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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

성룡, 2015 영화배우 수입 2위를 한 비결은?

한국의 영화팬들에게도 익숙한 이름 '성룡' 2015년 가장 많은 수입을 기록한 영화배우 중 2위를 기록한 성룡은 영화배우를 넘어 영화제작자, 멀티플렉스 영화관 등 다양한 사업의 사업자 그리고 중국 정부위원회 인민정치협상회의 회원이기도 하다. 이제 중국과 미국을 잇는 외교관이 된 성룡의 부(富)의 비밀을 알아보자.


성룡

▲출처 : 위키피디아

'2015 영화배우 수입 2위'

베벌리 힐스 몬타지 호텔에서 가장 값비싼 스위트룸에 편한 자세로 앉은 액션스타 성룡(재키 찬, 61)은 자신이 얼마나 소탈한 사람인지 전하고 싶어 했다. 성룡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재키 찬 드래곤 로고가 선명히 새겨진 셔츠를 입은 그는 마스터 욕실로 나를 데려가 비닐봉지에서 작은 비누를 꺼내 들었다. 마카오 MGM 그랜드 호텔 객실에서 쓰던 비누를 버리지 않고 가져온 것이다. “나와 함께 세계 여행을 한 비누”라고 그는 말했다.


환경 보호를 위해 물건을 아껴 쓴다는 메시지였다. 최근 그는 밀렵 호랑이나 코뿔소로 만든 제품 구매를 자제하라는 중국 정부 방송에 출연하기도 했다. 그러나 MGM에서 가져온 비누가 상징하는 건 따로 있었다. 바로 미국과 중국을 오가며 둘 사이에 단단히 발을 딛고 선 성룡의 모습이다.


한때 할리우드 어디서나 볼 수 있던 그였지만, 지난 5년간은 미국에서 별다른 히트작을 선보이지 못했다. 그런데 지난 12개월간 수입은 5000만 달러를 기록했다. 배우 중에는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를 제외하고 최고 수입이며, 포브스가 선정 ‘셀러브리티 100인 리스트’ 에서는 타이거 우즈의 뒤를 이어 38위를 차지할 정도로 높은 금액이다.


대체 어쩐 일일까? 성룡이 태평양 양쪽의 영화산업을 확실히 꿰고 있는 특별한 소수 중 한 명이기 때문이다. 그는 이런 강점을 활용해 영리한 계약을 체결하고 있기도 하다.



드래곤 블레이드 (2015)

Dragon Blade 
5.6
감독
이인항
출연
성룡, 존 쿠색, 애드리언 브로디, 시원, 임붕
정보
액션, 어드벤처, 시대극 | 중국 | 127 분 | 2015-03-12


영화 <드래곤 블레이드>가 좋은 예다. 무슨 영화냐고? 모르는 게 당연하다. 애드리언 브로디와 존 쿠삭처럼 인지도 높은 배우가 함께 출연했지만, 아직 미국에서는 개봉하지 않았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총 1억2000만 달러의 수익을 올리며 엄청난 히트를 쳤다. 러닝 개런티 계약을 맺고 주연으로 출연한 성룡은 흥행 성적에 따라 1000만 달러 이상을 벌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과 중국 양쪽에서 흥행 가능성을 가진 동-서양 합작영화 <스킵트레이스>는 올해 하반기 개봉한다. 영화에서 성룡은 조니 녹스빌의 상대역으로 출연한다. 성룡이 주연배우 겸 투자자로 참여하므로 중국이 더 많은 지분을 가지고 있다.


이에 더해 성룡은 제이지도 부러워할 만한 브랜드 머천다이징 사업도 소유하고 있다. 이소룡 이후 가장 유명한 액션 무술 배우 성룡의 머천다이징 사업 규모는 절대 작지 않다. 세그웨이(Segwey) 수입 대리점 사업도 있고, 자신의 이름을 내건 멀티플렉스 영화관 사업도 있다. 포브스 추산에 따르면, 영화 출연과 사업을 통틀어 지금까지 그가 벌어들인 순수익은 3억5000만 달러에 달한다. 성룡과 경영팀은 수익 금액을 구체적으로 밝히길 거절했다.


중국 문화의 미키 마우스

미키마우스


“성룡은 중국 문화의 미키 마우스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유명인사라서 중국 문화를 대표하는 약칭이 되기도 했다”고 뉴욕 아시아영화제 공동 창설자 그래디 헨드릭스는 말했다.


중국에서 사업으로 성공하려면 정부와 관계가 좋거나 정부의 혜택을 받아야 한다. 성룡에게도 이런 성공을 가능케 한 비밀 병기가 있었다. 그는 엄청난 영향력을 가진 정부위원회 인민정치협상회의 회원이다. 중국에서 영화를 개봉하려면 중국 정부의 허가가 있어야만 한다.


그의 위상은 시간이 갈수록 강력해질 것이다. 중국 영화관 수는 지난 5년간 33%에 달하는 성장률을 기록했고, 2014년에는 50억 달러에 가까운 수입을 올렸다. 같은 해 2월에는 중국의 월간 박스오피스 수입은 미국의 영화 수입을 앞질렀다. 미국 블록버스터 영화가 중국에서 2억 5000만 달러의 수입을 기록할 수는 있지만, 중국 당국은 수 주에 달하는 기간 동안 외국영화 상영을 전면 금지하거나 주말에 나란히 개봉해서 서로 경쟁하게 만드는 조치를 틈만 나면 취하고 있다.


그래서 할리우드는 중국 제작사와 함께 영화를 공동 제작하는 쪽으로 움직이는 중이다. 대표적 성공 사례가 바로 <트랜스포머4: 사라진 시대>와 <아이언맨 3>다.


이런 추세 속에 성룡은 미국과 중국을 잇는 ‘큰 형님’이 됐다. 중국인이 애정을 담아 ‘따거(大哥)’라 부르는 큰 형님이란 말에 비꼬는 의미는 없다.


“항상 지도를 본다”고 손으로 가상 지구본을 그리며 성룡은 말했다. “왜 저기는 네 땅이고, 여기는 내 땅인가? 경계는 누가 설정했나? 우리가 모두 세상의 주인이다. 미국이 내 것이라면 중국은 당신의 것이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런 이야기는 그의 성장 환경과도 일치한다. 그는 영국이 통치하던 홍콩에서 1954년에 태어났다. 부모님은 홍콩의 프랑스 대사관 주방에서 근무했고, 이후 호주로 도망치듯 이주했다. 그는 나중에야 아버지가 대만 정부 첩보원이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성룡은 홍콩의 공연예술 기숙학교에 입학했고, 이곳에서 영화 속 쿵푸 고수처럼 무자비한 선생님의 지도 하에 무술과 아크로바틱을 배웠다. “한 번이라도 실수하면 전원이 매를 맞았다”고 그는 말했다. “아무 이유 없이 맞은 때도 있다.” 


고등학교 졸업 후에는 호주 건설 현장에서 아르바이트 하다가 홍콩 영화판을 기웃거리며 역할을 얻기 위해 애쓰는 생활을 이어갔다. 73년 <용쟁호투>에 출연해 그가 가장 먼저 넘어야 할 산은 이소룡과 구별되는 이미지를 만드는 일이었다. 그래서 그는 자주 비교 대상이 됐던 전설 이소룡과 완전히 다른 무술 스타일을 만들었다. 이소룡이 찡그린 얼굴과 엄숙하고 정확한 동작으로 자신을 알렸다면, 성룡은 찰리 채플린과 버스터 키튼(Buster Keaton)을 연구하며 유머감각을 익히고 슬랩스틱 코미디를 연마했다. “다른 사람이 내 뒤를 따라야지, 내가 다른 사람 뒤를 따르고 싶진 않았다”고 성룡은 말했다.


중국과의 연결 고리를 이어가다

할리우드 성룡

그는 홍콩에서 히트작을 연이어 쏟아냈다. 1986년 액션영화 <용형호제>를 유고슬라비아에서 촬영했을 때에는 나무에서 떨어져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하기도 했다. 1990년대 중국이 시장을 개방하자 성룡은 돈을 벌기 위해 뛰어들어 카페와 헬스장을 운영하고 가수로서도 성공했다. 1998년에는 재키 찬 디자인을 설립하기도 했다. 이곳의 공식 웹사이트에서는 물병부터 시계까지 400개 이상의 아이템을 판매 중이다. 모든 아이템은 “전적으로 성룡이 직접 디자인했다”고 광고한다.


미국에서 성룡은 1995년 <성룡의 홍번구>로 누구나 아는 스타가 됐고, 1998년에는 크리스 터커와 공동 주연한 영화 <러시아워>로 세계적 스타가 됐다. 주말에 개봉한 <러시아워>는 역대 코미디 영화 중 최고의 개봉성적을 거두었고, 미국에서 1억 4000만 달러, 해외에서 1억 달러의 수입을 올렸다. “성룡은 중국 최고의 수출품”이라고 감독 브렛 레트너는 말했다.


성룡은 그때까지의 성공을 발판 삼아<상하이 눈>이나 <쿵푸 팬더> 등의 프랜차이즈 영화에 참여하며 더 많은 돈을 벌었다. <러시아워> 시리즈를 3편까지 제작하기도 했다. (레트너 감독은 4편 제작을 추진 중이다.) 그러나 이후 행보는 다른 외국계 배우와 달랐다. 아놀드 슈워제네거가 오스트리아를 떠나 미국을 대표하는 배우가 된 후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면, 성룡은 중국팬과의 연결 고리를 끊지 않고 홍콩으로 돌아와 성공의 발판이 되어준 초기 영화와 비슷한 장르의 영화를 계속 만들었다. 동시에 좀더 진지한 역할을 소화하기도 했다. “아시아의 로버트 드니로나 더스틴 호프만이 되고 싶다”고 성룡은 말했다.


중국 정부에서도 든든한 우군을 얻었다. 중국 정부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친선대사로 성룡을 임명했고, 성룡은 즉시 본거지를 홍콩에서 베이징으로 옮겼다. 베이징은 이제 막 움트기 시작한 중국 영화 산업의 진원지이자 이를 통제하는 정부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중국에서 성룡의 영화가 다른 영화보다 상영 허가를 받아내기 유리하다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스킵 트레이스>다. “허가 절차와 배급 확보 때문에 함께 일을 진행했고 결과는 성공적이었다”고 성룡의 에이전트인 필립 버튼은 말했다.


중국 정부와 가까운 사이를 유지하고 홍콩 반정부 시위대를 조롱하는 발언(“시위가 가능한 이슈와 가능하지 않은 이슈를 당국이 규정해 줘야 한다”)을 했던 성룡은 홍콩 민주당 당수 에밀리 로우(Emily Lau)와 같은 민주화 운동가에게는 경멸의 대상이다. 그녀는 “정부가 원하는 말과 행동만 한다면 뭘 하든 허가를 받기 쉬울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런 비판에 성룡은 발끈한다. “중국 정부와 사이가 좋으면 안 됩니까?” 해당 주제를 꺼내자 그가 목소리를 높이며 말했다. “우린 모두 중국인입니다! 누구나 자신의 조국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는 자신이 경제에서 점차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영화산업의 발전을 돕고 있다고 주장하며 최근에는 영화 제작장비 수입세 인하를 권고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중국에서 영화 투자사업에 참여

영화배우 성룡

▲출처 : 위키피디아

중국에는 약 2만 개의 영화관이 있다. 미국보다 인구는 4배 많지만 영화관 수는 미국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 “중국 인구를 살폈을 때 영화관이 4만5000개가 된다면 주말 동안 5억 달러의 수입을 벌어들일 수도 있다”고 레트너는 말했다.


이미 계산을 끝낸 성룡은 이를 현실화하기 위한 행동에 나섰다. 5년 전 그는 파트너를 찾아 ‘재키 찬 야오라이 인터내셔널 시네마’를 개관했다. 17개 영화관을 갖춘 멀티플렉스였다. 주말 대목이면 무려 5만명의 관객이 이곳을 찾는다. 대성공을 거둔 덕에 성룡의 이름을 그대로 사용한 영화관 37개를 개관하는 50대 50의 합작 프로젝트도 시작했다. 각 영화관에는 성룡 브랜드를 내건 제품 판매대가 들어설 예정이다.


성룡은 J.C. 스턴트 팀을 영화 서비스업체로 확장해 미국의 영화 제작소처럼 스턴트 코디네이터부터 조감독까지 2개 언어가 가능한 중국 직원을 지원할 예정이다. “미국의 대표적 연예 에이전시인 ‘윌리엄 모리스’ 같은 기업을 만들고 싶다”고 그는 말했다. 그동안 그는 중국 영화, 미국 공동제작 영화에 계속 투자할 예정이다. “나는 이제 단순한 배우가 아니다. 투자도 함께한다”고 그는 말했다. 포브스가 올해 그의 수입으로 추정한 금액이 맞는지 확답을 주지는 않았지만, 제작 투자에 대한 자신감은 높다. 마치 승리 가능성이 높은 걸 알고 베팅에 나선 카지노 주인처럼 당당한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