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면에서 혁신과 퇴조의 기로에 선 2017년 새봄. 신예 작가 3인에게 ‘문학의 미래, 청춘의 현실’에 대한 견해를 들어봤다. 그들이 생각하는 시의 본질, 작가로서의 사명, 일상에 관한 고민, 시대를 향한 제언 등은 진한 여운의 시편들처럼 묵직한 울림을 자아냈다.
교보문고에 따르면 지난해 몇몇 시집이 ‘베스트셀러’가 됐다. 시 분야 연도별 신장률이 2015년 14.4%에서 2016년 30.6%로 증가했고 그중 한국시의 경우 505.7%나 상승했다는 것이다. 영화 <동주>의 흥행과 복각본 시집들의 인기, SNS를 통한 ‘짧은 시’ 공유 문화 등이 이 같은 열풍에 한몫했다. 특히 오은, 황인찬 등 젊은 시인들의 근작(近作)과 광화문 글판의 ‘풀꽃’으로 유명한 나태주 시인의 서정시집들이 대중의 관심을 끌었다. 독자들은 이성복, 최승자, 황인숙 등 중견 문인의 스테디셀러 시집들도 꾸준히 집어 들었다. 여기에다 최근 화제의 드라마 <도깨비>에 등장한 김인육 시인의 작품 ‘사랑의 물리학’이 재조명을 받으며 관련 시집 판매량 증가로 시문학의 강세를 이끌기도 했다.
국내외의 정치사회적 격변과 4차 산업혁명 같은 문명사적 변혁이 중첩돼 회오리치는 혼돈의 시대. 활자문명과 종이문화의 쇠퇴가 거론되는 시기에, 이처럼 시가 시민들에게 계속 읽히는 이유는 뭘까. 어지러운 시국 현실도 좌절시키지 못한 위로의 손길, 무소불위의 인공지능도 범접하지 못한 희망의 목소리가 시어들에 녹아있기 때문일까? 시민들이 외치는 ‘소통과 공감의 지평’이 시의 행간과 여백에 아로새겨져 있기 때문은 아닐까?
변화의 물결이 넘실대는 요즘, 등단한 지 3년 이하의 청년 시인 세 사람을 만나보았다. 선정 기준은 오늘의 시대적 화두이기도 한 ‘소통의 감수성, 공감의 상상력’이다. 그들의 시편(詩篇)은 난해한 이미지나 생경한 조어가 아니라, 간명하고 담백한 문장으로 새로운 서정의 차원을 열었다. 감각에 집중하되 관념적으로 치닫지 않고, 상징으로 암시하되 전언을 앞세우지 않는 신예들이다. 그들에게서 본인의 일상과 고민, 시문학의 미래에 관한 생각을 물었다. 더불어 시대현실을 향한작가로서의 문제의식과 자신의 시세계에 대한 소신도 들어 보았다. 다채로운 그들의 목소리에선 신인 작가들이 가질 수 있는 참신한 감성이 묻어났다.
1. 양안다 시인 | 성찰적 세계 응시와 내밀한 고백의 변주
동국대 교정에서 인터뷰 중인 양안다 시인. 그는 시인으로서의 일상과 고민, 본인 시세계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밝혔다.
1992년 충남 천안에서 출생한 양안다 시인은 2014년 대학 4학년 때 월간 <현대문학> 신인 추천으로 등단했다. 양 시인은 최근 창간한 <문학3>에 2편의 시를 게재하는 등 지금까지 문단 여러 지면에 작품을 발표했다. 대전대학교에서 문예창작을 전공한 그는 현재 동국대 대학원에 재학 중이다. 2월의 어느 날, 눈 내린 동국대에서 양 시인을 만났다. 그는 본관 오른편에 위치한 만해 한용운 선생의 시비(詩碑) 주변을 걸으며 상념에 젖어 있었다. 가볍게 인사 나눈 뒤 우리는 자리를 옮겨 묻고 답했다. 차분한 느낌의 시인은 기자의 질문에도 잔설처럼 고요하게 답했다.
하이데거는 ‘어둠의 장막을 걷고 존재의 은폐된 빛을 통찰해내는’ 사람이 시인이라고 했습니다. 현실세계를 살아가는 본인에게 시와 시인이란 무엇입니까?
“저는 멋들어진 말을 잘 못해요. 시는 제가 의미규정을 하기에 앞서서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어요. 시도 시인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현존하는 것이겠죠.”
시의 용도가 있다면 뭐라고 보세요? 세상을 바꾸는 데 시는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요?
“앞서 말했듯 시는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존재하는 거예요. 독자가 시를 존재하게 한다고 봐요. 대중의 수요나 관심이 없으면 사라질 수도 있겠죠. 다른 장르로 시를 느낄 수도 있으니까. 이는 필요, 불필요의 범주를 떠난 문제라고 봅니다. 시는 기능주의에 입각한 것이 아니라 ‘가능성의 영역’이라고 생각해요. 시가 세상을 직접적으로 바꾸긴 어렵겠죠. 그 대신에 시는 나 자신, 개개인을 바꾸는 거예요. 물론 개인마다 변화가 일어나고 그것이 집단화하면 언젠가 세상도 바뀌지 않을까요?”
양 시인은 주로 타인과 대화 하다 시상(詩想)을 떠올린다고 한다. 평소에 쉽게 흘려 듣게 되는 일상적인 대화도 새로운 느낌으로 문득 다가올 때 영감을 얻는 것이다. 그는 최근에 카페에서 친구와 얘기를 나누다 ‘무슨 생각해?’라는 질문을 받은 뒤 문학적인 화두를 가졌다고 한다.
“저는 인터뷰가 재밌어요. 주제나 내용과 상관없이 대화 자체를 좋아하거든요. 말을 나누다 보면 평범한 단어나 문장도 특별하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어요. 그때의 정서, 감흥을 기억해두었다가 곱씹으면서 시를 씁니다.”
작년에 특히 시에 대한 매스컴과 대중의 관심이 높았다고 합니다. 이런 분위기를 어떻게 보세요?
“사회가 어려워지면 사람들이 시를 많이 찾는다고 봅니다. 답답한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시를 탈출구로 삼는 것이죠. 시에서 답을 구하거나 시인이 어떤 해답을 말해주길 바라는 것 같기도 해요. 현실이 비현실처럼 느껴지는 시대 속에서 사람들이 응어리진 마음을 해소하고자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직접적으론 집회와 시위가 있었고 간접적으론 시나 SNS, 인터넷 커뮤니티 활동이 그 돌파구 역할을 했죠.”
그의 시는 대상을 호명하고 서로 교감하면서도 종국엔 주체의 내면으로 파고든다. 그래서 자기성찰적 면모가 돋보이는 대목이 많다. “그 애의 입장에서 나를 조금만 훔쳐보고 싶었다”(‘파수꾼’ 중, <열린시학> 2015년 겨울호), “나는 너의 꿈이 되겠다고, … 네가 적는 가사의 일부가 되겠다고”(‘축하해 너의 생일을’ 중, <뉴스페이퍼> 2016년 8월 28일자) 등의 문장이 눈길을 끈다.
“저는 어떤 판단이나 결정 같은 걸 잘 못해요. 그래서 타인과의 관계에서 제 내면을 깨닫는 경우가 많아요. ‘내가 이런 식으로 세계를 바라본 거구나’ 하면서 자신을 되돌아보는 거죠. 마찬가지로, 시를 쓰는 가운데서 스스로의 세계관과 가치관을 다시 알게 되곤 합니다.”
최근 시대적 화두 중의 하나가 ‘소통과 공감’입니다. 상처와 분열로 얼룩진 현실에서 요청되는 덕목이기도 하죠. 시인의 관점과 감성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을까요?
“저는 시를 읽고 나서 이해받았다는 느낌이 들 때 가장 좋아요. 날 향해 쓴 시는 아니지만 제 입장이나 처지를 공감해주는 부분이 있으면 기쁘죠. 시의 화자가 ‘그래, 그거 알고 있다’라고 이해해주듯이, 서로가 시를 통해 자연스럽게 소통하는 과정이 즐거워요.”
평소 인생의 좌우명이나 시와 관련된 지향점이 있나요?
“제가 늘 생활 속에서 지키려고 하는 원칙이 ‘농담은 해도 거짓말은 하지 말자’는 거예요. 최소한 그것만이라도 지키면서 살려고 노력해요. 나 자신은 속일 수 없으니까, 스스로를 정직하게 바라보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개인윤리 차원이기도 하고, 시도 마찬가지에요. 최대한 저처럼 쓰려고 노력하죠. 평소에 제가 조심스러운 성격이고 주저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모습을 솔직하게 투영시키려고 해요. 작품에서도 현실에서도 속임수를 쓰거나 작위적인 포즈를 취하기는 싫습니다.”
여느 때보다 아픔이 많은 시절입니다. 사회가 어수선하고 당면한 청년 문제도 가지각색입니다. 어떻게 보시나요?
“역사 속에서 힘든 상황은 언제나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현실이 영화보다 더 믿기 어려운 것 같아요. 사건이 방대하고 깊으니까 분간이 안 될 때도 있죠. 아직까지 현재 진행형인 문제가 많기 때문에 모두가 예의주시하고 해결책을 궁리해야 합니다.”
상처받은 사람들에게 시는 어떻게 다가갈 수 있을까요?
“시는 요동치는 세상 속에서도 항상 제자리에서 탈출구를 열어두고 있었어요. 실망과 낙담에 지친 많은 사람이 다가왔고, 시도 그들을 배려하며 사랑과 이해, 위안을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시인과 독자들 사이의 교감과 소통은 지속되리라 봅니다.”
시인이 바라보는 사랑이란 뭐죠?
“한 대상에게 극단적으로 기울어지면서 그 외의 것들을 배제해내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사람이건, 사물이건, 감정이건 오직 한 대상에게 마음이 자꾸 기울어지는 것. 그게 바로 사랑이에요.”
우리 시대의 청춘들에겐 무엇이 희망일까요?
“희망은 말 그대로 있다고 ‘믿는’ 거죠. 실체나 존재가 아니라 ‘믿음, 가능성’ 그 자체죠. 그래서 언제나 중요한 건 사랑이에요. 희망보다 더 중요하죠. 어떤 대상을 사랑한다는 것에서 희망도 나옵니다. 사랑이 없으면 희망도 없어요. 모든 출발은 사랑이에요. 서로가 갈등의 골이 깊어져 예민한 시절인데, 우리끼리 너무 날을 세워서 싸우진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2. 정현우 시인 | 타자의 상처를 위로하는 애도의 비가(悲歌)
정현우 시인이 창밖 너머를 응시하며 사색에 잠겨 있다. 그는 길을 가다가도 영감이 떠오르면 한참이나 제자리에 서있는다고 한다.
“잠들이 무너지는 밤/ 당신을 옆을 지키지 못한 삼일 동안/ 세상 가장 낮은 곳으로/ 당신을 부르러 갑니다.” (‘소멸하는 밤’ 중, <뉴스페이퍼> 2016년 10월 23일자)
그의 시는 주로 죽음과 이별에 대해 다룬다. 그럼에도 타자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따뜻한 시선이 느껴진다. 시세계 속 서정의 온기가 어둠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1986년 경기도 평택에서 출생한 정현우 시인은 2015년 서른이 되던 해에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됐다. 현역 시인이자 미성의 가수이기도 한 그는 현재 KBS 라디오에서 작가로 일한다. KBS 본관이 있는 여의도 인근 카페에서 미소 가득한 얼굴의 그를 만났다.
생사의 경계에서 시의 본질에 대한 깨달음을 얻으셨다고 들었습니다. 무슨 일을 겪으신 거죠?
“저는 등단할 때까지 10년간을 준비했어요. 문학특기생으로 입학할 만큼 노력을 많이 했죠. 처음엔 대학 가면 다 등단되겠지 하는 막연한 마음이었는데 막상 도전하니 쉽지 않더라고요. 그러다가 군에 입대해 구급차 운전병으로 복무했는데, 그때 형언하기 힘든 비극을 마주했어요. 친구가 자살한 거예요. 친구의 시신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큰 충격을 받았어요. 몸이 얼어버릴 것 같은 고통과 참담함이었죠. 그 밖에도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많은 참상을 목격했고요. 그 이후로 시의 본질은 ‘상처받은 이들을 위로하고 품어주는 것’이라고 깨달았습니다. 등단작 역시 하늘로 떠난 친구에게 바치는 저의 아픈 헌시였어요.”
대화 중에 정 시인의 눈시울이 여러 번 붉어졌다. 그는 자신이 지켜주지 못한 친구를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저민다고 했다. 본인의 시편들만큼 따뜻하고 정 많은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정 시인의 작품을 읽으면 슬픈 풍경에서도 온기가 느껴졌어요.
“제가 시를 쓸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게 바로 ‘가난이 가난을 편들 수 있는 마음’이에요. 이 마음이 있어야 저도 그렇고 독자에게도 공감이 가는 거죠. 또 저의 시는 대개 현실에 기초하고 경험에서 우러나와요. 사람들이 교감할 수 있는 지평을 넓게 하는 거죠. 저도 사실 죽을 고비를 세 번 넘겼어요. 초등학교 땐 물에 빠져서, 고등학교 땐 벼락에 맞을 뻔 했고, 제대하고 나선 교통사고를 당했어요. 이렇게 직간접적으로 죽음을 자주 체험하게 되니까 시의 원천도 그쪽이 됐죠. 인간에게 죽음은 필연이니까, 완전히 다가오기 전까지 내가 어떤 계시나 상징으로 아픈 영혼들을 위로해주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특히 가난하고 소외받는 사람들을 위해 시로써 편들어주고 싶은 마음이 컸죠.”
2017년은 윤동주 시인이 탄생한지 100주년이 되는 해다. 정현우 시인은 윤동주 시인의 성찰적인 시세계를 존경한다고 말했다.
정현우 시인은 시인, 가수, 라디오 작가를 겸할 정도로 다재다능한 사람이다. 특히 그는 음반 작업에도 성공해 2집 앨범의 경우 출반 당시 음원사이트 1위를 기록했다. 덕분에 저작권료로 전세금을 마련할 정도였다. 방송국 작가 일도 마찬가지다. 그는 TV 프로그램과 라디오 방송을 넘나들며 활약한다. 비슷한 듯 다른 그의 일들이 궁금했다.
시인, 가수, 라디오 작가 등 참 다양한 소질을 갖고 계시군요?
“어릴 때 예술대학에 진학하고 싶어서 성악을 잠깐 배우기도 했어요. 나중에 결국 경희대 국문과에 들어가 시에 집중했지만요. 사실 시와 노래는 통하기도 하지만 각자 개성이 달라요. 시는 개인적 장르라서 자아가 여러 개로 변해도 자유롭지만, 노래는 즉석에서 공연으로 보여주는 것이라서 집중적인 감정 연기가 중요해요. 어떻게 보면 정서가 사람들에게 더 빠르게 전염되는 건 노래인 것 같아요. 라디오 작가도 시 쓰기와는 많이 달라요. 시인은 원하는 글을 쓰지만, 방송작가는 요구된 포맷에 맞춰서 써야 되거든요. 시가 느림의 예술이라면 라디오 방송은 속도의 미학이에요. 최신 트렌드를 빨리 포착해서 읽어야 하죠.”
대내외적으로 변화가 많은 시대입니다. 사람들은 삶의 중심을 잡기가 어려울 정도입니다. 이런 시기에 인문 예술의 중추라고 할 시는 어떤 흐름과 지평을 열어야 할까요?
“요즘 정서적 빈곤, 낮은 행복지수가 문제잖아요. 물질적으로 윤택해도 정작 마음이 가난하신 분들이 많은 듯해요. 시라는 장르는 불완전하고 분열된 세계에 불어넣는 화합의 노래이자 따뜻한 마음이에요. 저는 윤동주 시인을 존경하는데, 그분은 작품 안에 성찰적이고 관조적인 세계를 갖고 있어요. 저는 그 점을 본받고 싶어요. 갈등이 많은 시절일수록 ‘온기 어린 관조’가 절실히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런 면에서 시는 여백이기도 하죠. 시대의 여백을 채워나가는 또 다른 여백 말이에요. 급변하는 세계, 흔들리는 세상 속에서 고요하게 건축물을 세워나가는 것이 시이고, 그래서 시는 이 시대에 더욱 필요한 존재라고 확신해요.”
그렇다면 인공지능(AI)을 비롯한 첨단 문명이 우리 삶을 지배하는 날이 와도 문학의 영역은 건재할까요?
“그렇죠. 인공지능이 시를 더 잘 쓸 수는 있어도 시가 가진 따뜻함을 새겨낼 수는 없어요. 서정시는 감정을 전달하는 장르입니다. 로봇의 문장이 아무리 기교적이라도 한계가 있는 거죠. 또 사람들의 마음이 기계문명에 지치면 자연스레 시를 다시 찾게 될 거고요. 오히려 다른 매체와 결합하면서 시문학은 더 발전할 거예요. 작년만 해도 SNS에서 시가 많이 확산됐고 그래서 오히려 복각본, 종이책의 수요가 늘어나는 현상이 있었잖아요. 문명과 문학의 관계는 방식과 관점의 차이일 뿐 시의 본질은 달라지지 않아요.”
두 시간이 넘는 대화에도 정현우 시인은 지친 기색이 없었다. 어느 한 질문에도 짧게 답하지 않았다. 시종일관 침착했고 화제마다 진지했다. 오히려 대화를 이어갈수록 인생과 현실에 관해 못다 한 얘기들을 털어놓았다. 그래서일까. 문학과 시대를 바라보는 그의 관점이 오랜 수도 생활을 거친 성직자의 견해처럼 느껴졌다.
일찍이 장자는 ‘도(道)는 땅강아지나 기왓장처럼 낮은 곳에 있다’고 논했습니다. 그렇다면 시(詩)는 질곡 많은 세상 어디에 존재할까요? 어디서 숨 쉬고 있을까요?
“장자가 말한 도처럼 시 역시 가난한 사람과 낮은 곳에 존재합니다. 항상 존재해왔고 영원히 존재할 것입니다. 갓난아기의 옹알거림, 수명을 다한 고목에도 시가 있습니다. 그걸 포착해서 언어의 노래로 담금질해 사람들의 마음에 전하는 것이 시인의 역할입니다. 시집을 읽거나 선물해주는 건 인스턴트처럼 소비되어가는 우리의 자아와 정체성을 회복시켜주는 일입니다. 혼란한 시대 속에서 서정시는 일종의 나침판 역할을 하는 셈이죠.”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 시대의 청춘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무엇보다 여유가 없는 사회라서 안타까워요. 각자 취업난과 스펙 경쟁에 밀려서 자아를 잃어가고 있어요. 자신이 가장 아름다운 시절인데 그걸 당대엔 모른다는 게 많이 슬퍼요. 그래서 저는 지친 일상 속에서도 내 소중함을 찾고, 찰나의 순간에도 고마움을 간직하려고 노력해요. 특히 다른 사람과 지나치게 비교하며 쫓아가려고 하진 않았으면 해요. 솔직하게 거울을 볼 수 있는 삶, 작은 일에서 즐거움을 발견할 수 있어야 큰일을 해낼 수도 있다고 봐요.”
3. 문보영 시인 | 순수한 실존의 아름다움, 도약하는 자유의 리듬
문보영 시인은 인공지능 혁명이 오히려 문학의 지평을 더 넓힐 것이라는 의견을 말했다. 지난해 알파고와의 첫 대국에서 이세돌 9단이 첫 수를 두고 있는 모습.
1992년 제주에서 출생한 문보영 시인은 2016년 중앙신인문학상(<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됐다. 고려대 교육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그는 시문학 못지않게 춤을 좋아해 현재 여러 동아리에서 댄서로 활동하는 재주꾼이기도 하다.
작년 9월에 등단하셨는데, 최근의 집필 방향은 어떠십니까?
“요즘 원고청탁을 받으면 기존의 등단작을 많이 배반하려고 노력해요. 제 시의 다른 색깔을 보여주려는 거죠. 사실 이렇게 빨리 등단할 줄 몰랐어요. 예전에 몇 군데 넣어봤다가 떨어져본 기억이 있어서 내공과 지구력의 중요성을 알게 됐죠. 그래서 작년엔 오직 시만 쓰려고 했는데, 덜컥 당선이 되니까 기쁘고 놀라웠어요. 한편으론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는 느낌도 있고요. 이제부터라도 시적 근육과 집념을 만들어야 할 것 같아요.”
춤을 잘 추시는데 어떤 종류의 춤을 좋아하세요? 또 춤출 때는 어떤 느낌을 받는지 궁금해요.
“특히 힙합과 스윙을 좋아해요. 스윙은 남녀가 손으로 대화를 주고받으면서 춤을 춰요. 그래서 잡아야 하는 손이 수시로 바뀌죠. 어떤 이는 꽃다발처럼 펴지는 에어백의 감촉이고, 또 다른 이는 안쪽에 양들을 키우는 펜스 같기도 하고 바람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반면 힙합은 혼자 출 수 있어요. 제게 힙합은 다 내려놓는 해방의 순간이죠. 저는 원래 장난기와 흥이 많은데 사회에선 누르고 살아야 하니까 춤을 추면서 조금씩 풀어줘야 해요.”
시는 정적이고 춤은 동적이라서 서로 약간 다른 것 같은데 어떤 공통점 같은 것도 있나요?
“시와 춤은 물론 표현 방식이 달라요. 하지만 하나같이 주입 당하거나 세뇌당하지 않는 자유 정신을 가지고 있죠. 통유리 거울 앞에서 날 보며 춤을 연습하듯이 시도 솔직하게 자기를 응시하는 과정이에요. ‘생긴 대로 살아가기’, 억압 없이 순수하게 바라보는 거죠.”
그의 시는 활달한 상상력으로 충만하다. 등단작 ‘막판이 된다는 것’ 심사평에서도 “자유롭고도 능숙한 언어 구사”를 강점으로 뽑을 만큼 문장마다 생동감이 느껴진다.
“붙잡을 무언가가 필요해 손이 생겼다. 손아귀의 힘을 기르다가 이파리가 되었다. 가지 끝에서 종일 손아귀의 힘을 기르고 있다. … 그늘을 탈탈 털어도 가벼워지지 않는”(‘막판이 된다는 것’ 중, <중앙일보> 2016년 9월 23일자) 재기발랄함이 그녀의 답변에서도 넘쳐났다.
본인에게 시는 어떤 존재며, 어떤 마음과 방법으로 시를 쓰나요?
“글쎄요. 아직 시가 뭔지 잘 모르겠어요. 굳이 말하자면 계속 내 곁에 있는 존재, 항상 ‘정 떼고 싶은’ 존재라고 해야 할지. 저는 창작 후 퇴고를 잘 안 해요. 퇴고에 집착하면 자꾸 ‘이것도 저것도 살릴 수 있어’라고 자기기만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매달릴수록 검열도 많아지고 작위적으로 변하니까. 따라서 자주 버리는 연습을 중시해요. 앞서도 말했듯이 ‘있는 그대로’ 응시하는 거죠. 그래서 등단 이후엔 새로 쓴 작품만 발표해요.”
젊은 시인들도 보통사람들처럼 일상에서 같은 고민을 안고 살아가나요?
“물론이죠. 취업, 연애 문제도 고민하죠. 지금도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항상 미래를 생각해요. 저는 두 시간 이상 한 공간에 있는 게 불편해서 앞으로 걱정이에요. 다만, 더 열심히 해서 춤을 가르쳐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한편 연애를 할 땐 감정을 다 느끼려고 해요. 필사적으로 생각하지 않으려고 하면서 동시에 모든 것을 떠올려요. 저는 불행이 찾아왔을 때 모범생이 돼요. 샅샅이 느끼고 일기장에 적어요. 쓰는 순간엔 그것에서 유일하게 놓여나거든요.”
여러 방면에서 문학도 청춘도 어려운 현실입니다. 어떻게 하면 나아질까요?
“일단 문학과 관련해서 보자면 ‘자율과 균형의 문제’를 고려해야 할 것 같아요. 문학의 자율성은 너무 침해당해서도 안 되고, 지나치게 경계를 넘어서는 일도 조심해야 할 것 같아요. 또한 여태껏 간과되던 문제들에 대해 세심히 접근하는 게 필요해요. 그리고 제일 중요한 건 ‘언제나, 어디서나’ 문학은 사후적인 목소리가 아니어야 한다는 점이에요. 위기가 지나간 후 안전이 보장됐을 때 말하기보다는, 항상 치열한 현장 속에서 위험을 감수하고도 목소리를 먼저 내야 하는 거죠.”
최근의 4차 산업혁명이 활자문화, 종이문명의 위기를 불러오진 않을지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어요.
“저는 책의 물질성을 좋아해요. 페이지와 책날개를 이리저리 펼쳐보고, 밑줄도 그어보고, 가방에도 넣어 다니고. 시간이 지나도 사람들은 그렇게 감각적인 걸 좋아해요. 획일화된 브랜드 카페에 질려서 아기자기한 개인 카페를 찾는 손님도 많잖아요. 종이문명도 이처럼 계속될 거예요. 그리고 다들 디지털 문명 때문에 활자문화가 사라질 거라고 생각하지만, 예전에 ‘트위터 열풍’만 봐도 그렇진 않을 거 같아요. 그동안 사람들이 영상만 올리다가 트위터가 나오자 짧은 문구, 문장을 통해서 자기를 표현하려고 노력했어요.”
2013년 일본에선 인공지능의 소설 작품이 문학 공모전 1차 심사를 통과하는 경우도 생겨났다. 이런 속도라면 머지않아 인공지능이 유려한 서정시를 자유자재로 쓸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인공지능의 문학 침범을 염려하는 질문에 문 시인에게서 돌아온 대답은 의외였다.
“알파고와 같이 시 쓰면 어때요? 저는 더 재밌을 것 같은데요. 설령 알파고가 더 잘 쓴다고 해도 굳이 우리 인간의 작품을 지울 필요는 없잖아요? 알파고의 시랑 사람의 시랑 다를 수밖에 없으니까. 결국 필자(筆者)군이 많아질 뿐이지 문학 자체가 무너지지는 않는다고 봐요. 오히려 4차 산업혁명이 도래해도 그 기계문명이 문학의 접근성을 더 열어놓을 거예요.”
양안다, 정현우, 문보영 세 사람의 젊은 시인은 기자의 어떤 물음에도 소신 있는 목소리로 답해주었다. 시대적 물음에는 도저한 사유로, 문학적 얘기엔 독특한 재치로 응수하는 그들의 관점이 인상적이었다. 크게 보아서 공통점도 많았다. 모두 만만치 않은 일상을 견뎌내고 있는 ‘청춘들’이었고, 현실 문제를 함께 고민하는 ‘친구들’이었다. 무엇보다 시를 가장 사랑하는 문학의 풋풋한 연인들로 다가왔다. 더는 젊은 시인들이 신비롭지 않았다. 대신 섬세했고, 밝았으며, 지혜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