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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

190석 차지한 진보, 21대 국회에 일어날 변화 분석

21대 국회는 여당의 대승리로 막을 내렸어요. 이에 야당에선 자성의 목소리가 높지요. 총선 패배를 놓고 누구 하나에게 원인이 있다고 집어서 말할 수는 없지만, 패배를 자신의 탓으로 돌리며 한 발 더 앞을 내다보며 준비하는 사람들도 많아요. 김형오 전 미래통합당 공천관리위원장 역시 이러한 사람들 가운데 한 명이에요.

 

김형오 전 미래통합당 공천관리위원장이 4월 16일 월간중앙과의 인터뷰에서 “보수 사람들만 가지고는 선거에서 못 이긴다”면서 “중도까지 품을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개를 못 들 정도로 면목이 없어요. 큰 책임을 통감합니다.”

21대 총선 다음 날인 4월 16일 서울 마포 개인 사무실에서 월간중앙과 만난 김형오 전 미래통합당 공천관리위원장은 “패자는 유구무언”이라며 한사코 말을 아꼈다. 4·15 총선에서 미래통합당이 사상 최악의 참패를 당한 마당에 현안에 대한 언급이 부적절하다는 생각에서다.

 

그는 지난 1월 공천관리위원장 취임 직후 잡은 인터뷰 약속을 총선 시기까지 몇 차례 미뤄왔다. 총선 직후 “지금이 보수정당이 첫 단추를 잘 끼워야 하는 가장 중요한 타이밍”이라는 기자의 거듭된 요청에 마지못해 그는 말문을 열었다.

그는 2012년 국회의장을 끝으로 20년 의정활동을 마치고 은퇴한 뒤 정치와 선을 그었다. [술탄과 황제](2012년), [다시 쓰는 술탄과 황제](2016년)에 이어 2018년 6월엔 [백범 묻다, 김구 답하다]를 펴냈다. 지난 1월 자유한국당(현 미래통합당)의 요청을 받은 그는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 회장직을 내려놓고 다시 정치의 한가운데로 뛰어들었다.

 

공천관리위원장으로서 지역구 후보 공천의 업무를 총괄했다. 전략공천 등으로 당 지도부와 마찰을 빚자 공천관리위원장직을 전격 사퇴하는 등 공천 과정에서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그래서 선거 패배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입장이기도 하다.

 


“민주당 과반은 생각했지만… 면목 없어”

 

1월 17일 김형오 당시 공천관리위원장이 국회에서 황교안 대표에게 그림을 선물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180석을 넘겼다. 아찔하지 않나?

“할 말이 없다. 할 말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면목이 없다. 민주당이 의석수 과반 정도는 넘길 것 같았다. 그러나 이 정도로 격차가 날 줄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선거의 큰 그림을 그리는 위치에 있었기에 충격이 더 컸겠다.

“사실 나는 우리 당이 이겼어도 말을 아끼려 했던 사람이다. 그런데 이렇게 참패하고서 무슨 할 말이 있겠나. 함께했던 공천관리위원들, 공천에서 떨어진 사람들, 그리고 본선에서 낙마한 사람들 모두에게 미안하고 안타까운 마음뿐이다.”

진보가 190석을 차지한 21대 국회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2018년 시도했던 ‘사회주의 개헌’을 본격적으로 밀어붙일까봐 걱정이다. 72년 동안 이어져온 대한민국 헌정체제가 껍데기만 남은 채 무너질 수 있는 것이다. 과거 나치당의 히틀러가 총칼을 들이밀어서 정권을 차지했나. 합법적인 절차를 거쳐서 다수당이 되고, 개헌을 해서 스스로 종신 총통에 올랐다. 그 결과로 역사에 씻을 수 없는 죄를 저지른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은 2018년 2월 현행 헌법 4조에 있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서 ‘자유’를 빼고 ‘민주적 기본질서’로 수정하는 개헌안을 추진했다. 2018년 3월 26일 문재인 대통령이 발의한 헌법 개정안 전문(全文)에는 “토지의 공공성과 합리적 사용을 위해 필요한 경우에 법률로써 특별한 제한을 하거나 의무를 부과할 수 있다”는 내용의 토지공개념 조항이 들어가기도 했다. 야당에서 대통령 개헌안을 두고 ‘사회주의 개헌’이라고 주장하는 핵심 조항 가운데 하나다.

이와 관련해 김 전 위원장은 “사회주의 개헌의 가능성, 경제적 시련기를 물려준 것 같아서 우리 손자들 볼 때 자책감이 들 거 같다”면서 “할아버지보다 못한 부(富)와 행복감을 미래 세대한테 물려주는 기성세대의 한 사람, 그것도 책임 있는 자리에 있는 나로서는 자괴감, 죄책감이 크다”고 말했다.

국회 운영과 관련해서도 적잖은 변화가 일어날 듯하다.

“삼권분립 체계가 와해될 가능성이 크다. 지난 3년 동안에도 민주당은 청와대의 입법 명령을 수행하는 역할을 주로 해왔다. 국민 목소리를 대통령에게 전달하거나 행정부를 견제하는 역할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제 야당 목소리는 모깃소리만큼이나 작아질 테니, 여당은 청와대 의중을 살피는 데만 골몰할 게 뻔하다.”

어쩌다 보수는 이 같은 궤멸적 타격을 입었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가 결정적인 요인이다. 야당이 가진 무기는 입뿐인데, 말할 수 있는 환경이 안 됐다. 내가 봐도 참 아까운 사람들, 또 당선이 가능하리라고 봤던 사람들마저 줄줄이 낙마했다. 특히 공들여서 영입하고 공천했던 신인들에겐 스스로를 알릴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당락을 떠나서 신인은 자신을 알려야만 다음 선거라도 기약할 수 있는데…. 참으로 안타깝다.”

‘여론조사에 안 잡히는 보수표가 있다’는 식으로 헛된 기대에 부푼 건 아닐까?

“지역구 선거가 단순 다수대표제다 보니 당선자 수에서는 차이가 컸다. 그러나 득표율에서 10%p 이상 격차로 진 곳은 그리 많지 않은 걸로 안다. 전체 지역구 득표를 따져보면 아마도 50(민주당)대40(통합당) 구도가 아닐까 한다.”

실제로 민주당과 통합당이 전국 253개 지역구에서 얻은 총 득표율이 각각 49.9%와 41.5%인 것으로 집계됐다. 8.4%p 차이다. 민주당이 지역구 253석 중 163석, 통합당이 84석을 차지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그 전제라면 중도층 유권자에게서 5%p를 더 가져왔다면 박빙 구도도 가능했을 것 같다. 그렇게 하는 데 실패한 원인이 무엇이라고 보나?

“이번 선거에서 통합당발 구호는 있었지만, 메시지가 불분명했다. 메시지에는 정당의 철학이 담겨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정부에서 전 국민에게 긴급재난지원금으로 100만원 씩 주겠다고 말했다(4인 가구 기준). 나는 받아들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단, 자발적으로 안 받을 사람은 신고하도록 하자고 통합당이 거꾸로 제안했어야 한다. 미묘한 차이지만, 보수의 가치는 이런 데에서 드러난다. 보수를 구성하는 핵심가치 가운데 하나가 애국심이다. 나보다 형편이 어려운 사람에게 돈을 더 주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1998년 외환위기 때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금 모으기 운동을 하지 않았나. 이런 메시지를 통해서 보수의 가치에 충실하면서도 다수 국민과 함께하는 역동적 모습을 보수정당이 보여줬어야 했다.”

4월 5일 황 전 대표가 전 국민에게 긴급재난지원금을 1인당 50만원씩 지급하자고 제안했다. 이는 정부에서 내놓은 안보다도 더 나간 것이었다.

“황 전 대표가 입장을 바꿨다고 비판하는 게 아니다. 기왕 입장을 바꿨다면 보수의 가치에 맞게 소화했어야 한다는 점에서 아쉬울 뿐이다. 애국심을 가진 유권자들에게는 자발적으로 받지 않도록 하고 또 기록에 남기도록 하는 거다. 명예를 중시하고 공동체에 헌신하는 것이 보수주의 가치에 부합하는 선거 전략이다. 앞으로도 보수가 가치와 현실 사이에서 갈등할 때 참고할 만한 사례라고 생각한다.”

김종인 총괄 선대위원장은 메시지 발신의 달인 아닌가? 그것만으로는 미흡했던 건가?

“김종인 위원장의 개인기에 기대기보단 김종인이라는 사람의 입을 빌려서 메시지를 전파했어야 한다. 물론 김종인 위원장이 용어 선정하는 능력은 탁월하다. 그러나 내가 강조하는 건 용어나 정치 슬로건이 아니다. 국민에게 어떤 선거이기 때문에 야당에 표를 줘야 되겠는지 이런 큰 어젠다를 던져줘야 하는 것이다. 그런 데서 국민의 마음이 설레고 동요한다.”

 


“추월하려면 차선을 바꿔야 한다”

 

황교안 대표 사퇴로 당내 리더십이 무너졌다. 어떻게 재편될까?

“며칠 동안은 정신없을 것이다. 나부터도 크게 얻어맞은 기분으로 멍하게 있으니 말이다. 그래도 다음 주부터는 당이 추스르고 움직여야 한다. 낙마했지만, 지역구에서 40% 가까이 득표한 후보들이 많았다. 정치하는 사람들이 절대 잊어버리면 안 되는 것이 희망이다. 그걸 유권자들에게 전달하는 것이 정치과정이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일어나서 비상체제를 꾸려야 한다. 이번에 실패했지만, 앞으로 계속할 사람들도 비상체제에 참여해서 국민에게 진솔하게 다가가야 한다. 죽으라는 법은 없다.”

새로 꾸려질 비대위에서 먼저 해야 할 일이 무엇이겠나?

“예전에 대통령 선거에 지고 나서 선거 보고서 하나 내질 않느냐고 말한 적이 있다. 당에서 선거에 관계했던 사람들 인터뷰해서 입장을 듣고, 전문가들이 종합 평가해서 내는 것이 선거 보고서다. 6개월 정도 공들여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다음번 선거 때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다. 이번에 공관위를 운영하면서도 참고할 만한 과거 자료가 없었다.”

시기적으로 다음 대선 전략도 고민해야 하지 않나?

“내년 이맘때부터 대선 분위기가 달아오르기 시작할 것이다. 여권은 총선에서 만든 분위기를 이어가려고 할 거다. 반면 야당은 그렇지 못하다. 코로나 겨울이 일 년 동안 이어질 것이다. 절대 오버하면 안 된다. 여당보다 더 낮은 자세로 국민에게 다가가서 용서를 받도록 노력해야 한다.”

2016년 20대 총선을 시작으로 4연패째를 기록했다. 그러나 선거에 지고 나서 반성하는 패턴은 매번 비슷했던 것 같다. 같은 식의 반성이라면 결국 대선 패배를 부르지 않을까?

“보수의 가치를 지향하면서도 미래 세대를 포용하는 변화를 보여줘야 한다. 오히려 지금이 환골탈태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 기존의 서열과 전통에 얽매이지 않고 새로운 꽃을 피울 수 있다. 프랑스의 마크롱 대통령을 봐라. 30대에 국회의원도 아니었던 사람이 보수 정파의 대통령까지 올랐다. 이제 중요한 건 몇 선 의원이냐가 아니라 어떤 꿈을 가지고 있느냐다. 추월하려면 차선을 바꿔야 한다. 기존 방식대로, 습성대로 하면 또 지는 거다.”

2016년 새누리당에서 공천 파동이 일어나자 탈당계를 내고 나왔었다. 이후 4년 가까이 당적을 안 가졌다. 왜 공천관리위원장직을 수락했었나?

“지난해 말부터 베트남에 가 있었다. 한 달 동안 머물 심산으로 체류에 필요한 비용도 다 지불해둔 상태였다. 그런데 베트남에 간 지 며칠 되지 않아 황 전 대표로부터 공천관리위원장직을 맡아 달라고 연락이 왔다. 거절해도 계속 연락이 왔다. 괴로웠다. 나라가 어지럽고 보수 우파는 헝클어져 있는데 나 혼자 휴양하고 있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 황 전 대표가 간곡히 요청하는데 결국 가야겠다고 결심했다.”

공천관리위원장직을 수락할 당시 승리의 구상을 가졌을 법한데.

“자칭 보수라는 사람들만 가지고는 선거에서 못 이긴다. 중도까지 품을 방법을 찾아야 했다. 종북 좌파만 아니라면 누구든 미래통합당을 지지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 그래서 현역 의원은 대대적으로 물갈이하고 새로운 인재를 많이 영입하려고 했다.”

그 결과 현역 교체율이 40%를 웃돌았다.

“보수정당이 치른 역대 총선 중에서 가장 높은 축에 들 것이다. 공천 심사를 할 때 적당히 봐주고 넘어갔다면 당이 새롭게 변화하는 모습을 국민에게 보여주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다시 정치할 사람으로 비쳤던 건 아닌가…”

 

공관위 구성에서부터 민주당보다 9일가량 늦었다. 공천 심사를 하는 데 있어 시간에 쫓길 수밖에 없었을 것 같다.

“그뿐 아니다. 공관위가 한창 돌아가던 2월 18일 미래통합당이 새롭게 출범했다. 그러다 보니 위원들과 논의하고 결과가 나오면 발표하기 바빴다. 24시간 공천 관리에만 매진해도 부족할 판이었다. 육체적·정신적으로 완전히 소진되는 느낌이었다.”

조직 차원에서 앞으로 반드시 보강해야 할 부분이 있나?

“공관위 차원이든 선대위 차원이든, 전략·홍보 담당 조직이 있어야 한다. 공천의 큰 윤곽을 어떻게 가져가고, 주·일별로 어떻게 실행할 것인지를 그리는 사람들이 없었다. 사천(私薦) 논란이 일었을 때만 해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정말 아쉽다. 선대위에서도 공동위원장이 몇 명 있지만, 지원 유세를 돌다 보면 전략을 고민하기 어렵다.”

시작과 끝을 비교했을 때 바뀐 것이 없다는 비판도 있었다.

“그렇지 않다. 정말 많이 바꿨다. 그래서 욕을 많이 먹는다. 특히 대구·경북에서 얻어맞았다. 대구·경북 지역에서 가장 먼저 현역 의원을 교체하라고 요구가 나왔었다. 그러다가 교체 비율이 높게 나오니까 ‘대구·경북이 봉이냐’는 반발이 나오기 시작했다. 또 새로운보수당과 바른미래당, 전진당에 있던 사람들이 새로 들어왔는데 공천할 자릿수는 정해져 있으니 불만이 쏟아졌다. 태극기 부대에 있던 사람들도 제법 탈락했다. 이런 불만들을 관리해야 했는데, 대응하는 시스템이 없었다. 그래서 여론전에서 밀렸다. 그나마 당 최고위원회가 공관위의 결정을 지지해줬다면 공천을 유연하게 끌고 갈 수 있었을 것이다. 두 조직이 같이 가지 못해 아쉽다.”

2016년 20대 총선 당시 새누리당 공천 과정과 비교하면 어떤가?

“그때하고는 비교가 안 된다. 내가 적어도 자신할 수 있는 건 더는 ‘친박’ ‘비박’ ‘친이’라는 소리는 안 나오게 하는 것이었다. 이것만큼은 분명하다. 우리가 정한 기준에 따라 나가야 할 사람들은 거의 정리가 됐다.”

21대 총선을 계기로 ‘탄핵의 강’을 건넜다고 보나?

“우리로선 공을 들였다. 앞으로 어떻게 하느냐에 달렸다.”

지난 3월 4일 박근혜 전 대통령은 “대한민국을 위해 기존의 거대 야당을 중심으로 태극기 들었던 여러분 모두가 하나로 힘을 합쳐주실 것을 호소드린다”는 내용의 옥중서신을 썼다.

3월 13일 공천 논란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처음에 마음먹었던 흐름대로 공천을 마무리하려면 끝까지 가는 편이 낫지 않았나?

“내가 당에 의심할 만한 빌미를 줬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다시 정치할 사람으로 비쳤던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었다. 그러나 공천관리위원장 때 황교안 전 대표가 이런저런 부탁을 하면 유념했다. 물론 100% 다 들어줄 수는 없었다. 그래도 황 대표가 부탁할 때는 신경을 썼다.”

 


“희생 자처한 중진들 부각 못 해 아쉬워”

 

 

황 전 대표가 어떤 기대를 갖고 위원장직을 부탁했다고 보나?

“물갈이를 많이 해 달라. 대폭 교체해 달라는 부탁이 있었다. 이 당이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기에 내가 ‘악역’을 맡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내가 공천관리위원장으로 오기 전부터 당 총선기획단에서 현역 의원 3분의 1 이상을 컷오프하라고 권고했었다. 부산·울산·경남과 대구·경북 지역에선 이것(3분의 1)보다 많이 교체하도록 했다. 또 지난 1월 초·재선 의원들을 대상으로 ‘당에서 어떤 결정을 내리더라도 승복한다’는 동의도 받아놨었다.”

당 중진들을 공천하는 과정에서 잡음이 컸다. 결과적으로 대선 역량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되는 결정이었나?

“험지 출마를 거부하는 중진은 컷오프 한다는 원칙도 당 총선기획단이 만든 것이다. 원칙에 맞게 간 것이고, 다만 홍보 전략이 부족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김병준 전 비대위원장은 본인이 먼저 종로가 안 된다면 세종으로 가겠다고 말했다. 대선 후보가 된 적도 없고 국회의원을 한 적도 없는데도 험지 출마를 자청한 것이다. 이렇게 장수다운 모습을 보여주는 사람에게 제대로 된 홍보를 뒷받침해줬다면 더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었으리라고 본다.”

홍준표 전 대표와 김태호 전 경남지사는 결국 무소속 출마했다.

“홍 전 대표의 경우 당 대표를 여러 번 하고 대선 후보로 나온 사람이 고향(경남 밀양·의령·함안·창녕)으로 가서 출마하겠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이야기였다. 경남 지역 현역 의원들과 후보들은 홍 전 대표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했다. 홍 전 대표가 경남 양산시을에 대신 나가겠다고 했지만, 경남 지역 선거에서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하더라. 김 전 지사도 처음부터 서울에서 선거를 치를 생각이 없었다.”

3월 9일 김형오 당시 공천관리위원장은 공천 결과에 불복해 무소속으로 출마하려는 일부 인사들에 대해 “희생과 헌신을 보이는 게 정치인의 큰 모습이고 자유민주주의의 승리를 위한 결단”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무소속 출마를 강행한 홍 전 대표와 김 전 지사는 나란히 미래통합당 후보를 꺾고 당선증을 차지했다.

홍 전 대표는 대구 수성구을에 무소속 출마해 38.5% 득표율로 당선됐다. 2위를 차지한 미래통합당 이인선 후보를 2.7%p 차로 따돌렸다. 홍준표 전 대표는 4월 16일 새벽 당선이 확정되자 “조속히 당으로 돌아가 당을 강화하는 역할을 하겠다”며 소감을 말했다. 고향인 경남 거창군이 속한 지역구(산청·함양·거창·합천)에서 무소속 출마한 김태호 전 경남지사도 42.6%를 득표하면서 당선을 확정 지었다. 김 전 지사는 당선 소감에서 “정권을 찾아오기 위한 보수통합의 중심 역할을 하라는 명령으로 생각한다”고 밝히며 향후 정치적 행보를 예고했다.

정작 험지 출마한 당내 중진들은 대부분 낙마했다. 당의 방침을 어기고 나간 사람이 대표가 되고 대선 후보가 되는 모습을 국민이 용납하겠나?

“그 사람들이 공천을 못 받았던 이유는 본인들이 잘 알 것이다. 다만 혈혈단신으로 나가서 생환했으니 더 큰 정치인이 될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다만 이번 총선에서 공천을 못 받았던 이유까지 헤아려서 받아들인다면 말이다.”

유승민 의원은 서울에서 왜 출마하지 않았을까?

“일단 본인이 안 하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자기는 대구에 출마했다고 공언을 했었다. 그래놓고 다시 서울로 옮긴다면 일구이언을 하는 것이라는 판단이 들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유승민이 정치인으로 크는 데 국회의원을 한 번 더하느냐 안 하느냐 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을 것이다.”

 


“진보는 조직 이탈하면 정치생명 못 이어”


축구에 비유하면 통합당 소속 정치인들은 팀이 이기는 것보다 개인이 돋보이는 걸 중요하게 여기는 모양새다. 어시스트를 잘 안 한다. 이것이 어느 때부턴가 국민이 보수 진영을 바라보는 부정적 관점이 된 건 아닐까?

“예전에는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제 ‘진보는 부패해도 안 망하고 보수는 분열을 자초해서 망한다’고 말한다. 이번에 박근혜 전 대통령을 내건 정당만 해도 한두 개가 아니다. 교육감 선거를 봐도 보수는 한 번도 단일화를 이룬 적이 없다. 보수의 핵심 가치인 ‘자유와 선택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사실을 망각했다. 반면 진보는 집단 논리가 바탕이다. 조직에서 이탈해선 정치생명을 이어갈 수 없도록 만든다.”

그렇다면 보수 분열은 앞으로도 필연적인가?

“그렇지 않다. 일탈을 무제한적으로 허용하는 것이 보수의 리더십은 아니다. 예를 들어 미군 병사들이 평소에는 제멋대로인 것처럼 보여도 전투력은 세계 최강이다. 싸워야 할 때는 규율을 엄격하게 지켜서 그렇다. 그동안 보수 진영은 각종 선거에서 여유롭게 이겨왔기 때문에 팀을 지키는 데 신경을 덜 썼다. 그런데 이제는 그렇지 못하다. 탄핵을 기점으로 계속 밀리는데도 예전의 관습을 고치지 못하고 있다. 일신에 불이익이 오더라도 대의가 맞으면 참고 희생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그게 자유민주주의적 리더십이다.”

당 중진들에게 험지 출마 등 희생을 요구한 건 새로운 인재들이 들어올 자리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구상한 대로 됐다고 평가하나?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 공사(서울 강남갑)를 비롯, 젊은 사람들을 영입하는 데 일부 성공했다. 그러나 안철수, 김광두, 김동연, 이국종, 전직 대사와 경제 장관 지낸 사람 등 영입에 실패한 사람들이 더 많았다. 그런 사람들이 들어왔더라면 당의 모습이 확 살아나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처음 공천관리위원장직을 맡았을 때 “당을 확 바꾸겠다”고 말했다. 이번 총선을 거치며 당이 얼마나 바뀌었다고 보나?

“변화를 만들 수 있는 원재료들은 당에 제공했다. 새로운 인재, 특히 청년 인재를 발굴하는 것이 공관위의 역할이었다. 그래서 청년끼리만 경쟁시켜 출마 후보를 결정하는 ‘청년벨트’ 같은 실험도 했다. ‘청년들을 사지로 내몬다’는 비판도 있었지만, 이런 식으로라도 신인과 청년에게 기회를 주어야 한다. 설혹 이번 총선에서 당선이 안 되더라도 4년 동안 열심히 지역에서 뛰면 가능성이 있지 않겠나. 그런 시도를 하면서 변화하는 보수의 분위기를 연출하려고 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국민이 체감하지 못했다. 원재료들을 가공하는 방식에서 옛날에 하던 방식을 놓지 못했다.”

 


대담 박성현 월간중앙 편집장

사진 김경빈 선임기자 kgboy@joongang.co.kr

진행 문상덕 기자 mun.sangdeok@joongang.co.kr

녹취 정리 심민규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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