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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

현대카드의 봉평장 활성화 프로젝트로 보는 전통시장의 새로운 모델

봉평장이 새 단장을 마쳤다. 현대카드·현대캐피탈(이하 현대카드)과 강원도는 ‘전통시장 활성화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지난해 3월부터 1년 동안 봉평장 꾸미기에 매진했다. 최근 정부에서는 전통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전통시장 1km 이내에는 대형마트 입점을 금지하고, 한 달에 두 번 일요일에는 대형마트의 강제휴무를 시행한다. 정부의 이런 정책은 도심 지역의 전통시장을 활성화 시키는 데는 일정 부분 효과를 거뒀지만 강원도 봉평장에 방문하는 사람들을 늘리기 위해서는 조금 다른 접근 방법이 필요했다.



봉평장


현대카드와 강원도는 봉평장을 바꿀 아이디어를 모았다. 일반적으로 전통시장 활성화를 위해 시도하는 방법은 단순하다. 최신식 건물을 신·증축하거나 기반시설을 정비하는 작업을 우선으로 생각한다. 이른바 ‘시설 현대화’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하지만 현대카드가 만든 봉평장은 달랐다. 전통시장 고유의 특징을 살리는 것을 최우선 목표로 접근했다.

새롭게 태어난 봉평장은 ‘정겨움과 즐거움을 나누는 장’이라는 본연의 정서를 충분히 살렸다. 고유의 전통과 색깔을 유지하거나 오히려 더 돋보이게 하려고 힘썼다. 이런 가치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그간 방문객들이 불편을 느꼈던 부분을 하나씩 개선했다. 


프로젝트의 전 과정에 교육을 받은 상인들이 직접 참여해 아이디어를 내고 시장 살리기에 나섰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컸다. 현대카드 관계자는 “이런 변화로 전통시장이 지속적인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며 “이번 봉평장 프로젝트가 전통시장 개발의 기준이 되고, 나아가 지역사회 발전에도 도움을 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봉평장은 이효석의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배경으로 잘 알려진 곳이다. 소설에서 장돌뱅이로 등장한 허생원이 찾았던 곳이다. 400년이 넘는 역사를 간직한 곳이다. 매달 5일장이 열릴때마다 100여개의 점포가 들어서고 100명이 넘는 상인들이 손님을 맞이한다. 이들의 생생한 삶의 흔적과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장 곳곳에 숨어 있다. 장터를 무대로 살아가는 이들의 일상 그 자체가 시장을 움직이는 원동력이다.




현대카드 프로젝트


그중에서도 더 눈에 띄는 가게가 있게 마련이다. 대를 이어 상회를 운영하며 봉평장의 터줏대감으로 뿌리를 내리며 60년째 이불을 파는 가게들이 그렇다. 현대카드는 이런 봉평장 고유의 매력에 작은 변화를 더하면 훨씬 더 가치 있는 곳으로 변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전통시장 활성화 프로젝트의 첫 번째 장소로 봉평장을 택한 이유다. 흥미로운 이야기는 많다. 이 이야기들을 어떤 그릇에 담아 어떻게 전달할 지가 문제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현대카드가 가장 오래도록 고민한 부분이다. 고민 끝에 탄생한 것이 상인의 사진을 넣은 ‘미니간판’과 ‘명함’이다. 또 가게별 특징을 설명하는 간단한 문구도 넣을 수 있도록 꾸몄다.

가게마다 지닌 특색과 숨은 이야기들을 재미있게 전달하고 상인과 방문객을 더욱 가깝게 연결할 수 있도록 하는 데 큰 몫을 하고 있다. 현대카드가 봉평장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또 하나 주목한 것은 ‘메밀’이다. 메밀은 강원도 산골의 거친 땅에서도 잘 자라는 적응력이 뛰어난 작물이다. 봉평의 대표 특산물이다. 메밀껍질을 넣은 베개나 메밀 차(茶), 메밀 국수 등 메밀을 이용한 다양한 상품을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이를 널리 알리고 가족 단위 방문객들을 유인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현대카드는 메밀의 장점을 살린 다양한 먹거리 개발에도 노력했다. 메밀볶음면, 메밀호떡, 메밀피자부꾸미 등의 조리법을 개발해 상인들에게 전수했다. 또 메밀 씨앗을 담은 메밀놀이주머니를 만들어 시장을 찾는 사람들이 간직할 만한 기념품이 되도록 했다.




아무리 좋은 물건과 재미난 이야기가 있어도 방문객들이 불편을 느낀다면 그 의미가 반감된다. 많은 전통시장이 해결해야할 공통 과제다. 봉평장의 변신에도 이런 부분이 충분히 반영됐다. 시장 내부를 깔끔하게 정돈했다. 시장 상인이 새로운 도구에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 방법을 다양하게 연구했다. 기존 도구나 장비의 형태를 그대로 두고 약간 다듬고 발전시키는 선에서 디자인했다. 시장을 찾는 방문객은 물론이고 상인들까지 행복한 시장을 만들기 위해 힘썼다.

상품별 특성과 손님의 눈높이에 맞춰 매대를 꾸몄다. 손님들이 한눈에 상품을 보고 고를 수 있게 만들어 좋은 반응을 얻었다. 천막은 판매하는 물건의 종류에 따라 5가지(농산물·수산물·먹거리·의류·잡화) 색상으로 나눠 제작했다. 또 원산지와 가격을 표기할 수 있는 정보판을 제공하고 봉평장 로고를 새긴 스티커를 상품에 부착하도록 했다. 봉평장에서 구입한 상품은 믿어도 된다는 신뢰를 구축하기 위해서다.

가게별 특색과 이야기 담은 미니간판·명함 프로젝트의 성공이 봉평장으로 한정돼서는 안 된다. 반응이 좋은 아이디어를 개선하고 발전시켜 다른 전통시장에도 적용할 수 있어야 한다. 현대카드는 이를 위해 전통시장을 꾸밀 수 있는 매뉴얼북을 만들고, 상인들을 위한 품목별 ‘상품 비주얼’ 가이드북도 제작했다.

강원도는 봉평장을 시작으로 도내 다른 전통시장도 발전시켜 나갈 계획을 세웠다. 봉평장 프로젝트가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이유는 또 있다. 발상의 전환을 통해 새로운 문화를 창조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현대카드의 송현주 경영지원실 과장은 “개발은 무조건 무언가를 부수고 새로 짓는 것이 아니다”라며 “기존의 특색과 문화를 살리면서 더욱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