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지난해 부동산 시장 안정화를 위해 8·2대책 등 고강도 규제책을 내놓았다. 정부의 잇단 규제책에 따라 최근 서울 아파트값이 안정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기반이 취약한 지방의 아파트값이 4개월째 연속 하락중이다. 준공 후 미분양이 1년새 두배로 늘어나는 등 집값·청약·미분양 등 주택시장 3대 지표가 모두 악화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지역 맞춤형 세제 지원등으로 거래시장의 숨통을 트이게 해야 하며, 주택건설 업체들도 무분별한 주택 공급을 지양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준공 후 미분양 물량 그래프

 

2009년 2월 12일. 정부는 이날부터 1년 간 지방 미분양 아파트를 산 후 5년 이내에 되팔면 양도소득세를 면제해 줬다. 서울과 수도권 일부 지역은 60% 감면해줬다. 당시 주택시장은 2008년 터진 미국발(發) 세계 금융위기로 서울·지방 가릴 것 없이 주택시장이 확 쪼그라들었던 때다. 시중은행의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연 8%에 육박하면서 전국의 집값은 급락했다. 분양시장엔 미분양이 가득했다. 특히 지방은 이른바 ‘불 꺼진 아파트(준공 후에도 미분양 상태인 아파트)’가 속출했고, 이로 인해 현진 등 당시 지방 주택시장을 주름잡던 중견 주택건설 업체의 줄도산이 이어졌다. 지방 건설 업계의 침체는 부동산중개업소·이사·인테리어 등 소규모 관련 업종까지 연쇄적으로 영향을 끼쳐 지역 경제에 큰 부담이 됐다. 그러자 정부는 팔리지 않고 쌓여 있는, 불 꺼진 아파트를 털어내기 위해 양도세 감면·면제 혜택을 내놨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전국의 미분양 주택은 2009년 3월 16만 5641가구로 정점을 찍은 후 조금씩 줄기 시작해 그해 말 12만3297가구를 기록했다. 이 같은 주택시장 침체는 이후에도 몇 년 더 이어졌다. 그런데 요즘 지방 주택시장이 당시를 떠올리게 한다. 집값·청약·미분양 등 주택시장 3대 지표가 모두 악화하고 있다. 지난해 8·2 부동산 대책 이후 힘이 빠지기 시작한 지방 주택시장은 지난해 말부터 본격적인 하락세로 접어들고 있다. 한국감정원의 전국주택가격동향조사에 따르면 3월 지방 집값은 0.04% 하락했다. 지난해 12월 하락세(-0.01%)로 돌아선 이후 4개월 연속 내렸다. 갈수록 하락 폭이 커져 올 들어서는 3개월 새 0.12% 떨어졌다. 이 기간 서울 집값이 2.37% 오른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적지 않은 신규 입주 물량이 대기하고 있어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때와 같은 침체가 재현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집값 하락 그래프

 

지방 집값 4개월 연속 하락

 


사실 지방 주택시장 침체는 지난해 정부가 고강도 부동산 대책을 내놓기 시작할 때부터 우려됐던 문제다. 노무현 정부 때 경험했듯이 8·2 대책 등 정부의 고강도 부동산 규제가 기반이 취약한 지방을 먼저 덮칠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여기에 조선·자동차 등 지역 경제를 떠받치는 핵심 산업이 휘청거리면서 지방 주택시장은 2008년 때를 떠올리게 한다. 우선 미분양 아파트가 급증하고 있다. 국토교통부가 집계한 2월 말 현재 전국 미분양 주택은 6만903가구로, 2015년 12월 이후 2년여 만에 다시 6만 가구를 넘어섰다. 이 중 83%가 넘는 5만933가구가 지방에 있다.

 

특히 지방 광역시와 세종시를 제외한 중소도시에서는 ‘불꺼진 아파트’가 쌓이고 있다. 중소도시의 준공 후 미분양 아파트는 8440가구로, 1년 새 두 배로 불어났다. 중소도시의 준공 후 미분양 아파트가 8000가구를 넘어선 것은 세계 금융위기 여파가 남아있던 2012년 이후 6년여 만이다. 한 주택건설 업체 관계자는 “아파트는 보통 미분양이 생겨도 공사하는 동안(약 3년)엔 대부분 팔리기 때문에 준공 후 미분양은 악성 중에서도 악성”이라며 “주택건설 업체의 돈줄을 조여 유동성 위기에 빠트리기도 한다”고 말했다.

 

분양시장에서는 또 청약경쟁률이 한 자릿수는 고사하고 소수점 이하로 곤두박질치고 있다. 강원·경북·충남·충북·제주 등지에서는 올 들어 분양한 단지마다 청약자가 한 명도 없는 등 모두 청약 미달 사태가 발생했다. 심지어 단지 전체가 미분양인 곳도 있다. 아예 분양을 포기하고 임대로 돌려 공급하는 단지도 생겨나고 있다. 한 부동산개발회사 대표는 “아파트 사업은 워낙 큰 돈이 들어가기 때문에 분양을 준비하다 멈추면 금융비용이 눈덩이처럼 불어 어려워진다”며 “이 때문에 주택시장이 갑자기 위축돼도 어떻게든 사업을 진행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부동산정보회사인 부동산 114에 올해 지방에서 분양 예정인 아파트는 지난해보다 약 28% 많은 20만 가구에 이른다. 이렇다 보니 주택사업자가 경기를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지표인 주택사업경기실사지수(HBSI)는 계속 하락하고 있다. 주택산업연구원(주산연)에 따르면 4월 HBSI는 3월보다 28.8포인트 하락한 62.7을 기록했다. 지난해 4월과 비교하면 23.1포인트 낮다. HBSI는 100 이상이면 사업 경기가 좋아질 것으로 보는 업체가 많다는 의미다. 100 미만이면 그 반대다. 주산연 측은 “1분기에는 회복세를 보이더니 4월 다시 큰 폭으로 하락했다”며 “본격적으로 하강 국면으로 접어든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주산연의 분석처럼 문제는 이제부터 시작일 수 있다는 것이다. 수급 불균형, 정부의 규제 정책 등 주택시장 본연의 문제도 심각한 데다 지역 경제를 떠받치고 있는 주요 산업이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국회 예산정책처도 4월 10일 발표한 ‘가계소득·부동산 시장·금융 및 원자재 시장 동향’ 보고서에서 “지난해 울산과 경북·경남 지역 집값이 많이 내렸는데 공급 과잉 부담도 있지만 지역 주력산업 침체가 집값 하락의 주요 원인이었다”고 분석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집값이 전국 평균 1.5% 오르는 동안 울산(-1.1%)·경북(-0.9%)·경남(-1.6%) 등지는 큰 폭으로 내렸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집값이 급등하는 것도 문제지만 급락하는 것도 문제”라며 “가뜩이나 고용이 얼어붙은 상황에서 집값 급락이라는 악재가 더해지면 지역경제가 무너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정부는 4월 5일 부랴부랴 통영시·고성군·거제시·창원시(진해구)·울산시(동구)·군산시에 지역경제 회복을 위해 1조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아파트

 


 

무분별한 주택 공급 자제해야

 


전문가들은 지방 주택시장의 경착륙을 막기 위해선 지역별 맞춤형 세제 지원 등을 강구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세제 지원과 대출 규제 완화 등을 통해 거래 시장의 숨통을 트이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정확한 상황 파악이 선행돼야 한다. 주택시장 특성상 단순한 통계로는 잡히지 않는 위험 요소가 많기 때문이다. 지역별로 세밀하게 위험 요인 분석과 이에 따른 선제적 대응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주택건설 업체도 밀어내기식 공급을 자제할 필요성이 있다. 경기가 좋다고 마구잡이로 땅을 사 미분양을 자초한 측면이 있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때도 주택시장이 활황이던 2005~2007년 공급을 대거 늘리고, 고가 분양을 한 것이 화근이 됐다는 지적이 많다. 예컨대 당시 광주광역시는 이미 2006년 주택보급률이 100%를 넘었는데도 매년 수만 가구씩 추가 공급했다. 전문가들은 “지방 주택시장의 경착륙을 막는 데는 정부뿐 아니라 주택건설 업체의 역할도 일정부분 필요하다”며 “무분별한 주택 공급만큼은 자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 황정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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