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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

하렘의 오달리스크, 이슬람의 헐리우드 스타이자 권력의 핵심

심리학계에서 공인된 표현 중 하나로 ‘아름다운 것이 좋은 것이다(What is Beautiful is Good)’라는 말이 있다. 1972년 미국 심리학회지를 통해 탄생된 말로, 디온을 비롯한 5명의 심리학자들이 조사한 연구결과다. 대학생들에게 초면인 사람들을 보여주면서 미적 감각, 지능적 감각을 물어봤다. 


하렘 오달리스크


좋다, 보통이다, 나쁘다의 3단계로 나눠 사람들에 대한 이미지를 분석했다. ‘외모가 좋으면 머리도 좋다고 믿는다’라는 것이 결론이다. 외모와 머리가 좋을 경우 인생도 행복할 것이라는 게 대학생들이 내린 또 다른 결론이다.그래선지 르네상스 시대에는 멋진 누드화를 많이 그렸다. 티치아노의 다나에는 아름다움을 극대화한 작품이다.




티치아노의 다나에는 아름다움을 극대화한 작품이다. 다나에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여인이다. 보기만 해도 돌이 된다는 메두사의 머리를 자른 페르세우스의 어머니다. 다나에의 아버지 아크리시우스는 언젠가 태어날 자신의 외손자로부터 살해될 것이란 예언에 접한다. 남자가 접근하지 못하도록 처녀인 다나에를 청동탑에 가둔다. 그러나 다나에의 미모에 반한 제우스가 밤에 몰래 다가와 임신을 시킨다.


무려 88세까지 장수한 티치아노는 ‘황금비(雨)’로 변신한 제우스가 다나에에게 다가가는 순간을 묘사한다. 비너스의 아들 큐피드가 지켜보는 가운데, 다나에가 황금비를 맞고 있다. 금발에다 젖가슴을 드러낸 모습을 하고 있다. 얼굴은 그리스 여성 조각상을 연상케 하는 이미지로 와 닿는다. 살짝 드러난 새하얀 발(足)과 커튼이 드리워진 침대가 수컷의 본능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다나에


제우스를 맞이하는 다나에의 엷은 웃음은 ‘관능’ 그 자체다. 르네상스 누드화는 그리스 신화 속에 등장하는 신의 이름으로 그려진다. 그러나 사실은 다르다. 평소 눈여겨본 젊은 여성의 벌거벗은 모습을 즐기려는 방편으로 그리스 여신을 도용했을 뿐이다. 얼굴과 몸매는 옆집 처녀지만 타이틀은 비너스로 치장됐다.


다나에 그림은 바로 그 같은 인간의 심리를 꿰뚫은 명작이다. 얼굴만이 아니라 온몸으로 자신의 캐릭터를 표현했기 때문이다. 신체 전부를 숨김없이 드러낸 새하얀 누드화를 통해 인간의 오감에 호소한다. 얼굴보다 상체 전부, 상체보다 하체를 포함한 전신이 한층 강한 인상으로 와 닿는다. 아름다운 모습의 다나에는 머리도 좋고, 착하고, 삶도 행복하리라고 그림을 대하는 관람객들은 생각할 것이다. 


흔히들 나체는 (反)반문명·반인륜·부도덕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진다. 서양의 경우 기독교, 동양의 경우 주자학이 그 같은 생각을 만들어낸 ‘주범’이다. 하지만 그리스인들은 벌거벗은 상태가 육체적·정신적으로 자유로운 순간이라고 믿었다. 나체로 이뤄지는 김나지움에서의 교육을 통해 그 같은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었다. 따라서 인간에게 자유를 허락한 그리스신화의 신들도 벌거벗은 모습으로 등장한다.


르네상스의 문을 연 그림이 <비너스의 탄생>이란 점은 너무도 상징적이다. 비너스라는 누드를 통해 고대 그리스인들이 가졌던 인간의 자유와 건강함을 모두에게 알렸기 때문이다. 나체는 결코 신에 대한 저항이 아니다. 신을 찬미하는 과정에서 비너스가 탄생한다. 칙칙하고 무거운 옷을 벗어 던지고 밝고 가볍게 살아가려는 자세다. 르네상스는 ‘인간의 재발견’이란 말로 해석된다. 보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자유와 강건한 육체와 정신의 재발견’이라 풀이할 수 있을 것이다.


르네상스 이후 누드화는 아무도 거스를 수 없는 예술의 대세(大勢)로 자리 잡는다. 바티칸 스스로가 비너스란 타이틀의 누드화 수집에 나선다. ‘아름다운 것이 좋은 것’이라는 본능이 인류문명사의 상식으로 자리 잡는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스캔들’이다. 같은 누드화라도 내가 관련됐다면, 자유와 건강함이라 표현한다. 나와 무관한 경우, 아니 나의 적(敵)이 관련된 누드화라면 어떨까? 더럽고, 저속하며, 부도덕·반문명적이라 해석할 듯하다. 아름다움이나 품격과는 거리가 멀다. 어둡고 추한 저질문화로 받아들일 뿐이다. 미를 보는 눈이 다르기 때문에 낮은 평가를 내린다고 말할지 모르겠다. 저평가가 아니라, 아예 평가 자체를 내리지 않는 범주 밖의 저질로 인식한다.




서유럽, 다시 말해 기독교 문화권에서 그려지는 오달리스크(Odalisque)는 바로 그 같은 차가운 시선을 느낄 수 있는 좋은 예다. 오달리스크란 오스만 대제국의 최고통치자 술탄의 궁전에 머무는 여성들을 지칭하는 말이다. 방(房)·궁전을 의미하는 터키어 오다(Oda)에서 유래된 말로 술탄 전용 여성노예인 ‘오다릭(Odalik)’의 프랑스어가 오달리스크다. 술탄의 궁궐에서 일하는 여성노예가 오달리스크다.


오달리스크


기독교 문화권에서 오달리스크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에 관한 궁금증은 바로 옆의 그림을 보면 충분히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워싱턴 티치아노의 특별전이 열리는 곳에서 50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인상파 전시관에 걸려있다. 르누아르가 29살 때 그린 것으로, 타이틀은 <오달리스크>다. 그림을 자세히 보기 바란다. 어떤 느낌이 드는가? 관능이 느껴질지 모르겠지만, 뭔가 건강하지 못하다. 싸구려 3류에다 더럽고, 음흉하고, 고약한 냄새가 배어 있다. 누드화는 아니지만, 말만 하면 곧바로 옷을 벗고 남자의 품에 안길 듯한 느낌이다.


유럽인을 상대로 한 그림 가운데 르누아르의 오달리스크 같은 이미지의 여성을 만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젊을 때의 르누아르는 돈에 목을 매고 그림을 그린 사람이다. 르누아르 자체가 오달리스크를 썩은 존재라 받아들였다기 보다, 오달리스크를 구역질 나는 존재로 받아들이는 ‘시장’의 요구에 맞춰 그려진 것이라 판단된다. 


반쯤 풀린 눈, 열린 다리, 뭔가 벌어졌거나 벌어질 듯한 침대, 전체를 아우르는 싸구려 장식품…. 19세기 말 유럽인이 보는 이슬람의 오달리스크는 성의 노예, 헤픈 여성 정도의 이미지에 불과하다. 오달리스크 그림 한 장 사는 것만으로도 기독교도로서의 종교·문화·문명적 우월성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표정을 진지하게 바꾸고 매끈한 몸매로 그려질 경우 오리엔탈 비너스라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르누아르의 경우 예외지만, 서방 예술의 한 장르를 차지한 오달리스크 그림의 대부분은 누드화다. 신비함이나 경건함과 거리가 먼, 속(俗)으로서의 그림이다. 마네의 누드화에 대해 그토록 엄격한 화단이지만, 오달리스크는 예외다. 색(色)이 넘칠수록 높게 평가됐다. 이슬람에 대한 편견과 차별의 대명사가 바로 오달리스크다.

마티스 오달리스크


술탄의 여성노예에 대한 소식이 서방에 알려진 것은 17세기 초다. 유럽 제국주의가 동쪽으로 진출하면서 오스만 대제국의 술탄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다. 아랍어로 권위·권력을 의미하는 술탄은 세습제 황제에 해당한다. 최근 이라크 북부에 등장한 이슬람국가(IS)의 최고 수장 칼리파는 술탄이 갖고 있던 종교적 권위를 대변하는 자리다. 




술탄은 종교는 물론 세속권력 모두를 가진 절대자다. 유럽인들은 오스만의 술탄을 알현하러 가는 과정에서 궁궐 내에 설치된 ‘하렘(Harem)’이란 장소에 주목한다. 술탄만을 위한 여성 노예들의 거주지다. 다시 말해 오달리스크만의 집이다. 하렘은 ‘신성하고 중요한 장소로 모두에게 금지된 장소’란 의미의 터키어에서 유래된 말이다.


터키 이스탄불을 지키는 술탄의 궁궐, 토프카프(Topkapi). 하렘은 토프카프 안에서도 가장 붐비는 곳이다. 하렘은 토프카프 안으로 들어가 북서쪽에 위치해 있다. 토프카프 전체 크기는 약 70만㎢로 서울시청 광장의 15배 크기다. 하렘은 토프카프 내 건물의 3분의 1 정도를 차지한다. 토프카프는 술탄 집무실·회의실·연회실·모스크·도서관 등 400여 개의 크고 작은 방이 있다. 하렘은 많을 때는 100여 개의 방을 갖고, 1천여 명의 오달리스크가 집단생활을 했다고 한다.


오달리스크


기독교 문화권의 유럽인들은 오달리스크 모두가 술탄의 성노예라 생각했다. 오달리스크의 관능적인 모습을 통해 수십, 수백 명의 여성에 둘러싸인 술탄의 모습을 상상했다. 터키 특유의 목욕탕인 하맘(Hammam)에서 벌어지는 낯 뜨거운 상황도 적당히 각색했다. 아마 경건한 기독교도라면 술탄을 ‘성(性)의 화신’ 정도로 받아들였을 듯하다. 1천여 명의 오달리스크와의 매일 밤 향연을 벌였을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마음속으로는 부러워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오달리스크는 유럽인이 생각하듯, 전부 성노예가 아니다. 노래·춤·수예·그림과 같은 예술 활동을 통해 술탄을 기쁘게 만드는, 이슬람 버전의 할리우드 스타다. 술탄과 잠자리를 할 수 있는 여성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술탄은 15세기 말부터 결혼을 하지 않고 독신으로 지내는 것이 일상화된다. 본처가 있다고 해도 복수(複數)의 후처를 얻는 것이 가능하지만, 오달리스크를 통해 문제를 해결했다. 


만약 술탄의 눈에 든 오달리스크가 자식을 낳을 경우, 술탄의 허락으로 왕자나 공주에 오를 수 있다. 물론 눈에 든 오달리스크도 한순간에 황후로 행세한다. 술탄의 대부분은 오달리스크를 통해 수많은 자식을 양산한다. 이복형제 간인 이들은 술탄의 뒤를 이으려는 권 력싸움에 나선다. 왕자들 사이만이 아니라, 술탄에 대한 공격과 암살도 일상화된다.


술탄



하렘에서 만난 오달리스크는 성(性)이 아니라 정치로 와 닿는다. 술탄 스스로가 행동을 자제하고 토프카프 안에서 생활하는 과정에서 유일한 즐거움은 오달리스크로 흐르게 된다. 여성들과 밤낮을 함께 하는 과정에서 폭식·폭음이 일상화되고, 성병이나 비만으로 일찍 세상을 뜬다. 


터키 하렘 오달리스크


술탄의 빈틈을 차지한 것이 바로 오달리스크들이다. 왕자를 낳은 오달리스크 사이의 목숨을 건 싸움이 토프카프 안에서 벌어졌다. 다른 왕자에게 술탄 자리가 넘어갈 경우, 모두 죽음을 맞아야 하기 때문이다. 권력을 추구한다기보다 생존을 위해 권력싸움에 올인한 것이다. 


1923년 터키가 근대 공화정체제로 넘어갈 당시 하렘은 구체제와의 결별을 상징하는 출발점이었다. 당시 케말 파샤 대통령은 오달리스크를 석방하고 두껍고 검은 헤자브를 풀어줬다. 오스만 술탄과 동고동락한 오달리스크가 세상에서 사라진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