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2월 22일 유엔의 대북제제 결의안에 따라 북한 노동자들은 2019년 12월 22일까지 본국 송환을 당했어요. 그러나 귀국하면 먹고 살길이 막막한 북한 노동자들은 아직도 해외에 남아서 일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해요. 하지만 이들은 강제 귀국 불안감에 상납, 러시아 경찰 단속 등 3중고에 시달리고 있다고 해요.
2017년 12월 22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는 10번째 대북제재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결의안의 핵심은 ‘해외 노동자 파견 제재’. 유엔 회원국들에 2019년 12월 22일까지 북한 노동자를 본국으로 돌려보내도록 의무화한 조치였다. 유엔은 외화벌이 북한 노동자가 약 1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한다. 이 중 80%는 중국(약 5만 명)과 러시아(약 3만 명)에서 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2019년 12월 22일 이후 현지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당 통치자금 충당 등 각종 명목으로 외화벌이에 나선 북한 노동자들은 모두 북한으로 돌아간 걸까. 러시아의 북한 노동자들은 여전히 그곳에서 일한다. 본국 철수 시한(12월 22일) 이후 러시아를 방문한 강동완 동아대 교수가 현지에서 확인했다.
강 교수는 2019년 12월 말부터 2020년 1월 초까지 10여 일가량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 머물며 북한 노동자들의 동향을 살폈다. 블라디보스토크는 북한 노동자가 많이 파견된 해외 지역 중 하나다. 강 교수는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안 2397호가 채택되기 이전인 2017년 하반기 이후 블라디보스토크를 수시로 방문해 북한 노동자들의 생활 실태를 조사·연구해오고 있다.
최근에는 그간 접촉한 북한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러시아에서 분단을 만났습니다-‘충성의 외화벌이’라 불리는 북한 노동자])을 출간하기도 했다.
강 교수에 따르면, 2018년 상반기부터 북한 노동자들의 본국 소환이 시작됐다. 그러다 철수 시한이 임박하면서 북한으로 출국하는 행렬이 눈에 띄게 늘었다고 한다. 이는 러시아가 2019년 3월 유엔에 제출한 송환 실적 중간보고서에도 나와 있다.
러시아는 이 보고서에 “유효 노동허가를 소지한 북한 노동자가 2018년 3만23명에서 1만1490명으로 축소됐다”고 밝혔다. 약 1만8000명이 북한으로 돌아간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러시아 건설 현장엔 북한 노동자들이 심심치 않게 목격된다. 월간중앙은 철수 시한이 지난 상황에서도 러시아에 머무는 북한 노동자들의 생생한 모습을 강 교수의 경험담을 통해 재구성했다.
여전히 러시아로 들어오는 北 노동자
10차례가량 블라디보스토크를 방문한 강 교수는 이번 방문에서 도시의 관문인 블라디보스토크 국제공항을 주목했다. 북한을 오가는 탑승객을 통해 분위기를 살펴보려는 취지에서다.
평소 평양 순안 공항에서 블라디보스토크 공항을 오가는 비행편은 주 1회다. 새해 들어 평양행 비행편은 주 4회로 증편됐다. 강 교수는 “매주 월요일과 금요일 각각 오후 12시20분과 3시40분, 평양으로 들어가는 비행기가 운항되고 있었다”고 전했다. 북한 노동자들을 많이 실어 나르고자 비행 편수를 늘린 것이다.
강 교수가 귀국한 1월 중순 현재, 평양- 블라디보스토크 운항편은 다시 줄어들었다. 항공기 실시간 위치 정보를 보여주는 웹사이트 ‘플라이트레이더24(FR24)’에 따르면, 1월 15일 현재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평양으로 떠나는 항공편은 월요일과 금요일, 하루 1편씩 주 2회 운항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평소 운항 횟수(주 1회)보다는 많은 편이다.
강 교수는 북한 노동자들의 철수가 대대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평양행 항공기로 출국하는 북한 노동자들로 붐볐기 때문이다. 그는 “평양 순안 공항이라 느껴질 정도로 북한 주민들로 넘쳐났다”며 “10개의 블라디보스토크 공항 발권 창구 가운데 절반가량을 북한 사람들이 사용했다”고 말했다.
당시 북한 노동자를 태우러 온 비행기는 고려항공의 TU-204기 P-633. 최대 이륙 중량 105t, 좌석 수는 편성에 따라 172~210석으로 알려져 있다. 12월 말과 1월 초에는 1주일에 약 800명에 달하는 인원이 북한으로 돌아간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 노동자들이 대거 철수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강 교수는 여전히 북한 노동자가 러시아로 유입되고 있을 가능성도 열어둔다. 블라디보스토크 공항에 도착한 북한 사람들 가운데 노동자로 추정되는 인물들을 다수 포착했다는 것이다. 그는 “입국자들 가운데 허름한 옷차림에 낯선 듯 두리번대는 사람들은 북한 노동자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다.
강 교수는 1편당 대략 20~30명의 북한 노동자들이 러시아 땅을 밟는다고 추정했다. 러시아 당국은 현재 북한 노동자의 노동 비자 연장을 불허하고 신규 발급도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들 노동자들은 어떻게 이곳으로 오게 되는 것일까. 방일권 한국외대 중앙아시아연구소 연구교수는 “제재를 피해가면서 북한 노동자를 고용할 수 있는 방법은 여러가지”라고 말한다. 그 하나로 2017년 8월 단행된 비자 간소화 조치를 들었다.
당시 러시아는 블라디보스토크를 방문하는 18개 나라 국민에 대해 전자비자 발급을 허용했는데, 이 가운데 북한이 포함됐다. 이를 두고 러시아 언론은 사실상 비자 면제라며 북한 노동자 유입이 가속화될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방 교수는 “유학·관광·연수 비자 등 편법 혹은 협력 형태의 파견 등 다양한 방법으로 돌파구를 찾을 수 있다”면서 “이런 전망은 2017년 12월 제재 결의 이후 이미 나온 바 있다”고 밝힌다. 실제로 최근 북한이 유엔 대북제재를 피하려고 유학이나 연수 목적의 단기 비자로 노동자를 다시 파견하겠다는 의사를 러시아 측에 전달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러시아 체류 북한 노동자들의 고달픈 현실을 또 다른 각도에서 접할 수 있었다고 강동완 교수는 전한다. 우편 대행 업무를 하는 것으로 보이는 북한 사람들이 북한 노동자들의 편지를 개봉해 편지 봉투 속 현금을 착복하는 듯한 현장을 목격했다는 것. 보통 북한 노동자들은 개별적으로 편지를 발송하지 못한다. 기통수(출판물이나 우편물을 전달하는 사람을 이르는 북한어) 편에 정기적·비정기적으로 보내는 경우가 많다.
강 교수가 목격한 장면은 기통수들이 편지를 개봉하는 상황으로 추정해볼 수 있다. 강 교수는 “편지들을 햇빛에 비춰 돈이 있을 경우 개봉해 돈을 따로 챙기더라”면서 “그러고 나서 편지 내용을 쓱 읽어보는 모습을 봤다”고 말했다.
강 교수는 사전 검열 차원의 편지 개봉은 아닌 것으로 해석했다. “검열한다면 모든 편지를 개봉해야 하는데 그렇게는 하지 않았다. 과거 북한 노동자들의 얘기를 종합해봤을 때 뒷돈을 주고 부탁한 편지는 따로 분류해 개봉하지 않고, 그렇지 않은 편지의 내용물은 확인하는 것으로 판단됐다. 라운지 탁자 한편에 있던 어떤 편지 꾸러미들은 손도 대지 않더라.”
러시아 체류 북한 노동자 규모가 현저하게 줄고 있다는 건 시장에서도 확인된다. 북한 노동자들은 일명 ‘중국 시장’ 공사용 자재나 생필품을 싼값에 구매하곤 한다. 강 교수는 “고려인이 운영하는 상점에 물어보니, 자재 사러 오는 ‘청부’ 북한 노동자가 아예 없다고 하니 이들이 다 북한으로 들어간 것이 아니겠는가”라고 말한다.
북한 노동자 중에는 자신을 ‘청부’로 부르는 이들도 있다. ‘청부’란 주로 집 한 채의 리모델링을 맡아 배관, 타일, 전기, 수도, 인테리어 등 모든 분야의 일을 다루는 개인 노동자를 뜻한다. 북한 당국이 파견한 회사 소속이기는 하지만, 개인적으로 일감을 따내고 돈을 벌어 일정액을 회사에 바치는 형태다. 이를 ‘계획분’이라 부르는데, 북한 노동자들이 북한 당국에 내는 상납금인 셈이다.
본국 소환의 두려움에 더해 상납금 마련이라는 이중고에 내몰린 북한 노동자들은 현지 러시아 경찰에게도 뒷돈을 건네야 하는 처지인 것으로 알려졌다. 강 교수는 “북한 노동자들이 많이 모이는 ‘중국 시장’에 러시아 경찰이 단속 나온 장면도 목격했다”고 말했다.
그가 일전에 만난 북한 노동자들에 따르면, 러시아 경찰은 북한 노동자들을 표적 삼아 수시 검문에 나선다. 주로 금지된 장소에서 담배를 피우거나 신분을 확인할 서류를 휴대하지 않을 경우 벌금 고지서를 발부하게 된다. 벌금 고지서가 나오면 여러 번거로움을 감수해야 하는 까닭에 뒷돈을 주고 무마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1월 1일에도 그들은 건설 현장으로 나갔다
“12월 22일 이후로 북한 노동자들이 자주 찾는 시장에 러시아 경찰이 자주 출몰했다. 2017년 하반기부터 러시아를 꾸준히 방문했지만, 시장 근처에서 경찰을 본 적은 없었다. 그런데 송환 시점이 다가설 즈음, 시장에 나타난 경찰이 물품을 구매하러 나온 한 무리의 북한 노동자 가운데 담배를 피우던 3명을 시장 안 골목으로 데리고 갔다.”
강 교수는 이 장면을 단속을 빙자한 갈취 과정으로 해석했다. “당국에서 노동비자 관련 단속 지시가 내려와 신원 확인차 검문했을 가능성은 있다. 단순히 그럴 의도였다면 담배를 피우던 세 사람을 뒷골목으로 데려가 검문할 이유가 없다. 공개된 장소에서 충분히 할 일을 으슥한 곳으로 가져간다는 게 무얼 뜻하겠나. 아니나 다를까 담배를 피우던 이들은 금세 풀려났다. 분명한 건 12월 22일 이후로 시장 주변에 러시아 경찰이 많아졌다는 사실이다.”
북한의 우방국 중 하나인 러시아가 제재 이행에 충실을 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은숙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러시아도 2014년 크림반도 합병 후 미국과 유럽의 경제제재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서 “러시아 입장에서 북한의 사정을 봐줄 형편이 아니다”라고 풀이했다.
박종수 전 주러시아 공사는 러시아와 북한이 노동자 본국 소환 문제에 대해 사전에 충분히 논의했을 것이라 말한다. 박 전 공사는 “러시아와 중국은 현재 60개의 경제 프로젝트를 동시에 진행하고 있다”며 “이 과정에서 양국은 ▷단기 노동자 송출 ▷루블화 결제 등 다양하고 교묘한 방법으로 유엔 제재의 틀을 유지하면서 관계를 원만하게 유지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많은 수의 북한 노동자가 블라디보스토크를 빠져나갔지만, 남아서 외화벌이에 투입되는 이들도 적지 않다. 강 교수는 “한 건설 현장에서 북한 노동자 100명이 근무했다면 그 인력이 다 철수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건설을 위한 최소 인력들을 여전히 남겨둬야 한다”고 밝혔다.
러시아인들은 매년 1월 1일 이후 10일 전후까지 신년 연휴를 즐긴다. 하지만 북한 노동자에게는 ‘그림의 떡’일 따름이다. 강 교수가 현지를 찾은 올 1월 1일과 2일에도 여전히 북한 노동자들은 현장에서 일하고 있었다. 강 교수가 연구차 방문한 바 있는 건설 현장 5곳 모두 해가 바뀌어도 그대로 작업 중이었다고 한다.
작업장 인근에서 발견되는 버려진 담배꽁초에 북한산임을 알리는 ‘부흥’ ‘광명’ 같은 문구가 적혀 있는 거로 봐서 북한 노동자들임을 확신하게 됐다고 강 교수는 말했다.
강 교수에 따르면, 현장에 있는 북한 노동자들의 수는 과거보다 줄어들었다. 겨울이라는 계절적 요인과 송환이라는 정치적 요인이 더해진 결과라고 강 교수는 풀이한다. “러시아 입장에서는 제재를 이행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고, 대규모 인력이 공사 현장에 필요하지 않은 시기다 보니 북한 노동자들의 본국 소환을 실행한 측면도 있다고 보인다.”
“현 상황, 유엔 전문가 패널이 지적할 것”
현지에서는 올 3월에 접어들면 북한 노동자들이 다시 러시아로 쏟아져 들어온다는 얘기가 떠돈다. 본국으로 철수하는 노동자 중에서 주변에 “올 3월 다시 (러시아로) 나올 것”이라고 인사말을 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 유엔 회원국들이 북한 노동자 송환 관련 최종 이행보고서를 제출하는 시점이 2020년 3월 22일이다. 러시아가 일단 급한 불을 껐다고 판단되면 다시 북한 노동자들을 받아들일 가능성과 맞물려 이런 소문이 돌고 있다고 강 교수는 말했다.
긴밀한 북·러 관계에 비춰볼 때, 노동력 수요가 커지는 봄철에 북한 노동자들의 러시아행이 다시 러시를 이룰 수도 있다. 이 경우 다시 유엔이 러시아에 압박을 가할 가능성이 있다는 게 정은숙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의 진단이다.
“유엔 회원국들의 최종 이행보고서가 제출되면 유엔 안보리 산하 대북제재 전문가 패널이 이를 검토, 분석해 연례 보고서를 안보리에 제출한다. 편법 파견 정황 등이 전문가 패널 보고서에 명시되면, 중국과 러시아는 소위 ‘지목해서 창피 주기(naming and shaming)’와 같은 방식으로 국제 사회에서 압박받는 상황이 될 것이다. 나아가 미국과 EU가 외교적, 정치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등 북한 노동자 문제가 국제무대에서 다시 논의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해외 파견 북한 노동자 문제는 현재진행형이다. 이들에 대한 국제사회 제재 수위가 더욱 높아질 수도 있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고군분투하는 해외 북한 노동자들의 거취가 국제사회의 이슈로 다시 등장할 가능성이 점쳐진다.
허인회 월간중앙 기자 heo.inho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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