균자책점 3.17을 기록한 류현진은 단기간에 메이저리그 정상급 선발투수로 자리 잡았다. 1990년대 후반 많은 사람이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한 박찬호(은퇴)에게 열광했던 것처럼 류현진을 응원했다.


그러나 그의 수술 소식이 전해지자 팬들은 실망감을 드러냈다. 자기관리에 실패했기 때문에 류현진의 피칭이 멈춘 것이라고 생각했다. 류현진은 2013년 2월 다저스 스프링캠프에 처음 참가했을 때부터 불성실한 훈련태도로 현지 언론의 비판을 받았다.


러닝훈련에서 하위권으로 처지자 다저스 담당 베테랑 기자인 켄 거닉은 “류현진이 다이어트를 위해 햄버거를 더 이상 먹지 않겠다고 했다. 이젠 담배를 끊는 것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기사를 썼다. 그러나 류현진은 그해 14승을 거두는 실력을 과시하며 담배 논란을 잠재웠다. 2013년 겨울 류현진은 상업광고와 TV 예능프로그램에 자주 등장했다. 훈련도 게을리한다는 말을 들었지만 2014년에도 좋은 성적을 거뒀다.


잠잠했던 비난 여론이 수술 소식과 함께 되살아났다. 그라운드 밖의 행동이 어깨부상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의사들에게 물었다. 의사들은 “술·담배를 하고 방송에 출연하는 것과 부상 사이의 직접적인 상관관계는 없다”고 답했다.


류현진의 어깨가 상한 근본적인 이유는 피로 누적이다. 이상훈 원장은 “어깨 관절와순의 문제는 어깨 위에서 팔을 움직이는 투수들에게 나타나는 기능적 현상”이라고 말했다. 어깨 높이 위로 팔을 올려서 공을 던지는 자체가 부자연스러운 동작이라는 것이다.


투수의 어깨는 쓰면 쓸수록 닳아 없어지는 분필과 같다는 게 야구계의 통설(通說)이다. “좋은 폼으로 던지면 투구수가 많아도 괜찮다”는 주장도 있다. 물론 선수에 따라 개인차가 있지만 닳지 않는 분필이 없는 것처럼, 아무리 던져도 끄떡없는 팔은 없다.


류현진은 어릴 때부터 특별한 투수였다. 그만큼 많이 던졌다. 그는 만 19세였던 2006년 프로에 데뷔하자마자 201과 3분의 2이닝 동안 마운드를 지켰다. 이후 꼴찌 팀 한화의 에이스 역할을 맡으며 7년간 1269이닝을 책임졌다. 투구 수는 총 1만6781개. 같은 기간 류현진보다 많은 공을 던진 국내 투수는 없다.


류현진의 이닝수와 투구수 기록은 최동원·선동열 등 1980년대 올드 보이들이 던졌던 수준이다. 뿐만 아니라 류현진은 2006 방콕아시안게임, 2008 베이징올림픽, 2009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2010 광저우아시안게임 등 주요 국제대회마다 국가대표팀을 이끌었다. 매 앞에 장사 없는 것처럼 아무리 괴물이라도 그처럼 많이 던지면 견디기 어려웠던 것이다.


사실 류현진이 수술을 받기 전까지 그가 올 시즌을 통째로 날릴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팬들은 물론 전문가들도 마찬가지였다. 류현진만이 가진 특별함 때문에 그랬다. 그는 140년 동안 만들어진 메이저리그의 관행을 거스르면서도 뛰어난 성적을 거뒀다.


류현진은 시즌 중 불펜피칭을 거의 하지 않았다. 선발투수는 등판 후 이틀 정도를 푹 쉬고 사흘째 포수를 앉혀놓고 전력피칭을 수십 개 한다. 몸을 풀면서 피칭 감각을 유지하기 위한 목적에서다. 투수라면 누구나, 어느 리그에서나 하는 훈련이다. 특히 많은 일본 투수가 시즌 중 불펜피칭을 100개 넘게 한다. 메이저리그 보스턴 등에서 활약했던 마쓰자카 다이스케(35·소프트뱅크) 등 일본 투수들은 컨디션이 나쁠수록 더 많이 던졌다.


▤팔꿈치 수술보다 더 어려운 어깨수술

류현진 어린시절


류현진도 프로 초창기 때는 불펜피칭을 했으나 비중을 점차 줄였다. 불펜피칭을 에너지 소모라고 생각한 것이다. 동산고 2학년 때 왼 팔꿈치 인대접합 수술을 받은 류현진은 연습투구를 최대한 줄이는 대신 실전에서 많이 던지려 했다.


이게 가능했던 건 류현진의 독특한 ‘기억력’ 덕분이었다. 한화 시절 류현진과 함께했던 정민철 MBC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은 “류현진에게 불펜피칭은 별로 필요 없었다. 푹 쉬고 마운드에 올라도 아주 정확하고 힘찬 공을 뿌렸다”고 말했다. 가장 좋았던 자세와 감각을 류현진의 몸이 항상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굳이 불펜피칭을 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팔꿈치 수술을 한 경험이 있었던 류현진은 자신의 팔을 아껴 쓸 줄 알았다.


다저스는 처음엔 이걸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류현진이 자신만의 리듬을 설명하자 구단도 ‘불펜피칭 없는 등판’을 허용했다. 메이저리그 최고의 투수 커쇼는 “류현진은 잠에서 깨자마자 모든 공을 스트라이크로 던질 수 있다. 난 (불펜피칭을 통해) 피칭을 꼼꼼히 점검해야 하는데…. 솔직히 그가 부럽다”고 말했다. 이후에는 누구도 류현진의 훈련 스타일에 대해 시비를 걸지 않았다.


게다가 류현진은 매우 부드러운 투구폼을 가졌다. 뚱뚱한 몸이지만 버드나무처럼 유연하다. 왼발 키킹부터 디셉션(타자에게 공을 숨기는 동작)에 이어 릴리스까지 물 흐르는 것처럼 자연스럽다. 이효봉 SKY스포츠 해설위원은 “그가 메이저리그에서 던지는 걸 보니 알겠다. 류현진은 세계에서 가장 예쁜 폼을 가진 왼손투수”라고 말했다. 그런 류현진이었기에 어깨수술 결정은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팔꿈치 인대접합 수술은 손목 등 다른 부위의 인대를 떼어 붙여 이뤄진다. 재활훈련이 잘되면 수술 받기 전 만큼, 혹은 그 이상의 스피드를 낼 수 있다. 그러나 연골과 근육·인대 등 복잡한 구조로 이뤄진 어깨는 수술 후 회복이 훨씬 어려운 것으로 알려졌다. 투수들이 어깨수술을 받는 걸 그래서 두려워한다.


발목이 아프면 거기에 힘을 주지 않으려다 무릎이 아프고, 나중에 허리 통증까지 호소하는 게 그런 예다. 그러나 이상훈 원장은 “팔꿈치 수술 이력과 어깨 부상의 직접적 원인은 없다”고 말했다. 류현진이 팔꿈치 관리를 잘했다 해도 이와 별개로 어깨 손상을 막지 못했다.


류현진은 메이저리그에서 2년 내내 전력으로 던졌다. 미국에서는 하위 타선에도 파워가 뛰어난 타자가 많기 때문에 쉽게 승부할 수 없었다. 한국에서 기록한 직구 평균 스피드(143㎞)보다 미국에서 3㎞ 이상 빠른 공을 던졌다. 허구연 해설위원은 “메이저리그에서는 한국에서처럼 완급조절을 하기 어렵다. 류현진은 거의 매 순간 전력피칭을 했다. 그래서 더 힘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에서와 달리 메이저리그 선발투수는 등판 후 4일간 쉬고 다시 등판하는 게 일반적이다. 류현진과 일본 투수들은 자국에서 주로 5일 휴식 후 등판했다. 다르빗슈는 “팔꿈치 부상을 입은 건 달라진 환경 때문이다. 4일만 쉬고 마운드에 오르는 미국 야구를 이해할 수 없다”며 불만을 터뜨린 바 있다. 2009년 어깨 부상을 입은 마쓰자카는 “이런 상황에서 등판을 강요당하면 내 몸이 견디지 못한다”고 했다.


격투기로 치면 류현진과 일본 투수들은 자신보다 한 체급 이상 높은 상대와 싸운 셈이다. 2~3년 후엔 탈이 날 확률이 높은 이유다. 일본 투수들과 달리 류현진은 불펜피칭을 많이 하지 않지만 ‘3년차 부상’을 피할 순 없었다.


커쇼 같은 메이저리그 정상급 선수들은 지난 7년 동안 류현진만큼 많이 던지고도 큰 부상이 없었다. 그러나 그도 빅리그에서 풀타임으로 던지기 시작한 시점이 만 22세였던 2009년(171이닝)이었다. 류현진은 만 19세 때부터 매년 200이닝 안팎을 던졌다. 의학적으로 몸이 완전히 성장하고 여물기 전이다.


류현진의 어깨가 상했다는 건 제2의 류현진을 꿈꾸는 후배들, 그리고 한국 야구에 큰 메시지를 주고 있다. 분필(어깨)을 단단하게 만들고 난 뒤에 써야 소모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을 류현진은 말하고 있다. ‘괴물’같은 투수라 할지라도 어깨는 연골·근육·인대 등 약한 조직으로 구성돼 있다는 것을 역설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