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수 대표. 그는 한국의 뮤지컬 2세대 프로듀서 대표주자인 그는 브로드웨이를 누비던 돈키호테로 불리운다. 그런 그가 그동안 축적된 노하우로 <지킬앤하이드>를 선보일 예정이라고 한다. 신 대표를 통해 해외진출까지 꿈꾸고 있는 뮤지컬 <지킬앤하이드>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알아보자.

신춘수


브로드웨이 가(街) 뮤지컬 극장 앞에 사람들이 줄을 서고 있었다. 지켜보던 신춘수 오디컴퍼니 대표(50)의 목표가 더욱 분명해졌다. 그가 제작한 뮤지컬을 보려고 극장 앞에서 입장을 기다리는 관객들을 보고 싶다는 목표였다. 하지만 아직은 도달하지 못했다. 지금까지 두 작품을 브로드웨이 극장에 걸며 표면적인 목표는 이루었지만 관객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진 못했다. 신 대표는 작품의 완성도와 흥행 면에서는 실패한 것이 맞다고 인정했다. 절치부심한 그가 자신의 스테디셀러 <지킬앤하이드>를 새롭게 제작해 국내 관객들을 만나고 있다. 브로드웨이 배우를 더하고 스토리를 가다듬었다. 이번엔 한국에서 시작해 세계로 간다는 목표다.


지킬앤하이드


오디컴퍼니가 ‘논 레플리카(nonreplica) 방식’으로 제작한 <지킬앤하이드>는 한국에서 독보적인 인지도와 관객동원력을 가지고 있다. 2004년 초연해 2015년까지 1106회 공연했으며 누적관객수 114만 명, 평균 점유율 85% 이상을 기록했다. 이번 <지킬앤하이드 월드 투어>는 2016년 12월1일 대구에서 시작해 부산, 대전, 천안, 김해, 수원, 경주, 광주 등 8개 도시를 돌며 전국 투어를 진행하고 있다. 누적관객수는 오는 3월10일 서울 공연 개막 전후로 120만 명을 돌파할 것으로 예측된다. 한국 뮤지컬 업계에서 흥행 성적으로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기록이다. 영화로 치면 ‘천만 영화’와 다름없다.


신춘수 대표는 10년 동안 축적한 노하우와 자신감을 바탕으로 <지킬앤하이드 월드 투어>를 제작했다고 말했다. 무엇이 달라졌을까. “저희가 제작한 기존의 <지킬앤하이드>는 한국 관객들이 감정 이입을 할 수 있도록 수정했다면, 이번 월드 투어에서는 한국적인 정서를 배제하고 보편성을 확보했습니다. 또한 은유적 표현을 직설적으로 바꿔 배경을 정확하게 설명하려 했죠.”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루시가 자신의 밑바닥 인생을 표현하며 부르는 노래의 한국어 제목은 ‘뜨겁게 온몸이 달았어!’지만, 브로드웨이 배우들은 ‘남자들을 데려오라(Bring on the man)’고 노래하며 원제 그대로 거친 표현을 썼다. 무대 디자인·의상 등 시각적인 것도 눈에 띄게 달라졌다고 한다.


지킬앤하이드


▒ <지킬앤하이드> 한국 첫 영어 공연


한국에서 처음으로 영어로 공연하는 <지킬앤하이드> 뮤지컬을 관객들이 낯설어 하지 않았을까 궁금했다. “언어의 장벽은 크게 문제되지 않았습니다. 뮤지컬엔 만국공통어인 음악이 있으니까요. 자막이 제공되긴 하지만 어느 순간 자막에 의존할 필요도 없이 몰입됩니다.” 그럼에도 신 대표가 <지킬앤하이드>를 영어로 공연하길 고집했던 이유는 세계 뮤지컬 시장으로 진출하기 위해서다. “오히려 저희가 우려했던 것은 관객들이 브로드웨이 버전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래도 한국 배우들이 공연한 <지킬앤하이드>가 관객들에겐 더 친숙할 테니까요.” 다행히도 한국 관객들이 이질감을 느끼지 않았다고 신 대표는 덧붙였다.


<지킬앤하이드 월드 투어> 주연배우들 모두 브로드웨이에서 활동을 했고 나름 인지도도 있는 배우들이다. 신 대표는 지킬/하이드 역에 카일 딘 매시(Kyle Dean Massey)와 브래들리 딘(Bradley Dean), 루시 역에 다이애나 디가모(Diana DeGarmo), 엠마 역에 린지 블리븐(Lindsey Bliven)을 캐스팅했다. 카일 딘 매시는 서울 공연에만 참여하며, 브래들리 딘은 에너지 넘치는 퍼포먼스로 주목받고 있다. 특히 다이애나 디가모는 한국 관객들의 큰 사랑을 받고 있다고 한다. “언어에 상관없이 한국 관객들에게 감정을 전달할 수 있다는 건 연기력도 출중하다는 이야기죠.” 신 대표가 자신 있게 말했다.


모든 주연배우가 <지킬앤하이드 월드 투어> 오디션을 보고 캐스팅된 건 아니다. 신 대표는 미국의 워크라이트 프로덕션(Work Light Productions)과 파트너십을 맺어 오디션 진행을 맡겼다. 브래들리 딘과 린지 블리븐은 이 오디션에서 뽑혔다. 브래들리 딘은 브로드웨이에서 신 대표와 함께 작품을 한 적이 있다. “저는 오디션 보러 오라고 이야기하지 않았는데, 브래들리 딘이 왔더라고요.” 카일 딘 매시와 다이애나 디가모는 신 대표가 그들의 공연을 보고 직접 연락해 섭외했다.


다이애나는 <브루클린>을 공연하는 동안 신 대표와 스치듯 만났다. “관람 당시엔 그 배우가 다이애나인 줄 몰랐어요. 나중에 한국에서 <브루클린>을 제작할 때 동영상을 찾아보고 나서야 알았죠.” 다이애나는 <아메리칸 아이돌 3>에서 준우승을 할 정도로 탁월한 가창력을 지녔다. 신 대표는 그녀가 한국 관객들에게 사랑받는 이유를 알 것 같다고 말했다. “성격도 좋고 사랑스러워요.”


지킬앤하이드


▒ 중국 배우가 중국어로 하는 <지킬앤하이드>도


한국에서의 뮤지컬 제작도 브로드웨이와 동일한 방식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한국 크리에이티브팀과 브로드웨이 배우들 사이에 큰 충돌은 없었다. “몇 가지 사소한 문화적 차이는 있었죠.” 한국의 뮤지컬 프로듀서는 역할의 경계가 명확하지 않아서 연출가·작가와 겹친다. 미국에선 프로듀서가 연출가를 통해 배우에게 디렉션을 주거나 코칭을 한다. 실제로 신 대표가 한 배우에게 직접적으로 디렉션을 주자 연출자가 ‘월권’ 행위로 받아들이기도 했다. 또한 브로드웨이 배우들에게 쉬는 시간과 식사 시간을 항상 보장해야 한다. “한창 ‘삘’ 받았는데 쉬자고 하면 맥 빠져요.” 시간 개념도 다르다. “한국은 10시에 모여서 10시 반에 연습을 시작해요. 미국은 10시에 연습이다, 하면 10시에 연습이 시작하는 걸로 알고 9시 반에 모입니다.”


이렇게 여러 우여곡절 끝에 막을 올렸던 <지킬앤하이드 월드 투어>는 오는 5월21일 서울 공연을 끝으로 한국 투어를 종료한다. 다음 목적지는 일단 중국이다. 신 대표는 올해 안에 중국 배우가 중국어로 공연하는 <지킬앤하이드>를 본토 무대에 올릴 예정이다. 3월엔 싱가포르, 마카오, 홍콩 등 아시아 지역의 뮤지컬 프로모터들이 서울 공연을 관람하고 돌아간다. 아시아에서 반응이 좋으면 유럽, 북미 등으로 투어를 이어갈 계획이다.


신춘수 대표는 원래 영화제작을 전공했다. 항상 영화 감독이 되겠다는 막연한 꿈을 가지고 있었다. 영화 보는 것을 좋아했고 뮤지컬도 좋아하긴 했다. “영화나 공연이 시작하기 전 암전되었다가 막이 오르는 순간이 저는 정말 좋았어요.” 하지만 당시엔 그가 뮤지컬 업계에 이렇게 오래 몸 담을 줄 몰랐다.


“사실 어떤 작품이 제게 영향을 많이 끼쳤는지 물어보시면 저는 <레미제라블>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뮤지컬을 보면서 제작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어요. 그때만 해도 영화 감독의 길을 갈 거라고 생각했으니까요.” 신 대표는 정말 우연한 기회에 뮤지컬에 입문했다. 뮤지컬을 한 번 해보지 않겠냐는 제의에 이 분야에 뛰어들었고, 하다 보니 내가 만든 뮤지컬을 무대에 올릴 때까지 해봐야겠다는 목표가 생겼다. 뮤지컬을 무대에 올려 보니 좋은 작품을 만들고 싶은 욕심이 생기고, 그러다 보니 뮤지컬에 대한 애정이 점점 깊어졌다. “정말 그게 다예요.” 신 대표가 웃었다.


오디컴퍼니는 뮤지컬을 잘 만드는 회사로 알려져 있다. 대중적인 뮤지컬과 뮤지컬 매니아가 좋아할 만한 공연 모두 제작하며, 10년 동안 사랑받는 뮤지컬이 벌써 4개 작품이나 된다. “작품의 완성도와 배우의 퍼포먼스, 어느 하나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어요. 좋은 작품과 그에 걸맞은 배우들의 호연이 어우러져야만 관객들에게 오래 사랑받는 뮤지컬이 탄생합니다.”


한국에서 뮤지컬 프로듀서로 성공한 비결을 묻자 “돈키호테 기질 때문이 아닐까 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긍정적인 태도, 생각만 하지 않고 바로 행동으로 옮겨버리는 실행력 등 신 대표는 소설 속 돈키호테와 많이 닮았다. 자신이 성공한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것보다는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인정받을 수 있어서 행복하단다.


지킬앤하이드


▒ <레미제라블>처럼 문학성을 띈 작품 선호


현재 목표는 <미스 사이공> <오페라의 유령> <캣츠> 등을 만든 전설적인 뮤지컬 제작자 카메론 매킨토시를 뛰어넘고 토니 상 수상자가 되는 것이다. 토니 상은 관객들에게 오래 사랑받는 뮤지컬을 만들었다는 훈장 같은 것이다. 그는 올 3월부터 토니 상 후보에 올릴 만한 뮤지컬을 집중적으로 개발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라만차>나 <레미제라블>처럼 문학성을 띈 작품을 만들고 싶어 요즘 책을 가까이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요즘 신 대표는 인간적으로도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좋은 사람의 기준이 무엇인지 물으니 신 대표는 좋은 사람이란 “충분히 상대방 입장에서 배려할 수 있는 사람, 가진 게 크지 않아도 나눌 수 있는 사람”이라고 정의했다. “관객들이 시간을 내서 돈을 내고 제 뮤지컬을 찾아주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성공은 없었을지도 모르죠. 그 사랑을 이제 돌려드리려고 합니다.” 신 대표는 언젠가 관객들이 아주 가벼운 마음으로 보러 올 수 있게 상업성을 띄지 않는 공연을 제작하고 싶다.


문득 궁금해졌다. 50세의 신춘수가 30대의 신춘수에게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와, 이건 진짜 생각 안 해봤는데~”라며 한바탕 웃은 신 대표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일을 열심히 하는 것도 좋지만 나머지 것들에게도 열린 시각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대답하더니 갑자기 “30대의 신춘수가 50세의 신춘수에게 하고 싶은 말도 해도 돼요?” 라고 되물었다. “저는 50세의 신춘수에게 ‘30대처럼 살아라’라고 말하고 싶어요. ‘심플하게 살아라’라고. 예전보다 경우의 수를 많이 두고 생각이 많아졌거든요.”


하지만 결코 안정을 추구하는 것은 아니다. “주위에선 ‘이제 갓 다섯 살 된 딸도 있는데, 안정적으로 살아야 하는 거 아니냐’ 하시는데, 전 그러고 싶지 않아요. 뮤지컬 제작을 하면서 한 번도 돈을 좇은 적은 없었고 열심히 한 길만 걸었으니 이제 작품의 실패는 있어도 뮤지컬 프로듀서로서의 실패는 없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신 대표는 뮤지컬이 끝나고 극장 문을 나서는 사람들의 행복한 표정을 보고 싶다. 보고 나서 돈이 아깝지 않은 좋은 작품을 만들고 싶다. 언젠가 그도 토니 상을 받고 뮤지컬 프로듀서로서의 커리어를 마무리할 것이다. 그때가 되면 신 대표는 마음 한 켠에 묻어뒀던 영화 감독의 꿈을 조심스레 꺼내보려고 한다. 뮤지컬 영화를 제작하며 인생 2막을 열 것이다. 그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잰 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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