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접수된 이혼소송 사건이 10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습니다. 하지만 이른바 '황혼 이혼'은 이혼한 부부 중에 31%의 비율을 차지할 만큼 최고치를 찍었는데요. 혼자의 삶을 즐기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는 한편, 잉꼬노부부들이 혼자보다 함께가 더 행복하다는 사실을 전해주고 싶다는데요. 그들이 전하는 인생 노하우를 들어볼게요. 

 

잉꼬노부부

▎잉꼬 같은 애정을 자랑하는 노부부의 인생 노하우는 실로 단순하다. 서로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반백 년 넘는 세월을 켜켜이 채운다. 올해로 결혼 생활 60년째를 맞이하는 이종해(86)·오연순(86) 부부. 흔하디 흔한 주변 놀이터의 그네도 이들에겐 소중한 추억을 더해주는 공간이 된다. / 사진:전민규

 

4년 전 다큐멘터리 형식의 저예산 영화 한 편이 잔잔한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란 제목의 영화다. 98세 조병만 할아버지와 89세 강계열 할머니의 76년간 변치 않은 화혼(華婚) 생활이 주제다. 이 영화에 젊은이들의 관심이 특히 컸다. 누군가의 한 평생과 다름없는 76년의 결혼 생활에 대한 호기심이 컸기 때문이리라.

 

신혼부부처럼 수줍게 서로를 바라보는 노부부의 시선이 적지 않은 동경을 불렀다. 부부의 인연을 평생 이어간다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부부관계에 대한 인식이 바뀐 오늘날에는 더욱 그렇다. ‘부부는 하늘이 맺어준 귀한 인연’이란 말을 젊은 세대들은 고리타분한 옛날이야기로 치부한다.

 

부부로서 의무를 다하겠다는 맹세를 담은 ‘혼인서약서’ 대신 각자의 의무와 권리, 결혼 유지의 조건을 명시한 ‘혼인계약서’를 쓰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반백 년 안팎의 결혼 생활을 지나온 노부부들의 이야기는 잔잔하지만 묵직한 울림이 있다. 여전히 은근하면서도 지고지순한 사랑을 몸소 보여준다. 황혼이혼이 유행처럼 번지는 이때 오래도록 애정을 뽐내는 그들에게서 엿본 부부관은 매우 단순하다.

 

"참고 져주면 편하게 살 수 있제"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저예산 다큐멘터리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의 한 장면. 신혼부부처럼 애틋한 노부부의 모습이 젊은 세대에게 경험치 못한 감동을 줬다.

 

“많이 참고 많이 져주는 거여. 참고 이해하는 기라. 길게 얘기할 것이 없당게.”

큰 풍파 없이 긴 결혼 생활을 이어온 비결을 묻는 기자에게 김두봉(83) 할아버지가 심드렁하게 말했다. 요즘 말로 하면 ‘쿨’한 대답이다. 김 할아버지는 60년 전쯤 오성례(76) 할머니와 중매로 만나 결혼했다. 그 시절 시골 생활이 대부분 그랬듯 부모를 봉양하고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 여섯 자식을 낳았고, 어느새 손자·손녀들까지 40명 가까이 되는 일가(一家)를 이뤘다.

 

이웃들은 김 할아버지네를 보며 “자식농사가 대풍(大豊)”이라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식·손자 등 고시 합격자가 넷이나 된다. 아들이 부장판사로 퇴임해 변호사로 개업했고, 손자는 수원지방법원 판사다. 손자며느리는 안대희 전 대법관이 설립한 법무법인 평안의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막내 손자는 지난해 기술고시(공무원 5급 기술직 공채시험)에 합격했다.

 

더 이상은 못 참아

▎미디어에 비치는 이혼남녀의 모습은 시청자들에게 독신에 대한 동경을 불러 일으킨다. 2013년 JTBC의 일일 드라마 [더 이상은 못 참아] 제작발표회. 황혼이혼을 중심으로 가족간의 좌충우돌을 유쾌하게 그렸다.

 

 

김 할아버지는 젊어서부터 사회활동에 열심이었다. 9년 전부터는 전라북도에 있는 26개 향교를 관리하는 전북향교재단 이사장으로 봉사하고 있다. 더불어 대한노인회 전북연합회 회장과 중앙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 본가가 있는 전북 장수군 계북면에서 50㎞ 넘게 떨어진 전주 시내까지 일주일에 나흘씩 출퇴근을 한다. 김 할아버지 옆에는 늘 오 할머니가 동행한다. 

 

아내와 번갈아 가며 운전을 한다. 전주를 오가는 출퇴근길이 부부에게는 오붓한 데이트길인 셈이다. 김 할아버지는 “부부관계에 있어서 역지사지(易地思之)를 평생 신조로 삼고 있다”고 했다. “아웅다웅 말다툼해서 이겨봤자 별 거 없더이다. 많이 손해 볼 것 같아도 실은 그렇지가 않당게. 많이 참고 져주면 결과적으로 나한테 좋은 일이 돌아오는 게요.” 말다툼이 벌어졌다가도 김 할아버지가 스스로 물러서주니 사소한 다툼이 크게 번질 일이 없다고 한다.

 

그렇게 한 김 빼고 나면 다툴 이유도 사라진다는 게 김 할아버지의 경험이다. 최근 유행처럼 번지는 황혼이혼에 대해 김 할아버지는 “택도 없는 소리”라고 했다. 황혼이혼은 보통 50세가 넘었거나 결혼기간이 20년을 넘은 부부가 헤어지는 것을 일컫는다. 2010년 3만 건을 넘어선 뒤 매년 증가하고 있다. 법무법인 심평의 윤성일 변호사는 “사회적 인식보다 개인의 행복을 중요시하는 가치관의 변화가 일어나면서 황혼이혼이 급격히 늘어나는 양상을 띠고 있다”고 했다.

 

 

청년 결혼은 줄고, 황혼이혼은 급증세

 

 

황혼이혼

▎결혼이 감소하면서 젊은 세대의 이혼 건수도 덩달아 감소 추세지만, 유독 결혼 20년차 이상 중·장년 부부의 황혼이혼은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 이혼 사유의 절반가량은 ‘성격차’다.

 

통계상으로 보자면 이혼 건수는 대체로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아예 결혼을 기피하는 경향 때문이다. 젊은 세대들은 스스로를 ‘3포 세대’라고 부른다. 취직·결혼·출산을 포기한다는 의미다. 장기화하고 있는 불황의 단면이다. 이 때문에 황혼이혼의 증가세는 유독 두드러진다. 법원행정처가 발간한 2018년도 사법연감에 따르면 결혼 가구 감소의 영향으로 법원에 접수된 이혼 소송은 2009년에 정점을 찍은 뒤 매년 감소하고 있다.

 

반면 20년 이상 부부의 이혼 건수는 지난해 이혼한 전체 부부 가운데 31.2%(3만 3124쌍)를 차지했다. 윤 변호사는 “황혼이혼을 선택하는 부부들은 자녀가 장성한 이후 가정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다했다고 생각해 남은 인생이라도 자기가 원하는 대로 살고 싶어서 혼인관계를 정리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통계청이 9월 말에 발표한 2017년도 인구주택총조사와 고령자 통계 자료는 유행처럼 번진 황혼이혼의 단면을 보여준다.

 

2000년에는 1인 가구 중 45~54세의 이혼 비율이 29.1%로 가장 높았다. 그러나 2015년에는 55~64세의 이혼 비율이 35.2%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65세 이상의 경우 지난해를 기준으로 남성은 6883건, 여성은 3427건이었다. 전년도(2016년)에 비해 남녀 각각 12.8%, 17.8% 증가한 수치다. 이혼을 ‘졸혼’이라고 미화하는 방송과 사회적 경향도 황혼이혼의 증가와 무관치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또 평균수명의 증가로 인해 가부장적 문화에 괴로움을 겪었던 여성들이 적극적으로 이혼을 결심하는 경우가 많아진 것으로 풀이된다.

 

 

 

황혼이혼 표

 

 

김 할아버지의 생각은 다르다. 김 할아버지는 노년에 피해야 할 ‘삼고(三苦)’가 있다고 했다. 생활고(錢苦), 병고(病苦), 고고(孤苦)가 그것이다. 그 중에서도 고독을 가장 큰 병으로 꼽았다. “혼자 살면 고독하지 않을 방법이 없어요. 나이가 들수록 생활이 어렵더라도 반려자가 있어야 건강할 수가 있제. 몸이 아픈 건 병원 가면 되잖소. 그런데 외로운 건 아무리 친구가 많아도 못 고치는 거요. 요즘 젊은 사람들은 수틀리면 이혼하면 된다고 하고, 나이든 사람들도 남은 인생 혼자 편히 살아보겠다고 황혼이혼한다고 하는데 그거 잘못 생각하는 거여.”

 

김 할아버지는 40년 전부터 지인들의 요청으로 주례를 서 왔다. 그의 주례사는 처음부터 지금껏 변함이 없다. 건강, 성실 그리고 화목이다. 그는 “사람의 기초적인 생활 단위는 가정”이라고 강조했다. 가정이 화목하지 않고는 밖에서 업적을 이뤄도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김 할아버지는 되물었다. “집에 들어가면 부부끼리 반갑게 맞아주고 이야기하며 웃음꽃을 피우는 가정이 돼야지. 사회적으로 조금 성공했다고 해도 집에서 화목하지 않으면 그게 뭐가 중요하겄소?”

 

최근 삼성생명 은퇴연구소가 발간한 ‘한국인의 은퇴준비 2018’에 따르면 평균 57세 이상 남성 은퇴자들 중 33%는 ‘배우자와 함께 있을 때 가장 즐겁다’고 했다. 여성 은퇴자의 경우 31%가 ‘자녀와 함께 있을 때’를 꼽았고, 이어 친구(23%), 손자·손녀(17%), 배우자(16%) 순이었다. 지난 1~2월 전국 은퇴자 500명을 상대로 면접조사한 결과다. 이혼 후 독립된 삶에 대한 기대는 이상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지난해 소셜 연애중개업체인 ‘울림세상’이 이혼남녀 1023명에게 졸혼에 대한 생각을 물었더니 ‘일정 기간이라면 좋다’는 응답이 남녀 모두에게서 가장 많은 선택을 받았다. ‘일정 기간이라면’이란 단서에 방점이 찍혀 있다. 업체 관계자는 “돌싱(돌아온 싱글)들 가운데는 이혼 결정을 너무 쉽게 한게 아닌지 후회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전했다. 서울 송파구 가락동에 사는 이종해(86) 할아버지에게 요즘 가장 중요한 일과 중 하나는 죽을 쑤는 일이다. 두 달 전쯤 동갑내기 아내의 소화기관에 문제가 생겼다.

 

가까이 사는 자녀들이 이따금 찾아오지만 삼시세끼를 챙겨 줄 사람은 역시 온종일 붙어 있는 남편뿐이다. 이 할아버지 부부는 지인의 소개로 만나 1959년에 결혼했다. 올해로 결혼한 지 만 60년째다.“아내는 성격이 꽤나 급해요. 몸은 아프고 먹고 싶은 걸 마음껏 못 먹으니 얼마나 신경질이 나겠어. 그러니 죽이 되면 되다, 묽으면 묽다 타박을 얼마나 하는지 몰라요. 그래도 어쩌겠어. 나 아니면 누가 챙겨 주겠어요.”

 

옆에서 듣고 있던 아내가 거들었다. “그건 맞는 말이에요. 그래도 남편이 챙겨주니 기운이라도 차렸지, 혼자였으면 지금도 앓아 누워 있을 거예요.” 적지 않은 나이인데도 아내는 여전히 활동적이다. 노인종합복지관 마니아다. 중국어, 일본어, 컴퓨터 등 새로운 강좌가 생길 때마다 빠지지 않고 참여했다고 한다. 건강상 예전처럼 여러 과목을 수강하진 못하지만 지금도 주 4일을 송파노인종합복지관에서 운영하는 요가 강좌를 듣고 노인들과 어울리며 반나절씩 외부에서 활동한다. 집 근처 공원을 산책하며 가벼운 운동을 부부가 함께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일과 중 하나다.

 

 

"참을 인(忍)자에 정답 담겨 있어"

 

 노부부 벽화

▎서울 종로구 삼청동 감고당길의 그라피티 벽화. 노부부의 다정한 모습이 젊은 세대들의 눈을 사로잡는다. 육군 25사단 소속 원영선 중위의 작품이다. / 사진:육군본부

 

사회복지학을 전공한 이 할아버지는 한평생 노인복지사업에 천착해 왔다. 1989년에 문을 연 노인종합복지관의 도입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한국노인종합복지관협회의 초대 회장도 지냈다. 서울에 단 두 곳이었던 노인종합복지관은 30년 만에 전국 364곳에 설치돼 180만 명의 어르신들이 즐기는 사교의 장으로 자리매김했다. 1995년에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민간이 주도한 노인의날 기념행사를 열기도 했다.

 

그로부터 2년 뒤(1997년) 노인의날은 법정기념일(10월 2일)로 지정됐다. 노인복지 전문가인 이 할아버지와 초등학교 교사였던 아내지만 부부 사이의 갈등은 피할 수 없었다고 한다. 서로 다른 성격 차이에서 비롯된 다툼이 많았다. “숱하게 여행을 다녔어도 같이 찍은 변변한 사진이 없어요. 난 가이드 따라서 저만치 앞서가는데 남편은 느릿느릿 걸어오니 사진을 찍을래야 찍을 수가 없지.”

 

아내의 푸념에 이 할아버지가 조용히 일어나더니 방에서 큼직한 액자를 하나 꺼내왔다. 굵은 붓으로 쓴 글자 하나가 표구돼 있었다. 忍, ‘참을 인’자다. “예전에 아내 친구가 써서 준 거예요. 한때는 그냥 혼자 요양원에 가서 조용히 살아볼까 하는 생각도 했었지. 그럴 때마다 저 액자를 보면서 마음을 다스렸어요.” 부부의 행복 비결이 저 한 글자에 담겨 있었다.

 

부부 간 성격 차이는 극복하지 못하면 이혼으로 귀결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2018년도 사법연감에 따르면 전체 이혼소송 10만6032건 가운데 4만5676건(43.1%)의 이혼 사유가 ‘성격차’였다. 이 할아버지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다시금 강조했다. “참으면 돼요. 살면서 어려운 일 안 겪는 사람이 어딨겠어요. 우리 집 가풍은 이혼은 절대 안 된다는 거예요. 부부는 하늘이 맺어준 귀한 인연이에요. 이만큼 살아 보니 평생의 동반자가 있다는 게 얼마나 든든한 일인지 알게 됩디다.”

 

남편을 바라보는 아내의 얼굴에 웃음기가 번졌다. 인생의 2모작(60세)을 끝내고 시작된 3모작(80세)을 부부가 함께하는 것도 황혼을 풍요롭게 하는 노하우다. 이는 함께 일상을 공유할 시간이 부족했던 젊은 날에 대한 소박한 보상이기도 하다. 윤병오(80) 할아버지의 일상은 젊을 때만큼 바쁘다. 약 20년 전까지 평생직장으로 여겼던 사립학교에서 근무했다.

 

퇴직 후에는 대한노인회 서울 송파구지회장과 민주평화통일 자문회의 송파구지회 상임고문 등을 맡아 지역 사회의 궂은일을 가리지 않는다. 그에게 특별한 일은 또 있다. 여덟 살 아래인 아내와 봉사활동을 하는 것이다. 윤씨 부부는 가락동성당에서 운영하는 미혼모 자녀 돌보미를 하고 있다. 지역의 홀몸노인들도 보살핀다. 윤 할아버지는 “아내가 성당에서 해오던 봉사활동에 자연스럽게 동참하게 됐다”고 했다.

 

최근에는 대한노인회가 주관하는 인생 3모작 강좌에도 열심히 참여하고 있다. 인생 3모작은 한국노인인력개발원이 평균수명을 90세로 상정해 인생을 3분할한 것 중 3기에 해당하는 개념이다. 해외 선진국에서는 1980년대 말부터 ‘제3기 인생론’이란 개념으로 조명돼 관련된 연구와 정책이 활발하다. 두 사람은 47년 전인 1971년에 부부의 연을 맺었다.

 

결혼 기간만 따져도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다는 불혹(不惑)을 지나 하늘의 뜻을 아는(知天命) 세월에 가까워졌다. 젊은 시절 윤 할아버지는 직장생활에 치여 아내의 속을 적잖게 끓였다. 윤 할아버지의 주된 업무는 교육청이나 교육위원회 관계자들과 만나 학교와 재단의 사무에 관해 조율하는 일이었다. 저녁식사를 하고 술을 한잔 곁들이면 어느새 자정을 넘기기 일쑤였다.

 

자정부터 새벽 4시까지 통행금지가 있던 시절이었다. 아내는 당시 체신부 공무원이었다. 윤 할아버지는 “가정생활을 잘 하려면 일찍 퇴근해야 하는데 재단 사무국 일을 맡아서 도저히 그럴 수 없었다. 일찍 들어갈 수도 없고, 술도 안 먹을 수 없고, 통금 전에 들어가본 적이 거의 없었다”고 했다. 결혼을 하면서 아내에게 이런 사정을 이야기하고 양해를 구했다. “술도 마셔야 하고, 집에도 늦게 들어온다는데 어느 여자가 좋아하겠어요.

 

그런데 아내가 ‘그렇게 따라주겠다’면서 그걸 다 이해해주더라고.” 아내가 이해해주니 사회생활에도 힘이 났다. 두 사람의 가장 큰 자랑거리는 지금껏 한 번도 다툰 적이 없는 것이다. “대개 살다 보면 크지 않아도 사소하게 티격태격하기도 하잖아요. 그런데 우린 그런 것도 일절 없었어. 서로의 생각과 처지를 이해해주니 싸울 일이 없는 거지.” 윤 할아버지의 말이다.

 

"해로(偕老)하는 게 서로에게도 좋은 거예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시사회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시사회에 초대된 젊은 부부들이 손을 모아 커다란 하트를 그리고 있다.

 

반평생 함께 살며 다투지 않는 비결이 남다를 듯했다. 그런데 돌아온 대답은 싱거웠다. “양보하면 되는 거예요. 실천하기가 어렵죠. 그런데 양보하면 싸울 일이 없어요. 그리고 상대의 단점을 들추지 않으면 돼요. 아내는 날 이해해줬고, 난 아내의 단점을 들추지 않았어요. 그러니 싸움이 안 되지.”

 

사소한 다툼이나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쉽게 갈라서는 요즘 세태를 그는 안타까워했다. “나름의 이유가 다들 있겠지만 서로가 이해 못하는 데서 (이혼이) 생긴다고 봐요. 조금만 양보하면 되는데 그걸 참지 못해서 그렇지.” 윤 할아버지 주변에도 이혼해 혼자 사는 이들이 여럿 있다고 한다. “처음엔 혼자 잘 사는데 나이 먹어가면서 결국엔 외로움을 느끼더라고. 해로(偕老)하는 게 서로에게도 좋은 거예요.”

 

윤 할아버지의 말처럼 부부가 한평생 같이 살며 함께 늙어간다는 것은 여러모로 서로에게 이익이 된다. 한국보건 사회연구원이 20세 이상 1인 가구 4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가 이를 잘 보여준다. 조사에서 ‘독신생활에 만족한다’는 응답은 세대별로 차이를 보였다. 20~30대 응답자는 52.7%가 독신생활에 만족한다고 답했지만 40~50대에는 41.9%로 낮아졌다. 60대 이상에선 만족도가 36.7%로 더 낮아졌다.

 

반대로 ‘혼자 살면서 힘든 점이 있다’는 응답은 40~44세 59.8%, 55~59세 70.2%로 크게 늘었다. 60대 이상 독신자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점으로 남자의 경우 가사 등 ‘일상생활의 어려움’(28.9%)을, 여성은 ‘아플 때 간호해줄 사람이 없다’(44%)를 꼽았다.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는 삶에 대한 공허함이 나이가 들수록 점점 커지는 것이다. 혼자 사는 이들의 경우 다인 가구에 비해 우울증 발병 위험이 80% 높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핀란드 산업보건연구소가 2000년부터 약 10년간 만 15~64세 독신자들의 생활을 추적한 연구 결과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혼자 사는 사람은 누군가와 함께 사는 사람들에 비해 항우울증 약을 80%가량 더 많이 구매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상근 전북대 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대한우울조울병학회장)는 “혼자 사는 이들은 타인과 함께 사는 이보다 외로움이나 쓸쓸함 등 정서적 지지기반이 취약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1인 가구의 발병률이 높다.

 

특히 경제적 자립능력이 비교적 약한 노인층에서 그 현상은 두드러진다.”고 했다. 다만 돈독한 노년의 부부생활은 오랫동안 같이 살았다고 해서 얻어지지 않는다. 결혼만족도는 시간이 지날수록 낮아지기 때문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과 서울대 사회발전 연구소, 성균관대 서베이리서치센터 공동연구진이 2016년 6~11월 전국 만 18세 이상 1052명(남성 476명, 여성 576명)을 대상으로 결혼만족도 등을 설문조사한 결과, 결혼생활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비율은 18∼34세가 76.8%로 가장 높았고, 35∼49세 71.4%, 50∼64세 55.1%, 65세 이상 53.1% 등으로 중년기, 노년기로 갈수록 낮아졌다.

 

부부관계를 원만히 유지하려면 서로에 대한 배려와 남다른 노력이 필요하다는 방증이다. 앞서 소개한 잉꼬 노부부들의 행복 노하우를 요약하자면 ‘이해’와 ‘배려’ 두 가지다. 혼자보다 ‘함께’가 행복하다는 게 이들의 오랜 경험에서 비롯된 조언이다. 불가피한 사정 때문에 홀몸이 됐다면 ‘황혼재혼’도 고려해 볼 만하다. 한국노인의전화가 노인 250여 명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에서 재혼하고 싶다는 뜻을 밝힌 이들의 주된 이유는 ‘외로워서’(중복응답 73.7%)였다.

 

한국생활과학회 학회지(제21권 5호, 2012)에 실린 연구보고서는 노년에 배우자의 필요성이 더욱 두드러짐을 시사한다. 연구팀은 50세 이상 장년층을 대상으로 4~5년 이내에 재혼해 배우자가 있는 15명과 재혼하지 않은 15명의 심리 상태를 평가했다. 재혼한 노인들은 우울, 생활만족, 슬픔해결, 대처, 스트레스, 자존감, 건강 그리고 사회적 지지 등에서 시간이 흐름에 따라 보다 긍정적인 결과를 보인다고 밝혔다.

 

은근하고 깊은 맛과 향이 밴 황혼의 삶

 

황혼재혼

▎황혼에 접어들수록 동반자의 소중함이 커진다. 100세 시대에 접어든 요즘 ‘황혼재혼’을 고려하는 이들도 점점 늘고 있어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갓 지은 밥은 감칠맛이 입 안을 채운다. 곰삭은 김치를 곁들이면 감칠맛은 배가 된다. 새로 지은 밥과 오래 묵힌 김치. 둘은 상극(相剋)이 아니다. 새로움과 해묵은 연륜이 더해지면 서로가 돋보이고 부족함을 채워 준다. 갓 무친 겉절이의 새콤함은 잠시 혀끝이 즐겁다. 묵은지의 구수함에는 시간이 갈수록 깊은 끌림이 있다. 잉꼬 노부부들이 들려준 부부의 인생도 이와 다르지 않다.

 

새콤달콤한 결혼 초의 추억은 세월이 흘러 비로소 묵은지처럼 소박하지만 은은한 멋이 된다. 하지만 노력 없이 얻는 결과는 없다. 제아무리 훌륭한 재료를 썼어도 관심과 정성을 기울이지 않으면 군내만 풍길 뿐이다. 한 해 김장농사에 온 정성을 기울이듯 부부의 온 정성이 더해져야 결혼생활이 무르익는다. [월간중앙]이 만난 노부부들의 삶에선 익숙한 편안함이 엿보였다. 묵은지의 은근한 맛이고, 잘 덖어낸 녹차의 내음이기도 하다.

 

유길용 월간중앙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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