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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bes Korea

프랑스 향수 회사 겔랑가의 데생 컬렉션

겔랑은 오랜 전통을 지닌 프랑스 향수회사이다. 겔랑가의 자손 다니엘 겔랑과 플로렌스 부부는 30년 이상 데생을 전문으로 수집한 전문 컬렉터이다. 부부는 컨템퍼러리 데생 상을 제정해 작가들을 발굴하고 지원해 왔다. 평생을 예술과 더불어 풍만한 삶을 실천한 부부... 다수 작품을 프랑스 국립박물관에 기증하며 미술 문화에 좋은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Florence & Daniel Guerlain 부부

▎Florence & Daniel Guerlain Copyright La fondation d’art contemporain Daniel et Florence Guerlain Photo by Marie Clérin
 

15세기 피렌체에서 가장 명망 높은 안드레아 델 베로키오(Andrea del Verrocchio)가 16세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자신의 공방에 제자로 받아준 계기는 다빈치가 그린 훌륭한 데생 때문이었다. 로댕의 데생은 조각으로 형상을 이끌어 내기 위한 첫 스케치 단계이며, 프랑크 게리의 데생은 한순간 건축가의 머리를 스쳐가는 건축물의 골조를 순간적으로 포착한 것이다. 이처럼 데생은 모든 예술가들의 잠재력을 드러내는 가장 근원적인 단계이다.

 

겔랑은 오랜 전통과 세련된 디자인을 자랑하는 프랑스 향수 회사다. 1828년 파리의 리볼리 거리에 피에르 프랑수아 파스칼 겔랑에 의해 겔랑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파스칼 겔랑은 1854년 나폴레옹3세의 부인 외제니 황후에게 황금색 꿀벌 모양의 향수 ‘오 드 콜론느(Eau de Cologne)’를 제안한 인물이다. 외제니 황후는 자신의 전용 향수로 파스칼 겔랑의 향수를 선택했고, 그 이후 겔랑의 향수 회사는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1994년 LVMH 그룹의 향수 & 화장품 계열 회사가 되기 전까지 150년이 넘는 동안 겔랑 가문이 경영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데생

▎First Dessin of Leonardo da Vinci [Study of a Tuscan Landscape (1473)]

 

전혀 다른 배경에서 자란 컬렉터 부부

 

다니엘 겔랑은 창립자의 둘째 아들의 둘째 아들인 자크 겔랑(Jacques Guerlain)의 손자이다. 자크 겔랑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인상주의의 작품을 수집했던 컬렉터였다. 예술에 대한 선조들의 열정은 다니엘 겔랑의 피 속에도 깊숙이 녹아 있다. 게다가 다니엘의 외할아버지는 건축가이면서 탁월한 수채화가였다. 예술이 없는 삶을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다니엘은 집안의 향수 가업을 물려받기보다는 자연의 생명체에 더 큰 관심이 있었다. 그는 건축·조경학을 수학했고 자연스럽게 작가들과 교류했다. 작가들을 통해 갤러리스트 마리옹 메이어(Marion Meyer)를 알게 되어 그를 통해 초현실주의 세계를 습득했고 만 레이(Man Ray)의 카트리느 드뇌브의 멋진 사진 또한 구입할 수 있었다.

 

다니엘의 배경과 달리 플로랑스는 가족 중에 컬렉터라곤 전혀 없었고 그녀의 집 벽에는 그 어떤 작품도 걸려있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의지로 샤또루(Châteauroux)의 보쟈르에서 예술사 야간 강의를 수학했다. 종종 조부모와 부모가 인상주의 작품을 비롯해 모던 아트 작품들을 수집한 컬렉터 친구의 집을 방문하면서 엄청난 걸작들을 직접 감상하는 특혜를 누릴 수 있었다. 그때 대작들 앞에서 느꼈던 벅찬 감동은 그녀의 마음 깊은 곳에서 떠날 줄 몰랐다. 플로렁스가 구입한 첫 컬렉션 작품은 프레드릭 브란동(Frédéric Brandon)의 데생이었다. 그녀는 구입한 데생보다 더 비싼 값을 주고 프레임을 했지만 그녀에게는 더없이 행복했던 순간이었다.

 

두 사람은 이렇게 각자의 예술 세계를 만끽하고 있었고 결혼 이후 부부 컬렉션을 국제적으로 끌어올려준 데이비드 웹스터(David Webster)를 만났다. 1984년부터 데이비드를 동반해 미국의 박물관을 함께 방문하면서 안목을 한층 더 높여 데생, 회화, 조각, 설치, 디자인 등의 작품을 꾸준히 컬렉션했다. 1994년 LVMH 그룹이 겔랑 회사를 흡수하면서 아트 컬렉션의 새로운 경제적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다. 1994년은 그들이 이전의 모든 직업 활동을 중지하고 데이비드 웹스터의 도움으로 오로지 컬렉션을 위한 삶을 시작하기로 결정한 해이다.


Susan Hefuna Summer NYC 2011

▎Susan Hefuna Summer NYC 2011, 2011. white gouache and graphite pencil on tracing paper 52 x 63 x 4 cm framed Collection Florence et Daniel Guerlain ©André Morin

 

1996년 겔랑 컨템퍼러리 아트재단 설립

 

1996년에 그들은 다니엘 & 플로랑스 겔랑 컨템퍼러리 아트 재단(La fondation d’art contemporain Daniel et Florence Guerlain)을 파리에서 40㎞ 떨어진 외곽도시 메뉼(Mesnuls)에 세웠다.

 

프랑스에서 구입한 첫 번째 작품은 피오나 레(Fiona Rae)의 회화 작품이었다. 부부가 함께 구입한 첫 번째 데생은 1997년 런던의 작은 갤러리 제이 죠프링(Jay Jopling)에서 3만 프랑(약 4500유로)에 구입한 리차드 프린스(Richard Prince)의 [Joke painting] 작품이었다.

 

부부는 데생과 회화를 동시에 꾸준히 구입하다가 2004년 겔랑 프라이스(Prix Guerlain)를 제정하면서 본격적으로 데생 컬렉션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컬렉터들이 작품을 구입하기 전에 놓치지 않고 보는 정보 중 전시 경력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작가의 수상경력이다. 겔랑 부부의 특징은 작가의 수상 경력을 따라가기보다는 2006년에 컨템퍼러리 데생 상을 제정했다는 점이다. 이는 작가들을 발굴하고 지원하는 미술 시장을 이끌어가는 훌륭한 메세나·컬렉터의 모습이다.

 

Jorinde Voigt. Constellation of events

▎Jorinde Voigt. Constellation of events (1), 2014. ink, copper, pastel, and pencil on paper 77 x 56 cm Collection Florence et Daniel Guerlain Courtesy David Nolan Gallery ©André Morin
 

2007년부터 2년에 한 번 주어지던 상은 2009년부터 매해 이루어지고 있으며 부부의 컬렉션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엄격하게 선정된 위원회의 검열을 거쳐 선정되는 최후의 마지막 3명이 지명되고 그중 한 명이 수여 받는 이 상은 작가들에게는 미술계에 실력있는 드로잉 작가로 인식되는 매우 중요한 상으로 자리 잡았다.

 

이 상의 중요성을 2012년 수상한 독일 작가 조린느 보이트의 예를 들어 확인해보자. 당시 35세였던 그녀는 수상 이후 전 세계의 갤러리스트와 박물관에 연이어 여러 전시에 초대되었다. 2014년 비버리힐스의 가고지안 갤러리에서 공동전 [CLEAR]에 초대되었던 그녀는 현재 리손 갤러리(런던), 데이비드 놀란(뉴욕), 코닉(베를린) 등 다수 갤러리에서 홍보 중이며 에디션 작품은 H.M.Klosterfelde에서 제작한다. 독일의 여러 도시와 파리, 런던, 밀라노, 제네바 등의 유럽 도시 그리고 미국의 여러 도시와 홍콩과 베이징을 포함한 아시아에서 꾸준한 전시가 이루어지고 있다.

 

Tomasz Kowalski untitled

▎Tomasz Kowalski untitled, 2012 ink, wash and watercolor on paper 42 x 30 cm Collection Florence et Daniel Guerlain ©André Morin courtesy galerie carlier gebauer, Berlin

다수 작품 프랑스 국립 박물관 기증

 

세 명의 후보자로 올랐던 작가들도 이후 그 명성을 꾸준히 올렸다. 2013년 후보자였던 울라 본 브란덴버그(Ullia von Brandenburg) 역시 마르셀 뒤샹 상의 최종 4명의 후보에 올랐다.

 

겔랑 부부의 데생 컬렉션의 수가 늘어나면서 대중에 컬렉션을 공개하자는 제안이 들어왔다. 동시에 방대한 주제의 다양한 부부 컬렉션에 중심축(가이드라인)의 구성이 필요하다는 이브 르코앙트르(Yves Lecointre, Picardie 컨템퍼러리아트재단 지방기금 FRAC 디렉터)의 조언을 받아 더욱 신중한 컬렉션을 하기 시작했다. 데생을 향한 겔랑 부부의 여정은 이렇게 시간이 갈수록 새롭게 이어져 30여 년의 삶을 충만하게 해주고 있다.

 

선대 겔랑 가문의 컬렉션은 자손들에게 뿔뿔이 분배됐다. 그러나 데생 컬렉션 전체에 대해 깊은 애정을 지닌 부부에게 이는 상상도 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결국 부부 컬렉션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다수 작품들을 프랑스 국립 박물관에 기증하기로 결정한다. 38개국 200명 작가들의 데생 작품 1200점을 선정했고 30여 년 동안 부부를 황홀경에 빠트렸던 이 작품들이 퐁피두센터에 기증된다. 2012년에 기증을 받은 퐁피두센터에서는 기증 받은 작품들 중 400점을 2013~2014년에 전시했다. 미국에 비해 컬렉션 기증이 부진한 프랑스에서 이 부부의 결정은 매우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Florence & Daniel Guerlain 부부

▎Florence & Daniel Guerlain. Copyright La fondation d’art contemporain Daniel et Florence Guerlain


어떤 컬렉터가 될지 고민하게 하는 컬렉션

 

최근 퐁피두는 작품 300여 점을 기증 받았다. 여기에는 아마도 플로랑스 & 다니엘 겔랑 부부가 기증의 길을 열었기 때문에 프랑스 컬렉터들이 더욱 과감하고 신중한 결정으로 자신들의 컬렉션을 기증하는 결정을 내릴 수 있었던 것이다.

 

겔랑 부부 컬렉션의 특징은 ① 평생을 예술과 더불어 풍요로운 부부의 삶을 실천하고 있다 ② 길잡이 역할을 해주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늘 발전하는 컬렉션을 했다 ③예술의 모든 매체 중 데생이라는 한 가지 매체에 집중했다 ④데생 작가들을 발굴하고 후원하기 위한 재단과 상을 설립해 작가들의 미래에 토석을 넣어준다 ⑤컬렉션 작품 중 가장 중요한 작품들을 선별해 프랑스 국립 박물관에 기증했다 ⑥일반적으로 아트 컬렉션은 컬렉터의 풍요로운 삶과 직업에서의 탁월한 효율성에 기여한다. 그러나 겔랑 부부 컬렉션은 반대의 경우이다. 다니엘 겔랑의 건축 조경가의 경험은 조각 공원의 개축 등 공간의 창조에 뛰어난 감각을 부여했다. 플로랑스의 전 커뮤니케이션 활동은 재단에서 운영하는 다양한 이벤트를 외부와 소통하고 교류하는데 필요불가결한 능력이다. 즉 재단은 비영리 기관이지만 겔랑 부부는 전문 컬렉터로서 그 기질을 충분히 발휘하고 있다.

 

2017년 재단의 역사가 어느새 22년에 이르렀다. 플로렁스는 아트 컬렉션을 [예술품을 구입하는 것은 작품에서 다루어지는 주제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일종의 치료법이다] 다니엘은 [예술품 소유의 욕구는 자신에게 큰 기쁨을 주는 질병이다]라고 정의한다. 겔랑 부부는 우리에게 ‘예술과 함께하는 삶을 사는 컬렉터가 되는가 아닌가!’의 선택을 넘어 ‘어떤 유형의 컬렉터가 될 것인가?’ ‘어떤 컬렉션을 할 것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삶을 살고 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A study of drapery for a Salvator Mundi by Leonardo da Vinci Red chalk with pen and ink and white heightening on pale red prepared paper 16.4 x 15.8 cm circa 1504-08
 

데생을 거래하는 미술 시장은 해를 거듭하며 더욱 발전하고 있다. 파리에는 해마다 [드로잉 나우 파리] 아트 페어가 열리는데 수많은 데생 컬렉터들과 애호가들이 방문하고 있다. 이 외에도 비엔나, 벨기에 등 유럽의 여러 도시에서 컨템퍼러리 데생 살롱이 열리고 있다. 2017년 바젤 아트 페어에서도 로버트 롱고의 대형 데생 작품들이 컬렉터들의 발길을 유혹했다. 2017년 런던 프리즈 기간 동안 로열 아카데미(Royal Academy of Art)와 버나드 제이콥슨 갤러리(Bernard Jacobson Gallery)에서 마티스의 데생을 전시했었다. 데생은 꾸준히 고유의 자리를 지키며 동시에 디자인과 만화, 삽화 등으로 그 영역을 넓고 깊게 펼치고 있다.

 

1994년 빌 게이츠가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3080만 달러에 구입한 다빈치 노트는 과학자이며 식물학자인 다빈치의 상상력을 데생으로 표현한 기록지였다. 21세기 미술계의 가장 혁신적인 발견은 프랑스 루이 12세의 주문으로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크리스털 구를 들고 있는 예수님 [Salvator Mundi 살바토르 문티, 구세주 65.6 × 45.4㎝ 호두나무 목판위의 유채]이다. 이 작품은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경매 회사 수수료를 포함해 4억 5300만 달러에 판매되었다. 미술 경매의 모든 기록을 갱신한 다빈치의 작품에서 다시 한 번 천재 예술가가 그린 데생의 힘을 느껴본다. 겔랑 부부의 데생을 향한 열정이 결국은 예술의 뿌리를 찾아가는 컬렉터의 길임이 확인되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