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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

경찰 개혁 관련 관심 집중, '한국판 FBI' 기대?

어떤 권력에도 흔들리지 않는, 어떤 명예에도 고개숙이지 않는 '민중의 지팡이'. 우리 모두가 꿈꿔왔던 경찰이 아닐까. 새정부가 들어선 뒤, 경찰 개혁 관련 유언비어가 SNS에 일파만파 퍼졌다. 인터넷에 떠도는 뜬소문이 모두 진실은 아닐테지만, 사람들은 '한국판 FBI'라 불릴 수 있는 경찰 개혁을 기다리고 있다.  

 

▎검찰 개혁의 한 축인 검경 수사권 조정과 함께 경찰의 수사시스템에 어떤 변화가 생길지 관심이 모인다. 지난 3월 16일 충남 아산 경찰대 대강당에서 경찰대학생·간부후보생의 합동임용식이 열렸다.

▤ 경찰 개혁 관련 뜬소문, 시선 집중


6월 27일 오후, 한 통의 카카오톡 메시지가 급속히 유포되며 경찰 안팎이 크게 술렁였다. ‘경찰 개혁 관련’이라는 제목의 이 메시지는 경찰 조직을 통째로 뒤흔들 만한 중대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국가수사본부장 외부 선출, 차관급 3년 단임’‘본청 특수 수사과·지능범죄수사대 해체, 서울경찰청 수사부서로 재편’ ‘서울청 2차장 신설, 국가수사본부장 지휘하에 서울청 인지 및 기획수사 부서 관리’‘일선서 지능범죄수사팀 폐지, 공공경제팀으로 통합’.


상당히 구체적이고 민감한 내용을 담은 조직개편 방안이었다. 메시지 말미에는 ‘위 내용으로 내일 중 BH(청와대) 보고 예정’이라고 나와 있었다. 경찰 출입기자들 사이에서도 동일한 내용의 메시지가 SNS를 통해 유포됐다. 메시지를 받은 경찰들은 동료와 이를 공유하면서, 일부는 사실 여부 확인을 위해 여기저기 전화를 돌렸다. 경찰청에도 기자들의 문의전화가 수십 통 걸려왔다. 메시지 내용이 사실이라면 경찰 조직의 대대적인 개편과 함께 수사 시스템에 획기적 변화가 예상됐다.


기자들의 문의전화가 쇄도하자 경찰청은 즉각 해명자료를 냈다. 경찰청은 “해당 메시지는 경찰청이 작성한 것이 아니다. 일부 검토하고 있는 부분도 있지만 확정된 안이 아니다”며 부인했다. 경찰청은 또 “특히 ‘내일 중 BH 보고 예정’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한마디로 ‘가짜 뉴스’라는 것이었다. 

 

 

▒ 검찰 수사지휘권 박탈 놓고 오보 논란


경찰 조직개편 내용을 담은 이날의 ‘SNS 소동’은 해프닝으로 끝났다. 하지만 일선 경찰에서는 “시간의 문제일 뿐 어떤 식으로든 수사 시스템에 변화가 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이런 가운데 이번에는 법무부 장관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돌출 이슈가 터져 나왔다. 


7월 14일 <조선일보>는 1면 하단에 ‘청와대 검찰 수사지휘권 박탈 첫 액션’이라는 제목의 단독 기사를 게재했다. 박상기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인사청문회에 앞서 국회에 제출한 서면답변서의 내용을 둘러싼 박 후보자 측과 청와대 민정수석실 간에 이견이 노출됐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청와대는 “기사 내용이 사실이 아니다”며 즉각 부인했다.


청와대가 ‘검찰의 수사지휘권 박탈’ 관련 보도를 오보로 규정하며 강하게 반박해 이 문제는 더는 확산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사안을 놓고 일각에서는 다른 해석을 내놓았다. 더불어민주당 P의원은 “<조선일보> 보도가 상당히 자극적이고 과장된 측면이 있어 보이지만 100% 오보라기보다는 일부 조율을 거쳤을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경찰이 수사개시권을 확보함으로써 검경 수사권 조정에서 약간의 진전을 이뤄냈다. 2011년 7월 11일 경찰 수사권 확

대를 앞두고 전국 경찰서의 수사·형사과장 워크숍이 서울 미근동 경찰청사에서 열렸다.

 

▒ 새로운 경찰 수사시스템 핵심은 독립성

 

검찰의 수사지휘권 박탈 문제는 청와대나 법무부 장관 등 정부의 의지만 갖고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은 아니다. 1954년 형사소송법 제정 후 몇 차례 개정을 거치기는 했지만 검사의 사법경찰관 수사 지휘는 지금도 유지되고 있다. 


2011년 형사소송법 개정으로 경찰의 ‘수사개시권’을 명문화한 것이 그동안 수사권 조정에서 경찰이 얻은 작은 소득이었다. 하지만 경찰 수사는 여전히 검사의 지휘하에 있고, 경찰은 이를 따라야 한다. 연간 200만 건에 가까운 사건 처리건수 중 경찰은 대략 98%가 넘는 사건을 처리한다. 검찰의 사건 처리건수는 2%가 채 안 된다. 하지만 검찰은 언제든지 수사지휘권을 발동해 경찰 수사에 간섭할 수 있다.


김인회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최근 한 토론회에서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수사권·기소권이 분리되더라도 검찰의 수사권과 수사협조요청권을 완전히 배제하기는 어렵다”고 전망했다. 그는 이어 “경찰의 수사가 불충분한 경우 (검찰이) 수사보완을 요청하든지, 아니면 검사가 일부 수사를 보충하든지, 아니면 영장청구 과정에서 수사보완을 명하는 식”의 방법을 제시했다. 


김 교수는 한 발 더 나아가 수사 대상에 따라 검경 외에 관련된 국가기관이 전문성을 바탕으로 조사에 나서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가령 재벌의 갑질과 같이 민간 분야에서 발생하고 경쟁의 공정성을 깨는 부패 행위는 경찰이 아닌 공정거래위원회가 나서면 된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사법권을 부여받은 특별사법경찰(특사경) 제도를 금감원, 국세청, 식약처 등 국가 각 기관이 활용하면 가능하다. 


경찰의 수사시스템도 지금과는 달라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수사의 공정성과 투명성, 독립성을 최대한 보장하는 쪽으로 바뀐다는 얘기다. 이를 두고 경찰 안팎에서는 이른바 ‘한국형 FBI’ 조직을 만든다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한국형 FBI’의 특징은 ‘특수수사’를 전담하는 조직이 아닌 ‘수사의 독립성’에 방점이 찍힌다. 정치권은 물론이고 경찰청장과 각 지방청장 등 조직 내 최고위층의 입김에서 자유로운 수사 조직 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FBI는 정치적 입김으로부터 철저하게 독립성을 유지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코미 전 국장은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연루된 ‘러시아 스캔들’ 수사와 관련해 미 상원 청문회에 나와 “대통령의 외압이 있었다”는 내용의 증언을 해 파문이 일었다. 2013년 10월 28일 워싱턴DC FBI 본부에서 열린 국장 취임식에서 선서를 하고 있는 제임스 코미 국장(가운데)과 버락 오바마 대통령(왼쪽).

 

▒ 영국의 ‘국가범죄수사청’도 검토 대상 


독립된 수사 조직을 어느 단위에서 꾸릴 것인가에 따라 그 형태는 조금씩 다를 수 있다. 우선 경찰청에 산하에 독립 수사 조직을 둘 경우다. 이 방안은 영국의 NCA(National Crime Agency, 국가범죄수사청)가 외형상으로는 비슷하다. NCA는 내무부 산하에 있는 영국의 최대 규모 수사 조직이다. 조직범죄, 마약·불법무기, 인신매매, 사이버범죄, 일부 경제범죄 등이 수사 대상이다. 


NCA의 수장은 내무부 장관이 지방경찰청장 중 1명을 수장으로 임명한다. 하지만 한국에서 이런 조직이 만들어질 경우 조직의 수장은 영국의 NCA와 다르게 갈 가능성이 있다. 즉 독립성과 중립성 보장을 위해 외부개방형 채용 방식을 통해 수장을 뽑을 수 있다. 수사경찰에 대한 인사권도 경찰청장이 아닌 독립수사청(혹은 수사본부) 수장에게 부여하는 것도 한 방안이다.


경찰 내 일부에서도 “핵심은 검찰에서 수사권을 떼내는 것이지 회수한 수사권을 경찰이 모두 행사하겠다는 것이 아니다”는 말이 나온다. 수사권 조정이 이뤄진 후에는 검찰도 경찰도 민감한 수사에 손대지 않는 게 최선의 방안이라는 것이다.


이는 과거 사례를 통해 얻어진 교훈이다. 이제부터 소개할 두 사건의 내막은 검찰과 경찰이 하나의 사건을 놓고 얼마나 심하게 대립했는지, 또 양측의 갈등이 어떤 결과로 이어졌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검경 수사권 조정 문제로 양측은 수차례 갈등을 겪었다. 2011년 6월 20일 김황식 총리가 수사권 조정 관련 발표를 하고 있다. 당시 경찰은 수사개시권을 갖고, 검찰은 수사지휘권을 유지하게 됐다. 왼쪽부터 임채민 국무총리실장, 이귀남 법무부 장관, 맹형규 행정안전부 장관. 이 장관은 브리핑 내내 굳은 표정이었다.

 

▒ 검경 눈치 보다 알맹이 없는 개혁안 우려도


지난 두 달 동안 검찰 개혁을 놓고 고심에 고심을 거듭해온 국정기획자문위는 어떤 결론에 도달했을까? 여권과 검경 안팎에서 나오는 얘기를 종합해보면 공수처 연내 설립 추진, 장기적 과제로 검찰이 갖고 있는 수사권과 기소권의 분리라는 큰 원칙과 방향만 재확인했을 뿐 아직까지는 알맹이 있는 구체안이 마련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적 기대와 달리 향후 전망이 그리 밝지만은 않다는 얘기다. 국정기획자문위가 검찰과 경찰 측 양쪽이 제시하는 안을 검토했지만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지는 모양새를 보였을 때 자칫 터져 나올 수 있는 반발을 너무 우려해 어정쩡한 입장이라는 것이다. 여권 한 관계자의 얘기다.


이런 가운데 검경 양측이 무언의 시위라도 벌이듯 최근 수사 경쟁이 벌어지는 듯한 흥미로운 양상도 보이고 있다. 검찰은 갑질을 테마로 한 기업범죄, 정부가 강조하는 국방개혁의 한 축인 방산 비리 등의 수사에 뛰어든 상태다. 


경찰 역시 대한항공을 압수수색하는 등 대기업 총수비리 의혹을 쫓고 있다. 경찰은 또 검찰이 무혐의 처리한 방석호 전 아리랑TV 사장의 횡령 혐의를 재수사해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하기도 했다. 검찰의 수사 결과를 경찰이 뒤집은 것이다. 검경의 물밑 싸움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는 가운데 검찰 개혁과 검경 수사권 조정의 최종안은 어떤 시나리오로 나타나게 될까. 공수처와 한국형 FBI는 과연 현실화될 수 있을까. 국민의 눈은 국회와 청와대에 쏠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