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기회야!” 상사는 그렇게 말하고 직원들을 독려하기 시작했다. 2000년 도시바의 기술자였던 시게미츠 유미는 사이타마현 공장에서 액정 제조라인 설립에 관여했다. 공사 기간을 기존의 절반으로 줄인다는 목표 때문에 장시간 노동에 시달렸다. 우울증이 생겼다. 치료를 위해 휴직했고, 휴직 기간을 모두 사용한 2004년 해고를 당했다.
2014년 3월 최고재판소는 시게미츠가 도시바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회사 측에 상당히 불리한 판결을 내렸다. 노동자의 신고가 없어도 기업은 직원의 심신 건강에 주의를 기울일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노동계약법이 정한 안전배려 의무에 새로운 기준을 제시한 획기적인 판결이다. 시게미츠는 이 판결에서 승리했지만, 여전히 우울증 치료를 받고 있다. 시게미츠의 대리인이자 과로 재판 전문가인 가와히토 히로시 변호사는 “우울증 등 정신질환은 심해지면 치유가 매우 어렵다”며 “지금 기업에 가장 필요한 건 정신질환의 발병 자체를 피하려는 예방 노력”이라고 지적한다.
▒ 일본 직장인 60.9%가 정신적 스트레스 호소
위 사례처럼 과로에 따른 우울증상 등으로 산업재해 판정이 내려진 건 2014년 497건에 달했다. 사상 최대치다. 10년 전보다 4배 이상 증가했다. 정신적 문제로 괴로워하는 직장인을 찾는 건 이제 어렵지 않은 일이다. 전체 직장인의 60.9%가 정신적 스트레스를 호소한다는 조사 결과가 있다. 이런 가운데 지난해 12월 1일 ‘스트레스 체크’를 기업의 의무로 규정한 새 제도가 도입됐다. 과도한 스트레스에 따른 정신질환을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 목적이다. 직원 50인 이상 사업장이 대상이고, 지방자치단체나 교육기관도 포함된다. 1년에 한 번, 전 직원을 상대로 조사해 스트레스 정도를 측정한다. 그 결과를 본인에게 알려줘, 스스로 대비를 하도록 유도하는 방식이다. 회사는 그중 스트레스가 많은 직원을 선별해 의사 면담을 주선하고, 야근시간 단축과 부서 이동 등 대응책을 마련한다.
기업이 생각을 바꾸게 된 것은 우선 정신건강 대책을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한다면 ‘일하기 좋은 기업’이란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생산성에 대한 고민도 녹아 있다. 실제로 정신건강에 문제가 없는 사람도 마음 속에는 어떤 문제를 안고 있어, 일하는 중에도 본래 갖고 있는 생산성을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이를 ‘프레젠티즘(presenteeism)’이라고 하는데 상습적으로 지각이나 결근을 해 업무를 수행하지 않는 ‘업센티즘(absenteeism)’보다 기업이나 사회에 미치는 손실이 더 크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스트레스 체크는 개인 대상 분석과 직장 전체 분석, 두 가지로 분류된다. 개인 분석에서는 스트레스 체크 결과에 기초해 ‘고(高)스트레스자’인지 아닌지를 판정한다. 고 스트레스자에 해당하거나, 본인이 희망할 경우 의사 면담 등 치료를 받을 수 있다. 이 때 의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할 경우, 야근이나 휴일 출근을 줄이는 등의 개선책을 실시하도록 회사 측에 의견을 제시한다. 직장 분석은 ‘집단 분석’이라고도 불린다. 개인의 결과를 정리 분석해 직장 전체의 스트레스 상황을 파악한다. 이것을 근무 환경 개선에 접목한다는 내용이다.
▒ 스트레스와 정신질환 사이의 상관성 분명하지 않아
하지만 이 구상에 대해 의료단체는 두 가지 의문을 제기했다. 일본산업위생학회는 ‘마음의 건강’이라는 민감한 개인정보를 조사하는 것을 의무화하는 게 부적절하다고 보고, 개정안에 대한 반대 입장을 명확히 했다. 일본정신신경학회 역시 아홉 가지 질문에 대한 의학적 신뢰성에 의구심을 나타내며, ‘정신질환의 조기 발견을 위한 검사로 불충분하다’는 의견을 나타냈다. 협력해야 할 두 단체가 반대하고 나서는 바람에 개정안은 통과되지 못했고, 2012년 말 정권 교체와 함께 폐기됐다. 그러나 이후에도 후생노동성은 끈질기게 제도 도입을 주장하고 나섰고, 2014년 6월 마침내 중의원을 통과했다.
일단 제도 도입이 확정돼 각 기업 인사·총무부는 스트레스 체크 대응을 시작했다. 머지 않은 미래에 대부분의 직장인이 이 검사를 받을 듯하다. 다만,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여러 의문점이 있다. 첫째, 정신건강을 기준으로 직원을 차별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직장인 중 상당수가 이런 오해를 한다. 그러나 제도의 취지는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스트레스 체크는 정신질환 발생을 미연에 방지하려는 예방책이고, 사원이 스스로 근로 환경과 심신의 상황을 인식하도록 하는 게 핵심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스트레스 체크는 우울증 등 정신 질환을 밝혀내는 기능이 없다. 일본정신신경학회는 직업성 스트레스 간이조사표 항목과 정신질환과의 직접적인 관계를 보여주는 근거가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스트레스 지수가 상당히 높은데도 정신질환이 전혀 없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역으로 스트레스는 그다지 높지 않은데 질환을 가진 사람도 있다. 스트레스와 정신질환을 동일하게 간주할 만큼 양자의 상관성이 크지 않다는 의미다.
프라이버시 보호도 문제다. 개정된 노동안전위생법은 회사에 스트레스 체크 실시를 의무화하고 있지만, 사원은 수검 의무가 없다. 건강진단을 받는 것을 의무화하는 것과 다른 점이다. 검사를 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회사가 좌천 등 부당한 처우를 하는 것을 금지한다. 사원의 건강정보는 다양한 개인정보 중에서도 특히 민감한 부분이며, 특히 아직 대중의 이해가 부족하고, 편견이 있는 정신건강 정보에 대해서는 취급 시 특단의 주의가 필요하다. 스트레스 체크를 받아도, 그 결과가 본인의 승낙 없이 회사나 제 3자에게 전달되는 일은 없다.
▒ 검사 결과에 따른 해고·좌천 엄금
하지만 인간이 제도를 운용하는 이상, 정보 누설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단언할 수 없다. 검사를 받지 않을 자유를 행사해 프라이버시를 지키는 것도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재 업무에서 강한 스트레스를 느낀다거나, 만일의 정신질환에 대비하고 싶다면 검사를 받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스트레스 환경이나 질환에 대해 회사에 배려를 요구하고 싶다면, 미리 이상 신호를 보낼 필요가 있다. 스트레스 체크를 받고 의사 면접을 희망해 질환이 있다면 기록을 부탁한다. 제대로 된 순서를 밟아 불안의 조짐을 알려둔다면 회사에는 대처 의무가 발생한다.
구체적으로 해고나 퇴직 권고는 불허한다. 기간제 사원과 계약 연장을 하지 않는 것, 부당한 목적이 엿보이는 배치전환이나 직책 변경을 명하는 것도 안된다. 하지만 사원에 대한 회사의 판단이 불이익 처우인가 배려인가에 대해서는 좀처럼 판단이 쉽지 않다. 장기간 야근이 계속돼 스트레스가 높은 부서에 소속된 사람을 야근이 적은 부서로 이동시키는 건 일종의 배려다. 그러나 사원 본인이 ‘보람이 있고, 이 부서에서 실력을 쌓고 싶다’고 생각한다면 부당한 처우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애매한 부분이다.
부서 내에 고스트레스자가 속출했을 때 관리직의 책임도 궁금한 부분이다. 지금까지의 판례를 기초로 했을 때, 부하의 정신 질환에 대한 법적 책임을 중간관리직에게 직접적으로 묻는 경우는 흔치 않다. 집단 따돌림을 방조하는 등의 구체적 행위가 없으면 단순히 팀 내에서 여려 명의 고스트레스자가 나왔다는 이유로 법적 책임을 묻긴 힘들다. 스트레스 체크 의무화로 어떤 양상이 나타날지 지켜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