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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

포켓몬 고의 탄생 비화

역사상 가장 인기 있는 스마트폰 게임은 포켓몬고이다. 포켓몬고의 탄생 비화가 궁금한가? 거대조직 구글에서 갈 길을 잃었던 한 중역이 보스의 허락으로 자유를 되찾은 후 포켓몬고를 만들기까지, 그 여정을 따라가봤다. 포켓몬고를 개발한 기술천재 중 한 명인 존 행크(John Hanke·49)을 통해 포켓몬고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자.

역사상 가장 인기 있는 스마트폰 게임 포켓몬고(Pokemon Go)를 하는 사람은 쉽게 알아볼 수 있다. 포켓몬고를 개발한 기술천재 중 한 명인 존 행크(John Hanke·49)에 따르면 이들은 한 손으로 스마트폰을 들고 가는 방식부터 다르다.


“저 사람들, 지금 하고 있네요”라고 코믹콘(Comic-Con)에서 7000명 팬 앞에 나타나기 하루 전, 샌디에이고 시포트 빌리지 강변을 함께 걸어가던 그가 말했다. 한 커플이 손을 잡고 걸어가면서도 눈길은 스마트폰에 고정되어 있었다. “백팩을 맨 저 남자, 저기 앉아 있는 사람도 포켓몬고를 하고 있어요.”


나이언틱 랩스(Niantic Labs)가 지난 7월에 출시한 무료 증강현실(AR) 게임 포켓몬고는 현실세계 지도에 표시된 가상의 만화 캐릭터를 잡는 게임이다. 애플 앱스토어 출시 첫 주에 다운로드 횟수 ‘사상 최대’를 돌파하는 등 포켓몬고를 설명하는 말 중에는 최상급의 수식어가 넘쳐난다.


포켓몬고


▒ 미국인 10명 중 1명은 매일 포켓몬고 한다


앱 애니(App Annie) 통계에 따르면 미국인 10명 중 1명은 매일 포켓몬고를 한다. 서베이멍키(SurveyMonkey)는 포켓몬고 앱내 구매가 미국에서만 매일 600만 달러에 달한다고 추산했다. (현재 37개 국가에 출시했다.) 통계 수치만 있는 건 아니다.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대선후보는 선거운동에서 포켓몬 게임을 언급했으며, 팝스타 저스틴 비버는 센트럴파크에서 포켓몬 사냥에 나섰다. 국무부 브리핑에서는 포켓몬고 게임을 하던 기자가 공개적 망신을 당하기도 했다.


이 모든 일이 하마터면 일어나지 않을 뻔했다. 구글 어스를 성공적으로 출범시켰던 행크는 12개월 전만 해도 구글에서 초조함에 휩싸여 있었고, 그의 회사 나이언틱 랩스는 구글 안드로이드 사업부 밑으로 들어가거나 아예 폐쇄해야 하는 갈림길에 서 있었다. 그러나 구글은 현명한 결정을 내렸다. 외부 투자자를 찾으면 독립회사로 나가도 된다고 허락해 준 것이다. 덕분에 행크는 포켓몬 게임의 지적재산권을 관리하는 주식회사 포켓몬(Pokemon Co.)과 닌텐도를 찾아가 역사상 가장 영리한 모바일 게임 계약을 체결할 수 있었다.


구글 입장에서는 여러모로 좋은 계약이었다. 맥쿼리 그룹 애널리스트 추산에 따르면, 포켓몬고의 예상 연매출은 50억 달러에 달한다. 구글은 이런 엄청난 게임의 개발사 나이언틱 랩스의 지분 30%를 보유하고 있다.


“구글이 나이언틱을 놓아주지 않았다면, 포켓몬고가 탄생했을 지 의문이다. 적어도 지금처럼 빠른 속도로 진척되지는 못했을 것”이라고 나이언틱 이사회 임원 질먼 루이(Gilman Louie)는 말했다.


포켓몬고


행크는 어렸을 적부터 비디오게임 팬이었다. 교통 신호등이라고는 단 1개밖에 없는 인구 1000명의 작은 마을 크로스 플레인(Cross Plain)에서 성장한 그는 어린 시절 아타리(Atari) 400 컴퓨터로 독학해 혼자 게임 코드를 만들었다. 자칭 ‘완전 촌놈’인 행크는 오스틴주 텍사스 대학을 졸업하고 게이밍 사업을 시작하고자 UC버클리의 하스 경영대학원에 진학했다. 경영대학원에 입학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는 같은 반 학생이 설립한 스타트업 아키타입 인터랙티브(Archetype Interactive)에 합류했다. 회사에서 개발한 유일한 게임 ‘메리디언(Meridan) 59’는 최초의 3D MMORPG(대규모 다중사용자 온라인 게임)로 인정 받고 있다.


회사를 나와 다른 게임사를 세우고 2000년 매각한 행크는 이후 사용자에게 지구상 모든 지역의 위성 사진을 제공하는 지리정보 소프트웨어 업체 키홀(Keyhole)을 공동설립했다. 키홀의 기술은 구글 공동창업자 세르게이 브린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지도에 매료된 브린은 구글 CEO였던 에릭 슈미트와 다른 경영진과의 회의에서 키홀을 이용해 이들의 뒷마당 사진을 확대해 보여주고 키홀을 인수하자고 주장했다. 2004년 10월 막 상장을 마친 구글은 키홀의 주식을 3500만 달러에 매입했다.


행크는 자신이 구글과 함께 하는 시간이 수개월이면 끝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구글 지리정보팀 총괄 경영자 2명 중 1명이 된 그는 10년 이상 구글에서 일했다. 2005년에는 구글 어스를 출시했고, 아이폰에 구글 지도를 기본으로 포함시키는 협상을 스티브 잡스와 진행했으며, 트래픽 기준으로 구글 검색 다음으로 인기가 높은 구글 지도를 만들어내는 공로를 세웠다.


2010년이 되자 행크는 회사를 나가 새로운 모험을 하고 싶어졌다. 지도와 게임을 결합하는 시나리오를 탐색하며 게임에 대한 열정을 다시 불태우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또 다른 창업자 래리 페이지가 회사에 남아달라고 그를 설득했다. 페이지는 구글 샌프란시스코 사무실 내 비밀 게임 사업부를 만들고 행크에게 필요한 인력과 자원을 지원했다. 행크는 회사를 나이언틱 랩스라고 이름 지었다. 1849년 골드러시 때 광부들을 베이 에어리어(Bay Area)로 싣고 온 함선의 이름을 딴 것이다.


사용자가 모바일 기기를 통해 도시 랜드마크를 발견하는 AR 게임과 불운의 실패작 구글 글래스를 시험삼아 내놓았던 나이언틱은 2013년 말에 게임 인그레스(Ingress)를 출시했다. 행크가 개발한 최초의 위치기반 게임으로, 플레이어가 두 팀으로 나뉘어 스마트폰을 이용해 전세계 곳곳을 원정 다니며 영역 싸움에 나서는 게임이다. 열혈 플레이어 사이에서는 인기를 얻었지만, 구글 내에서는 파격적 상품이라는 평가를 얻는 데 실패했다.



▒ 게임 개발한 나이언틱 랩스 CEO 존 행크


2014년 봄이 되자 나이언틱 랩스 CEO 행크는 더 많은 사용자를 모으기 위해 위치기반 게임에 인기 캐릭터를 결합하는 전략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슈퍼마리오와 동키 콩(Donkey Kong)이 후보로 올랐지만, 꾸준히 거론된 건 포켓몬이다. 1990년대 후반 비디오게임과 트레이딩 카드, 영화, TV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된 포켓몬은 밀레니엄 세대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2016년 5월까지 포켓몬 프랜차이즈 상품은 총 450억 달러에 달하는 매출을 올렸다.


때마침 행크가 감독했던 구글 지도 사업부의 엔지니어 노무라 타츠오가 조용히 포켓몬과 관련된 게임을 개발하고 있었다. 목적은 행크와 완전히 달랐다. 만우절에 구글 지도를 보며 포켓몬을 잡는 이벤트를 벌여 구글 지도 트래픽을 늘리자는 의도였다. 그는 친구를 통해 주식회사 포켓몬과 연락하고 회의를 잡았다. 닌텐도가 일부 지분을 보유한 주식회사 포켓몬은 편리하게도 도쿄 롯폰기에 있는 구글 재팬과 같은 건물을 사용하고 있었다. “CEO는 아이디어를 보자마자 만족스러워 했다”고 노무라는 말했다. “협상이라고 할 것도 없었다.”


만우절의 장난은 성공을 거두었고, 행크는 즉각 노무라를 만나 회의를 한 번 더 주선할 수 있냐고 물었다. 그는 포켓몬이 실제 모바일 게임에도 흥미가 있는지 알고 싶었다. 2014년 5월 행크는 주식회사 포켓몬 CEO 이시하라 쓰네카즈와 통역사를 대동하고 회의실에 마주 앉았다. 둘은 온갖 것을 의논했는데, 이 중에는 인그레스도 있었다. 인그레스의 열혈 플레이어였던 이시하라는 포켓몬 등을 소재로 한 모바일 게임에서 위치 정보가 얼마나 강력한지 즉각 이해했다. 작고한 닌텐도 CEO 이와타 사토루의 전폭적 지원을 받은 행크는 그 해 여름 포켓몬고 개발을 시작했다. 그리고 주식회사 포켓몬, 닌텐도와 게임 수입을 나누는데 합의했다. (정확한 배분 비율은 공개하지 않았다.)


한편, 구글 내에서 나이언틱의 입지는 점점 흔들리고 있었다. 구글이 알파벳을 모기업으로 해서 기업구조를 재편하기로 결정하면서 구글 경영진은 소속이 애매한 나이언틱을 두고 고민에 빠졌다. 안드로이드 그룹 아래로 넣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거대 조직 구글의 관료제 속으로 다시 들어가는 선택안은 행크에게 별다른 매력이 없었다.


대신 그는 독립기업으로의 분사 가능성을 곰곰이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외부에서 독자적 투자를 받아도 된다는 구글의 허락을 받았다. 그는 여러 벤처캐피탈 투자사와 만남을 가졌다. 이 중에는 안드레센 호로위츠나 클라이너 퍼킨스 코필드 앤 바이어스도 있었다. 그러나 나이언틱의 기업가치가 1억 5000만 달러나 돼 다들 투자를 주저했다. 투자회의에 참석했던 한 투자자는 행크가 인그레스 얘기만하고 포켓몬고 게임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었다고 말했다. 나이언틱은 기업가치를 더 높게(1억7500만 달러) 책정했다. 이를 기준으로 구글과 닌텐도, 주식회사 포켓몬, 엔젤 투자자로부터 3500만 달러의 투자금을 받았다. 벤처캐피탈 업체로부터는 한 푼도 받지 못했다.


벤처투자사 입장에서는 이해가 가는 결정이었다. 포켓몬고는 이제야 출시 두 달째에 접어들었고, 팜빌을 개발한 징가(Zynga)나 캔디 크러쉬를 선보인 킹닷컴(King.com)의 부진은 입소문에 의존해 급작스럽게 인기를 끈 게임업체를 조심하라는 선례로 남았다. 그러나 지금 행크는 서버 다운을 막는 데에만 집중할 정도로 정신이 없다. 다크서클이 짙어진 그는 너무 바빠서 포켓몬 게임을 제대로 해보지도 못했다고 말했다. 그럼 게임 레벨은 어느 정도일까? “음, 레벨 5 정도?”라고 그가 멋쩍어하며 답했다. 


안해본 사람은 있어도 한번만 해본 사람은 없다는 포켓몬고. 포켓몬고의 붐은 어쩌면 일어나지 못할 뻔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