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취미가 직업이 되는 사람들을 종종 본다. 하지만 직업까지 아니라도 준 프로패셔널처럼 자신의 취미를 발전시키는 사람들은 더 많다. 특히 평균 수명이 늘어나면서 한 직장이 평생 직장이 되지 못하는 시대, 자신의 손으로 직접 만들고 고치면서 이를 새로운 자아 실현의 수단으로 삼고 나아가 직업으로 삼으려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취미이지만, 적어도 좋아하는 어느 하나만큼은 프로처럼 되고 싶은, 전문가형 셀프족이 늘어나고 있다. DIY(Do-It-Yourself)가 늘고 있다. 그런데 최근의 DIY는 과거와는 사뭇 다르다.
커피 한 잔을 내놓더라도 바리스타처럼 하트 하나쯤은 그려낼 수 있어야 직성이 풀린다. 토털 서비스의 시대에 역설적이게도 ‘DIP(Do-It-Professional)’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우선 ‘숍’에서 해결해야 했던 전문 미용 서비스가 집안으로 들어오고 있다. 올해 가장 인기 있었던 미용 제품을 꼽으라면 ‘집에서 직접 하는 젤네일 도구’를 들 수 있다.
젤네일은 일반 네일에 비해 방식이 까다롭다. 필요한 전문 도구도 다양해서 주로 외부 전문가에게 서비스를 받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최근 홈쇼핑에선 소비자가 직접 할 수 있는 ‘젤네일 세트’가 인기리에 판매되고 있다. 아모레퍼시픽나 LG생활건강에서도 셀프 젤네일 브랜드를 새롭게 선보였다.
에스테틱이나 피부과에서 받던 전문적인 서비스도 이젠 소비자가 직접 한다. 직접 한다고 해서 마사지지 팩 정도의 수준을 상상하면 곤란하다. 피부결을 고르게 하기 위해 ‘진동 파운데이션’을, 주름을 없애기 위해 ‘리프터’를 사용한다.
‘각질 진동 제거기’로 손발을 관리하고, 심지어 가정용 ‘안티에이징 레이저’까지 동원해 전문가 못지않은 실력을 뽐낸다. 이름만 들어도 전문성이 느껴지는 셀프 미용 기기들이 집 안으로 들어온 것이다.
식생활 분야에서도 일반인의 전문성이 빛난다. 고급스러운 매장 분위기를 집 안으로 옮겨온 ‘홈카페’는 이미 일반화됐다. 단돈 몇 백 원이면 마실 수 있는 일회용 믹스커피 대신 전문가 수준으로 핸드드립한 커피나 에스프레소 캡슐로 제조한 커피 정도는 마셔줘야 직성이 풀린다.
물 온도, 커피 원두의 볶음 정도를 꼼꼼하게 따져 커피를 내리는 것은 물론이고, 카페라떼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우유 거품도 손쉽게 낸다.
맥주도 DIY의 영역에 발을 뻗었다. 미국에서 수입된 양조세트 원액을 구입해 효모와 물을 넣고 1차로 발효시킨 뒤 설탕을 넣고 한 번 더 발효시키면 집에서 즐길 수 있는 홈메이드 맥주를 만들 수 있다. 알코올 농도는 물론 입맛 따라 진하거나 부드럽게 조절할 수 있어 자신에게 딱 맞는 맞춤 맥주를 즐길 수 있다.
아이스크림도 이젠 홈메이드 시대다. 과일로 손쉽게 천연 아이스크림으로 만들 수 있는 아이스크림 제조기는 이미 어린아이를 둔 주부들 사이에 인기 만점 제품이다.
취미생활을 즐길 때에도 전문가 못지않은 실력을 뽐낸다. 골프나 낚시처럼 수동적으로 여가 활동을 즐기던 중장년층이 목공예나 요리처럼 전문성을 요구하는 취미활동으로 옮겨가고 있다.
연회비 350만원의 ‘럭셔리 목수클럽’이 큰 인기를 끌고 온라인 쇼핑몰에서는 DIY 가구의 매출이 크게 늘고 있다. 자동차나 집수리 등을 취미로 하는 사람이 늘면서, 지난해 옥션에서 자동차 셀프 관리용품이 히트상품 2위에 올랐다.
하나를 해도 전문가처럼 하는 소비자들 덕분에, 기성제품보다 효과 좋은 수제품이 탄생하기도 한다. 온라인 쇼핑몰 G마켓에선 지난해 염화칼슘 판매가 급속히 늘었다.
시장에서 판매되는 제습제가 염화칼슘으로 구성된 것을 파악한 소비자들이 스스로 제습제를 만들어 사용하기 시작해서다. 과산화수소와 식초, 구연산을 적절히 섞어 천연세제를 만드는 방법이 입소문을 타면서 집에서 세제를 만들어 사용하는 사람이 늘었다.
사람들은 왜 전문가의 손을 통하지 않고 직접 전문가가 되려고 하는 걸까. 조금이라도 비용을 아껴 실속 있게 소비하려는 목적이 가장 기본적일 것이다. 하지만 모든 것을 ‘절약’만으로 설명하긴 어렵다. 그보다 더 근본적으로는 직접 제작해서 작은 성취감을 맛보려 하는 것일 수 있다.
프랑스 철학자는 베르그송은 도구를 사용해 생산적 활동을 하는 것은 인간의 본질이라 주장하면서 ‘호모 파베르(Homo Faber)’란 단어를 창안하기도 했다.
시장 환경도 소비자가 전문가가 되는 것을 지원한다. 무엇보다 DIP를 할 수 있는 제품이 늘었다. 이마트에서는 10월에 ‘전문숍을 집으로’라는 슬로건 아래 홈쿠킹, 셀프 뷰티, 리빙케어 등 소비자가 전문가로 변신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제품을 총 3차례에 걸쳐 할인 판매했다.
백화점이나 대형마트에서 진행하는 문화센터 강좌도 ‘전문숍에 갈 필요 없이 집에서 피부관리하는 방법’ ‘자동차 수리하는 방법’ 등을 주제로 열리고 있다.
소비자가 직접 전문성을 발휘하는 것은 기업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자신의 노동이 들어간 제품에 더 큰 가치를 두게 마련이다. 이를 잘 활용하면 고객과 기업의 관계가 한결 끈끈해질 수 있다.
내가 직접 만든 것이라면 품질이 약간 떨어져도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 브랜드 충성도도 높아진다. 내 손으로 조립했다면 그보다 더 나은 신제품이 나와도 쉽게 새로운 제품으로 갈아타지 않는다. 하버드대의 마이크 노튼 교수가 명명한 ‘이케아 효과(IKEA Effect)’가 바로 이런 것이다.
소비자가 전문가로 변신하는 DIP 트렌드가 강해질수록, 외부에서 제공하는 서비스는 훨씬 더 전문적이고 완벽해야 한다는 점도 기억해야 한다.
직면한 문제를 직접 해결하는 능력이 출중해진 소비자들은 이제 웬만한 전문 영역이 아니고서는 외부의 도움을 요청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하는 ‘토털솔루션’이나, 전문가의 ‘진단과 처방 서비스’를 제공해 기업의 전문성을 입증하는 것도 중요하다.
결국 집 안의 전문가(소비자)와 집 밖의 전문가(기업)가 공존하는 사회에서 기업의 역할은 소비자의 능동성과 창조성을 지원하고, 복잡한 문제에 대한 솔루션을 제시하는 방향으로 양분화될 것이다.
전미영 서울대 생활과학연구소 연구교수
[이코노미스트 , 126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