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속과 증여를 고민하는 이들이 늘고 있어요. 특히 60대 이후로는 나이대별로 고민하는 유형도 조금씩 다르다고 해요. 60대, 70대, 80대의 상속에 관한 고민이 어떻게 다른지 알아보았어요.
상속 문제는 집안마다 천차만별이고 경우의 수만 수백 가지다. 그래도 십수 년 상담을 하다 보니 나이대별 고민을 어느 정도 유형화해 접근할 수 있게 됐다.
언뜻 보면 60대, 70대, 80대 고객이 가진 고민이 비슷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60대 부모는 이제 막 사회에 진출한 30대 자식이 걱정되고, 70대 부모는 손자 교육이 화두다.
80·90대 부모는 주기적으로 병원 진료를 받으며 평안한 노후생활로 삶을 마무리하고 싶어 한다. 물론 한 가지 분명한 공통점은 ‘부모는 늘 자식 걱정을 한다’는 점이다. 가족들과 상속 문제를 상의하기 쉽진 않지만, 그래도 한 번은 짚고 넘어가야 하는 법이다. 부모가 남긴 재산은 자식이 살아가는 토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60대 여전히 부동산 선호
나이대별로 상속 고민이 어떻게 다른지 살펴보자. 액티브 시니어라 불리며 아직 건재한 60대는 여전히 부동산을 선호하는 경향이 뚜렷했다. 30대 자식들이 부동산을 구입하기 어려운 시대에 살고 있음을 잘 알고 있어서다. 70대가 넘어가면서부터는 현금성 자산을 늘리는 데 관심이 많았다. 손자 교육비로 써야 하고, 80대 들어선 병원 갈 일이 잦아진다. 그만큼 돈 쓸 일이 많아졌다는 뜻이다. 자산 구성도 그렇게 달라지고 있었다. 실제 사례를 보자.
먼저 중소기업을 운영하고 있는 60대 김부출씨 얘기다. 슬하에 2남 1녀를 두었다. 큰아들은 5년 동안 직장생활을 하다가 부친 회사에서 대표로 일하며 가업승계를 준비 중이다. 둘째인 딸과 막내아들은 다른 직장에서 일하고 있다. 현업에서 아직 건재한 김부출씨가 상담을 요청한 이유는 불안한 시장 상황 때문이다.
아들에게 대표를 맡긴 회사는 수출의존도가 높아 대내외적인 환경에 수익 구조가 급변한다. 안정적인 매출 구조를 갖추면 좋으련만 세상이 변해도 너무 빨리 변한다. 그래서 김씨는 보유한 부동산을 활용할 방법을 찾고 있었다. 일정한 임대소득 외 자산 가치를 높일 방법은 없는지, 부동산을 매각해 부채를 줄일 것인지 등은 궁금해했다. 아들이 갈수록 어려워지는 경영환경에서 버텨낼 체력을 고민 중인 셈이다.
보유 중인 부동산 인근 토지를 더 매입해 개발할 생각도 했다. 하지만 부동산 시장 침체가 우려돼 포기했다. 그래서 일단 보유 부동산을 자녀들에게 적정한 증여부터 하기로 했다. 배우자가 가진 상가를 빼고, 매각할 부동산을 골랐다. 가업을 이끌어가는 큰아들한테 일단 좀 더 많은 부동산을 증여하기로 했다. 다른 직장에 다니고 있는 두 자녀 앞으로 줄 부동산은 신탁화했다.
차등 상속 원하면 유언대용신탁 활용
다음은 점차 현금자산 비중을 높여가는 70대 장기성씨 얘기다. 그는 시골에서 자라 동대문에서 일찍부터 빌딩을 매입해 부동산으로 성공한 부자가 됐다. 자녀 둘은 모두 유학을 마쳤다. 딸은 결혼 후 미국으로 이주했고, 아들은 한국에서 개인 사업을 하고 있다. 그는 60대에 부인과 사별하고 혼자 서울에 살고 있다. 하지만 최근 가까운 친척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자식들이 재산분쟁을 벌이는 것을 보니 이참에 재산을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없겠지만 장씨는 아들에게 재산을 더 주고 싶다. 딸은 미국으로 이주 후 한국에 거의 오지 않고, 외손주 교육비 명목으로 거액을 송금하기도 했지만, 연락 한 번 제대로 한 적이 없다. 물론 한국법상 유류분 제도가 50:50 원칙을 세우고 있기 때문에 역시 분쟁의 소지가 남는다. 게다가 자산에서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에 더더욱 이 원칙을 벗어나기 어려웠다.
그래서 현금성 자산 비중을 늘리라는 조언을 해줬다. 이어 명확한 사유와 의지가 담긴 유언장을 준비해두고, 사전 증여를 통해 절세하면서 상속 계획을 세울 수 있도록 도왔다. 유언대용신탁도 대안이다. 현재 보유한 부동산과 현금성 자산을 신탁으로 설정하고 관리·처분하는 법을 좀 더 자유롭게 설정할 수 있다. 현금성 자산의 비중이 높을수록 유언장보다 신탁의 효용성이 커지는 이유 중 하나다.
마지막으로 건강한 노후생활에 집중하는 80대 박한철씨를 만났다. 6·25때 월남한 박씨는 10여 년 전 건물 하나를 매입해 임대수익을 얻고 있다. 항상 성실했던 그였지만, 80대에 찾아온 노환은 피할 수 없었다. 요새 병원 가는 일도 잦아졌다. 배우자와 함께 병원에 갈 때마다 두세 군데는 기본으로 검진한다. 최근엔 무릎 관절 수술을 한 이후에 회복이 더뎌 고생했다. 주변에서 치매 증상을 보이는 동년배를 보고 있자니, 가진 재산이라도 빨리 정리해 자식한테 나눠줘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세 딸은 건물을 관리할 여력이나 능력이 없다. 건물 관리가 말이 쉽지 임차인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관련 법규나 세무적인 지식도 꼼꼼하게 챙겨야 하는, 나름 사업이기 때문이다. 건물 하나를 두고 세 자매가 다툴 여지도 크다. 일단 박씨는 거액의 증여세가 부담돼 건물을 신탁하기로 결정했다. 신탁에서 건물 관리를 맡고 필요경비를 조달하는 식이다. 노후를 위한 의료비 지출에도 자금 여유가 생겼다. 자식들도 건물 자산을 나눌 부담을 덜어냈다.
배정식 KEB하나은행 리빙트러스트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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