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년 새 3.3㎡당 6000만원 선에서 7800만원 수준으로 치솟은 서울 반포동 아크로리버파크 아파트. 강남권이 서울 집값 상승세를 주도하며 전체 거래 금액의 3분의 1을 차지했다.
30년 전인 1988년 지어진 서울 노원구 상계동 주공7단지. 2600여 가구의 대단지다. 79㎡(이하 전용면적)의 현 시세가 5억6000만원 선이다. 지난해 5월 5억원이었다. 최근 1년 새 서울 아파트값 상승세를 타고 꽤 올랐다. 상계주공7단지보다 9년 빨리 완공된 강남구 대치동 은마(4400여 가구). 76㎡ 시세가 상계주공7단지 79㎡의 3배 수준에 가까운 15억원이다. 1년 전엔 11억7000만원 정도였다. 상승률이 28%다. 은마가 상계주공7단지보다 상승률은 두 배가량, 오른 금액은 다섯 배 정도 차이 난다.
최근 1년 새 서울 아파트값이 많이 오른 가운데 강남·북간 격차는 더욱 벌어졌다. 지역 간 차이가 역대 최고 수준이고 구매력은 바닥권이다. 주택시장 지표가 치솟거나 곤두박질치면서 시장의 대세가 바뀔 전조로 보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시장에 상승세가 꺾이는 징후가 나타나면서 이런 분석에 힘이 실린다. 한국감정원의 주택가격동향조사 자료에 따르면 5월 기준으로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은 6억9000여만 원이다. 사상 처음으로 7억원을 눈앞에 두고 있다. 1년 새 1억2000만원 상승했다. 가격 상승률로는 8%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지난 1년 간 상승률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연간 단위로 최고다. 수도권 집값이 2014년 하반기부터 되살아나 열기가 달아오른 2015년보다 더 많이 올랐다. 2000년대 중반 집값 급등기 수준이다.
서울 집값 상승세는 강남권(강남·서초·송파구)의 힘이다. 지난 1년 간 강남구가 13.2% 뛰었다. 송파구는 15% 넘는 16.4%의 상승률을 기록했다. 서초구도 서울 평균 상승률을 웃도는 9%대다. 서초구 반포동 한강변의 아크로리버파크는 국내 최고가 아파트로 꼽힌다. 국민주택 규모인 84㎡(공급면적 114㎡)가 지난 2월 26억8000만원에 거래됐다. 공급면적 기준으로 부르는 평(3.3㎡)당 가격이 7800만원이다. 2015년 10월 역대 최고인 3.3㎡당 7000만원의 부산 해운대 엘시티 펜트하우스 전용 244㎡ 분양가를 뛰어넘는 금액이다. 1년쯤 전인 지난해 5월 실거래가격은 19억원 선이었다. 1년 새 7억원가량 뛰었다. 서울 아파트 한 채가 굴러들어온 셈이다.
1년 새 서울 아파트값 급등
강남권의 힘은 거래량보다 돈이다. 2016년 말 기준으로 강남권 아파트는 33만여 가구로 서울 전체(160여만 가구)의 20%다. 2017년 한 해 강남권 거래 건수는 서울의 19%인 2만 여건이다. 재고와 거래 건수의 비중이 비슷하다. 지난해 강남권 아파트 거래금액은 총 20조원으로 서울 전체 금액(61조원)의 3분의 1을 차지한다. 거래금액 비중이 재고나 거래 건수의 1.5배가 넘는다. 거래 건수가 비슷해도 가격은 다른 지역보다 훨씬 비싸고 상승폭이 크다 보니 자연히 움직이는 돈도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지난 4월 말 발표된 올해 공시가격에서도 강남권의 위력이 확인된다. 공시가격은 매년 1월 1일 기준으로 정부가 감정평가를 통해 거래 가능성이 큰 ‘적정가격’으로 정한 가격이다. 지난해 1년 간 서울 공동주택(아파트에 다세대·연립주택 포함) 공시가격 상승률이 10.2%였다. 강남구 13.7%, 서초구 12.7%, 송파구 16.1%로 강남권이 가장 높았다. 올해 공시가격은 고가 주택일수록 상승률이 높았다. 공시가격 6억원 초과는 10% 오른 데 비해 2억~6억원 상승률은 6%대 이하다. 공시가격 6억원 초과가 가장 많은 지역이 강남권이다.
강남권에 돈이 몰리면서 서울 내 지역 간 편차가 커졌다. 한국감정원은 서울을 25개 자치구별 외에도 도심권·서북권·동북권·서남권·동남권 5개 권역으로 나눠 가격동향을 조사한다. 강남권에 강동구를 합친 동남권이 가장 비싸고 동북권(성동·광진·동대문·중랑·성북·강북·도봉·노원구)이 가장 낮다. 이 두 지역의 평균 아파트 가격 차이가 5월 말 7억2000여만원으로 1년 전(5억4000여만원)보다 1억8000만원 더 벌어졌다. 가격 차가 1년 새 1.4배에서 1.6배가 됐다. 자치구별로 가격 순으로 순위를 매기면 강남구가 1위이고 중랑구가 꼴찌다. 지난해 5월 강남구와 중랑구 아파트 평균 가격이 각각 11억2000만원, 3억1000만원으로 2.5배 차이 났다. 5월엔 각각 14억6000만원과 3억5000만원으로 강남구가 3배 이상으로 더 비싸졌다.
국민은행의 서울 아파트 가격 5분위 배율도 1년 전 4.2에서 5월에 4.9로 높아지며 국민은행이 조사를 시작한 2009년 이후 최고 수준이다. 5분위 배율은 전체 아파트를 가격 순으로 5등분 해 상위 20% 평균 가격을 하위 20% 평균 가격으로 나눈 값이다. 지난 1년 간 격차 확대는 역대 최대폭이라 할 만하다. 국민은행 5분위 배율 수치가 1년 새 20%가량 벌어진 적이 없다.
서울 내 지역 간 편차 커져
강남권과 그 이외 지역 간 아파트값 차이 확대는 사회·경제적 부작용을 낳기 때문에 우려가 된다. 강남권 쏠림이 더욱 심해지기 때문이다. 아파트값이 같은 비율로 오르더라도 강남권의 액수가 훨씬 크다. 10% 오를 경우 차익이 동북권은 4500만원이지만 동남권은 2배가 넘는 1억1000만원이다. 가격 격차에 따른 상대적 박탈감을 낳고 지역 불균형을 심화시킨다. 강남권 진입 장벽이 더욱 높아져 양극화를 심화시키게 된다.
아파트값이 뛰면서 강남권만이 아니라 서울에서 집을 장만할 여건이 최악이다. 국민은행에 따르면 지난 3월 기준 서울에서 중간 소득층의 소득 대비 주택 중간 가격이 2009년 9월 이후 9년 만에 가장 높다. 가구 연소득과 주택가격을 금액 순으로 5등분해 3분위의 가구 연소득 대비 주택가격 비율(PIR, Price to Income Ratio)이 12.1이었다. 2009년 9월에도 12.1이었고 이는 국민은행이 조사를 시작한 2000년 이후 최고치다. 지난해 5월엔 10.9였다. 이와 달리 주택구매력지수(HAI)가 지난 3월 44.8로 2010년 4월 이후 처음으로 45 밑으로 내려왔다. 주택구매력지수는 중간 정도의 소득을 가진 가구가 금융회사의 대출을 받아 중간 가격 정도의 주택을 구입할 때 현재의 소득으로 대출원리금 상환에 필요한 금액을 부담할 수 있는 능력을 뜻한다. 숫자가 낮을수록 구매력이 떨어진다.
집값 수준과 지역 간 편차, 소득 대비 집값 수준은 금융위기 이후 거의 최고이고 주택 구매력은 확 떨어지면서 일부에선 거품 우려가 나온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은 최근 발표한 ‘글로벌 부동산 버블 위험 진단 및 영향 분석’ 연구보고서에서 “서울은 소득 대비 주택가격 비율이 뉴욕과 도쿄보다 높다”며 거품 가능성을 제기했다.
일부에서 거품 우려 나와
그런데 요즘 강남권과 다른 지역 간 차이가 줄어들 조짐을 보인다. 최근 강남권 아파트값 상승세가 주춤하고 있다. 강남권 3개 구 모두 5월에 하락세를 나타냈다. 강남권이 일제히 하락한 것은 지난해 1월 이후 14개월 만이다. 지난해 8·2대책 후인 9월 강남권이 약세이긴 했지만, 강남·서초구만 내렸다.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가 시행된 지난 4월부터 서울 아파트 거래량(신고일 기준)이 줄고 있는 가운데 강남권 거래가 급감했다. 서울 전체 거래량의 강남권 비중이 3월까지 20% 정도를 이어오다 4월부터는 10%로 뚝 떨어졌다. 과거에도 벌어지던 지역 간 격차가 다시 줄어들곤 했다. 국민은행 서울 아파트값 5분위 배율이 2009년 초 4에서 2011년 4.4까지 올라갔다가 2014년 3.9까지 떨어졌다. 주택산업연구원 김덕례 실장은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등 강도 높은 정부 규제로 강남권이 심한 압박을 받고 있어 지역 간 편차가 줄어들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강남권 아파트값이 발목 잡히면 다른 지역도 상승세가 꺾이기 때문에 PIR이 지속적으로 더 오르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 안장원 중앙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