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은 유럽을 이끄는 경제 강국이에요. 오늘날의 독일이 지금의 위상과 면모를 지탱할 수 있는 결정적 요인은 강한 글로벌 중소기업이 많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어요. 예부터 독일은 지정학적으로 유럽 중심에 자리해 십자군 원정 이래 제조 및 수출 중심 국가로 자연스럽게 유럽의 강자로 발전해왔어요.

 

독일 강소 히든챔피언 기업을 일컫는 미텔슈탄트는 독일 경제의 허리를 지탱하고 있다. 사진은 독일 베를린의 브란덴부르크문

 

독일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수출 지향형 경제국이다. 대기업이 주도하면서도 중소기업이 산업 전반을 강하게 지지하는 경제구조를 갖추고 있다. 전체 기업 대비 중소기업의 비중은 99.3%에 달하며, 중소기업 고용 인구는 60.8%에 이른다. 독일 경제 전체 부가가치 생산 비중도 중소기업이 46.9%를 점하고 있다.

 

독일의 수출은 세계 3위로 특히 자동차, 화학, 기계, 전자 등에서 강한 기술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다. 이 가운데 중소 수출기업 비중은 11%, 수출기업 중 중소기업이 점하는 비중은 97.6%에 이른다. 전체 수출액 대비 중소기업의 수출액도 21%를 차지하고 있다. 중소기업의 수출 기여도는 41.3%에 달한다.

주목할 만한 사실은 한국도 중소기업 수, 매출, 수출, 부가가치 생산 규모를 통계 수치로만 비교해보면 독일의 비중과 비슷하다는 점이다. 한국도 반도체·가전, 자동차, 조선 등 대기업이 주도하는 중소기업 하청 경제 구조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표면적으로 독일과 한국의 구조는 큰 차이점을 보인다.

 

세계시장 점유율이 글로벌 1~3위 안에 드는 히든챔피언을 일컫는 ‘미텔슈탄트’는 약 1500개 내외로 이들이 독일 경제의 허리를 지탱하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점이다. 이들은 매출 50억 유로(6조5630억원) 이하이며 일반에 잘 알려지지 않은 소재나 원료를 만드는 기업이 많다. 이는 결국 독일 경제의 안정적인 구조를 지탱하게 하는 힘의 원천이다. 이에 반해 한국은 히든챔피언 기업이 23개에 불과하다.

 

수출 중소기업의 비중도 낮다. 반도체·가전, 자동차, 조선 등 특정 산업 분야를 중심으로 일부 대기업 집단이 전체 수출을 주도하고 있다. 세계 일등 중소기업 수가 얼마 되지 않아, 대기업 한 곳이 망하면 국가 경제 전체가 타격을 받는 위험한 경제·산업구조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한국 경제의 위험을 분산하고 수출산업 구조를 다양화한다는 측면에서 독일의 히든챔피언은 우리 경제가 벤치마킹해야 할 중요한 대상이다.

 


1500개 달하는 히든챔피언이 독일 경제 중추

 

슈투트가르트의 포르쉐 뮤지엄. 대규모 자동차 클러스터가 자리 잡은 이곳에 220여 개 자동차 기업이 모여 있다.

 

독일 히든챔피언의 태생적 근간을 살펴보려면 독일식 경영부터 이해하는 것이 빠르다. 독일은 세계 최초로 상과대학을 세운 나라다. 이런 전통답게 독일 경영학은 학자나 대학교수 등이 중심이 되어 발전해왔다. 기술자나 경영 컨설턴트 등 현장 실무자가 초기 경영학을 이끌었던 미국과는 관심사에서부터 차이가 있는 셈이다.

 

이에 비해 일본 경영 시스템은 업력이 오래된 기술승계형 장수기업을 중심으로 초기 발전을 이어왔다는 점에서 독일식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이후 현장 품질관리 중심의 대량생산형 제조 방식에 경영관리의 초점을 둔 것은 미국 방식을 이식했다는 점에서 절충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

 

한국은 일제강점기를 겪으면서 기업 경영관리 방식에 일본식 경영체제를 도입해 성장해왔다. 특히 초기 대기업 창업자 중 대부분은 일본식 조직 및 인사관리 방식에 따라 생산과 품질관리에 주력했다. 2차 세계대전 이전의 일본 기업은 유럽의 지주회사를 변형한 ‘재벌’ 조직을 등장시켰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식으로 변화함에 따라 재벌은 해체되었고, 독립 기업은 사업부제를 채택했다. 1990년대 이후 장기 불황에 따른 경영환경 변화와 함께 기업집단을 유지할 필요성이 약화되었고, 장기간 금지되었던 지주회사 설립도 해금됐다.

 

지주회사는 산하의 자회사군을 효율적으로 재편해 관리·통괄하고 기업집단을 합법적으로 승계하는 수단으로써 허용했을 뿐만 아니라 기업 내에서 국내 외 사업부제, 글로벌 기업부제가 담당하던 기능을 맡게 됐다. 최근 모바일 통신 등 ICT 기술 발전으로 독일과 일본, 한국의 경영방식도 미국형 글로벌 경영방식으로 통합되는 경향이 갈수록 강해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수의 히든챔피언을 탄생시킨 독일식 경영 생태계는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독일의 질서자유주의 경제정책 안에는 ‘연대 원리(Solidaritatsprinzip)’와 ‘보충 원칙(Subsidiaritatsprinzip)’이 작동한다. 연대 원리를 보여주는 대표적 예가 바로 독일의 기업지배제도다.

 

특히 노사 공동결정제도는 책임과 이성적 합의를 원칙으로 운영된다. 특히 독일 노동자의 임금인상률은 단위가 큰 산별노조에서 생산성 향상을 기준으로 요구한다. 개별 기업의 노조는 기업 유지와 발전이란 공동의 연대 원리에 입각해 행동한다.

세계적인 광학기업인 칼자이스(Carl Zeiss)의 경우, 금융위기를 맞은 지난 2008년 봄부터 2009년 봄 사이 매출이 23% 급감함에 따라 예산통제 프로그램을 통해 대폭적인 비용절감 수단을 동원했다. 종업원들은 과거 합의된 임금인상 같은 인센티브를 포기했고, 기업은 2010년까지 정리해고를 하지 않기로 합의하는 등 비용절감을 통해 기업을 살리는 데 동참했다. 최근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기업 구조조정에도 임직원이 합심해 해고를 줄이고 단축근무 또는 시간제근무로 전환하고 있음은 연대와 보충 원리하에 노조의 경험적 합리성이 작동한 좋은 사례다.

사회공헌(CSR) 활동 역시 독일 중소기업이 추진하는 고도의 기업 전략이다. CSR이 단순한 생색내기 수준이 아닌 대·중소기업 간 협력, 고용 유지와 노사 안정, 환경친화적 생산, 지역사회 공헌, 나아가 수출 전략으로도 활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CSR Made in Germany’ 경영은 기업에 새로운 글로벌 사업 기회를 제공하는 한편 사회의 혁신가치를 제고하는 사회적 책임투자(Corporate social innovation, Corporate social Investment)로서 기업과 경제사회가 혁신적이고 지속적인 동반성장을 이끌어내는 중요한 요인이 되고 있다.

유아용 이유식 전문 회사인 ‘힙(HiPP)’은 1932년 창업 이후 줄곧 친환경 유기농 어린이 이유식 분야에만 집중함으로써 집중화·차별화 전략을 고수하고 있다. 여기에 산모와 어머니들에게 다양한 유아교육과 건강 이유식단, 질병관리 등에 관한 정보를 제공해 편의성을 제고하고 있다.

독일의 기술지원은 중소기업 정책 소관 부처인 교육 연구부와 연방경제기술부 중심으로 이뤄진다. 이들 부처에선 기술 연구 지원 외에 자금, 인력, 보증, 안정적 원자재 확보를 위한 정보 제공, 판로(특히 해외) 개척 등을 입체적으로 연계 지원하고 있다. 독일 전역에 있는 산업 클러스터는 약 327개에 이른다.

 

독일 기계산업의 메카인 슈투트가르트 자동차 클러스터의 경우 220여 개 기업이 13만5000명을 고용한 거대 중소기업들의 모임이다. 클러스터 안에 포르쉐, 보쉬 같은 소수 대기업이 혼재하는 구조다. 우수한 기술을 가진 중소기업이 먼저 무리를 이루면 여기에 대기업들이 접근해 협력 지원을 받는 형태다.

대기업과 중소·중견기업들이 탄탄한 상생의 협력 사슬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 독일 제조업의 강점이다. 히든챔피언 기업들의 매출액 대비 R&D 투자비율은 5.9%다. 이들은 일반 대기업 대비 많은 특허권을 보유하고 있다. 대기업의 경우 1000개 업체당 특허권 보유수가 평균 5.8건인데, 히든챔피언은 30.6건에 이른다.

 

히든챔피언 기업이 대기업보다 6배나 많은 기술력을 자랑하는 셈이다. 독일 히든챔피언들은 사업 다각화에 힘쓰는 대기업에 반해 핵심 역량에만 집중함으로써 세계적으로 전문화된 특정 니치마켓을 확보하며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또 사업 집중화와 전문화 전략에 따른 수직적 제품·업종 확산 등에 주력하고 있다. 25만 종에 달하는 단추만 생산하는 전문기업 ‘크노프(Knopf)’가 대표적이다.

 


구조조정 없이 금융위기 넘다


개별 히든챔피언들이 각각 전문화된 분야에만 집중하는 경우가 많다는 게 독일 경영의 특징이다. 현지화 경영도 경쟁력 강화의 바탕이다. 독일 히든챔피언 기업들은 평균 24개국 이상에서 지사(Subsidiaries)를 운영하면서 현지형 판매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미국식 경영에서 일반화된 아웃소싱은 일반적인 기술 부문이나 스스로 채우지 못하는 기술에만 한정함으로써 핵심기술의 외부 유출을 극도로 자제하고 있다. 가족기업 중심으로 외부 자본에 의한 기업공개를 회피하는 소극적 경영 형태가 대다수인 것도 독일 기업들의 특징이다.

최근 들어선 일부 기업들이 협력과 경쟁 측면에서 외부 기업공개에도 관심을 갖고 변화를 시도하고 있기도 하다. 독일 히든챔피언 중 가족승계 기업의 약 60%는 외부 전문경영인을 영입해 전문적이고 객관적인 경영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특히 경영 후계자는 대학 졸업 이상의 지적 능력을 보유해야 하며, 통상 다른 회사에서 유사 경영관리를 성공적으로 수행한 경험이 있어야 한다. 즉, 우수한 경영 능력을 입증해야만 승계자가 될 수 있다. 특히 국제영업을 위한 글로벌 업무 경험과 영어는 기본이고 거래국과 의사소통이 가능할 정도로 외국어 능력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모든 기업 구성원에게는 업무와 관련한 제안제도와 다양한 교육을 시행함으로써 종업원들의 자질 향상과 직무 만족 및 자아발전을 꾀하고 있다. 독일 히든챔피언 기업의 이직률이 2% 내에 불과한 배경이다. 그럼에도 필요시에는 외부 컨설팅을 통해 전문화된 관리체계를 개선·유지해나가고 있다.

독일식 히든챔피언을 벤치마킹 대상으로 연구한다고 해도 한독 간 경영 철학이나 경영관리 시각에는 큰 괴리가 있다. 독일과 한국의 차이는 상호 경제·경영 환경과 관습, 가치관의 차이에 따른 결과다. 그런 만큼 우리 강소기업의 특징 중 긍정적인 부분은 취하되 부정적인 것은 개선하거나 제거해나가는 노력을 해야 한다.

최근 중소벤처기업부는 세계시장을 선도할 유망 중소기업 200개사를 2019년도 ‘글로벌 강소기업’으로 지정했다. 특히 해외 각국에서 국내 코로나19 진단키트에 대한 주문이 증가 추세에 있는 만큼, 이들을 히든챔피언으로 육성·지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창업으로 세계 최고의 기업을 키우겠다는 기업가적 용기를 가진 청년들을 충분히 확보하고 이들을 지원해야 한다. 한국 경제의 미래를 위해 예비 히든챔피언을 사전 육성하는 정부의 지원이 절실하다.

코로나 바이러스에 따른 세계경제 침체 말고도 위기는 장기적으로 반복되고 있다. 경기 불황 시에는 기업의 탄력적 대응이 더욱 요구된다. 이럴 때일수록 구조조정 등 임직원 해고를 통한 위기 극복보다는 독일식의 유연한 고용정책이 요구된다. 고용 유형 다변화와 시간제근무 및 근무유연제, 즉 자율 출퇴근, 근무시간 선택, 집약형 근무 등도 적극 고려해야 한다.

 

이러한 노동환경 변화는 여성 및 시니어 인력뿐만 아니라 전문인력을 적재적소에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구인 스펙트럼을 확장함으로써 기업의 구인·구직 간 미스매칭을 완화하고 생산성 향상도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 4차 산업혁명으로 상징되는 미래 사회에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만을 고집하는 것도 어리석은 일이다. 동일한 노동과 동일한 임금은 사실 존재하지 않는다.


김익성 동덕여자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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