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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

유가증권·코스닥 상장 국내 기업, 주식 짠물 배당 바뀔까?

국내 기업들은 그동안 배당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어요. 사내 이익이 나도 주주들에게 돌아가는 것은 미미하였죠. 하지만 이제는 그런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고 해요. 작년 배당이 30조원을 돌파하였죠.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유가증권·코스닥시장 상장사의 2018 사업연도 현금배당금 총액이 사상 처음으로 30조원을 돌파했다. 그간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된 ‘짠물 배당’에서 탈피하고 있는 모습이다.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하고 주주행동주의 움직임이 거세지면서 기업들이 주주가치 제고에 적극 나서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아직 배당을 확정하지 않은 회사도 많아 배당금 총액은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다만, 국내외 경제 사정이 좋지 않은 데다 전년에 비해 수익이 크게 줄었거나 적자로 돌아선 기업마저도 정부나 투기자본에 등 떠밀려 현금배당에 나서고 있어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정부나 투기자본 때문이 아닌 업황과 경기를 고려한 탄력적 배당정책을 세워야 한다는 지적이다.

 

기업이 벌어들인 이익을 회사의 주인인 주주와 나누는 행위. ‘배당’에 대한 사전적 의미다. 이익을 주식으로 주든, 현금으로 주든 배당은 ‘회사의 주인’인 주주에게 이익을 분배하는 행위다. 기업으로서 당연한 행위인데, 한국 기업에게는 오랜 기간 해결하지 못한 숙제이기도 했다. 국내 기업은 이익 나누기를 기피했고, 이 같은 ‘짠물 배당’은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돼왔다.

 

2017년 국내 상장사의 시가배당률(1주당 배당금을 주가로 나눈 비율)은 1.86%에 불과했다. 호주 5%, 영국 4%, 대만 4.3%, 미국 2.1%, 일본 2.2% 등과 비교하면 낮은 편이다. 기업의 배당성향(배당금 총액을 당기순이익으로 나눈 비율) 등 다른 지표를 봐도 마찬가지다. NH투자증권에 따르면 2017년 국내 상장사의 배당성향은 16.02%로 세계 46개 국가 중 가장 낮았다. 미국(38.62%)·일본(34.08%)은 물론 중국(30.87%)·인도(32.21%)에도 미치지 못했다.



비단 2017년 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 이전에는 오히려 더 심했다. 국내 기업은 왜 이토록 배당에 인색했던 걸까. 현재 국내 상장사의 상당수는 1970~1980년대 고속성장기를 거쳤다. 당시에는 벌어들인 현금을 설비투자 등에 써서 회사를 키우는 게 급선무였다. 사회적 분위기도 그랬다. 현금배당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던 것이다. 


이후에는 외환위기와 세계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현금’의 중요성이 커졌다. 이번에는 회사를 지키기 위해 현금을 쌓아 두는 게 급선무였던 셈이다. 여기에 더해 일부 오너의 집착이 짠물 배당의 배경으로 지목되기도 한다. 지난해 불거진 한진그룹 오너가(家) 사태에서 보듯 회사가 ‘내 것’이라는 생각에 ‘개미(소액주주)’를 비롯한 다른 주주와는 이익을 나누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짠물 배당’에서 1년 만에 태도 바뀌어


그런데 요즘 분위기는 과거와는 많이 달라졌다. 2018 사업연도 기준 국내 상장사의 현금 배당금 규모가 30조원을 돌파했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3월 5일 기준 유가증권·코스닥시장에 상장된 884개 상장사가 총 30조3029억원 규모의 현금배당을 발표했다. 전체 회사 2224곳 중 아직 40%만 배당 계획을 발표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현금배당금 총액은 더욱 증가할 전망이다. 


현금배당금 총액 증가세는 5대 그룹이 이끌었다. 지난해 삼성·롯데·LG·SK·현대차그룹의 배당금 총액은 5일 현재 18조7013억원. 전년(14조1653억원)보다 32%나 증가했다. 5대 그룹 중 배당 규모가 가장 큰 곳은 단연 삼성그룹이다. 삼성그룹은 이번에 2017년 7조6504보다 52.7%나 증가한 11조6858억원을 배당하겠다고 밝혔다.



짠물 배당으로 유명했던 국내 기업이 왜 갑자기 태도를 바꾼 걸까. 국내 증시의 ‘큰손’인 국민연금의 주주행동에 대비한 선제적 조치로 풀이된다. 국민연금 등 기관투자가의 스튜어드십 코드(기관투자자의 의결권 행사 지침) 도입으로 기업들이 주주환원 정책을 강화한 결과다. 지난해 말 기준 국민연금이 지분 5% 이상 보유한 기업은 297곳(전체 상장사의 14.1%)에 이른다. 


김재윤 KTB투자증권 연구원은 “스큐어드십 코드 등 주주행동주의 움직임이 본격화하면서 경영권 방어 등을 위해 적극적으로 현금배당을 확대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엘리엇 매니지먼트 등 해외 투기자본이나 행동주의 펀드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것도 현금배당 확대에 영향을 미쳤다. 엘리엇은 지난해 현대차그룹에 현금을 최대한 풀어 배당에 나서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사내유보금 과세’도 배당 확대에 영향

대기업 위주로 현금보유액이 증가한 점도 현금배당이 늘어난 요인이라는 분석이다. 민주노총·한국진보연대 등으로 구성된 ‘재벌 사내유보금 환수 운동본부’에 따르면 2017년 말 기준 30대 기업의 사내유보금(잉여현금)은 전년 대비 75조6013억원 늘어난 882조9051억원으로 사상 최대치다. 


특히 삼성전자는 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수퍼 호황’에 힘입어 창사 이후 처음으로 현금 보유액이 100조원(2018년 말 기준)을 돌파했다. 역대 최고로 현금을 확보한 것이 현금배당을 확 늘릴 수 있는 동력이 된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진행 중인 재벌 개혁의 여파로 기업들이 주주친화 정책을 강화하고 있는 점도 배당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문 대통령은 대기업 중심의 경제구조를 ‘사람 중심’으로 전환해 성장의 과실을 골고루 나누자는 데 경제 정책의 무게를 두고 있다.

국회에서는 재벌의 지배구조 개편, 집중투표제, 다중대표소 송제 등 주주권리 강화를 위한 다양한 입법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여기에 대기업 저승사자로 불리는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취임 후 채 2년이 되지 않는 기간 동안 하림·미스터피자·비비큐·부영·대림산업·효성·한진(대한항공) 등 등 숱한 기업이 ‘갑질’ 등으로 제재를 받았다. 재계가 이런 흐름에 편승해 스스로 몸을 낮추면서 자연스레 주주친화 정책이 강화되고 있다는 얘기다. 


일각에선 이른바 ‘사내유보금 과세’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한 애널리스트는 “배당금 확대는 사내유보금 과세로 알려진 투자·상생협력촉진세제의 영향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지난해부터 자기 자본 500억원이 넘는 기업에 대해 임금인상·상생협력기금 등으로 지출하지 않고 남은 유보소득에 대해 투자·상생협력촉진세를 부과하고 있다.

이유가 어찌됐든 국내 기업들이 배당을 늘리면 중장기적으로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 등 국내 주식시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김 연구원은 “선진국의 배당성향은 40%,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한 국가는 배당성향이 50%로 국내 기업보다 훨씬 높다”며 “현금배당 확대는 선진국의 배당 성향과 배당수익률을 따라잡을 때까지 지속해야 할 장기 트렌드”라고 말했다. 현금배당 확대 분위기가 단발성 이벤트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금융투자 업계의 한 관계자도 “주주에게 지급하는 배당성향을 높여갈수록 주가도 좋은 평가를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최근의 현금배당 확대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기업이 이익을 내서 배당을 늘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경영 상황 외적인 요인 즉, 정부나 투기자본의 압박에 못이겨 무리하게 현금배당을 하는 사례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익이 확 줄었거나 심지어 손해를 봤는 데도 외부의 압박에 못이겨 무리하게 현금배당에 나서는 기업도 있다. 


예컨대 LG는 연결재무제표 기준 2018년 당기순이익이 1조8829억원으로 전년보다 22.7% 줄었지만, 배당금은 3517억원으로 전년보다 53.8%나 늘렸다. 포스코·이마트·SK디스커버리 등도 실적 악화에도 전년보다 배당폭을 확대했다. 이에 대해 재계의 한 관계자는 “정부가 국민연금을 통해 기업을 압박하고 있는 상황이다 보니 울며겨자먹기로 배당을 확대하는 기업이 있다”고 말했다. 경기와 업황을 고려해 탄력적인 배당정책을 펴야함에도 정부에 찍히지 않으려고 사탕발림식 행보에 나서고 있다는 얘기다.



S&P “SK이노베이션 현금배당 과하다”


엘리엇의 공격을 받고 있는 현대차도 비슷한 사례다. 현대차가 2017년과 같은 1주당 3000원을 배당키로 했다고 발표하자 증권가에서는 “영업이익이 전년보다 47%나 줄어드는 등 어닝 쇼크를 기록했는데 배당 규모가 같다는 게 합리적이냐”는 탄식이 나왔다. 결과적으로 정부나 엘리엇과 같은 투기자본의 압박을 빼놓고서는 설명할 수 없는 셈이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경영 상황이 아닌 정부의 압박 등 기업 외적인 요인으로 배당을 늘리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는 기업 평가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국제신용평가사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올해 1월 SK이노베이션의 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변경했는데, 그 이유가 현금배당이 과하다는 것이었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해 순이익이 전년보다 21.3% 줄었지만 현금배당은 전년과 비슷한 수준이고, 배당성향은 43.5%로 전년(35.4%)보다 크게 높아졌다.



S&P는 “SK이노베이션은 자사주 매입과 현금 배당을 포함해 지난해 약 1조9000억원을 주주에게 환원했다”며 “배당금과 투자 증가가 향후 12~24개월 동안 ‘재량적 현금흐름(discretionary cash flow)’에 부담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현금을 배당에 써버린 만큼 차입금 상환 등에 활용할 수 있는 재원이 부족할 수 있다고 지적한 것이다. 


무디스도 같은 이유로 2월 15일 SK E&S의 등급 전망을 ‘부정적’으로 한단계 낮췄다. 무디스 측은 “높은 수준의 배당금 지급 결정과 설비 투자 확대 전망에 따른 차입금 증가 가능성을 고려할 때 SK E&S의 재무적 완충력 약화가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최근 국내외 경기가 둔화하고 있으므로 현금배당을 할 게 아니라 사업 전환이나 신규 사업에 투자를 해야 할 때라는 분석도 나온다. 기업 입장에서는 현금배당을 늘리면 연구개발이나 설비투자가 위축될 수밖에 없다. 당장 현금배당을 확 늘리기로 한 삼성전자는 올해 투자금이 지난해보다 20% 감소한 180억 달러(약 20조1690억원)에 그칠 것이라는 예측(반도체 시장 조사전문업체 IC인사이츠)이 나오기도 한다.



투자 위해 현금 아껴야 할 때라는 분석도

 

반면 인공지능(AI)이나 빅데이터 분야의 경쟁 업체인 구글·아마존·알리바바 등은 현금배당은 물론 자사주(자기회사 주식) 매입·소각에 한푼도 쓰지 않는다. 벌어 들인 이익 대부분을 성장을 위한 투자에 활용하는 것이다. 금융투자 업계의 한 관계자는 “최근 장기 투자자 사이에는 현금배당을 많이 하는 회사보다 중장기 성장에 투자하는 기업을 더 선호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황정일 기자 obidius@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