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의 기적’이라 불린 4월 29일, 대구시민에겐 ‘듣보잡’(듣도 보도 못한 잡놈), ‘굴러온 돌’(이방인)이라
고까지 회자된 권영진 후보가 전 동구청장 출신 이재만 후보와 3선의 친박계 중진인 서상기 국회의원(북구을), 재
선의 조원진 국회의원(달서구병)을 모두 따돌린 것이다.
경선전 관람을 위해 대구체육관을 찾은 한 당원은 전화통화를 하며 “연설에서 표심이 확 움직일 것 같다. 10분짜
리 원고를 외우지 못해 더듬거린 후보, 시종일관 고함만 치던 후보하고는 (권 후보가) 좀 다르더라”고 했다. 그의
예상은 적중했다. 주호영 새누리당 대구시당위원장(수성을)은 “죽기살기로 치열하게 선거를 치러본 수도권 지역구
출신 전 의원과 공중전(공천 확보)에 능한 텃밭 의원의 차이였다. 즉 서울식 선거와 대구식 선거가 이런 결과를 낳
았다”고 했다.
‘권영진의 힘’이 회자된 것은 그의 출마 배경을 두고 말이 많았던 데 있다. 종합하자면 이렇다.“대구시장 출마
는 페이크(fake)고 현역 국회의원 출마자의 지역구를 물려받으려는 것이다”, “수도권 선거가 힘드니 공천만 받으
면 당선이 쉽다는 대구로 왔다”, “여의도연구원 부원장 출신으로 당 여론조사에 관여하고 있을 것이다”, “결국
막판에 될 사람과 단일화 딜(deal)을 통해 모종의 확약을 받을 것이다” 등등.
하지만 권 후보는 포기하지 않고 내달려 컷오프를 면했고, 본선보다 어렵다는 예선전에서 현역을 제쳤다. 언론을
공략하고, 공약을 차별화했으며, 당원 한 명 한 명을 만나 형 동생 대하듯 하더라는 것이 지역 취재기자들이 전한
권영진의 당선 비결이다. 대구시당 한 관계자는 “새누리당 의원이지만 대구의원 같지 않다고나 할까. 젠틀하지만
수더분하고, 자세를 낮추지만 연출 같지 않아 보이는 그런 진정성이 보인다”고 했다.
김부겸 후보에겐 가장 피하고 싶은 상대였다. 김 후보가 쉰여섯, 권 후보보다 네 살 많다. 변화와 혁신을 부르짖은
점이 같고, 소통력과 친화력, 인간적 매력은 공히 둘의 장점으로 꼽힌다. 김 후보가 앞서는 점은 인지도에 묻어나
는 대중성뿐이다.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새누리당 정당 지지율이 60%를 상회하는
텃밭 중 텃밭이다. 김 후보가 인물경쟁력을 확보해 야권 후보의 선전이 가능한 것은 맞다.
김 후보의 개인 역량이 그만큼 뛰어나다. 하지만 당선의 결정적 변수는 대통령 지지율, 정당 지지율, 정책경쟁력,
인물경쟁력 지수인데 인물경쟁력만 경합할 뿐 다른 요소는 새누리당 권 후보에게 유리하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경
합으로 나타나는 것은 세월호 참사에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TK 보수 유권자가 민감한 사회적 상황 때문에 자신의
의사를 적극적으로 드러내지 않으면서 ‘침묵의 나선효과’가 나타나는 것이다.”
보통은 대구에서 여권 후보는 ‘안정 속 변화’를, 야권 후보는‘뼛속부터의 개혁’을 내건다. 하지만 “대구가 이
대로 가다간 망합니다”라는 둘의 외침은 닮았다. 그래서 둘은 자신이 모토로 내건 ‘변화와 혁신’의 내용이 다르
다고 적극 항변한다. 그리고 상대방의 모토를 깎아내린다.
공직·경제·분권·안전·교육혁신을 내건 권 후보는 “대구는 배타성 때문에 기업하기 힘든 도시란 오해가 있다.
특정 계층이 기득권을 누려 미래를장담하기 어렵다”고 했다. 김 후보는 특정 정당의 독점과 책임지지 않는 문화를
깨뜨려야 한다고 말한다. 김 후보는 “그러려면 인물을 바꿔야 한다. 고도의 정치력, 3선 국회의원의 의정 경험,
군포 지역구를 떠나 대구를 향한 애정, 여야의 상생을 실현할 사람이 필요하다”고 한다.
하지만 권 후보는 김 후보를 향해 “여당 대통령에 야당 대구시장은 진정성과 구체성이 없는 정치구호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절 새누리당 대구시장이 당선돼 대구를 얼마나 변화시켰나”라고 겨누고, 김 후보는 권 후보를 향해
“권 후보의 변화와 혁신은 새누리당의 안에 갇혀 있다. 기성 정치권의 관성과 안일함은 그대로다”라고 비판한다.
그러면서 두 사람은 취약층 공략을 서두른다. 권 후보는 젊은층, 김 후보는 노년층이 대상이다. 두 후보의 첫 공약
이‘2030이 행복한 도시’(권), ‘5060 다시 뛰자’(김)인 것도 표의 확장성에 애달아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공약
내용이 그리 참신하지는 않다.
권 후보는 청년벤처 창업, 대구인적자원개발원 설립, 보육지원, 워킹맘을 위한 정책 실행, 초등학교 전면 무상급식
, 세계대학 엑스코 추진을 제시했다. 두루뭉술하다. 대신 선거대책위원회 산하에 대학생위원회를 두고 직접 대학생
과 소통해 미래 10년 계획과 아이디어를 발굴하겠다는 점은 좋은 평가를 받았다. 대구시장이 되면 1천억 원 펀드를
조성해 젊은이 창업자금에 쓸 것도 약속했다.
김 후보는 ‘5060 다시 뛰자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8개의 대구 인생 이모작 지원센터 건립, 상담 프로그램 운영
, 여성(갱년기, 폐경기 여성)을 위한 건강관리 프로그램 지원, 만 55세 때 암 검진 본인부담금(총 검진비의 10%)
전액 지원, 5060 일자리 창출 박람회를 약속했다. 그러면서 본인을 “저도 58년 개띱니다. 어르신도 아들도 아닌
안팎에 낀 세대”라 소개하고 다닌다.
하지만 ‘변화, 혁신, 창조’ 이미지를 강조하는 권 후보로선 대구가 박정희와 박근혜에 너무 기대선 안 된다고 생
각하는 듯 하다. 박 전 대통령의 창조 리더십이 필요하다지만 구체적인 공약은 없다. 오히려 김 후보의 박정희센터
를 두고 “대구 EXCO도 이용률이 저조해 적자인데 다른 컨벤션센터가 대구에 필요하냐”고 말한다. 대신 국채보상
운동, 2·28 민주화 운동과 함께 박 전 대통령의 새마을운동을 대구의 3대 정신운동으로 계승하자고 설파했다.
‘바꿔보자’는 쇄신바람이 파고를 얼마나 일으킬지는 뚜껑을 열어봐야 안다. 대구 민심이 변화를 절절하게 원한다
. 새누리당 경선 이변과 김부겸이 크게 회자하는 현실이 잘 말해주고 있다. 그 파고가 새누리당 안에서 머물러 권
후보가 당선될지, 경계를 넘어 개혁의 쓰나미를 일으켜 김 후보가 선택될지는 단언하기 어렵다. 세대교체 바람은
이미 불었다. 새누리당을 향한 실망감과 피로감은 확인됐다. 꽉 막힌 대구 현실을 타파할 새 대구시장을 요구하고
있다. 새누리당 경선을 목격한 새누리당 인사들 사이에선 “이것은 민란(民亂) 수준”이라했다. 아래로부터의 혁명
이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알 수 없는 것이다.
두 캠프는 각자 승리를 확언한다. 권 후보 캠프의 김태한 공보실장은 “역동성, 개혁성, 참신성의 후보다. 집권 여
당 대통령과 야당 대구시장이 대박을 낼 것이란 구호는 정치구호다. 정치 메커니즘을 활용한 개혁보다는 미래지향
적인 개혁을 말하는 우리가 이길 것”이라 했다. 그러면서 “이번 선거는 사막의 모래폭풍보다 더 무시무시한 개혁
바람의 선거”라고 했다.
김 후보 캠프 이재관 공보실장은 “우리에게 표의 확장성이 더 있다. 대구 밖에서 대구가 고향인 사람들이 김부겸
을 부탁한다는 이야기를 지인들에게 전한다. ‘부겸아, 단디 해라’는 이야기를 듣고 시민 모금으로 선거를 하겠다
는 ‘단디펀드’도 만들었다. 우리는 철저히 ‘김부겸 인물론’으로 갈 것”이라고 했다.
팽팽한 대결구도가 예상되면서 지역 사회의 유력인사들도 각 캠프에 속속 합류한다. 새누리당 대구 점령을 이어가
려는 권 후보의 베이스캠프 특징은 ‘인해전술'이다. 직능직군의 수장을 대규모 영입했다.‘시민선거대책위원회’
란 이름의 선대위는 공동위원장으로 권영순 대구시 여성단체협의회 회장, 김순락 대구개인택시운송조합 이사장, 김
영오 대구시 상인연합회 회장, 김위상 한국노총 대구지역본부 의장, 김태우 대구경북을 사랑하는 전·현직 총학생
회장단 의장, 류형우 대구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회장, 양명모 대구시 약사회 회장을 위촉했다. 여성·자영업자·상
인·노동자·학생·문화예술인 등을 망라했다. 새누리당 대구시당이 전폭 지원하는 한편, 권 후보의 경선 탈환을
도왔던측근과 지인들은 고스란히 캠프에 남는다.
새누리당 독점구조를 깨뜨리겠다는 김 후보 베이스캠프는‘개방 또 개방’이다. ‘김부겸과 함께 하는 300만 대구
시대’ 시민 네트워크가 선거대책위원회의 핵심이다. 존재감은 기존의 선대위원장, 선대본부장에 못지않다. 유권자
라면 누구나 들어와 참여할 수 있고 역할을 맡는다는 게 특징이다. 플랫폼인 선거사무실을 개방해 카페를 만들고
주민들을 응접한다. 캠프 참여자는 ‘김부겸과 함께 하는 OO포럼’, ‘OO산악회’ 등을 구성해 활동할 수 있다. ‘
표 확장’에 최적화된 캠프라 평가되고 있다.
대구 시민들은 권·김 후보를 닮았다고 여긴다. 당은 다르지만 사람은 다르지 않다는 말도 들린다. 권 후보를 향해
선 좀 더 일찍 대구로 와서 바닥을 누비지 그랬느냐는, 김 후보를 향해서는 새정치민주연합 간판보다는 무소속으로
나오는 것이 낫지 않았느냐는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한다.
“권(權)과 김(金)의 쟁투는 참으로 오랜만의 흥미진진함을 대구시민에게 주고 있다. 하지만 결과를 떠나서 대구
지역구 국회의원들은 이 사실을 알아야 한다. 당심(黨心)과 민심(民心)의 칼이 그들의 목을 겨누고 있다는 것을.
국회의원이 오더(order)를 내리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던 대구가 아니다. 현직 국회의원이라고 무조건 떠받드는 대
구도 아니다. 정치권의 빅뱅이다. 제2의 자민련 바람이 불지 말라는 법도 없다. 낙하산 전략공천의 소프트랜딩을
더 이상은 기대하기 어렵다.”
이번 대구 시장 선거는 민심은 뒷전이고 중앙당 공천만 해바라기처럼 목말라했던 안일함을 버려야 한다는 경고와
다름없다는 말이다. 새누리당 대구 정치권도 지금과 달리 움직이지 않는다면 다음 선거에서 어떤 파도를 만날지 누
구도 모른다. 그래서 대구시장 선거 과정과 결과에 대구의 미래가 달렸다는 비장함이 감돌기도 하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