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야구는 미국식에 가까워 힘을 바탕으로 한 장타나 홈런을 야구의 진수로 삼는다. 일본은 경량급 복싱처럼 작은 잽으로 서서히 붕괴시키거나 착실히 점수를 보태는 스타일이다. 중국은 팀워크가 불가능한 천상천하 유아독존과 같은 스타일이다.
8월 한 달 동안 전 세계를 달군 올림픽은 바로 그 같은 매력적이고 아름다운 시대, 즉 ‘건강한 신체=건전한 마음’이 당연 시되던 문명과 문화의 재현에 해당된다. 고대 올림픽 역사가 고대 그리스의 전성기와 일치한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오감으로서의 미, 미로서의 오감을 그리스인 모두가 모여, 비교·발전시켜나간 현장이 바로 그리스 엘리스(Elis)지방의 올림피아 언덕이다. 4년마다 한 번씩 개최된 고대 그리스 올림피아 축제는 바로 미의 발견과 진화가 동시에 진행된, 고대인들의 미적 가치에 부응하는 오감의 경연장에 해당된다.
세월의 흐름과 함께 미를 대하는 관점도 달라지는 듯하다. 당연한 얘기지만, 미는 시간과 시대를 반영하는 결과물이기도 하다. 50대 남성인 필자가 주목하는 ‘장년의 미’로 운동선수에 관한 부분을 빼놓을 수 없다. 장시간 훈련으로 쌓아 올린 결과물이자, 절대적 주관적 기준에 의해 판단될 수 있는 운동선수의 ‘투혼(鬪魂)’이 주된 관심사다.
몸이 오감이라면 투혼은 육감에 해당된다. 8월의 리우올림픽은 그 같은 필자의 욕구를 충족시켜준 고마운 이벤트다. 리우올림픽을 접하면서 아쉽게 생각한 것은 야구에 관한 부분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2008년 베이징(北京)올림픽 이래 연거푸 두 차례나 올림픽 정식종목에서 빠진 것이 야구다.
사실 야구는 지극히 국지적인 운동에 해당된다. 글로벌 차원에서 볼 때, 야구가 성행하는 나라가 극히 드물다. 아메리카 대륙 전체와 아시아 일부만이 대상이 된다. 유럽의 경우 야구는 중·고등학교 취미 수준에 머물러 있고, 아시아는 한국·일본·타이완(臺灣) 외에는 거의 무풍지대다.
한국이 유럽이나 다른 나라에 비해 야구에 일찌감치 눈을 뜬 이유는 일본의 영향에서 비롯됐다. 아시아에서 야구를 가장 먼저 받아들인 나라는 일본이다. 1871년 미국인의 도움으로 탄생된 도쿄(東京)대학 내 야구팀이 전신이다. 구미 선진국 따라잡기에 나섰던 일본은 야구를 선진문명의 상징으로 받아들인다. 클럽활동 수준에 머물던 야구가 대학간의 야구경기로 발전된 것은 1882년. 불과 10년 만에 열도 전체가 서구 따라잡기의 일환으로 야구에 매진한다. 일본 야구의 역사는 근대사의 압축판이기도 하다.
한국 야구의 역사는 일본인과 일본을 경험한 한국인에 의해 전래됐다고 볼 수 있다. 1905년 미국인 선교사에 의해 한국 야구의 역사가 시작됐다는 주장도 있지만, 이미 19세기말 인천에서 야구 경기가 벌어졌다는 기록도 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미국·일본팀을 전부 꺾은 한국의 전력(戰歷)은 그 같은 근현대사의 질곡을 깬 야구 광복사의 상징이라 볼 수도 있다. 일본을 통해 눈치로 배운 야구지만, 마침내 야구 종주국인 미국은 물론 야구 수입국 일본까지 압도한 역사를 만들어낸 것이다.
MLB은 미국에서 이뤄지는 한·일 간의 또 다른 경쟁무대가 됐다. 그러나 양국 선수들의 활동내역을 보면 전혀 다른 모습의 캐릭터로 그려질 수 있다. 결론부터 얘기하자. 홈런, 장타, 돌직구 스트라이크 삼진이 한국형 야구의 가치다. 일본은 어떨까? 포볼, 안타, 도루와 더불어 스트라이크처럼 보이는 바깥쪽 볼을 던져서 배팅을 하도록 만든 뒤 야수가 잡아내는 식의 야구가 일본 야구의 전형(典型)이다.
야구는 스포츠인 동시에 그 나라와 문화, 사회의 의식을 반영한다. 1인 스포츠가 아닌 팀워크 스포츠이기 때문에 의식과 문화로서의 캐릭터가 한층 강하다.
소황제(小皇帝) 문화에 익숙한 중국은 축구도 소황제 식으로 혼자 독차지한다. 여담이지만 중국 군사력을 미국에 비교하는 식의 논리에 동의하기 어렵다. 천상천하 유아독존과 같은 중국식 소황제 세계관은 축구만이 아니라, 야구 나아가 군사문제에도 작용될 수 있다. 팀워크가 불가능한 나라가 중국이다.
전체적으로 볼 때 한국은 미국식 야구에 가깝다. 힘에 바탕한 헤비급 복싱경기로 장타나 홈런이 야구의 맛이라 믿고 있다. 일본은 치고 빠지는 식의 경량급 복싱과 같다고 보면 된다. 한방 크게 때리고 눕히는 식의 카운터블로가 아니라, 작은 잽을 통해 서서히 붕괴시키면서 착실히 점수를 따는 것이 일본 야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