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코노미스트

반퇴세대를 위한 자산관리의 핵심 원칙 '반퇴 테크' 10계명

국제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발표한 ‘세계 금융 이해력(literacy)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의 금융 이해력은 세계 143개국 중 77위였다. 자산관리의 지식도, 경험도 태부족한 ‘금융문맹’인 한국의 반퇴세대는 저금리·저성장에 급격한 고령화라는 ‘삼각 파고’ 앞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


PB(프라이빗뱅커) 출신의 은행 지점장 A씨는 회사에서 임금피크제를 택할지, 명예퇴직을 할지 선택하라고 하자 고민에 빠졌다. 자산가들의 은퇴 준비를 설계하고 도왔던 그였지만 막상 자신이 선택의 기로에 서자 갑자기 혼란에 빠지며 결정을 내리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집은 어떻게 처분할지, 퇴직연금 등의 소득은 어떻게 분배할지, 중장기 목돈 수요는 어떻게 관리할지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자신한 그였다.


하지만 대부분 ‘반퇴세대’가 겪는 이른바 ‘은퇴 공포증’을 그 역시 피해갈 수 없었던 것이다.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 은퇴를 앞뒀다는 공포가 지나치게 커지면 각종 부작용이 생기게 마련이다. 종종 ‘조급증’으로 악화돼 섣부른 결정과 실수를 하거나, 반대로 ‘피로증’으로 변질돼 아예 ‘될 대로 되라’ 식이 되기도 한다.


이런 상황을 맞닥뜨리지 않기 위해 반퇴세대가 미리 챙겨야 할 자산관리의 핵심 원칙, 범하기 쉬운 실수와 이에 대한 조언을 중앙일보 ‘반퇴 테크’ 자문단인 김동엽 미래에셋 은퇴연구소 이사, 김진영 신한은행 신탁연금본부장, 문진혁 우리은행 고객자문센터 세무팀장, 박기출 삼성생명 은퇴연구소장,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 이윤학 NH투자증권 100세시대연구소 소장에게 들었다(가다나순).


자산관리


① 수명을 과소평가하지 말라

반퇴 준비의 핵심 전제이자 변수는 수명이다. 박기출 삼성생명 은퇴연구소장은 “막연히 80~90까지 살 것이라 생각했다 예상보다 수명이 늘어나면 대책이 없다”고 말했다. 평균 수명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특히 간과하기 쉬운 게 의료비다. 김동엽 미래에셋은퇴연구소 이사는 “세상을 뜨기 전 1년 간 쓰는 의료 비용이 평상시 의료비의 3배 정도 든다”며 “배우자의 병치레도 잦아질 수 있는 만큼 이를 충분히 감안해야 하고 보험의 보장 시기도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② 배우자와 함께 하라

반퇴세대 가장은 자산관리는 배우자에 맡겨두고 퇴직이 눈앞에 다가와서야 통장을 챙겨보는 경우가 많다. 금융자산이 얼마나 있는지, 빚은 얼마나 남았는지 잘 모르는 경우도 많다. 이런 경우 배우자 모르게 투자했다가 난 손실을 메우기 위해 위험이 더 큰 상품에 투자했다 손실을 키우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 김진영 신한은행 신탁연금본부장은 “부부의 은퇴 준비는 항상 2인분”이라며 “미리 아내와 마주 앉아 그동안 투자해 놓은 자산을 펼쳐놓고 옥석을 가려내고, 혹 놀고 있는 자산은 없는지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③ 당장 은퇴 예산부터 뽑아라

‘액션 플랜’의 첫번째 단계는 수입 확인이다. 문진혁 우리은행 고객자문센터 세무팀장은 “국민연금관리공단과 회사 총무부 등에 전화해 은퇴했을 때 내 주머니로 돈이 얼마나 나오는지 우선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은퇴 자산과 예상 현금 흐름을 파악한 다음은 노후의 포트폴리오 재구축 계획을 세우는 것이다. 김진영 본부장은 “생활비의 50%는 연금으로 채우고 나머지 생활비는 종잣돈을 굴려 마련할 계획을 짜야한다”고 조언했다.


④ 환경 변화를 받아들여라

“은행 이자가 쪼까(조금) 내려서 15%밖에 안 된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은행원으로 등장하는 성동일씨의 대사다. 27년이 흐른 지금 은행의 저축성 수신금리는 1%대에 불과하다. 김진영 본부장은 “본격적으로 은퇴 준비에 나선 반퇴세대가 겪는 일반적인 어려움은 예전의 금융 환경과 현재의 상황이 180도로 달라 어떻게 자산을 굴려야 할지 모른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우선 눈높이부터 낮추자. 박기출 삼성생명 은퇴연구소장은 “저금리·저성장의 고착화로 이제 8~10% 수익률은 대박에 가깝다”며 “합리적으로 목표 수익률을 낮춰야 한다”고 말했다. 김진영 본부장은 “생활비의 50%는 연금으로 채우고 나머지 생활비는 씨드머니(종잣돈)를 굴려 마련할 계획을 짜야 한다”고 조언했다.


⑤ ‘중위험·중수익’과 가까워지자

그렇다고 무조건 안전자산만 찾아선 곤란하다. 원칙은 분산을 통한 중위험·중수익 공략이다. 박기출 소장은 “나만 아는 좋은 투자처를 믿다간 사기만 당한다”며 “그렇다고 예금에만 기대긴 수익률이 너무 낮기 때문에 투자상품을 가미하고, 자신의 상황에 맞는 중위험·중수익 상품을 찾아 보완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동엽 이사는 “수익률을 높이려면 국내만 쳐다보지 말고 해외로 눈을 돌려 자산을 배분할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


⑥ 부동산을 움직여라

많은 반퇴세대의 고민은 자산의 대부분이 부동산에 묶여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유동성 압박을 받는다면 물꼬도 여기서부터 터야 한다. 이윤학 100세시대연구소장은 “집의 규모를 줄여 차액만큼 현금 유동성을 확보하고 그래도 자금이 부족하면 주택연금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전세의 시대에서 월세의 시대로 바뀐 만큼 부동산 역시 ‘현금 흐름’이 나오는 또 다른 금융상품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⑦ 투자에도 스타일이 있다

아무리 좋은 투자라도 본인의 스타일에 맞지 않으면 장기 투자는 어렵다. 박원갑 위원은 “장기 수익률 측면에선 주식형 펀드가 낫지만 진득하고 침착한 사람이 아니면 중간에 다 환매해 버리고 만다”며 “이런 성향의 사람은 차라리 다른 대안을 찾는 게 낫다”고 말했다.


⑧ 예행연습을 하라

실전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려면 연습을 해보는 것도 필요하다. 박원갑 위원은 “500만원 정도의 금액으로 펀드·주식 등을 운용해 보고 창업을 하기 전에 아르바이트로 실습을 해보고, 귀촌을 할 경우 바로 집을 사지 말고 세부터 들어 살아보라”고 권했다.


⑨ 재취업이 창업보다 낫다

퇴직 이후 국민연금 수령시기(만 61세) 전까지 적어도 5년간의 소득 공백(크레바스)이 생긴다. 반퇴 세대의 창업이 활발해지는 것도 이 시기다. 퇴직금을 야금야금 써버리는 게 두려워서다. 하지만 충분히 준비된 창업이 아니라면 재취업을 우선 알아보라는 게 전문가들의 권유다. 이윤학 소장은 “3층의 소득 전략이 필요한데 1층이 연금이라면 2층이 추가 소득, 3층이 고정자산 유동화”라며 “2층이 두터울수록 그만큼 노후 준비가 더 탄탄해진다”고 말했다.


⑩ 반만 망해라

투자나 창업을 할 때 쉽게 범하는 실수가 자금을 ‘올인’하는 것이다. 혹 실패하더라도 재기를 위한 ‘씨앗’은 남겨둬야 한다. 문진혁 세무팀장은 “퇴직금으로 창업을 할 경우 퇴직금의 절반 이상을 연금으로 묶어두고, 나머지 금액에서 2~3년 간의 운영비와 향후 목돈 수요를 떼 놓은 뒤 남은 돈을 가지고 창업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아직 금융 자산 관리는 전문가의 영역이라는 인식이 강해 엄두도 못 내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자산관리도 '모 아니면 도'식으로 쏠린다. 그러나 조금만 관심을 두고 하나씩 시도하다 보면 좀 더 여유로운 노후를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반퇴 테크' 10계명을 참고하여 금융문맹에서 벗어서 똑소리 하는 자산관리를 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