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는 신사적인 스포츠처럼 보인다. 수비의 기술을 쓴 채드 하버크는 야구를 애처로운 난투극이 아니라 ‘고립된 싸움의 연속’이라고 봤다. 그는 수비의 순간을 이렇게 적었다.
“야구, 특히 수비를 할 때는 서서 기다리며 마음을 고요히 유지하려고 애써야 한다. 자기의 순간이 왔을 때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 순간을 그르쳤다가는 누가 저지른 것인지 모를 사람이 없게 뻔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실책을 기록으로 남길 뿐만 아니라, 전부 다 보라고 스코어보드에 버젓이 올려놓을 만큼 잔인한 스포츠가 야구 말고 달리 있던가?”
1986년 뉴욕 메츠와 보스턴 레드삭스와의 월드시리즈 6차전은 단 한 개의 실책이 승부를 갈랐다. 두 팀이 5대 5 동점으로 10회 연장을 치르는 상황. 10회말 메츠의 타자 무키 윌슨이 10구까지 가며 투수와 끈질긴 승부를 벌인 끝에 친 공은 1루로 떼굴떼굴 구르는 땅볼이었다. 하지만 이 타구를 레드삭스의 1루수 빌 버크너가 어이없이 다리 사이로 빠뜨린다. 그사이 2루 주자는 쏜살같이 홈으로 내달렸고, 메츠가 6대 5로 극적인 역전승을 거뒀다.
이후 보스턴 레드삭스는 실책의 충격 탓인지 마지막 7차전에서도 메츠에게 8대 5로 무릎을 꿇으며 다시 한번 눈앞에서 월드시리즈를 날렸다. 보스턴은 정확히 18년 후에야 ‘밤비노의 저주’를 끊었다.
기이한 것은 빌 버크너는 리그 최상의 수비수였다는 점이다. 1969년 데뷔한 후 22년간 메이저리그에서 뛴 올스타 출신으로 통산 수비율은 0.991나 됐다. 1천 번의 수비기회에서 실책을 9개밖에 범하지 않은 셈이다. 그런 그가 하필 그 중요한 순간에 실책을 범한 것이다.
조직원의 실책이나 판단 착오는 조직이란 배에 구멍을 뚫는다. 그것은 혼자만의 일이 아니다. 실책이 한 번 시작되면, 연쇄 작용이 일어나 팀의 사기를 꺾는다. 아무리 다른 사람들이 일을 잘해도, 전 조직원들이 타격을 입는다. 233년간의 유서 깊은 전통을 가진 영국 제1 은행이었던 베링스가 그러했다.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도 고객이었던 이 은행은 1995년 당시 18억 달러, 현재 자산 가치 1조원 정도의 손실을 입고 네덜란드 금융 보험회사인 ING에 단돈 1달러에 팔려나가는 수모를 당했다. 그 이유는 한 고졸 출신 은행원의 불법 선물거래 때문이었다.
문제는 닉 리슨이 본사 몰래 여러 계좌를 만들어, 수익이 났을 때는 원래의 계좌로 본사에 보고하고, 손실이 났을 때는 여러 개의 휴면 계좌에 감춰버리는 통에 누구도 그의 부정을 알아채지 못했다는 것이다. 겉으로 닉은 은행 수익의 20%를 창출하는 일급 트레이더였다. 그러나 고베 지진으로 닛케이 주가가 고꾸라지자, 그의 도박과 같은 투자 실책과 내부 감사의 부재는 베링스를 한순간에 파산으로 몰고 갔다. 이렇듯 무리한 투자, 방만한 경영, 직원들에 대한 적2정한 감사 부재, 위기관리 능력 감소는 경영을 악화시킨다.
그래서 기업은 때론 공격적이고 저돌적인 확장 경영도 필요하지만, 조직원들의 실책을 막고 위험을 최소화하는 내실 경영이 필요하다. 기업은 채산성 악화, 내수 부진, 수출 애로, 환율 변화, 생산비용 증가 같은 위험 요소를 안고 거친 기업 환경의 파고를 헤쳐나간다. 환율이 요동칠 때 환율의 위험 관리를 하는 것, 은행에서 대출 심사나 신용평가를 철저히 한 상태에서 부실 위험을 차단하는 것, 적정한 지출을 통제하고 적정한 수의 직원을 유지하는 것 모두가 내실 경영의 한 부분이라 할 수 있다. 게다가 수익은 시장 상황에 따라 유동적이지만, 지출과 방어는 경영 내부에서 충분히 제어 가능하다.
내실 경영은 세밀함을 요구한다. 사소한 실수가, 사소한 지출이, 기업을, 가계를, 망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다. 이때 세밀함은 쪼잔한 게 아니다. 오히려 위대함과 통해 있다. 빈틈 없는 내실 경영의 본보기가 바로 거대 가구회사 이케아(IKEA)일 것이다. 많은 사람을 위해 더 좋은 생활 가구를 만든다는 비전을 가진 CEO 잉바르 캄프라드는 고급 가구가 지배적이었던 유럽시장에서 본인이 직접 가구를 조립하는 DIY 방식으로 가구 업계의 신기원을 이루었다. 고객이 매장을 놀이터처럼 여기고 최대한 매장에 길게 머물기를 원했던 이케아는 수천 평의 거대 매장을 운영하면서도, 배송비나 재료비를 합리적으로 책정해 타 가구회사보다 가격경쟁력에서 우위를 점했다.
그뿐인가. 저가 정책을 유지하기 위해 잉바르 캄프라드 자신부터 직원까지 검소한 회사생활을 강조했다. 캄프라드의 애장품에는 할인쿠폰과 경로우대권 직원카드가 들어가 있고, 매일 대중교통을 이용해 출근하며, 임원이든 사원이든 전직원이 해외 출장시 이코노미석을 이용하는 것은 회사의 불문율에 속한다. 34년 된 의자를 사용하며 16년 된 승용차를 타고 다니는 회장은 회사 체육대회에서 전기절약 경진대회를 연다. 1973년 중동전쟁으로 유가가 한없이 치솟아 배송비가 어마어마하게 올랐을 때도, 오직 IKEA만이 카탈로그에 표기된 가격을 1년 내내 고객과의 약속대로 유지했다.
이처럼 IMF에, 전시에, 세계적 금용위기와 대공황 때, 내실 경영은 빛을 발한다. ‘단기전에는 방망이를 믿을 수 없다’는 야구계의 속설처럼, 불황기에는 확장 경영이나 공격 경영만을 믿을 수 없다.
그렇다면 확장 경영과 내실 경영은 양립할 수 없는 것일까? 확장 경영이란 사업의 규모를 늘려가는 경영형태로서 기업의 인수나 합병으로 기업 수, 인원 수, 매출 등을 무한대로 늘여 규모의 경제를 실천하는 데 있다. <빅3 법칙>의 저자인 잭디시 세스 등은 수많은 증거를 나열하면서 어느 사업을 불문하고 최종적인 시장질서는 상위 3개의 기업을 중심으로 안정화된다고 주장한다.
규모의 우위를 점하지 못한 기업은 원가 우위나 브랜드 가치 제고 등은 물론, 자체의 생존을 위협받기에 충분하다는 것이다. 즉 확장 경영에 이미 수비의 개념이 내포돼 있는 셈이다. 하지만 새로운 시대는 규모뿐 아니라, 시장 환경에 대해 기민한 대응을 해야 진정한 수비 경영, 내실 경영이 이루어진다. GE나 IBM이 수많은 기업의 모범적인 벤치마킹 대상이 되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규모와 기업의 유연성을 동시에 달성한 확장 경영과 내실 경영을 조화시킨 보기 드문 승리자들이기 때문이다.
기업 자체는 더 커질 필요가 없지만, 늘 보다 좋아져야 한다. 질적 향상에 수비는 필수다. 수비하라. 공을 적대시하거나 공에 대항하지 말고 공과 함께 움직여라. 공격이 승리의 충분조건이라면 수비는 승리의 필수조건이다. 평정심을 가지고 수비할 때, 무념무상으로 공에 자동적으로 반응할 때, 자신의 한계를 뚫고 한 발짝 더 수비의 범위는 넓어진다. 그때 수비수의 미덕은, 수비하는 기업의 건실함은 그라운드의 끝까지 전파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