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검찰은 청와대와 여론의 전폭 지지를 받으며 전직 대통령들에 이어 사법부 수장에게까지 칼끝을 겨눴습니다.
여론의 지지를 받고는 있지만 한 편으로는 걱정하는 시선도 있는데요. 검찰의 권한이 너무 비대해지면 직권남용으로 이어질 위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우리나라 현재의 힘 있는 검찰의 양면성에 대해 알아볼게요.
▎문무일 검찰총장을 비롯한 검찰 관계자들이 1월 2일 국립서울현충원을 참배하기 위해 입장하고 있다.
"검사들은 무리한 기소를 하고도 책임지지 않고, 결과와 관계없이 인사를 통해 보상받는다. 이런 분위기가 권력에 줄 서는 풍토를 만든다.” 7년 전인 2011년 11월 서울 마포구에서 열린 ‘검찰개혁 북 콘서트’ 참석자의 비판이다. 이 말을 했던 참석자는 문재인 대통령이다.
북 콘서트는 문 대통령의 저서 [문재인 김인회의 검찰을 생각한다](오월의봄, 2011) 출간을 기념해 열렸다. 현재 민정수석인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사회를 봤다. 문 대통령은 “검찰의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해야 한다. 정권교체를 통해 들어설 개혁정부의 첫 과제는 정치검찰의 확실한 청산과 문책”이라고도 했다. 취임하자마자 검찰 개혁은 문재인 정부의 최우선 과제가 됐다. 정부 출범 초기 청와대는 틈날 때마다 국회를 압박했다.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설치와 개헌 등 검찰·사법 개혁을 위한 입법에 국회의 협조가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문무일 검찰총장을 기용해 검찰의 자발적인 탈바꿈도 유도했다. 동시에 적폐청산을 위한 방대한 수사를 채근했다. 개혁의 요체는 검찰의 권한 분산이다. 적폐청산은 검찰의 권한이 집약됐을 때 성과를 낸다. 우선순위를 가릴 수 없는 당위와 현실이 복잡하게 꼬이기 시작했다.
집권 초반 개혁 대상이었던 검찰의 위세는 격세지감이다. 정권은 물론 여론의 지지도 함께 받고 있다. 두 명의 전직 대통령을 구속시켰다. 초록색 수의를 입고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재판정에 들어선 전 정부의 장관급 이상 고위 공직자도 부지기수다. 검찰의 칼끝은 역대 어느 정권에서도 못했던 전직 대법원장과 사법부의 심장부(법원행정처)를 향하고 있다.
전직 대통령 잇따라 구속시킨 서울지검의 '위세'
▎사법농단 의혹의 핵심 인물인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10월 15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하고 있다. 임 전 차장은 2012년부터 행정처 기획조정실장과 차장을 지내며 주요 실무를 총괄해왔다.
중심에는 서울중앙지검 ‘특수통 3인방’이 있다. 윤석열(58·사법연수원 23기) 지검장, 박찬호(52·26기) 2차장, 한동훈(45·27기) 3차장이 그들이다. 지난여름 검찰 간부 인사에서 세 사람은 유임됐다. 지방검찰청 중 가장 큰 서울중앙지검의 수장과 직접 수사를 총괄하는 2, 3차장을 모두 유임한 것은 이례적이다. 서울중앙지검 2, 3차장은 검사장 승진 코스여서 경쟁이 치열하다. 한 검사가 2년씩 맡았던 전례가 없었다.
여기서 청와대의 검찰에 대한 인식이 엿보인다. 2차장은 공안수사를, 3차장은 특수수사를 맡는다. 그런데 박찬호 2차장은 공안통이 아닌 특수통이다.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장, 서울남부지검 금융조사1부장을 거쳤다. 한동훈 3차장도 특수통 검사다. 박영수 특별검사가 대검 중수부를 이끌 때 윤 서울중앙지검장과 함께 일했다. 최순실 특검팀에도 중용됐다.
서울중앙지검의 특수수사 수요는 시간이 가도 전혀 줄지 않고 있다. 오히려 과부하가 심해지고 있다. 지방의 검찰청은 특수·공안 부서를 축소하고 민생 사건을 처리하는 형사부를 강화했지만 서울중앙지검의 특수부는 거꾸로 몸집을 불렸다. 서울중앙지검 특수부가 종전의 대검 중수부를 완전히 대체한 것이나 다름없게 됐다.
“직접 수사 총량을 줄이겠다”던 문무일 검찰총장의 취임 때 공언(公言)은 허언(虛言)이 됐다. 검찰의 직접 수사를 줄이는 건 검찰 개혁의 핵심이다. 수사는 원칙적으로 경찰이 맡고, 검찰은 기소권을 행사하는 동시에 경찰 수사 과정에서 인권침해 요소가 있는지 감시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공수처 신설이나 검경 수사권 조정도 이런 틀 안에서 논의돼 왔다.
문 총장의 약속은 당분간 실현되기 어려울 전망이다. 적폐 수사에 온 힘을 쏟고 있는 청와대를 만족시키려면 검찰의 수사력을 끌어모아야 하기 때문이다. 검찰의 수사 역량이 총집중된 곳은 서울중앙지검이다. 청와대가 서울중앙지검의 지휘부에 두터운 신임을 보내는 이유다.
검찰개혁위원회 위원을 맡았던 한 변호사는 “검사들은 인사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검찰을 독립적으로 둘 의지가 있다면 인사권을 행사할 때 총장에게 힘을 실어줘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렇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검찰의 요직마다 청와대와 인연이 있는 검사들이 포진해 있다. 전국의 부패범죄 수사를 지휘하는 이성윤(56·23기) 대검 반부패부장은 문 대통령의 경희대 법대 후배다.
참여정부 때 청와대 사정비서관실 특별감찰반장으로도 일했다. 검찰 인사와 예산을 쥔 법무부 검찰국장에는 초임 검사장인 윤대진(54·25기) 전 서울중앙지검 1차장이 발탁됐다. 윤 검찰국장은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과 대검 중수부에서 함께 일했다. 법조계에선 호흡이 잘 맞는 두 사람을 ‘대(大)윤 소(小)윤’이라고도 부른다. 그 역시 2003~2004년 대통령 사정 비서관실 특별감찰반장을 지냈다.
'대검 중수부'가 '서울지검 특수부'로 문패 바꾼 듯해
▎서울중앙지검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수사팀이 9월 6일 서울고등법원을 압수수색한 뒤 압수품을 들고 나오고 있다. 같은 날 대법원과 법원행정처 사무실도 압수수색이 이뤄졌다.
지난 6월 발표된 검경 수사권 조정안에서 청와대의 의도는 더 뚜렷해졌다. 청와대 발표에 따르면 1차적인 수사 권한은 경찰이 갖는다. 하지만 예외를 뒀다. 검찰의 직접 수사가 ‘반드시 필요한 분야’ 6가지를 명시한 것이다. 예외 목록은 다음과 같다.
▷뇌물이나 정치자금 관련 부패범죄 ▷기업, 경제비리 등 경제범죄 ▷시세조종, 인수합병 비리 등 금융·증권범죄 ▷공직선거와 각종 조합 선거 등 선거범죄 ▷군사기밀보호법 등 방위사업 비리 ▷위증과 증거인멸, 무고 등 사법방해 사건.
사회적으로 주목받는 정치인이나 대기업 수사 등 굵직한 사건은 검찰의 권한을 유지시켰다. 경찰에 전적으로 내준 분야는 조폭과 마약 수사 정도다. 원래 수사권 조정 취지는 기소권과 수사권을 나눠 서로 견제하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현 정부 출범 초기부터 검찰의 수사 기능이 상당부분 무력화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청와대 의중은 확인됐다. 과거 대검 중수부는 정기 인사철이나 국정감사 기간에는 잠시 휴지기를 갖곤 했다. 지금은 숨 돌릴 틈조차 없다. 하나의 사건이 마무리될 만하면 그에 걸맞은 새 ‘아이템’이 등장한다. 2016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수사가 마무리되자 검찰은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를 본격화했다. 이 전 대통령을 기소한 뒤 검찰의 칼끝은 사법부를 정조준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의 사법행정권 남용과 재판거래 의혹 수사다.
세간의 관심은 검찰의 적폐 수사 드라이브가 언제까지 이어지느냐다. 검찰 내부는 이미 피로가 극에 달해 있다. 문 검찰총장조차 지난해 8월부터 검찰 내부의 피로 누적을 토로하며 적폐 수사 마무리의 필요성을 언급해 왔던 터다. “현재의 정부 지지율을 총선(2020년)까지 유지하기엔 간격이 너무 크다. 입법이 뒷받침되지 않는 상황에서 총선 때까지 지지 동력을 확보할 방법은 대북 외교와 적폐청산뿐이다.” 한 차장급 검사의 말이다.
검찰로선 수사권 남용에 대한 의심을 받는 게 억울할 수도 있다. 여러 수사를 동시에 진행하면 동력이 분산된다. 전직이라 해도 행정부와 사법부의 정점을 겨누는 수사다. 성과를 내지 못하면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 부장검사 출신 한 중견 변호사는 “지금 상황은 꽃놀이패를 쥔 거나 다름없다. 수사권 조정 국면에서 검찰이 명분을 움켜쥘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진단했다.
하지만 법원의 저항이 만만치 않다. 법원과 검찰의 기싸움은 압수수색 영장 기각을 둘러싸고 폭발했다. 지난 10월 8일 양 전 대법원장의 주거지에 대한 검찰의 압수수색 영장을 법원이 기각했다. 사유는 ‘주거 기본권 보장’이었다. 기존의 영장 기각 사유에선 볼 수 없었던 내용이다. 이틀 뒤 10일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대법원 국정감사에서 검사 출신 백혜련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법원에 대한 한 가닥 믿음이 ‘방탄영장’으로 무너졌다”고 했다.
“주거 평온을 이유로 압수수색 영장이 기각된 사례를 알고 있느냐”는 백 의원의 물음에 안철상 법원행정처장과 김창보 법원행정처 차장, 이승련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은 “경험하지 못했다”고 답했다. 지금까지 사법농단 의혹과 관련해 검찰이 청구한 압수수색 영장은 200건이 넘는다. 발부된 건 10%에 불과한 20여 건이다. 기각 사유는 다양하다.
법원행정처장을 지낸 고영한(63·11기) 전 대법관에 대해선 ‘임의제출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다른 전·현직 대법관에 대해선 ‘재판의 본질을 침해할 수 있다’는 사유를 들었다. 검찰은 ‘방탄법원’을 여론전의 장으로 끌어냈다. 영장 청구 이유를 밝히고 기각 사유를 공개적으로 반박했다. 수사의 밀행성을 지키려고 수사의 내용과 과정을 외부에 알리지 않는 기존 관례도 깼다.
'영장 싸움'에서는 졌지만, 여론전은 법원 '압도'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1월 14일 청와대 춘추관 브리핑실에서 국정원·검찰·경찰 등 권력기관 개혁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양승태 법원’과 ‘박근혜 청와대’의 재판거래 의혹을 규명할 인물로 지목된 유해용(52·19기) 변호사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이 기각됐을 때가 대표적이다. 검찰은 “개인정보보호법 위반과 절도, 공공기록물법 위반, 형사사법절차촉진법 위반 등을 가리기 위해 엄정한 수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수사팀 관계자는 언론을 통해 “사실관계 확정 전인 압수수색 단계에서 어떠한 죄도 안 된다고 단정하는 영장판사의 판단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비난했다. 윤 지검장까지 나서서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증거인멸 행위에 대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엄정한 책임을 묻겠다”고 별렀다. 검찰은 법원행정처가 각급 법원장에게 나눠준 ‘공보관실 운영비’를 비자금으로 규정하고 ‘사법농단 리스트’에 추가했다.
김명수 대법원장도 춘천지법원장 재직 시절인 2015~2017년에 법원행정처로부터 1350만원을 받았다. 최완주 서울고법원장과 민중기 서울중앙지법원장도 각각 1100만원과 1900만원을 받아간 것으로 확인됐다. 민 중앙지법원장은 ‘판사 블랙리스트’ 재조사 위원회의 위원장을 맡아 사법농단 의혹의 뚜껑을 열었다. 법원행정처는 “사실상 별건 수사”라며 반발하지만 검찰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10월 초 여론조사업체 리얼미터가 전국 성인 501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는 궁지에 몰린 법원의 현 상황을 잘 보여준다. 응답자의 65.6%가 ‘양 전 대법원장을 구속 수사해야 한다’고 답했다. 사법부에 대한 불신 여론은 곧 검찰의 수사 동력이다. 지난 9월 KBS가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19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응답자의 83.9%가 ‘사법 개혁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또 응답자의 77.5%는 사법농단 의혹을 전담할 ‘특별재판부’ 설치에 동의했다. 여론의 관심사는 검찰 개혁에서 사법 개혁으로 전이됐다. 10월 13일 법무부 국감장에서 검사 출신 금태섭 민주당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 정부(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고 검찰 개혁에 나서야 하는데, 어찌 된 건지 검찰의 힘이 더 커지고 있다. 당장 1년 전과 비교해도 힘이 더 커졌다.
인권침해 요소를 줄이고 공안수사를 줄이겠다고 하는데, 오히려 특수부만 계속해서 늘고 있다.” 같은 당 백혜련 의원도 “일부 언론에서는 사실상 100여 명의 수사 인력이 특수부 수사에 매달려 있다고 하는데, 맞느냐”고 물었다.
피의사실 흘리고 '직권남용 혐의 남발한다' 비판도
▎2012년 11월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앞에서 시민단체 회원이 검찰 개혁을 요구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눈가리개를 하지 않은 ‘정의의 여신’ 디케로 분장하고 한쪽 줄이 끊어진 저울을 들었다.
법조계에서는 검찰이 직권남용을 ‘남용’한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직권남용 혐의는 적폐 수사에서 폭넓게 활용되고 있다. 하지만 법원이 혐의를 순순히 인정한 경우는 드물다.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청와대 정무수석은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에 압력을 넣어 보수 성향의 시민단체에 자금을 지원하도록 했다는 이른바 ‘화이트 리스트’ 사건으로 기소됐다. 법원은 무죄로 판단했다.
조 전 수석의 경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시절의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 작성에 관해서만 직권남용죄가 인정됐다. 국정원 특수활동비를 청와대에 상납한 의혹과 관련해서도 검찰은 직권을 이용한 뇌물수수로 보고 남재준(74)·이병기(71)·이병호(78) 전 국정원장을 기소했지만 모두 무죄를 받았다. 함께 뇌물 공범으로 기소된 박 전 대통령과 이 전 대통령도 법원은 “직무에 대한 부당한 대가로 볼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최경환(63) 전 경제부총리도 중소기업진흥공단에 채용 외압을 행사한 혐의로 기소됐지만 역시 직권 남용죄가 인정되지 않았다. 법원도 여론의 반감을 모르지 않는다. 최 전 부총리 사건에서 법원은 판결문에 “무죄가 난 것이 국민의 법 감정에 어긋난다고도 볼 수 있지만 공소장만 보면 범죄의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한다. 법적으로 무죄라고 판단한 것이지, 이런 행위가 윤리적으로도 허용된다고 본 것은 아니다”고 첨언했다.
양 전 대법원장 시절의 재판거래 의혹도 유죄를 입증하기가 쉽지 않다. 법원행정처장의 직무 범위 때문이다. 당시 법원행정처장이었던 차한성·박병대 전 대법관이 당시 김기춘 비서실장 등 정부 고위 관계자들을 만나 대법원에 올라와 있는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소송 관련 대책을 의논했다는 게 의혹의 핵심이다.
법원행정처장은 ‘소부(小部: 대법원 재판부의 작은 단위)’ 구성에서 제외된다. 대법관 전원이 심리하는 전원합의체에도 관여하지 않는다. 따라서 당시 청와대 의중이 재판부에 전달됐다 하더라도 심리에 관여한 대법관들이 여기에 영향을 받았다고 진술하지 않는 이상 인과관계를 입증하기가 어렵다. 대법원 재판연구관을 지낸 한 부장판사는 “직권남용은 말 그대로 직무상 권한을 남용하는 범죄인데 법원행정처장은 재판을 하지 않으니 재판거래란 말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특히 정권 교체기 때 이전 정권 인사에 대한 직권남용 혐의 적용이 많아진다. 그때마다 ‘보복성 수사’ 논란이 되풀이되지만 그때뿐이다. 직권남용죄 적용이 남용될 수 있다는 경고는 12년 전에도 나왔다. 2003년 대북송금 특검 수사에서 직권남용 혐의로 기소된 박지원 의원에 관한 사건 때다. 박 의원은 노무현 정부 때 문화관광부 장관으로 재직하면서 현대상선에 4000억 원을 대출하도록 한 혐의를 받았다.
그러자 직권남용죄 요건이 지나치게 모호하다며 헌법소원을 냈다. 2006년 헌법재판소는 직권남용죄를 합헌 결정했다. 다만 권성 헌법재판관이 소수의견을 냈다. “공무원의 직권은 내용과 범위가 언제나 법령의 규정을 통해 객관적으로 명확히 확인되는 것으로 볼 수 없어 직권남용의 적용 범위가 사실상 무한정 넓어진다. 정권교체의 경우 전임 정부의 실정과 비리를 들추거나 정치적 보복을 위해 당시 활동한 고위공직자들을 처벌하는 데 이용될 위험성이 있다.”
권 재판관은 “국정운영 과정에서 행해진 순수한 정책적 판단이 비판의 대상이 된 경우 악화되는 여론을 무마하기 위해 정치적 책임을 묻는 것을 넘어서 공직자를 상징적으로 처벌하는 데 이용될 위험성도 매우 크다”고도 했다. 그의 진단은 구문(舊文)이 아닌 현재진행형이다.
반환점 돈 문무일호… 수사 성과보다 통제가 관건
▎2011년 12월 7일 서울 마포아트센터에서 [문재인, 김인회의 검찰을 생각한다] 출간 기념 북 콘서트가 열렸다. 문 대통령은 이날 검찰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왼쪽부터 조국 민정수석, 김인회 인하대 로스쿨 교수, 문재인 대통령, 김선수 변호사.
다시 7년 전 북 콘서트 현장. 문재인 대통령은 말했다. “우리나라 검찰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이 수사권과 기소권을 함께 가지고 있는 조직이다. 검찰의 권한이 지나치게 비대해져 무소불위의 권력이 됐다. 잘못에 책임을 물을 다른 방법이 없다 보니 권한을 남용하게 된다. 절대권력은 부패하기 마련이다. 검찰이 이런 권력을 더 키우기 위해 정치권력과 유착하고 야합하는 것은 더욱 심각하다.”
문 대통령은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의 무리한 수사와 망신 주기식 혐의 공개가 어떤 비극을 불러왔는지 가장 잘 아는 사람이다. 이제 그의 의지에 달렸다. 청와대가 수사 권한을 조정하거나, 독립성을 보장할 의지를 보여주지 않으면 검찰권 남용을 막기 어렵다. 검찰 개혁을 현 정부의 숙명으로 여긴다면 지금이 기회다. 이전 정부들도 검찰 개혁을 시도했지만 검찰의 조직적인 반발에 부딪혀 번번이 실패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검찰도 자발적인 개혁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문 총장 취임 후 검찰의 자체 변화는 조용히 진행되고 있다. 우선 과거사 사건에 대한 검찰의 태도 변화가 눈에 띈다. 검찰은 과거사 사건의 피해자 296명에 대해 직권으로 재심을 청구했다. 117명이 무죄를 받아 명예를 회복했다. 특별수사를 줄이려는 자체 노력도 계속되고 있다.
대신 고소·고발 사건을 담당하는 형사부를 강화해 민생을 챙기겠다는 취지다. 검찰 조직의 상명하복 풍토도 바꿨다. 제주지검 지휘부의 ‘영장 회수 논란’과 안미현 검사의 ‘수사외압 폭로’ 사태가 이어지자 검사 이의제기권을 보장하고, 의사결정 과정을 기록하게 했다. 검찰 내부에서는 새로 도입된 ‘인권감독관제’에 주목하고 있다. 검찰 수사 패러다임을 ‘성과와 효율성’에서 ‘인권과 적법절차 보장’으로 전환하면서 지난해 8월 도입했다.
검찰의 수사 상황을 마치 변호인의 입장에서 바라보듯 견제하는 부서를 마련해 수사권 남용 요소를 사전에 제거하겠다는 취지다. 얼핏 보기에는 중이 제 머리를 깎을 수 있을까 싶지만, 실제 검찰 내에서 실력이 검증된 검사들이 대거 이 업무에 투입됐다. 대검 지휘부가 ‘수사 과정에서 문제가 있으면 뭐라도 잡아내라’는 지시를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문 총장도 대표적인 특수통 검사 출신이다. 제주지검 부장 검사 때인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측근 비리 특검팀에서 활약했다. 2015년에는 ‘성완종 리스트’ 특별수사팀장을 맡아 이완구 전 국무총리와 홍준표 당시 경남도지사를 기소했다. 경험이 풍부하다는 건 특수수사가 안고 있는 위험성도 그만큼 잘 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자체 개혁안은 이런 경험을 바탕에 두고 있다. 다만 인사에 민감한 검찰 조직 특성상 이러한 자체 개혁안이 얼마나 실효를 거둘 수 있을 지는 미지수다. 인사권을 가진 청와대가 수사 권한을 조정하거나, 독립성을 보장할 의지를 보여주지 않으면 검찰권 남용을 막을 방법은 사실상 없다. 문 총장의 임기는 내년 7월까지다.
좌영길 헤럴드경제 사회부(법조팀) 기자 jyg97@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