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시대 반가(班家) 음식을 토대로 한 반찬 조리법 77가지를 담은 책이 나왔어요. ‘현대인도 부담 없이 따라 할 수 있도록 손쉽게, 제대로 먹을 수 있다’고 해요. 전통문화연구소 온지음 맛공방에서 만든 [찬(Chan)]이라는 책이에요.

 

전통문화연구소 온지음에서 만든 한상 차림.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씀바귀 무침, 멸치 견과류 조림, 장아찌 주먹밥, 은달래 장아찌, 움파 불고기. / 사진 : 민희기

 

"배고파서 돌아왔어.”

영화 [리틀 포레스트]의 첫 장면은 주인공 혜원(김태리 역)이 고향으로 내려오면서 시작한다. 임용시험은 뜻대로 풀리지 않고, 편의점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우지만, 항상 배가 고프다. 인스턴트 음식으론 채워지지 않는 마음의 허기 때문이다.

눈으로 뒤덮인 배춧잎과 봄에 나는 쑥, 뙤약볕에 빨갛게 익은 토마토. 혜원은 부지런히 마련한 재료로 요리를 해 먹는다. 아카시아 봄꽃으론 튀김을 해 먹고, 제철 오이는 어슷하게 썰어 콩국수와 함께 먹는다.

영화를 보다 보면 침이 고인다. 그러나 결말에 혜원이 서울로 돌아올 때쯤 관객들은 현실감을 되찾는다. 제철 식재료를 직접 길러 차리는 밥상. 시골이란 판타지 속에서만 가능한 일이 아닐까. 제대로 먹을 때 마음마저 배부르지만, 손쉽게 먹고픈 현실을 이겨내긴 역부족인 듯하다.

그런데 ‘손쉽게, 제대로 먹을 수 있다’고 말하는 요리책이 나왔다. 전통문화연구소 온지음 맛공방에서 만든 [찬(Chan)]이다. 이름 그대로 반찬 조리법 77가지를 담았다. 조선 시대 반가(班家) 음식을 토대로 하면서도 “현대인도 부담 없이 따라 할 수 있도록” 조리법을 간소하게 만들었단다. 또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제철 재료를 활용했다”며 독자의 경계심을 누그러뜨린다.

인간의 기본 존립 요건은 의식주다. 온지음도 ‘옷공방’ ‘맛공방’ ‘집공방’을 운영한다. 각 공방에서 장인(匠人)을 양성한다. 맛공방에서는 궁중요리 이수자 조은희 방장과 박성배 수석연구원을 비롯해 10여 명의 연구원이 머리를 맞댄다. 이들은 고(古) 조리서와 지역이나 가문에서 전해져오는 조리법을 발굴하는 작업을 한다.

조은희 방장은 월간중앙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2016년 작 [온지음이 차리는 맛]을 ‘옛 조리법 발굴’이란 묵직한 문제의식으로 써내려갔다면, 이번엔 한식에 대한 진입장벽을 낮추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책에 담은 의미를 설명했다.

왜 반찬이란 형식을 택했나.

“한식은 탕반(湯飯)의 문화라고 한다. 밥은 하얀 종이처럼 모든 맛을 포용하고, 국과 반찬은 맛을 완성해내는 역할이다. 제대로 만든 반찬은 색감 풍부한 그림처럼 다양한 맛을 일깨운다. 그만큼 삶도 풍요로워진다. 그런데 현대인들은 집에서 반찬을 하기 어렵다고 생각하지 않나. ‘이렇게 간단한 재료만으로도 음식을 차릴 수 있다’고 말하고 싶었다.”

 

박성배(왼쪽) 온지음 수석연구원과 조은희 방장이 음식을 그릇에 담고 있다.

 

반가 음식을 소재로 한 이유가 있다면.

“조리법을 보면, 한정된 조미료로 어떻게 감칠맛을 낼까 고민한 흔적이 엿보인다. 그러다 보니 담백하면서도 깊은 맛이 난다. 깔끔한 감칠맛이라고 해야 할까. 예를 들어 옛 조리서에 기록돼 전해 내려오는 ‘천리장’이란 간장이 있다. 간장에 육수와 삶은 소고기를 말린 가루를 넣고 졸여서 만든다. 국 끓일 때나 나물을 무칠 때 넣으면 맛의 깊이가 다르다.”

조리법이 전승돼 온 건가.

“아니다. 대략 이런 방법으로 만들었다는 정도로만 나와 있다. 그래서 연구를 꽤 오래 했다. 이를테면 ‘소고기가 너무 굵게 갈렸다. 고기를 더 잘게 갈아야 맛있구나’ ‘간장을 너무 오래 끓이니까 짜구나’ 보완을 하면서 맛을 갖췄다.”

쇠고기 핏물 빼고 간장 졸이는 데만도 시간이 걸리겠는데.

“장은 오래 두고 먹는 만큼 손이 더 갈 수밖에 없다. 책의 큰 구성은 계절이다. 제철에 따라 접근성이 좋은 재료들을 다뤘다. 예를 들어 아스파라거스를 ‘귀족 채소’라고 아는 분이 많다. 그런데 이제 한국에서도 굉장히 좋게 나온다. 그래서 맛공방에선 잡채에 활용했다. 잡채에 꼭 시금치가 들어가고 오이가 들어가야 하나. 식재료에 따라 잡채도 변할 수 있다.”

여름 편에 나오는 토마토 김치도 이색적이다.

“프랑스에 있을 때 토마토를 고춧가루·액젓과 함께 버무려 현지인들에게 대접했다. 소금 간에 레몬즙도 더해 상큼하게 무쳤다. 반응이 기대 이상이었다. 고기와 함께 즐길 만한 샐러드로 여기더라. 냉채 같기도 하고 김치 같기도 하고, 재밌는 음식이라고 해서 책에 수록했다.”

김장 김치처럼 만드는 법이 어렵지도 않다. 책에 소개된 레시피는 단 네 줄. 그나마 세 줄은 토마토·양파·달래를 다듬는 과정이다. 그다음엔 고춧가루와 멸치 액젓, 매실액, 다진 마늘로 만든 양념에 버무리면 그만이다. 싱그럽고 시원하고 상큼한 맛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건조한 파채나 짠 양파절임보다 고기와 퍽 어울릴 듯하다.

필자는 머리말에서 “밥상은 계절의 서사”라고 규정했다. “찬을 말하기 전에 계절을 먼저 이야기하는 것은 매일 밥상에 올리는 찬을 통해 한철 자연을 듬뿍 맞이하길 바라는 마음 때문이다.” 그의 말처럼 77가지 레시피를 따라가다 보면, 도시 속 ‘작은 숲’을 만나게 될지도 모르겠다.

 

찬(Chan) / 전통문화연구소 온지음 지음 / 중앙books / 4만2000원

 

문상덕 월간중앙 기자 mun.sangd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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