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관계에서 정신분석적으로 점검할 세 가지 항목이 있다. 분리(Separation)·한계(Limitation)·경계(Boundary)다. 이 셋은 건강한 인간관계의 기준이다. 돈에 대한 인간관계 문제가 발생할 때 적절히 적용할 수 있다.
많은 사람이 가족이나 친구에게 돈을 빌려주고 받지 못해 진료실을 방문한다. 가까운 사이라 증서 없이 거래한 경우가 많고, 아예 받을 엄두도 못 낸 채 엄청난 고통을 받는다. 거액을 투자한 후 초기에 일정한 돈을 받다가 회사가 부도나 증서가 휴지 조각되는 경우도 있다. 보증을 서거나 이름을 빌려줘 복잡한 소송에 말려들기도 한다. 일단 사건이 터지면 가해자는 조용히 잠적하고, 도와줬던 사람들을 피하고 본다. “미안하다! 열심히 살아 보려했는데 이렇게 됐다. 반드시 재기해 갚을 테니 기다려 달라.” 이랬다면 좀 나을 텐데…. 그냥 도망쳐 버리니 정말 돈 잃고 사람까지 잃는 황망한 일이다.
누군가 이런 말을 했다. 세상에는 성공하고 실패하는 사람, 실패하고 실패하는 사람이 있다고…. 인간은 결국 죽기 때문이다. 허무주의적 발상이다. 아예 실패해왔고 앞으로도 실패할 운명으로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그는 성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 불우한 어린 시절 탓에 심한 열등감에 시달리는 경우다. 이런 사람도 있다. 실패하고 실패해도 다시 도전하는 사람이다. 그는 성공을 간절히 바라지만 실패하더라도 절대 좌절하지 않는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다. 그는 자본주의를 선도하는 일등 공신이다. 우리는 도전을 통해 실패를 극복하고, 실패를 통해 지혜를 얻는다. 실패는 모든 배움과 학습의 재료다. 모든 기업의 성공스토리에는 힘들고 어려웠던 실패 경험이 있다. 그런데 그러한 실패 때문에 받는 가까운 가족·친지·친구의 고통과 희생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살다 보면 가족·친지·친구로부터 돈에 관련해 여러 가지 제안을 받게 된다. 돈을 꿔 달라고 하기도 하고, 같이 돈을 대 사업을 하자고도 하고, 투자를 부탁하기도 한다. 가까운 사람인데 일일이 거절할 수 없는 노릇이다. 이 세상에서 혼자 살아간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것은 우리 사회의 미덕이다. 도움을 줘야 언젠가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배제한 인간관계는 상상하기 어렵다. 그런데 상대가 잘 되면 좋지만 안 되면 낭패다.
우선 인간관계에서 정신분석적으로 점검할 세 가지 항목이 있다. 분리(Separation)·한계(Limitation)·경계(Boundary)다. 이는 어려서부터 충분한 사랑과 훈육을 통해 마스터돼야 할 과제다. 가까운 가족이라도 분리된 인격체임을 인식해야 한다. 가까운 친지라도 책임의 한계가 분명해야 한다. 가까운 친구 간에도 적당한 경계를 유지해야 한다. 이 셋은 건강한 인간관계의 기준이다. 돈에 대한 인간관계 문제가 발생할 때 적절히 적용할 수 있다.
첫째, 상대의 말에 절대 현혹되지 말아야 한다.
대박 사업이다, 이익을 돌려준다, 큰 이자를 준다는 등 감언이설에 속으면 안 된다. 당장 돈이 필요하기 때문에 말을 부풀린다. 그런 말을 여러 사람에게 반복해서 제안하고 있다. 어쩌면 안되면 그만이라는 태도로 접근하고 있다. 물론 상대가 아주 어려운 궁지에 처해서 돈을 요구하는 경우는 다를 것이다. 도울 수 있는 만큼 한계를 정해야 한다. 도울 수 없을 때는 정확한 경계를 그어야 한다. 운명에 맡겨야 한다. 정(情)에 이끌려 무조건 투자하거나 무조건 돕는다면, 돈 잃고 사람까지 잃는 황망한 일을 당할 수 있다.
둘째, 상대의 정황을 자세히 점검해야 한다.
정확히 무슨 사업을 하는지? 이익을 어떤 식으로 돌려준다는 것인지? 언제부터 어느 정도의 이자를 지급한다는 것인지? 꼼꼼하게 물어봐야 한다. 물론 상대가 과거에 도움을 주었던 사람인 경우는 쉽지 않다. 가족인 경우는 더욱 곤란할 것이다. 그래도 용기를 내야 한다. 상대가 어려운 궁지에 처한 경우라도 얼마나 어려운지 실상을 파악해야 한다. 말과 실상은 반드시 다를 것이다. 가족과 친구의 말에 이끌려 그냥 믿어 버린다면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는 것은 불 보듯 훤한 일일 것이다.
셋째, 모든 돈 관계는 계약서를 작성해야 한다.
가까운 사이에 계약을 운운하는 건 한국 정서에는 맞지 않다. 부모 자식 사이에 그럴 수 있는가? 그렇다 하더라도 계약서는 반드시 필요하다. 사람의 기억력은 정확하지 않다. 오늘과 내일의 태도가 돌변할 수 있다. 미래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정식 계약서가 아니라도 된다. 종이 한 장에 걱정되는 부분과 예상되는 부분을 그냥 적으면 된다. 돈 계산은 분명할수록 좋다. 돈을 꾸는 것인지 투자인지 결정해야 한다. 상환기간, 이익과 배당에 대해 정확히 적어야 한다. 잘못되는 경우도 가정해서 책임의 범위와 한계를 정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둘이 사인하면 끝난다.
▨ ‘돈 나고 사람 나는’ 비극에 빠지지 말라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고 있다. 돈 관계는 절대 소홀히 취급될 수 없다. 돈에 관한 선택에 직면할 때 하루쯤은 생각해야 한다. 돈에 관한 결정을 요구당할 때 일주일쯤은 보류해야 한다. 아무리 돈이 귀중하다 해도 사람보다 더 귀중할 수 없다. 돈 나고 사람 나는 비극에는 빠지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