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 지난 8월, 여성의 성욕저하장애(HSDD)를 치료하는 최초의 약인 플리반세린(flibanserin)의 시판을 승인했다. '애디(Addyi)'라는 이름으로 판매될 이 약은 이제 남편의 비아그라와 함께 약 상자에 놓이게 될 것이다.
애디를 제조한 스프라우트는 이 약이 HSDD로 고통받는 미국 여성 1600만 명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애디는 시판되기 전부터 숱한 오해와 함께 성정치와 과대선전을 둘러싼 치열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애디는 ‘여성용 비아그라’로 불리지만 실제는 남성의 발기부전 치료제 비아그라와 전혀 다르다. 비아그라는 페니스의 혈류를 증가시켜 발기를 유도하지만, 애디는 HSDD를 치료함으로써 성적욕구를 증가시키기 때문이다. 일부 의료전문가는 HSDD에 해결책이 필요하지만 성적욕구와 같은 문제를 알약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발상에 격분한다.
▒ 핑크색 알약 하나로 복잡미묘한 문제 해결될까
애디라는 상표명으로 판매되는 플리반세린은 HSDD 환자를 위한 약이다. 미국 정신의학회는 HSDD를 ‘파트너 사이의 갈등이나 의학적인 원인이 없는 상황에서 불안감이나 개인적 문제를 초래하는 급작스럽고 지속적인 성적욕구의 상실’로 정의했다. 원래 플리반세린은 항우울제로 개발됐다. 그러나 임상시험 도중 우울증 완화에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고 환자의 성적 환상을 자극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방향을 틀어 여성의 HSDD 치료제로 개발됐다.
지금까지 밝혀진 바에 따르면 애디는 뇌에서 도파민과 2종류의 세로토닌 수치를 조절한다. 과학자들은 이 신경전달 물질이 성적욕구에 영향을 미치는 호르몬을 조절한다고 본다. 항우울제는 뇌에서 세로토닌 수치를 증가시켜 성적욕구를 억누를 수 있지만 애디는 그 대신 도파민 분비를 촉진하고 세로토닌 2종류의 수치를 조절함으로써 성적욕구를 증가시키는 듯하다.
애디의 임상시험에 참가한 여성들은 24주 동안 그 약을 복용 후 만족스러운 섹스 경험 횟수가 월 평균 1.6∼2.5회 늘었다고 보고했다. 임상시험 직전엔 그 여성들의 만족스러운 섹스 경험 횟수가 한 달에 2.5회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사실상 두 배로 늘어난 셈이다. 그 여성들은 여성성기능 지수(Female Sexual Function Index, FSFI)에서도 약 2포인트 증가세를 보여 HSDD 진단 한계에 조금 못 미치는 수준으로 개선됐다.
FSFI는 4.8점 만점으로 평가 항목에는 성욕, 흥분, 질 윤활, 오르가슴, 성관계 만족도, 통증 등 6개 항목에 대한 19개의 문항이 포함된다. 제약사 스프라우트에 따르면 임상시험에서 애디를 복용한 여성의 43∼60%는 성적욕구와 만족스러운 섹스를 경험한 횟수가 증가한 동시에 불안감은 줄었다고 보고했다. 전반적으로 애디를 복용한 여성의 9∼15%는 FSFI의 평가 항목 전반에서 위약을 복용한 여성보다 개선 효과가 컸다.
그러나 일부 전문가는 성적욕구를 의학적 문제로 다루면 이 문제를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들은 성적 흥분의 자발성과 반응성을 구분한다. 성적욕구를 느끼지 않는 여성의 다수도 전희로 성적인 흥분을 경험할 수 있고 일단 파트너와 관계를 시작하면 완전히 만족할 수도 있다.
HSDD는 임상의나 부인과의사들이 사용하는 국제질병분류에 공식 진단명으로 명시됐다. 그런데도 HSDD의 존재 자체에 의문을 표하는 전문가도 있다. 사실 HSDD는 생물학적 원인이 확실치 않으며 문진 외에는 다른 진단법이 없다. HSDD 환자의 뇌를 촬영하면 일반 여성보다 에로틱한 콘텐트에 대한 반응도가 낮다. 하지만 아직 과학자들은 왜, 어떻게 세로토닌과 도파민의 불균형이 성적욕구의 갑작스러운 감퇴를 촉발하는지 모른다. 그럼에도 FDA는 HSDD를 포함한 여성 성기능장애를 아울러 의학적 대처가 필요한 분야로 인정한다.
▒ 폐경 전 500만 명은 효과 볼 수 있을 듯
제약사 스프라우트는 HSDD에 시달리는 미국 여성이 1600만 명에 이른다고 말한다. 신시내티 대학 여성건강센터 소장으로 스프라우트가 후원한 ‘차별 철폐’의 공동의장인 리자 라킨 박사는 그중에서 폐경 전 여성 약 500만 명이 애디 복용으로 효과를 볼 수 있으리라고 추정한다.
그러나 라킨 박사는 신중함을 당부한다. 메스꺼움과 졸음증 등의 부작용 때문이다. 또 적절하지 않는 시간이나 술과 함께 애디를 복용하면 드문 경우지만 저혈압으로 졸도할 수도 있다. 임상시험에서 애디를 복용한 여성의 8분의 1은 어지럼증을 겪었다. 부작용으로 임상시험 도중 포기한 여성도 13%에 이르렀다(위약 복용자 중 그런 경우는 6%였다).
지난 6월 4일 FDA 자문위원단은 애디의 승인 권고 결정을 내렸다(뉴스위크 한국판 2015년 6월 22일자 기사 참조). 스프라우트로선 어렵게 쟁취한 승리였다. 그러나 여러 부작용을 고려해 자문위원단은 스프라우트에 애디의 위험을 관리하는 특별 프로그램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거기에는 처방을 위한 의사 훈련과 약사의 인증 취득이 포함된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잠재적인 부작용을 감수하고 애디가 복용할 만한 가치가 있는지 결정하는 것은 해당 여성과 의사의 몫이다.
▒ "섹스를 위해 억지로라도 시간을 내라"
성욕 저하의 치료는 복잡한 문제다. 정서적인 문제나 파트너와의 갈등이 없는 여성에게서 HSDD를 일으키는 생물학적 기저에 관한 과학적 지식은 거의 없다.
성욕 저하를 호소하는 여성에게 도움을 주려는 의사들은 일상에서 탈출하는 낭만적인 여행부터 상담, 항우울제, 그리고 섹스 완구까지 다양한 방법을 권한다. 라킨 박사는 “바이브레이터 같은 자위 기구를 사용하도록 권하고 섹스를 위한 시간을 억지로라도 내라고 조언한다”고 말했다.
일부 의사는 오래전부터 성욕 저하에 시달리는 여성에게 테스토스테론과 항우울제 웰부트린을 처방했다. FDA가 공식 인정한 치료법은 아니지만 그들은 그런 처방이 도움이 된다고 믿는다. 하지만 어떤 여성들은 여드름과 지성피부, 원치 않는 체모 증가 등 잠재적 부작용을 우려해 테스토스테론 요법을 시도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애디를 복용한 모든 여성이 놀라운 효과를 보는 것은 아니다. 임상시험 동안 애디 복용으로 만족스러운 섹스 횟수가 월 4차례 이상 늘었다는 여성이 약 25%였다(위약을 복용한 대조군에선 15%). 가투소와 패리시는 그 정도면 상당히 의미 있는 효과라고 말했다.
▒ 파트너간의 진지한 노력이 더 중요하다
그러나 HSDD에 시달리는 모든 여성이 애디나 호르몬요법을 올바른 접근법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일부는 그런 치료를 아예 배제하고 다른 시각에서 접근하고자 한다. 바로 약이나 치료로 섹스를 원하도록 만들기보다 파트너와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제약사 스프라우트는 애디가 도구 하나를 추가하는 것뿐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애디 같은 약을 복용하면 다른 해결책을 찾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게 된다는 지적도 있다. 여성의 성욕저하장애를 치료하는 애디를 '마법의 알약'이라고 볼 수는 있겠지만, 그 이면에 깔린 문제들을 해결하지 않으면 그 어떤 약도 건강한 성생활에는 소용 없게 될 것이다.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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