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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

세계 제2 경제대통령 마리오 드라기 유럽 중앙은행 총재

독일의 프랑크푸르드 비즈니스 구역인 방켄피어텔 지구, 빌리브란트광장에는 유로타워가 있고, 이곳에 유로화를 쓰는 유로존 18개국의 중앙은행인 유럽중앙은행(ECB) 본부가 있다. 유럽중앙은행은 유로존의 통화 정책을 결정하는 최고기구로, 22개 EU 회원국 전체가 지분을 나눠갖고 있다. 이중에는 유로화를 쓰지 않는 비유로존 국가도 포함되어 있는데, 그래서 유로존의 중앙은행이라는 표현보다 유럽중앙은행으로 불린다. 


현재 유럽 중앙은행의 총재를 맡고 있는 이는 이탈리아 출신의 마리오 드라기 총재다. 그는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 의장인 재닛 옐런, 일본 중앙은행인 일본 은행 총재인 구로다 하루히코와 더불어 전세계 경제를  좌우하고 있다. 



드라기 총리는 EU 전체 GDP의 20.8%를 차지하는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실체적 권력과 유럽중앙은행의 독자성 사이에서 절묘하게 EU 통화정책을 이끌어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의 별명이 슈퍼마리오인 이유 중 하나다. 마리오라는 이름이 게임 이름을 연상시키기 때문에 붙은 것이지만, 사실은 마리오보다 '수퍼'에 방점이 찍힌다. 그만큼 강한 추진력과 결단이 돋보이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드라기 총재


그의 추진력이 돋보이는 것은 유럽의 경기 침체를 완화하기 위해 최근 시행 중인 양적완화 정책이다. 드라기 총재는 지난 9월부터 7000억 유로 규모의 돈을 푸는 초대형 경기부양책을 펴고 있다. 그는 이미 지난 6월 기준금리를 낮추면서 표적장기특별대출 (TLTRO)이라는 이름의 경기부양책을 내놨다. 


2년 동안 이어질 TLTRO는 ECB가 시중은행에 돈을 빌려줄 때 분야와 지역을 지정하는 파격적인 방식이다. 중앙은행이 시중은행에 낮은 금리로 대출을 하면 시중은행이 그걸 민간 기업이나 개인에게 재대출 해서 경기를 활성화해야 하는데 떼일 염려 때문에 시중에 자금이 제대로 흘러 들어가지 않는 경우가 잦다.


드라기는 대출 분야를 정하지 않는 장기대출프로그램(LTRO)을 2011년 말부터 실시해왔는데 효과가 제대로 나지 않았다. ECB의 저리 자금을 받은 시중은행들이 받은 자금의 상당액을 다시 ECB에 맡겨 놓고 정작 돈이 필요한 취약 기업과 가계에 빌려주지 않았다. 은행들이 지나치게 안전을 의식해 돈이 필요한 남유럽 등에 대한 대출을 기피하면서 일종의 ‘정책파업’을 벌인 셈이다.



이와 달리 경제 호조로 신용이 좋은 독일에선 돈이 너무 풀려 부동산 거품 현상이 벌어질 조짐이다. 중앙은행이 자금을 아무리 풀어도 현장에선 자금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공공연하다. 그래서 드라기는 남유럽을 중심으로 상황이 어려운 지역과 분야로 제대로 돈이 제대로 흐르도록 돈이 가는 곳을 미리 지정하는 제도를 만든 것이다. 표적을 정해 돈을 주입하기로 한 것이므로 일종의 ‘표적 미사일 경기부양책’인 셈이다. 유럽의 경기부양을 위한 특단의 조치다.


드라기의 방식은 과거 대공황 당시 미국의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대규모 부흥공사를 발주하고 기업에 직접 돈을 빌려주는 방식과 비슷하다. 이는 금융권 자금시장에서 국채와 모기지채권을 사들이는 미국식 양적완화와는 방식이 완전히 다르다. 드라기의 정책은 1980년 이후 금기시된 중앙은행 특별금융을 부활한 셈이다. 그래서 비(非)정통 정책으로 꼽힌다. 그래 서 극약 처방에 비견되는 과감한 정책이다.



마리오 드라기 총재


드라기는 시중은행들이 유럽중앙은행에 돈을 맡기는 걸 막기 위해 10월에 금리를 마이너스로 낮췄다. 유럽중앙은행으로 되돌아오는 TLTRO 자금에 벌금을 물리기로 한 셈이다. 드라기는 자금에 목마른 남유럽에 7000억 유로의 절반 정도를 배정할 예정이다. 그래야만 실물 경제가 살고 디플레이션 위험도 줄일 수 있다. 경제 상황이 좋은 독일엔 23.7% 정도를 할당하면서 부동산 거품을 일으킬 수 있는 주택담보대출보다는 중소기업 자금 지원에 한도의 대부분을 쓰도록 했다. 이런 철저한 정책을 통해 드라기는 ‘역시 수퍼 마리오’라는 소리를 듣고 있다.


난 10월27일에는 침체된 유로존의 경제를 살리기 위해 자산 매입 프로그램을 본격 가동하기 시작했다.유럽중앙은행은 커버드본드를 본격적으로 매입하면서 양정완화 정책을 본궤도에 올려놓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커버드본드는 금융회사가 보유한 자산을 담보로 만든 담보부채권의 일종인데 우선 변제권을 부여하는 게 특징이다. 대출 채권을 담보로 잡고 있으며 발행 금융사의 상환 의무가 더해져 투자 위험이 낮은 금융상품이다.


유럽중앙은행은 2009년에도 장기 금리를 낮추기 위해 커버드본드 매입에 나서 1차 600억 유로, 2차 164억 유로를 사들인 적이 있다. 드라기가 아예 미국이나 일본처럼 국채 매입을 통한 전면적인 양적완화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그만큼 유럽의 상황이 심각하다는 소리다. 하지만 EU와 유럽중앙은행에 최대 지분을 가진 독일의 메르켈 총리가 이 같은 방안에 반대하고 있다.


이에 따라 드라기는 디플레이션을 막기 위해 커버드본드와 자산유동화증권(ABS) 매입에 집중할 것으로 전망된다. 드라기는 10월 유럽중앙은행이 보유한 자산 규모를 2012년 초 수준까지 끌어올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드라기는 경기부양책으로 최소 7000억 유로를 시중에 투입할 것으로 전망되며 2조6000억 유로로 추정되는 커버드본드의 매입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마리오 드라기 총재

유로존의 물가상승률은 13개월 연속으로 1%를 밑돌고 있다. 드라기의 극약처방과 동분서주로 유럽 경제가 어디까지 회복될지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로마 출신인 드라기 총재는 로마 라사피엔차 대학을 마치고 미국 MIT에서 1976년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경제정책과 적용’을 주제로 박사논문을 썼다. 1981년 부터 1994년까지 피렌체 대학 교수로 일했다. 대외활동도 활발해 1984년부터 1990년까지 세계은행의 이탈리아 몫의 이사를 지냈다. 1991년 이탈리아 재무부의 관리위원장을 맡아 2001년까지 이탈리아 기업과 금융회사의 등록과 금융 관련 법안의 입안을 맡았다. 2002년부터 2005년까지 골드먼삭스 인터내셔널의 부회장과 운영위원을 맡았다.


2006년 1월 이탈리아 중앙은행인 이탈리아은행 총재를 맡은 그는 2011년 11월 ECB 총재를 맡기 직전까지 그 자리를 지켰다. 2009년 4월부터 ECB 총재를 맡기 전까지 G20(주요 20개국)이 만든 재정안정이사회의 의장도 지냈다. 이탈리아와 유럽의 금융 요직을 맡으면서 실력을 발휘한 다음 ECB의 3대 총재로 취임한 것이다. 드라기가 실력을 발휘해 유럽의 경기회복을 이뤄낼지 전 세계가 이목을 집중하고 있다.


채인택 중앙일보 논설위원 

[이코노미스트, 126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