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의 총통 선거가 반년 후로 다가왔어요. 집권 여당인 민진당과 제1야당 국민당의 대표로 각각 차이잉원 총통과 한궈위 가오슝 시장이 뽑혔어요. 두 후보의 성향에 따른 미국, 중국, 홍콩에 주는 영향을 살펴보았어요.
내년 1월 11일 열리는 대만 총통(대통령에 해당) 선거에 나설 집권 민진당과 제1야당 국민당의 후보가 결정되면서 대선전이 사실상 시작됐다. 민진당에선 차이잉원(蔡英文·63) 총통이 6월 14일 열린 여론조사 형태의 예비선거에서 35.67%의 지지율을 획득해 27.48%를 얻은 라이칭더(賴淸德) 전 행정원장을 제쳤다. 민진당 내부 경선은 두 사람의 이름을 따서 영덕대전(英德大戰)으로 불릴만큼 치열했다.
국민당에선 한궈위(韓國瑜·62) 가오슝(高雄)시장이 7월 8~14일 실시된 여론조사 형태의 예비선거에서 44.8%의 지지율을 얻어 후보가 됐다. 27.7%를 얻은 궈타이밍(郭台銘·69) 전 홍하이(鴻海)정밀 회장과 17.9%에 그친 주리룬(朱立倫·58) 신베이(新北) 시장을 가볍게 눌렀다.
중국은 친중 국민당의 한궈위 후보 지원
홍콩에서 발행되는 시사잡지 아주주간(亞洲週刊)은 한궈위를 ‘한류태풍(韓流台風)’이라고 표현했다. 대만에선 ‘한류(韓流)’가 한국 대중문화 열풍이란 의미와 함께 성이 한씨인 한궈위의 정치적인 인기를 가리키는 데도 사용돼왔다. 현직인 차이잉원 총통은 ‘홍콩 브랜드’ ‘공공(恐共·공산당에 대한 두려움) 브랜드’로 한 후보에 맞선다고 표현했다.
범죄인 인도협정 없이도 중국에 혐의자를 송환할 수 있도록 하는 홍콩의 ‘도범 조례(반대하는 중국으로 송환한다는 의미의 송중(送中)조례로 표현)’에 반대하는 홍콩 주민의 대규모 시위로 중화권에서 일고 있는 반중 정서, 반공산당 정서를 활용하다는 의미다. 이번 대만 대선에는 ‘차이나 요인’이 강하게 작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이 비교적 친중인 국민당의 한궈위 후보를 물밑으로 지원하고, 차이 총통은 홍콩 사태로 중화권에 가열된 반중 정서와 미중 무역전쟁을 활용한 대미 외교 성과를 최대한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
한궈위는 대선 후보가 되자마자 중국 지원설에 휩싸였다. “대만의 친중 야당인 국민당의 한궈위 후보가 애플에 아이폰 등을 위탁생산해 공급하는 폭스콘의 궈밍타이 후보를 누르고 대선 후보가 된 지난 7월 15일 (친중 성향의) CTiTV와 자매 채널인 CTV는 한 후보의 지지자들이 깃발을 흔들면서 환호하고 불꽃놀이를 하는 장면을 포함해 하루 종일 한 후보와 관련한 뉴스만 보도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대만 미디어에서 중국 영향력으로 초조’라는 7월 18일자 기사에서 지적한 내용이다.
FT는 대만의 두 방송 채널이 한 후보를 이렇게 일방적으로 옹호한 것은 이번뿐이 아니라고 전했다. 두 채널은 지난 몇 년간 한 후보만 일방적으로 보도해 ‘한류(韓流·한 후보의 인기몰이)’라는 신조어를 만드는 데 일조했다는 것이다. FT는 7월 16일에도 비슷한 내용의 기사를 실었으며 이를 계기로 대만에선 중국의 대선 개입설에 대한 논란이 일었다.
한궈위는 현재 대만에서 선풍적인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그의 과거 경력은 좌절로 점철됐다. 1993~2002년 대만 입법기관인 입법원 의원을 세 차례 지냈지만 이후 정계에서 밀려났다. 2017년 국민당 대표에 도전했으나 행정원장(2009~2012년·총리격)과 부총통(2012~2026년)을 지낸 거물 정치인 우둔이(吳敦義·71)에게 고배를 마셨다.
2018년 11월 그는 대만 제2의 도시인 남부 항구 가오슝(高雄) 시장에 도전해 당선했다. 이 승리가 그의 인생을 바꿨다. 가오슝은 우둔이 국민당 대표가 1990~98년 시장을 지낸 뒤 민진당이 20년간 시장 자리를 도맡았던 민진당의 텃밭인데 한궈위가 그 자리를 되찾아오면서 국민당에서 ‘지방선거의 영웅’이 됐다.
가오슝 시장 선거에서 승리하며 영웅으로 떠올라
사실 국민당에선 누구도 가오슝 시장 후보로 선뜻 나서지 않았다. 한궈위는 거의 버리는 카드로 국민당의 가오슝 시장 후보가 됐다. 국민당에서도 거의 기대를 하지 않았으며 지원도 등한히했다. 그래서 그는 비용이 별로 들지 않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바탕으로 청년층 공략에 나서는 전략을 구사할 수밖에 없었다.
입법원 의원을 끝으로 2002년 중앙 정계를 떠난 그는 ‘목에서 힘을 뺀’ 소탈한 모습으로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2018년 여름 가오슝에 폭우가 내리자 바지를 걷어 올린 채 수행원도 없이 홀로 우산을 쓰고 침수 현장을 다니며 피해 주민을 직접 만나 위로했다. 대중 정치인 한궈위의 새로운 탄생이다. 머리숱이 거의 없는 그는 지난해 지방선거 마지막 날 유세에서 대머리 지지자 227명을 모아 ‘가오슝 빛내기’라는 이벤트를 열었다. 대중에 친근한 이미지를 만들었음은 물론이다.
‘서민적’으로 보이는 그의 모습은 특히 젊은이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다. 그는 “민진당이 젊은이들이 가오슝을 떠나게 했다. 나는 낡고 가난한 가오슝을 대만 최고의 부자 도시로 만들겠다”라는 내용을 SNS에 올리면서 젊은이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이끌었다.
민진당 텃밭인 가오슝에서 한궈위가 불러온 폭풍은 대만 전역으로 번졌다. 2017년 11월 지방선거에서 국민당은 22개 현·시장 중 15개를 차지했다. 한궈위는 국민당을 살린 공신으로 평가 받으며 일약 대권 주자로 떠올라 내년 1월 대선의 국민당 후보가 된 것이다.
그 과정에서 그는 황당한 공약을 내놓아 포퓰리스트라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대표적인 것이 “시장에 당선하면 10년 내로 가오슝 인구를 500만 명으로 늘리겠다”는 공약이다. 2350만 명의 인구가 사는 대만은 최대 도시인 신베이에 약 400만 명, 수도인 타이베이에 약 270만 명이 각각 거주하고 있다. 대만 제3의 도시인 가오슝에는 270만 명이 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가오슝 인구를 10년 안에 500만 명으로 늘리려면 엄청난 유인 요소를 정책적으로 만들어야 한다. 현실적으로, 순리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현역인 차이 총통은 외교적 성과를 앞세운다. 대표적인 것이 미국으로부터 무기체계를 대대적으로 구입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대만에 M1A2 에이브럼스 전차 108대와 스팅어 휴대용 방공 미사일 250기 등 모두 22억 달러(약 2조6000억원)가 넘는 각종 무기체계를 판매하기로 한 사실도 차이 정권에 힘을 실어주는 대목이다.
7월 8일 AP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미국 국무부는 이를 승인했으며, 절차에 따라 국방부 산하 국방안보협력국(DSCA)이 미 의회에 대만 수출 대상 무기 목록을 통보했다. 미 의회는 표결을 통해 무기 수출을 막을 수 있지만, 그럴 가능성은 희박한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은 예상대로 펄쩍 뛰는 자세를 취했다. 중국 인민해방군은 대만 인근에서 육해공 합동으로 대규모 군사 훈련을 벌였다. 중국 국방부는 7월 14일 웨이보(중국판 트위터) 등을 이용해 “인민해방군이 최근 남동부 연해 등의 바다와 공중에서 훈련했으며 이는 올해 군의 연간계획에 근거한 통상적 훈련”이라고 훈련사실을 발표했다. 흔한 공식 발표문으로 보이는 이 짤막한 글에는 특별한 점이 몇 가지 있다.
하나는 훈련 장소에 대해 ‘대만 인근’이라는 표현 대신 ‘남동부’라고 표현했다는 사실이다. 훈련이 겨냥하는 목표물인 ‘대만’이 아니라 훈련을 벌인 지역인 ‘남동부’라는 용어를 선택한 배경에는 여러 가지 노림수가 있다. 미국과 대만이 이 군사훈련을 대만에 대한 군사적 위협이라고 비난하는 것을 사전에 막기 위한 용어 선택이다. ‘언어의 외교술’인 셈이다. 무역전쟁 중인 미국을 자극하지 않겠다는 의도로도 보인다. 이와 더불어 최근 홍콩 시위 사태 등으로 중화권에 불고 있는 반중 정서를 자극하지 않겠다는 속셈도 엿보인다. 여기에 더해 내년 1월 대선과 총선을 앞두고 있는 대만에서 반중 정서가 일지 않도록 ‘정서적으로’ 관리하겠다는 계산도 읽을 수 있다.
또 다른 특이점은 중국 국방부가 국제 정세상 예민할 수밖에 없는 대만 인근에서의 군사훈련 사실을 관영 매체보다 먼저 발표한 일이다. 해방군은 이 지역에서 2014년, 2016년, 2018년 등 2년 주기로 정기 훈련을 실시했는데, 훈련 사실을 관영 매체가 먼저 보도한 후 국방부가 이를 확인하는 방식으로 외부에 알려왔다.
관영 영어매체인 글로벌타임스도 7월 16일 익명의 군사전문가를 인용해 “해방군이 남동부 연해에서 정기 훈련을 하는 일은 특별한 것으로 보이지 않지만 국방부가 이를 적극적으로 발표하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글로벌타임스는 아예 대놓고 “해방군의 남동부 연해 훈련이 대만을 겨냥해 대규모로 진행됐을 가능성이 있다”라고 보도했다. 글로벌타임스를 앞세워 공식 발표에선 하지 못한 속내를 드러낸 셈이다. 이번 훈련이 대만과 대만을 지원해온 미국을 겨냥한 군사적 위협 조치임을 드러낸 셈이다.
주목할 점은 중국 정부의 전통적인 ‘굿캅 배드캅’ 방식의 미디어전이다. 글로벌타임스는 관영 인민일보의 자매지인 환구시보의 영어 신문이다. 환구시보는 중국의 의도와 민족감정을 가감 없이 원색적으로 보도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다. 중국은 공식 발표와는 별개로 관영 매체를 통한 언론 플레이에선 굳이 진짜 의도를 숨기지 않는 선전 기법을 사용해왔다.
당 기관지인 인민일보는 주로 공식적인 내용을 담고 원색적인 선전전은 환구시보와 글로벌타임스를 앞세워 수행하는 투트랙 미디어 전술을 펼쳐왔다. 정부 부처나 인민일보는 일종의 ‘굿캅’ 노릇을 하며 민감한 문제에 즉답을 회피하거나 원론적인 내용만 전했다면, 환구시보와 글로벌타임스는 ‘배드캅’ 노릇을 하며 대놓고 원색적인 용어로 상대를 비난하거나 중국 정부의 위협이나 속내를 대놓고 전했다.
중국, 군사훈련으로 대만 견제
이런 상황에서 대만의 차이 총통은 7월 11~22일 카리브해의 수교국을 순방했다. 대만 외교부 홈페이지에 따르면 대만은 현재 17개국과 대사급 외교관계를 맺고 있다. 2009년 수교국이 23개국이었지만 2013년 22개국, 2016년 21개국, 2017년 20개국으로 줄었으며 2018년 17개국으로 줄었다.
대만 수교국 17개국은 ‘하나의 중국’을 주장하는 중국에 의해 중국과는 외교관계를 맺지 않고 있다. 대만은 현재 전 세계에 17개의 대사관 외에도 55개의 대표부와 36개의 사무소, 2개의 총영사관, 1개의 국제기구 사무소를 두고 있다. 라틴아메리카와 카리브해에는 대만 수교국의 거의 절반인 9개국이 몰려 있다.
이번 차이 총통의 해외 순방은 아이로니컬하게도 목적지인 아이티·세인트키츠네비스·세인트빈센트그레나딘·세인트 루시아에 방점을 찍지 않았다. 대신 경유지인 미국 뉴욕과 덴버가 관심이 초점이 됐다. 차이 통통은 출발일인 7월 11일 미국 뉴욕에 도착해 컬럼비아대에서 연설하고 미국 정관계 인사를 만나고 교민과 만찬을 했다. 차이 총통은 귀국길에는 미국 콜로라도주 주도인 덴버에서 2박3일을 머물며 코리 가드너 미국 상원 외교위원회 동아태소위 위원장을 만났다.
공화당 소속의 가드너는 콜로라도주 연방 상원의원이다. 그는 콜로라도주 유마에서 태어나 콜로라도대와 콜로라도대 법과대학원을 졸업한 콜로라도 토박이다. 2005~2011년 콜로라도주 연방 하원의원을 거쳐 2017년부터 콜로라도주 연방 상원의원을 맡고 있다. 그런 가드너를 고향이자 지역구인 콜로라도주를 찾아가서 만난 것이다. 비수교국인 미국의 수도인 워싱턴을 찾아 정관계 인사를 만나는 대신 이런 우회로를 동원한 셈이다.
차이 총통은 7월 21일 덴버에서 대만 언론과 기자간담회를 열었는데 대만 총통이 수교국이 아닌 나라에서 기자간담회를 여는 것도 처음이었다. 그는 해외 순방 과정에서 앞뒤로 4박을 미국에서 머물렀는데 이런 미국 경유 시간은 역대 총통의 해외 순방 가운데 가장 긴 것으로 알려졌다. 카리브해 수교국에 가는 길과 오는 길 모두에 미국을 경유한 것은 차이 총통이 그만큼 대미 관계가 돈독함을 과시한 셈이다. 여기에 중국이 항의했지만 미국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또 눈길을 끄는 것은 지난 3월 미국과 대만이 공동으로 민주주의와 인권 관련 대화를 하기로 합의한 점이다. 미국은 1979년 중국과 수교하면서 대만과는 국교를 단절했지만 민간기관인 미국주대만협회(AIT)를 통해 관계를 이어왔다. AIT는 형식적으로는 민간기관이지만 비자 업무 등을 운영하면서 국교를 단절한 대만에서 실질적인 미국 외교공관 역할을 한다. 외교공관과 달리 대만의 타이베이(臺北)와 가오슝(高雄)에는물론 미국 워싱턴에도 사무실을 유지하면서 양국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이런 AIT의 윌리엄 브렌트 크리스텐슨 대표는 3월 19일 우자오셰(吳釗燮) 대만 외교부장과 공동 기자회견을 열어 놀라운 내용을 발표했다. 미국과 대만이 연례 대화를 신설하기로 합의했으며 올 9월 대만에서 미국무부의 ‘민주주의, 인권, 노동’ 사무소의 고위 관리가 참석한 가운데 첫 공동 대화 행사를 열기로 했다는 내용이다. 미국과 대만이 중국의 아킬레스건인 민주주의 인권과 관련한 기관이 참석한 가운데 공동 대화를 하는 것은 누가 봐도 중국에 대한 견제구다.
더구나 대화의 명칭이 ‘인도태평양 민주주의 거버넌스 협의’라는 사실 앞에선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크리스텐슨 대표는 이 대화의 목적에 대해 “미국과 대만이 지역에서 협력을 증진하고 공동 프로젝트를 추구해 오늘날 거버넌스 도전을 받는 다른 나라를 지원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 지역을 촉진하는 데 미국과 대만보다 더 좋은 파트너가 없다”라고 덧붙였다. 대만이 바야흐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미국의 ‘인도태평양전략’의 한 축이 되어가는 셈이다. 이런 국제적 상황을 앞세우는 차이 총통과 소탈한 이미지를 내세우는 한 후보는 앞으로 6개월간 대대적인 혈전을 벌일 수밖에 없다. 대만 민진당과 국민당이 펼치는 대륙정책이 너무도 달라 접점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민진당 vs 국민당, 대륙정책 판이하게 달라
이런 상황에서 중국이 대만을 포함한 글로벌 공급체인을 어떻게 건드릴지, 대만과 경제관계를 어떻게 가져갈지를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미중 무역전쟁의 와중인 데다 오는 10월 건국 70주년을 맞는 중국이 홍콩과 대만 모두를 경제적으로 압박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하지만 가만히 있지는 않을 가능성이 크다. 미중 무역전쟁과 홍콩 사태가 대만의 대선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하지 않을 수밖에 없다.
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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