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 시대. 단순히 평균 수명만 증가한 것이 아니다. 더 나은 삶, 만족스러운 삶을 위한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들이 떠오르고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결혼 후의 이별이다. 졸혼, 사후이혼 등 다양한 이별의 방정식이 등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함께 알아보자.


이혼


우리나라의 전체 이혼 건수에서 ‘황혼이혼’(혼인지속기간이 20년 이상인 부부의 이혼)이 차지하는 비율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지난해 통계청이 발표한 ‘2015년 혼인, 이혼 통계’에 따르면, 조(粗)이혼율(인구 1000명당 이혼건수)은 2.1건으로, 1997년(2.0건)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평균 이혼 연령은 남자 46.9세 여자 43.3세이며, 이혼부부의 평균 혼인 지속기간은 14.6년이었다. 혼인지속 기간별 이혼건수를 보면, 황혼이혼은 전체의 29.9%를 차지하며 2012년 이후 줄곧 1위를 유지하고 있다.


2015년의 통계를 10년 전과 비교해보면, 전체 이혼 건수는 15%가량 줄어든 반면, 황혼 이혼 건수는 36.4% 증가했다. 특히 혼인지속 기간이 30년 이상 되는 부부의 이혼 건수는 무려 2.2배로 증가했다. 전체 이혼 건수가 줄어들고 있는 현상에 대해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는 “혼인 건수 감소와 함께 신혼 이혼(결혼 0~4년차 부부의 이혼)이 크게 줄어든 데 원인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결혼 전 동거의 확산과 결혼 후에도 혼인신고를 늦추는 풍조로 인해, 전체 이혼의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던 ‘결혼 1년 미만’의 이혼 건수가 급감한 것이 주요 원인”이라고 덧붙였다.


중년이혼


전통적인 가정관 붕괴되고, 개인 삶의 질 우선시


이혼율이 줄어드는 가운데, 유독 황혼이혼만 늘어나는 이유는 뭘까? 전문가들은 기대수명의 연장, 결혼에 대한 사회적 인식변화, 여성의 경제적·사회적 위상강화 등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진 결과로 분석한다. 전통적인 가정관이 붕괴되면서 ‘가정의 유지’라는 가치보다 ‘개인의 삶의 질’이 우선시되었으며, 평균 수명의 증가로 불만족한 결혼 생활에서 벗어나 남은 인생이라도 행복하게 살고 싶어하는 의지가 더욱 강해졌다는 것이다. 100세 시대에 접어들면서 중년 이후의 삶이 크게 늘어나자, 웬만해서는 참고 살던 중장년 부부들도 더 이상 참지 않고 개인의 행복을 찾아 이혼을 감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재산분할 청구권 도입이나 배우자 연금법 등의 개정으로 인해 전업주부인 여성들도 이혼 후 경제적으로 독립이 가능하게 된 점도 황혼이혼 증가에 한몫하고 있다.


신 교수는 “황혼이혼은 중년부부에게 어느 날 갑자기 닥친 위기의 결과라기보다는 그동안 쌓여온 결혼 생활에 대한 불만이 자녀들의 성장을 계기로 더는 참지 않고 폭발한 현상”이라고 설명한다. 즉, 부부갈등을 조기에 해결하지 못하고 중년 이후까지 끌고 오면서 갈등이 심화된 것이 원인이라는 것이다.


대기업 임원으로 일하는 김윤수(59·가명) 씨는 얼마 전 외동딸을 시집 보낸 후 줄곧 마음의 적적함을 느꼈다. 김씨는 앞으로는 아내와 사이 좋게 여행이라도 다니며, 아내가 좋아하는 사교댄스도 함께 배울 요량으로 아내에게 “퇴직 후엔 당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함께하면서 행복한 노후를 보내자”고 제안했다. 그러자, 자신의 마음 씀씀이에 크게 감동할 줄 알았던 아내는 대뜸 이렇게 말했다. “이제 와서 시간을 함께 보내겠다니 기가 막히네요! 그동안 내 인생은 당신 때문에 엉망진창이었다고요! 정말 내가 행복하길 원한다면 당장 이혼해줘요!” 오랜 세월 동안 두 아이 교육과 가정 살림을 자신에게만 떠맡기고 바깥일에 매달렸던 남편을 더는 용서할 수 없었던 김씨의 아내는 딸의 결혼을 계기로 이혼을 결심한 것이었다. 마침 변호사까지 알아보던 참에 남편의 눈치 없는 제안에 그만 참지 못하고 분통을 터트렸다고 한다.


황혼이혼을 요구하는 쪽은 여성이 3분의 2 정도로 많은 편이다. 신 교수는 이런 현상에 대해 “남편들이 결혼을 제도가 아닌 관계 문제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즉 ‘제도나 규범’으로 결혼이 유지되던 과거와 달리, 오늘날에는 쌍방의 노력으로 결혼을 지속할 수 있는 ‘관계’를 형성해가야 하는데, 특히 한국의 남편들은 이런 관계를 위한 노력을 게을리해왔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일본, 남편의 황혼이혼 요구 급증


일본 후생성에 따르면 2015년 일본의 조이혼율은 1.8건을 기록, 러시아(4.5), 미국(2.8), 영국(2.0), 한국(2.1) 등에 비해 비교적 낮은 편이다. 이혼율은 연령별로는 30대가 가장 높았으며 시기별로는 결혼 후 5~9년의 이혼율이 가장 높았다. 전 연령층에 걸쳐 이혼율이 줄고 있지만, ‘황혼이혼(일본에서는 주쿠넨리콘 熟年離婚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은 최근 10년간 두 배 이상으로 늘었다. 일본의 황혼이혼은 2007년 연금법 개정으로 이혼 후에도 아내가 남편의 연금을 분할받을 수 있게 되면서 더욱 늘었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아직까지 ‘황혼이혼’ 하면 보통 경제력을 상실한 남편이 아내로부터 버림받는 경우를 떠올리기 쉽지만, 최근 일본에선 남편 쪽에서 황혼이혼을 요구하는 경우가 급증했다. 이들 남편이 황혼이혼을 결심하는 주요한 이유는 단지 ‘여자문제’ 때문은 아니라고 한다. 이혼 카운셀러인 오카노 아츠코 씨는 “10년 전까지만 해도 여성이 (황혼)이혼을 요구하는경우가 80%에 달했지만, 최근에는 남편이 먼저 이혼을 요구하는 케이스가 40%에 이른다. 평균수명이 늘어나면서 남편들이 ‘이 여자와 20년 이상 남은 노후를 함께 보낼 수 있을까’를 고민한 끝에 이혼을 결심하는 사례가 늘고 있는 것이다” 고 분석했다.


도쿄에 거주하는 결혼 30년차인 후지키 나오토(57·가명) 씨는 전업주부인 아내(54)와 이혼을 결심하고, 현재는 별거 상태에 있다. “아이들이 다 커서 독립하고 나서는 아내에게 부업이나 자그만 가게라도 하면서 사회생활을 해보라고 권했다. 그런데 아내는 귀찮다며 집에만 틀어박혀 있다. 뭐든지 배워보라고 말해도 도무지 관심이 없다. 아무런 외부활동이 없는 아내와의 대화는 당연히 집안일뿐이고, 공통 관심사가 없다 보니 대화가 오래 지속될 리 없다. 집안을 돌보며 열심히 살아온 아내를 미워하는 것도 아니지만 남은 평생을 아내와 계속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 왠지 가슴이 답답해진다.”


정년퇴직을 앞두고 황혼이혼을 결심한 다카하시 노부오(63·가명) 씨는 1년 반 전에 아내에게 위자료를 지불하고 이혼했다. 아내와 특별히 사이가 나쁘지는 않았지만 아내로 인해 자신의 취미활동마저 구애받는 일이 못마땅했기 때문이다. 다카하시 씨는 이혼을 한 뒤로 오히려 젊어진 기분이라고 말한다. “아내와 헤어지고 혼자 살게 되면서 취미활동도 맘껏 할 수 있고 금전적으로도 여유가 생겼다. 여성들이 이혼남이라고 기피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인기가 있는 것 같다.”


오카노 씨는 황혼이혼을 결심하는 용감한(?) 남편들이 늘어난 배경의 하나로 독신 남성들이 살기 편한 사회가 되었다는 점을 꼽는다. “예전에는 아내가 이혼을 요구해오면, 요리나 가사 등이 서툰 남편으로서는 참담한 홀아비 생활을 보내야 했지만, 최근 10년 동안 사정이 많이 달라졌다. 편의점 도시락도 혼자 사는 시니어들을 의식한 상품 개발에 주력하고 있으며, 가사대행 서비스도 보편화되었다. 또한 요리나 가사가 가능한 남편도 늘어나서 아내가 없어도 생활하는 데 아무런 불편을 느끼지 않게 되었다. 바로 이점이 이혼을 요구하는 남편이 늘어난 원인의 하나가 될 것이다.”


결국 황혼이혼의 근본적인 해결책은 부부갈등이 축적되지 않도록 그때그때 관리해나가는 것이라고, 신 교수는 조언한다. 그는 부부관계가 악화되는 세 가지 계기가 있다고 설명한다. 첫째, 남편의 경제력이 떨어지거나 가정이 경제적 어려움에 봉착했을 때다. 둘째는, 고부갈등이나 처가와의 갈등 등으로 원(元)가족과의 갈등이 심화될 때다. 셋째는, 초기 양육기에 남편들의 협조가 이뤄지지 않았을 경우다. 신 교수는 “각 갈등의 초기단계에서 적극적으로 대응하여 풀어가는 것이 중년 이후의 파국을 막을 수 있는 가장 좋은 해결책”이며, “이를 위해서는 부부문제 상담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중요하지만 비용이 만만치 않다. 따라서 정부에서 지원하고 있는 건강가정지원센터가 그 역할을 수행할 할 수 있도록 하는 보완책이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사후이혼

죽어서라도 결별하고픈 아내들


남편의 황혼이혼이 아내에 대한 반격이라면 최근 일본에서 크게 유행하는 ‘사후이혼’은 아내들의 반란이라 할 만하다. 도쿄에 거주하는 야마다 후미코(71·가명) 씨는 지난 연말 남편과 사별했다. 후미코 씨의 남편은 유명증권사에서 이사까지 지낸 엘리트였지만 가정에는 소홀한 편이었다. 남편 퇴직 후에도 부부 사이는 개선되지 못했고, 후미코 씨는 가부장적인 남편이 집에 있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남편이 간암 진단을 받은 3년 전부터는 남편의 병수발로 인해 자기만의 시간을 전혀 가질 수 없었다.


후미코 씨는 남편의 49제를 마친 후 ‘사후이혼’을 위한 수속에 들어갔다. “남편과 46년을 함께 살았지만 한 번도 살가운 정을 느껴보지 못했다. 남편이 집에 있을 때는 무슨 꼬투리라도 잡힐까 전전긍긍했다. 아이들이 결혼하면 남편과 이혼할 생각이었지만 (남편이) 암에 걸리는 바람에 시기를 놓쳤다. 이대로 죽게 되면 남편과 같은 무덤에 묻혀야 하는데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것 같다. ‘사후이혼’을 해서 남편에게서 독립하고 싶다.”


요코하마에 거주하는 무라타 요시코(61·가명) 씨는 결혼 후에도 일을 계속하는 것 때문에 시어머니와 마찰이 끊이지 않았다. 지방에 단신으로 내려가 있는 남편이 바람을 피웠을 때도 “남자 혼자 지방에 내려 보낸 네 탓”이라며 자신을 질책했던 시어머니와는 결코 융화될 수 없는 사이이다. 그러던 중 남편이 직장에서 받은 건강검진에서 ‘암’이 발견됐고, 의사로부터 손을 쓸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요시코 씨는 현재 병원에 입원한 남편의 임종을 준비하면서 사후이혼을 계획하고 있다. “남편은 내가 상주가 되어 장례를 치러 주길 바란다. 이렇게 된 이상, 남편 장례는 내가 치를 생각이다. 하지만 남편의 장례가 끝난 뒤에는 시어머니와 인연을 끊고 싶다. 곧바로 사후이혼 수속을 밟을 생각이다.”


‘사후이혼(死後離婚)’이란 말 그대로 죽은 뒤에 이혼한다는 의미이지만, 일본 법률상 배우자의 사망 후 이혼이 성립되지 않는다. 그러나 배우자의 사망 후, 그 시댁 및 처가와의 절연을 원하는 사람들은 ‘인척(姻戚)관계 종료신고서’를 관공서에 제출함으로써, 인연을 끊을 수 있다. 일본의 호적법에 따르면 결혼으로 맺어진 친척관계(=인척관계)는 이혼으로 종료되며, 배우자가 사망한 경우는 남은 배우자가 관계를 종료하고 싶다는 의사를 표시해야 종료될 수 있다.


다시 말해 이혼을 하면 배우자의 가족과도 자동적으로 인연이 끝나지만, 사별하게 되면 배우자 가족과의 관계는 지속된다. 이럴 경우에 ‘인척관계 종료신고서’를 작성해서 관공서에 제출하면 사별한 배우자의 부모 및 형제들과 인연을 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이혼과 같은 효력을 발휘하기 때문에 ‘사후이혼’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다. 사후이혼은 특히 여성들에게 크게 어필하고 있다. 일본 법무성에 따르면, 일본에서 ‘사후이혼’(인척관계 종료신고)의 신청 건수는 2010년에는 1911건이었으나, 5년 후인 2015년도에는 2783건으로 급증했다. 여성들이 사후 이혼을 감행하는 무엇일까?


첫째는 ‘같은 무덤에 묻히고 싶지 않다’는 이유다. 일본의 장례문화를 보면, 화장 후에는 가족 묘지에 가족의 유골을 합장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런 문화에 대한 여성들의 반발심이 사후이혼을 결심하는 계기가 된다. 일본의 다이이치 생명(第一生命)이 실시한 ‘무덤에 관한 의식조사 2015’에 따르면 ‘부부는 같은 무덤에 들어가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그래야 한다’는 대답이 과반수를 넘어서는 가운데, 남성의 12.6%, 여성의 23.1%가 ‘같은 무덤에 들어갈 필요가 없다’고 대답했다. 특히 여성은 40대 주부층에서 가장 높았는데, 결혼만족도가 가장 낮은 연령층으로 ‘결혼만족도’와 ‘한 무덤’의 상관관계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인척관계 종료신고’를 통해 ‘사후이혼’이 성립되면 아내는 남편의 가족무덤에 들어가지 않아도 된다. 자식들에게 남편과 같은 무덤에 들어가고 싶지 않다는 유언을 남기더라도 자식들이 자신을 가족무덤에 합장할 가능성도 있다. 이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서는 사후이혼이 가장 안전한 방법인 것이다.


둘째는 시댁과 인연을 끊고 싶다는 이유다. 남편이 살아있을 때에는 할 수 없이 시댁과 왕래했지만 남편 사후에는 더이상 시댁의 골치 아픈 일에 관여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인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고령자 개호(介護, 간병과 돌봄)에 대한 가족부담이 큰 일본 사회에서, 사후이혼이라는 선택지를 통해 남편의 사후에 시부모의 개호를 떠맡아야 하는 ‘부양의 의무’에서 벗어나려는 것이다.


졸혼시대

의무는 벗어나도 권리는 유지할 수 있어


사후이혼의 최고의 메리트는 ‘의무’에서는 벗어나지만 ‘권리’는 그대로 유지된다는 점이다. 우선, 남편의 ‘유족연금’을 수령할 수 있다. 일본의 연금제도는 피보험자가 60~65세에 사망한 경우, 남은 배우자에게 연금이 상속되는데 이혼한 경우는 이에 해당되지 않는다. 그러나 사후이혼은 법률상의 이혼이 아니어서 유족연금을 수령할 수 있다. 법률상의 이혼이 아니라는 점 때문에 남편 유산을 상속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시댁의 유산도 상속이 가능하다. 남편이 사망하게 되면 남편 몫의 시부모의 유산이 자식들에게 ‘대습상속’되기 때문에, 자녀들을 이용해 유산을 상속받을 수 있다. 모친이 시댁과 인척관계를 정리해도 그 자녀들과 시댁은 혈연으로 이어진 관계이기 때문에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이다.


사후이혼의 실태를 정리하여 화제를 모은 책 <사후이혼>에서는 일본 주부들이 사후이혼을 감행하는 이유를 다음의 네 가지로 정리했다. ①생전에 남편과 사이가 좋지 않았지만 유산과 유족연금을 위해 남편이 죽기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②남편과는 사이가 나쁘지 않았지만 시댁과 사이가 나빴다 ③남편의 사후에는 묘지관리와 시부모의 부양을 하고 싶지 않다 ④시댁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다.


사후이혼의 단점은 무엇일까? <사후이혼>의 공동저자이자 법무사인 나카무라 마미 씨는 “원래부터 아내는 시부모의 유산을 상속받을 권리가 없기 때문에 사후이혼을 한다고 해도 금전적으로 손해를 볼 일은 없다. (사후이혼의) 유일한 단점이라면 두 번 다시 남편과 친인척관계가 될 수 없다는 것 정도다”라고 단언했다.


그렇다면 왜 아내와 사별한 남편들은 사후이혼에 대해 소극적인 것일까? 나카무라 씨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원래부터 남편에게는 아내의 부모를 부양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특히 고령의 남성들은 개호(간호와 돌봄)를 현실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만일 아내의 부모가 개호가 필요하게 되면 시설에 맡기면 그만이라고 생각한다. 이 점이 바로 남녀 간의 차이다.”


애정표현에 인색한 일본 남성들이 프러포즈에서 자주 사용하는 ‘한 무덤에 묻히고 싶다’는 말은 일본의 미혼 여성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로맨틱한 대사다. 그러나 사랑은 퇴색되고 의무와 희생으로 변질된 결혼생활을 감내해야 했던 일본의 아내들은 이제 ‘죽어서까지 함께 있고 싶지는 않다’며 섬뜩한 반란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결혼한 지 40년째를 맞이하는 이병수(67·가명) 씨는 5년 전부터 강원도 홍천으로 내려와 전원에서 생활한다. 집 앞에 300평의 텃밭을 마련한 이씨는 매일 아침 5시에 일어나 여느 농부처럼 부지런히 밭을 일군다. 이씨는 재배한 고구마며 감자, 배추 등을 자식들의 집에 나눠 보내는 것이 삶의 낙이다. 한 겨울에는 홍천의 혹독한 추위를 피해 서울 본가에서 아내와 함께 생활한다. “홍천에 내려오면서 아내와 ‘졸혼’했다. 특별히 사이가 나빠서라기보다는 각자의 삶의 스타일이 다르다 보니 따로 살게 되었다. 아내는 도시생활을 즐기는 타입이고, 나는 시골의 조용한 생활이 편한 것뿐이다.”


백일섭


결혼=동거에 구애되지 않는 ‘졸혼’


한국의 중장년 부부들 사이에서 최근, ‘졸혼’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부부관계가 유행하고 있다. ‘졸혼(卒婚)’은 일본의 여성지 기자 출신인 스기야마 유미코 씨가 2004년에 발표한 저서 <졸혼시대(일본 제목은 卒婚のすすめ)>에서 파생된 일본식 신조어로, 그녀의 말을 빌리자면 “자녀를 독립시킨 시니어 부부가 각자의 인생 후반기를 위하여, 결혼생활을 유지하면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고자 하는 라이프스타일”이다. 즉, 결혼=동거에 구애되지 않고 부부의 연은 이어가면서도 따로 생활하면서 개인의 삶을 우선시하는 새로운 결혼형태에 대한 제안이라 할 수 있다. 스기야마 씨는 “집도 오래되면 여기저기 고장이 나고 수리를 해야 할 곳이 생긴다. 부부관계도 마찬가지”라며, “앞으로 10년 후, 혹은 아이들이 독립한 후 등등 인생의 절기마다 결혼 생활과 부부관계를 되짚어 보고 서로 고쳐야 할 부분은 고치고 새로운 한걸음을 내딛기 위한 지혜가 바로 졸혼이다”라고 설명했다.


오랫동안 무관심하게 가정을 방치하던 남편이 정년퇴직을 계기로 갑자기 아내와 친밀한 관계를 가지려고 하면 아내들은 오히려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일본의 심료내과(心療內科) 전문의인 구로카와 노부오 박사는 남편이 정년퇴직 후 집에 있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가 되어 각종 질병증세가 발생하는 아내들이 다수 있다고 하는 ‘남편재택 스트레스 증후군(主人在宅ストレス症候群)’을 주장했다. 구로카와 박사에 따르면, 남편이 집에 있는 것이 원인이 되어 고혈압, 위장병, 십이지장궤양, 천식뿐 아니라 우울증이나 각종 강박증 등의 질병이 발생하는 중년 여성이 많은데, 남편들은 대부분 이를 자각하지 못한다. 구로카와 박사는 주로 남편에게 순종적인 아내일수록 ‘남편재택 스트레스 증후군’이 많이 발생하며, 증상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부부가 따로 생활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제안했다.


전문가들은 정신적, 정서적, 신체적인 문제로 인해 의지할 수 있는 동반자가 가장 필요한 시기인 중년 이후의 삶이 위태로워 질 수 있는 황혼이혼 대신, 졸혼이 중년의 부부문제 해결을 위한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특히 우리 사회에서 가장 많은 인구를 차지하는 베이비붐 세대(1955~63년생)의 황혼이혼이 증가하면 한국 사회 전체의 가족제도 안정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러한 의미로도 졸혼이라는 새로운 형태를 통해 가정의 틀은 깨지 않은 채, 개인의 삶의 질과 만족도를 높일 수 있게 하는 것이 노후 생활의 안정을 위한 지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곽소현 경기대 심리학과 초빙교수는 “시댁문제나 처가문제, 혹은 자녀교육 등으로 갈등이 많고 책임도 과도하여 심리적으로 지쳐있는 부부라면, 졸혼 선언을 통해 각자의 역할에 대한 휴식기를 주는 것도 황혼이혼을 막을 수 있는 방편이 될 수 있다”고 제안한다. 그는 “우리 사회는 이혼에 대한 부정적인 사회통념이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에, 황혼이혼보다는 졸혼에 대해 좀 더 허용적인 분위기가 형성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졸혼은 경제적인 여유가 없으면 힘들다는 한계가 있다. 부부관계는 유지하면서 따로 살게 되면 그만큼 지출도 늘어나고 무엇보다 따로 살 집을 마련하는 것이 큰 문제이다. 졸혼이 누구에게나 잘 맞는 것도 아니다. 곽소현 교수에 따르면, 외로움을 잘 느끼는 사람, 배우자에게 정서적인 의존도가 높은 사람, ‘결혼 생활을 유지해야 성공적인 삶이다’라고 하는 생각이 강한 사람, 착한 아내, 착한 남편에 대한 책임감을 강하게 느끼는 사람들은 졸혼은 피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졸혼의 역기능도 존재한다. 곽 교수는 “졸혼을 선언했지만, 여전히 법적 부부이므로 서로를 간섭하거나 통제하려는 시도는 계속될 수 있다. 또한 부부나 부모로서 책임져야 할 부분까지도 회피하는 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다”고 충고한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