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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키의 비결? 선택과 집중!”_글로벌 CEO의 경영철학 2

세계 최고의 기업들은 세계 최고의 CEO들이 저마다의 경영법으로 회사를 키워나가고 있지요. 글로벌 기업의 CEO들은 과연 어떤 생각을 가지고 회사를 경영할까요? 록히드마틴, 나이키, 엔비디아, 세일즈포스의 CEO들의 비전과 경영철학을 알아보았어요.


 

메릴린 휴슨 록히드마틴 CEO

메릴린 휴슨은 방산업계에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가정이 유복하지도 않았고, 명문대를 나오거나 엘리트 코스를 밟지도 못한 그는 주경야독하며 석사를 겨우 마친 29살에 엔지니어로 록히드마틴에 입사해 CEO 자리까지 올랐다. 2013년 CEO에 취임하기까지 30년 동안 항공우주, 서비스, 물류, 감사 등 사내에서 거의 모든 부서를 돌았다. 사내에서 맡았던 임원급 직책만 20개에 달한다. 휴슨이 100년에 가까운 록히드마틴 역사상 첫 여성 CEO에 이사회 만장일치로 선임된 배경이다. 휴슨이 CEO로 일한 지난 5년간 록히드마틴의 주가는 취임 전 대비 3배 이상 올랐고, 시가총액도 3배 가까이 늘었다.

휴슨은 과감하고 공격적인 리더십으로 잘 알려져 있다. 매출이 안정적이지만 수익은 낮은 IT 서비스 부문을 과감히 매각하고 그 돈을 수익성 높은 방산 분야와 자율주행, 항공우주, 에너지 등 미래산업에 적극 투자하고 있다. 특히 취임 2년 만에 세계 최대 헬리콥터 제조업체 시코르스키를 인수한 것은 현재까지 그의 가장 큰 모험이자 최대 업적으로 꼽힌다. 인수 초기에는 유가 상승 등으로 인한 일시적 헬리콥터 매출 부진과 90억 달러(10조원)라는 막대한 가격 탓에 주변의 우려를 샀지만, 현재 시코르스키는 록히드마틴의 매출 10% 이상을 책임지는 핵심 사업부로 자리 잡았다.

휴슨은 1953년 캔자스주에 있는 작은 도시 정크션시티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군무원, 어머니는 간호사였다. 9살 때 아버지가 심장마비로 사망하면서 휴슨의 어머니 메어리는 5남매를 혼자 힘으로 키워야 했다. 메어리는 힘든 상황에서도 학교 식당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동시에 교회와 자선단체에서 봉사활동을 하는 등 용기를 잃지 않고 긍정적인 자세로 삶을 대했다. “어머니는 단 한 번도 삶을 비관하거나 나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어머니의 지칠 줄 모르는 낙관주의는 내게 큰 가르침을 줬다”고 휴슨은 돌이켰다.

역경에도 좌절하지 않았던 어머니처럼 휴슨은 항상 긍정적인 마음으로 새로운 기회를 받아들였다. 그는 록히드에서 근무하는 동안 인사이동을 단 한 번도 거부하지 않았다.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억누르고 기회가 찾아올 때마다 달려들어서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 30년간 휴슨이 사내 온갖 부서를 경험할 수 있었던 것은 이 같은 도전 정신 덕분이었다.

휴슨은 리더가 되는 길은 오직 경험뿐이라고 강조한다. “완벽해지려고 애쓰지 마세요. 안락한 곳에 머물지 말고 미지의 영역에 과감히 뛰어들어 늘 새로운 것을 배우세요. 그렇게 쌓은 역량이 여러분 일생의 자산이 될 것입니다.”

 

마크 파커 나이키 CEO 

나이키는 명실상부한 세계 최대의 스포츠 의류 기업이다. 지난해 기준 매출 340억 달러, 시가총액 1050억 달러, 미국 시장 점유율 21.1%(운동화) 등 거의 모든 부문에서 경쟁사들을 압도한다. 마크 파커가 나이키 CEO에 취임한 2006년에도 나이키는 이미 세계 최고였다. 필 나이트라는 전설적 경영자의 뒤를 이어 이 거대 기업을 이어받은 파커는 어깨가 무거울 만도 했다. 나이트가 SC존슨에서 직접 영입한 CEO 윌리엄 페레즈가 취임 1년 만에 나이트와의 불화로 사임하면서 회사 분위기도 어수선하기 이를 데 없었다.

신발 디자이너 출신인 데다 외부 활동도 거의 없었던 내부 인사인 파커는 화제의 인물이 아니었다. 당시 언론은 파커의 취임보다 페레즈의 사임에 훨씬 많은 관심을 보였다. 그러나 파커의 놀라운 경영 실적은 업계의 시선을 자신으로 돌리기에 충분했다. 나이키의 지난해 매출은 2006년 대비 3배 가까이 늘었고 시가총액은 5배 이상 증가했다.

이미 커질 대로 커진 나이키를 한 단계 더 상승시킨 원동력은 디테일에 집중하는 파커의 경영 방침에서 나왔다. 신발 디자이너 출신인 파커는 세세한 부분까지 꼼꼼하게 챙기고 직원들의 의견을 구했다. 그는 나이키에 필요한 것은 선택과 집중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표현을 빌리면 편집과 증폭(edit and amplify)이다. “디자인과 경영은 편집이 중요하다는 점에서 닮았다”고 말할 정도로 그는 편집을 중시했다.

당시 나이키는 기업 규모가 너무 크다 보니 진행되는 사업도 많고 검토해야 할 아이디어도 산더미 같았다. 이는 회사의 집중력을 흐트러뜨리고 빠른 변화에 적응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나이키 R&D 그룹에서 개발 중인 신제품 아이디어만 350개나 됐다. 파커는 팀원들과 열띤 논의 끝에 이를 50개로 ‘편집(edit out)’했다. 지난해 10월엔 판매 협력사를 3만 개에서 40개로 대폭 줄이겠다고 발표했다. 규모를 줄이는 대신 협력사와의 관계를 강화하고 매장 품질을 높여 협력사 매장을 찾는 고객에게 차별화된 경험을 선사하겠다는 전략이다.

파커는 수많은 가능성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항상 올바른 선택을 할 수는 없다. 때로는 승자를 택하지 못할 때도 있다. 그러나 나는 직원들에게 모든 사안을 일일이 지시하지는 않는다. 다만 직원들이 더 나은 선택을 하도록 무수히 많은 질문을 던진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 

최근 수년간 세간의 주목을 가장 많이 받은 기술 두 가지를 꼽는다면 단연 블록체인과 인공지능(AI)이다.

이 두 가지 기술은 쓰임과 작동 방식이 완전히 다르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성능이 뛰어난 그래픽 처리장치(GPU)를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GPU는 단순 연산을 반복해서 처리하는 데 탁월하다는 장점 덕분에 막대한 연산력을 요구하는 첨단 산업에서 두루 쓰인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는 GPU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만들어낸 인물이다. 199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컴퓨터는 그저 숫자나 글자, 단순한 색 몇 가지를 화면에 띄우는 것이 전부였던 사무용 기계에 불과했다. 그러나 황은 향후 컴퓨터가 TV 못지않은 종합 멀티미디어 기기로 진화하리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먼저 깨달았다. 1993년, 황은 그래픽 처리에 특화된 칩셋을 만들기 위해 엔비디아를 설립했다.

황이 가장 중시하는 가치는 위험을 감수할 줄 아는 인내력과 자신의 잘못을 빠르게 인정하고 실패에서 배우는 솔직함이다. 엔비디아가 초기에 연거푸 실패하면서도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원동력은 이 두 가치였다. 황은 “정말 가치 있고 훌륭하다고 믿는 아이디어가 있다면, 설령 그것이 누구도 해본 적 없는 일일지라도 위험을 감수할 만하다”며 “실패하더라도 그 실패에서 배우고, 또 실패하고 배우고, 이를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훌륭한 회사가 되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엔비디아는 실패를 거듭했다. 처음 출시한 NV1은 비싼 가격과 부족한 호환성 때문에 시장에서 외면당했다. 절치부심하고 두 번째 제품인 NV2 개발에 나섰지만 도중에 시장성이 없다는 판단을 내리고 개발을 중단했다. 황이 빛을 본 건은 세 번째 시도인 NV3였다.

당시 한창 주목을 받던 3D 그래픽에 특화된 NV3가 폭발적 인기를 끌면서 엔비디아는 단숨에 독보적인 그래픽 장치 업체로 발돋움했다. 엔비디아는 이제 엔터테인먼트를 넘어 첨단산업 부문에서도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황은 실패에서 배우기 위해선 자신의 실패를 인정하는 지적인 솔직함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는 “지적인 솔직함이 없다면 실패를 인내하는 문화를 만들 수 없다. 솔직하지 않은 사람들은 실패를 인정하지 못하고 자기 아이디어와 자신의 명성을 동일시한다”며 “결국 잘못된 아이디어에 지나치게 매달리다가 회사 전체를 위기에 빠뜨리게 된다”고 말했다.

 

마크 베니오프 세일즈포스 CEO 

미국에서 혁신적인 기업을 꼽으라면 애플, 구글, 아마존 등과 함께 빠지지 않는 이름이 있다. 바로 클라우드 컴퓨팅 서비스 기업 세일즈포스다. 일반 소비자가 아니라 고객을 대상으로 영업하는 B2B 기업이라 일반인에게는 많이 알려져 있지 않지만, 세일즈포스는 IT업계 최고의 혁신 기업으로 꼽힌다. 세일즈포스는 2011년부터 2017년까지 7회 연속 포브스가 선정한 혁신 기업 1위에 올랐다.

세일즈포스의 시작은 여느 혁신 기업처럼 초라했다. 미국 IT기업 오라클 임원이었던 베니오프는 1999년 작은 원룸에 사무실을 차리고 세일즈포스를 창업했다. 클라우드라는 개념조차 없었던 시절, 기업들은 IT 소프트웨어를 설치하기 위해 큰돈을 들여 소프트웨어를 구입해 설치하고 직원 교육 및 유지관리를 위해 사내에 전문가를 상주시켜야 했다.

베니오프는 인터넷을 통해 소프트웨어를 기업들에게 빌려주고 복잡하고 어려운 유지관리도 온라인으로 대신 해주는 서비스를 꿈꿨다. 클라우드에 기반한 서비스로서의 소프트웨어(SaaS)의 시초였다. 베니오프는 언젠가 모든 소프트웨어가 클라우드를 통해 제공될 것이며 그 중심에 세일즈포스가 있으리라고 믿었다. 사무실에 변변한 가구조차 없었던 창업 초기 핫메일이 4억 달러에 매각됐다는 소식을 듣고도 “나 같으면 그 돈 받고는 안 팔았을 것”이라며 훨씬 더 큰 야망을 드러냈다.

베니오프는 단 한 달 만에 첫 시제품을 완성했다. 초기 세일즈포스 웹사이트의 외형은 지금 보기엔 놀라울 정도로 초라했다. 노란 바탕에 파란 글씨와 검은 글씨로 서비스 내용이 적혀 있는 것이 전부였다. 조금 심하게 말하면 중학생이 학교 과제로 난생처음 만들어본 홈페이지라고 해도 믿을 정도다. 이 웹사이트에는 간략한 기업 설명, 연락처, 한두 줄짜리 고객 후기, 회원가입과 로그인 등 필요한 최소한의 사항만 담겼다.

베니오프는 빠르게 변하는 IT업계에서 완벽한 제품을 만드느라 꾸물댈 시간이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모든 면을 완벽하게 갖추기보다 최대한 쉽고 빠르게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제품을 제작하는 데 온 시간을 쏟았다. 베니오프는 자서전에서 “사업 초기엔 모든 부문에 초점을 맞출 수 없다. 시간도, 인력도 부족하다”며 “따라서 80%의 차이를 만들 수 있는 20%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일즈 포스가 불과 수년 만에 소프트웨어 혁신의 선두주자로 올라설 수 있었던 것은 사업 초기 핵심 강점에 역량을 집중한 베니오프의 혜안 덕분이었다.

 

이기준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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