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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

영화 '사도'로 보는 가해자의 자기합리화

지지난 달, 영조와 사도세자의 이야기를 그려낸 영화 <사도>가 크게 흥행했다. 영화에서 둘은 고통을 공유하며 화해할 수밖에 없는 인물로 그려진다. 하지만 사도세자의 죽음에는 그 이상의 진실이 숨어 있다.


영화 사도


영화 <사도>에서는 조선왕조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사건 중 하나인 '임오화변(壬午禍變)'을 다루고 있다. 이준익 감독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이 역사적 사건을 어떤 의도를 갖고 영화로 만들었는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사건의 내면에 있는 개인의 심리와 감정에 몰입하는 것”으로 “인물 내면에 관심을 갖고 접근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로 임오화변을 바라보게”됐고 또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정치 이야기가 가득 차 있지만 정치에 포커스를 두지는 않았다.”


즉, 이 감독은 영화 <사도>를 정치적이고 이념적인 사건으로만 다루는 시각에서 벗어나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가족의 문제, 가족 안에서 일어날 수 있는 소통의 부재 문제, 단절된 관계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그로 인해 발생한 비극적인 사건을 아름다운 화해로 승화시키고 싶었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사도세자 살해사건은 가해자와 피해자가 분명한 잔혹 살인극이다. 가해자가 피해자를 죽인 다음에 피해자에게 손을 내밀어 화해를 청한다는 것이 어떻게 아름다움으로 승화될 수 있단 말인가?


▒ '가엾은' 가해자를 용서해야 할까?


사도세자

1. 한국화가 우승우가 그린 사도세자 영정 / 2. 영화 <사도>에서 사도세자가 갇힌 뒤주 앞에서 격한 슬픔을 표하고 있는 왕세손(뒷날의 정조)과 비.


세자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직접적 계기가 된 것은 ‘나경언(羅景彦)의 고변’ 사건이다. 영조 38년(1762) 5월 22일 밤 나경언이라는 자가 형조에 세자를 고변한다. 나경언은 궁궐의 말단 하위직인 사람의 형인데 도박으로 가산을 탕진한 자였다. 홍봉한은 그의 처남 형조참의 이해중에게서 보고를 받자마자 바로 영조에게 고하도록 지시한다.


나경언의 고변은 절차도 잘못됐지만 당시 상민 신분이었던 사람이 고변서를 한문으로 작성했다는 것 자체도 충분히 그 배후를 의심해볼 수 있었다. 대리하는 세자는 나라의 임금과 같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다. 그런 세자를 듣도 보도 못한 인물이 고변을 했다면 우선 그를 구속해서 수사부터 한 뒤에 사후보고를 해도 되는 사안이라는 말이다.


나경언의 고변으로 함정에 빠진 세자는 결국 뒤주에 갇혀 오뉴월 삼복 더위에 물 한 모금 먹지 못한 채 잔인하고 살해 당한다. 그 뒤주는 홍봉한이 가져다 놓은 것이다. 홍봉한은 이렇게 세자 살해사건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다.


▒ 가해자의 기록, 혜경궁 홍씨의 <한중록> 


세자의 장인이었던 홍봉한은 왜 이 사건에 중요한 가해자가 되었을까? 이 질문은 영조가 왜 자신의 하나뿐인 아들을 잔혹하게 죽였는지 묻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만들어진 여러 가지 기록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혜경궁 홍씨가 쓴 <한중록(閑中錄)>이다.


<한중록>은 가해자가 주인공이 되어 자신의 처지를 구구절절 설명하는 가해자의 기록이다. <한중록>을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혜경궁 홍씨의 입장을 이해하게 된다. 혜경궁 홍씨는 <한중록>에서 사도세자가 정신병을 앓고 있었고 아버지 영조도 까다로운 정신적 문제가 있었으며 부자 간의 성정이 서로 부딪히면서 갈등이 많았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 자신의 친정아버지 홍봉한과 홍씨 집안이 사도세자를 살해하는 데 가담하게 된 것은 부득이한 선택이었음을 하소연한다. 읽다 보면 그 사실 여부를 따지기에 앞서 가냘픈 한 여인의 슬픈 운명에 저절로 감정이입이 된다. 결과적으로 독자는 혜경궁 홍씨가 없는 사실을 조작해서 <한중록>을 쓰지는 않았으리라는 확신을 갖게 된다.


홍봉한

홍봉한의 초상. 혜경궁 홍씨의 부친이자 정조의 외조부인 홍봉한은 노론의 영수로서 사도세자의 죽음에 동조했다.


그러면서 세자는 죽을 만한 짓을 해서 죽었구나 하는 결론에 자연스럽게 도달하며. 세자를 죽일 수밖에 없었던 가해자들도 피해자 세자 못지않게 고통을 받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니까 가해자에 대한 인간적이고 온정적인 이해에 도달하게 되는데, 이 감독의 표현에 따르면 이 지점이 가해자와 피해자 간의 아름답고 따뜻한 인간적인 화해다.


<사도>는 혜경궁 홍씨가 쓴 <한중록>을 주요 텍스트로 삼아 만들어졌다. <한중록> 관점에서 임오화변을 바라보는 것은 윤리적인 문제와 조선후기 정치사의 올바른 이해를 방해한다는 문제가 있다.


▒ 영화 <사도>의 감독은 혜경궁 홍씨?


혜경궁 홍씨의 <한중록>은 사세가 불리해져서 자신의 아버지 홍봉한이 세자 살해에 가담할 수밖에 없었다고 그녀의 손자인 순조에게 변명하고자 쓴 기록이다. 혜경궁은 홍봉한이 세자 살해에 가담한 사실을 정당화하려고 영조와 세자 간 갈등의 정치적 맥락을 삭제하고 부자간에 있을 수 있는 성격적 대립 갈등으로 축소 왜곡했다.


세자가 정신병을 앓았고 궁녀 환관들을 마구 죽이고 성폭행했으며 공부하기를 싫어했다는 등의 모든 내용은 홍봉한의 세자 살해 가담이 정당했음을 보여주기 위해 기록한 것이다. 세자가 홀로 반세자 세력과 전쟁을 치르는 과정에서 생긴 일이었기 때문에 세자 입장에서 보면 달리 해석할 여지가 많은 내용들이다.


한중록 혜경궁 홍씨

1. <사도>에서 문근영이 분한 혜경궁 홍씨 / 2. 혜경궁 홍씨가 남긴 <한중록>. 아버지 홍봉한이 세자 살해에 가담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그녀의 손자인 순조에게 설명하기 위해 쓴 기록이다.


세자가 죽인 궁녀와 환관들은 반세자 세력들이 보낸 스파이였을 가능성이 크다. 당시 반세자 세력들은 세자를 모략하는 온갖 말을 지어내 퍼뜨렸는데 심지어 세자를 사칭해서 민간에 잠입해 부녀자를 폭행하고 강간하는 범죄행각을 벌인 사실도 있었다. 따라서 이 시기 세자가 겪는 정신적 스트레스가 우울증이나 울화병을 일으킬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헛것을 보고 환청을 듣는 것과 같은 정신 분열을 앓았을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혜경궁 홍씨가 진정 남편을 사랑했고 남편의 죽음을 한스러워했다면, 그리고 자신의 손자인 순조를 생각하는 현명한 여자였다면 설사 그 내용들이 사실이라 할지라도 그 비밀을 무덤까지 가져가지 않았을지, 혜경궁 홍씨의 의도가 의심된다.


이준익 감독이 만든 영화 <사도>는 혜경궁 홍씨가 쓴 <한중록>을 업그레이드 버전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300년 전에 8일이나 고통을 당하다가 살해당한 피해자가 있는데 피해자만 있고 가해자들은 순식간에 증발해버리는 ‘화해’라는 마술은 거짓 화해의 함정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