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코(KIKO) 사태를 기억하고 계신 분이 적지 않으리라 생각돼요. 많은 중소기업이 피해를 보았지만 2013년 대법원에서 기업의 패소를 확정하며 일단락됐지요. 하지만 조붕구 한국기업회생 지원협회장은 키코 사태는 이제부터라고 이야기합니다.
“다 끝난 일 아닌가?” 2019년 현재 ‘키코(KIKO) 사태’를 대하는 일반의 평가다. 햇수로 10년이 흐른 일이라 그럴 만하다. 키코는 수출 중소기업에 큰 타격을 입힌 환율 관련 신용파생상품이다. 많은 중소기업이 피해를 입었지만 키코를 판매한 은행과 이를 계약한 중소기업 간 법적 분쟁은 2013년 대법원 판결로 일단락됐다. 대법원은 은행이 키코 판매에서 적합성 원칙과 설명 의무를 위반하지 않았다며 기업의 패소를 확정했다. 그렇게 키코 사태는 잊혀져 갔다.
그러나 2009년부터 키코 사태에 맞서온 조붕구 한국기업회생지원협회장은 “이제 시작”이라고 말한다. 마침 금융감독원(이하 금감원)이 오는 5월 분쟁조정위원회에 상정하기로 했다. 그런데 달라질까. “키코가 한국 경제에 던진 타격은 끝나지 않았다”고 강조하는 조 회장을 만나 키코 사태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물었다.
다 끝난 일 아닌가.
“키코 사태는 말끔히 해결되지 않은 채 우리나라 경제에 그림자로 드리워져 있다. 전체 수출에서 중소기업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지난해 기준 18%였다. 외국계 은행인 한국씨티은행이 키코를 처음 도입한 후 키코가 은행권 전체로 번지기 시작한 게 2005년이었고, 당시 중소기업 수출 비중이 32%였다. 키코 사태가 본격화한 2007~2008년도에는 31%였지만, 현재 중소기업 수출 비중은 절반 수준으로 떨어져 오르지 않고 있다.
수출액이 많은 중소기업일수록 키코 가입액이 크고 피해 규모가 컸던 탓이다. 2007~2008년 은행은 수출 대금을 달러로 받는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환율 하락(원화 가치 상승)에 따른 손실 위험을 줄일 수 있다며 키코를 팔았다. 이를 계약한 수출 중심 기업은 환율 상승으로 피해를 입고 무너진 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키코 사태는 끝나지 않았다.”
키코 사태가 어떤 파장을 일으켰나.
“한국기업회생지원협회장이기 전에 코막중공업이라는 건설중장비 수출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키코 사태 이전까지만 해도 부채비율 50%의 건실한 중소기업이었다. 키코 손실 이후 갚아야 할 부채가 폭증했고, 이자율도 뛰었다. 감당할 수 없었다.
법정관리를 거쳤고 현재 매출은 키코 사태 전과 비교해 10%도 되지 않는다. 원글로벌미디어는 주거래은행인 신한은행과 2007년과 2008년 키코 계약 2건을 맺었다가 손해를 입으면서 재무상태가 나빠졌다. 한때 연매출 700억원에 달했던 원글로벌미디어는 결국 2016년 폐업했다. 한국기업회생지원협회 산하 키코공동대책위원회 추산 결과 919개 중소기업이 가입했다. 연락이 닿은 471개 기업 중 235개사가 키코로 도산했다.”
대법원은 기업 패소를 확정했다.
“은행이 사기 상품을 팔았다며 낸 소송을 대법원은 “사기 상품이 아니다”라고 했다. 키코에서 기업은 ‘일정한 환율 범위 내에서 일정한 규모의 달러화를 일정한 가격으로’ 은행에 팔 수 있는 풋옵션을 얻었다. 대신 은행은 ‘환율이 일정한 범위 이상으로 올라가는 경우, 일정한 규모의 달러화를 일정한 가격에 매입할 수 있는 권리(콜옵션)’를 얻었다.
그러나 은행은 키코가 환율이 기준선을 넘어가면 엄청난 손실을 볼 수 있는 구조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설명하지 않았다. 중소기업은 환율 위험을 헤지(hedge·방어)할 수 있다는 은행 말을 믿었지만, 은행은 중소기업이 잘 모른다는 것을 이용해 농락한 것이다.
이를 법원은 정당한 시장 거래로 간주해 은행에 면죄부를 줬다. 2013년 대법원 판결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1심 승소가 많았지만, 뒤집어졌다. 그런데 최근 키코 사태가 양승태 대법원의 재판 거래 의혹 대상으로 떠올랐다. 법원행정처가 작성한 ‘현안 관련 말씀자료’에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뒷받침하기 위한 사례로 키코가 언급됐다. 문건에는 ‘국가경제발전 최우선 고려’라는 항목 아래 키코 사건이 적시돼 있다. 은행과 중소기업 간 법적 분쟁이 끝났다는 이유로 잊히면 안 되는 이유다.”
금감원이 재조사에 나섰다.
“교수 시절부터 키코 사태의 문제를 지적해온 윤석헌 금감원장이 재조사를 추진했다. 과거 키코공동대책위원회가 법원을 찾기 전 금감원을 찾았을 때와 다른 태도다. 2009년 키코공동대책위원회가 금감원에 키코를 판매한 시중은행에 대한 징계 요구를 한 적이 있다. 당시 금감원은 상품 적합성 등을 중심으로 조사한 후 일부 은행 직원에 대한 징계만 내렸다.
다행인 점은 윤석헌 원장 취임 후 키코를 판매한 시중은행에 대한 금감원 조사가 제대로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윤 원장은 2017년 금융행정혁신위원장 때 “감독 당국이 금융회사의 이익을 소비자 보호에 우선해 처리한 대표적인 사례”라고 보고서에 쓰기도 한 것으로 알고 있다. 한국기업회생지원협회와 키코공동대책위원회는 적절한 피해 보상안이 나오리라고 보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금감원 분쟁 조정 신청 기업이 적다.
“각 분쟁 조정 신청 기업들마다 가진 특성을 달리해 금감원의 분쟁 조정 결과를 가능한 빠르게 확보하는 데 중점을 뒀다. 금감원은 지난해 6월 분쟁 조정 신청을 받았고, 원글로벌미디어·재영솔루텍·일성하이스코·남화통상 등 4개사가 신청했다. 각 기업은 키코 사태로 파산한 회사, 법인체만 살아있고 영업은 하지 못하고 있는 회사. 워크아웃에 들어간 회사, 법정관리를 받은 회사, 살아난 회사 등 5개 기준으로 선정됐다.
이 중원글로벌미디어는 법인만 살아있는 회사로 신청했다. 재영솔루텍·일성하이스코·남화통상은 각각 워크아웃 중인 회사, 법정관리를 마친 회사, 살아남은 회사로 분류돼 있다. 다만 회사가 완전히 없어진 경우는 금감원 분쟁 조정 신청 자체가 불가해 이뤄지지 못했다. 금감원이 소송을 하지 않은 키코 피해 기업을 분쟁 조정 대상으로 한정했음에도 신청 문의가 많다. 금감원은 우선 4곳 조정을 우선 진행키로 했다.”
키코 사태 피해의 후폭풍은.
“키코 사태 후 경영난을 겪고 있는 대부분 기업은 경영 악화와 부도 위기라는 구조적 악순환 고리에 빠져 있다. 신용등급 하락으로 이자 부담이 가중됐다. 이는 다시 자금 압박 심화로 연결, 설비 및 연구개발(R&D) 투자 기회 축소로 이어졌다. 설비 및 R&D 축소는 제품 경쟁력 상실로 이어져 키코 피해 기업은 현재 매출·이익 감소에 빠져 있다. 235개사가 도산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키코 손실에 따른 자본잠식 상태 지속 및 워크아웃 기업이라는 멍에 탓에 수주에도 어려움을 겪었다. 수출 기업으로서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이행보증 문제만이라도 해소할 수 있으면 다시 해볼 수 있겠다는 말이 10년째 나오고 있다.”
키코 사태는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했다.
“키코는 금융탐욕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기업과 유동성 공급기관인 은행이 공존·상생해야 하는데 키코는 그런 구조를 흔든 발단이 됐다. 키코와 같은 환율 관련 신용파생상품은 시중은행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키코 사태로 기업과 은행 간 반감이 생긴 탓이다. 기업이 쓰러지면 부실이 그대로 금융회사로 가고, 금융회사의 부실이 커지면 결국 국민 세금으로 메워줘야 한다. 이를 막기 위한 사회적 시스템 구축 작업이 금감원을 통해 이제 시작됐다고 본다. 조금, 기대하고 있다.”
배동주 기자 bae.dongju@joongang.co.kr
이코노미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