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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경영'과 '디자인'으로 승부하다, 현대카드 정태영 대표

2014년 한국 사회는 '갑질 논란'으로 뜨거웠다. 사회 곳곳에서 '을'의 울분이 터져 나오면서 '윤리경영'이 경영의 중요한 덕목으로 떠올랐다. 윤리경영으로 부실투성이 현대카드를 글로벌한 회사로 키운 정 대표를 만나보자.


2006년 8월, 팀장부터 팀원까지 모두 해고되어 팀 하나가 공중분해 되었다. 한창 성장기에 팀이 갑자기 사라져버리는 전례 없는 일이었다. 알고보니 팀장과 팀원들이 협력업체로부터백화점 상품권을 받고, 술자리에서 부적절한 접대까지 제공받았다는 사실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다. 


이 기업의 CEO 정태영 대표는 취임 때부터 '3대 무관용 정책'을 강하게 추진했다. 고객정보 보안, 담합금지, 협력업체 거래 투명성의 3가지 항목 중 하나라도 어기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관용을 절대 허용하지 않는다는 윤리경영 원칙이다. 2006년에 벌어졌던 이 사건은 임직원들에게 회사의 윤리경영 원칙이 얼마나 무서운지 실제로 보여줬다.


2014년 11월 한국윤리경영학회는 현대카드를 윤리경영 대상 수상 기업으로 선정했다. 2003년 정 대표가 현대카드를 맡으면서 지금까지 강조해온 윤리경영이 성과를 낸 덕분이었다. 적자투성이의 현대카드를 흑자로 돌리고, 디자인이라는 키워드를 내세워 젊은이들이 일하고 싶은 금융기업으로 키운 능력도 함께 인정받았다.



 "윤리경영은 기업의 지속성장을 위한 필수적인 항목"


정태영 대표가 현대카드를 처음 맡았을 때, 정몽구 현대자동차 그룹 회장의 사위라는 꼬리표가 따라 붙었다. 하지만 지금 그 꼬리표는 사라지고, 정태영이라는 브랜드가 확고하게 구축되었다. '디자인 경영'이라는 화두를 던진 정태영 대표가 윤리경영을 집요하게 강조하는 이유는 뭘까?


"윤리경영은 기업이나 CEO가 선하다는 것을 자랑하는 게 아니다. 기업의 지속성장을 위해서 필수적인 항목이기 때문에 강조하는 것이다."


윤리경영이 기업 경영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세계적인 흐름에 따라 수많은 기업들이 윤리경영을 최우선 가치로 내세우지만, 정작 소비자들의 체감온도는 그리 높지 않다. 사회에서 기업에게 요구하는 기준은 점점 높아지지만, 기업의 윤리경영 활동은 그 기준을 미처 따라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대카드는 윤리경영을 앞서 실천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대표적인 것이 3중으로 되어 있는 임직원 감사 시스템이다. 사내 감사팀, 고검장 출신의 변호사가 만든 로펌 외부 감사팀, 현대카드와 합작사업을 펼치고 있는 GE의 감사팀까지 사내외 감사시스템이 3중으로 작동하고 있다. 물론 정 대표도 이 3중 감사에서는 예외가 아니다.


현대카드 정태영 회장


 현대카드의 기업문화로 이어지는 윤리경영


정 대표는 고검장 출신 변호사를 직접 찾아가 검사로 일하면서 얻은 노하우를 요청하고, 현대카드 회계를 담당하는 회계사에게 회계실사를 강하게 해달라는 요청도 했다. 회계사 수임료가 낮아 정확하게 못한다는 말에 수임료를 자발적으로 올려주기까지 했다. 또 현대카드에 입사하면 컴플라이언스(기업윤리 프로그램) 특화과정을 교육 받는다.


회사가 임직원을 너무 옥죄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 정 대표는"성희롱이 괜찮은 건가. 아니면 회사 내에서 파벌을 만드는 게 좋은건가. 뇌물을 받는 것이 회사 일을 하는 데 도움이 되나. 상식적인 선에서 지키면 아무런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몸에 익숙해지면 절대 불편하지 않다. 윤리경영은 현대카드의 기업문화로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카드 문화는 초창기와 많이 바뀌었다. 늦게까지 이어지는 회식 문화는 거의 사라졌고, 회식 때 술을 마시고 노래방에 가는 팀도 없다. 또한 임직원들은 모두 법인카드를 가지고 있다. 협력업체를 만나 밥을 먹거나 차를 마셔도 이 법인카드로 계산을 한다. 협력업체로부터 대접을 받지 않는 것이다.


정 대표가 윤리경영과 함께 신경을 많이 쓰는 것은 CSR(기업의 사회적책임)이다. 카드사의 특성을 살려 '금융소외 계층'의 자립을 돕는 데 집중하고 있다. '드림실현 프로젝트'는 소상공인 사업의 성공 돕는 대표적인 프로그램이다. 현대차미소금융재단에서 대출을 받는 소상공인을 선정해 전문적인 사업 컨설팅에서 경영개선교육, 인테리어 디자인, 마케팅 등 토털 솔루션을 제공해준다.


 '디자인'으로 승부하다


기업 문화가 달라지자 실적도 놀라울 정도로 성장했다. 현대카드는 2001년 다이너스카드를 인수하면서 출범했지만 적자투성이였다. 2003년까지 영업적자 규모가 6000억원을 넘었다. 시장점유율은 2%도 채 안되고, 연체율은 10%에 육박했다. 당시 미수금만 1조원이 넘었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부실한 카드사였다.


현대카드 매출액 영업이익 변화


그래서인지 정 대표가 현대카드를 맡았을 때 '현대차그룹에 금융전문가가 없기 때문'이라는 말이 나돌았다. 그만큼 현대카드의 상황은 급박했고, 성장 가능성에 대한 기대감도 적었다. 취임한 정 대표가 계산을 잘못한 줄 알았을 정도로 적자가 많았다.


이 상황에서 정 대표는 '디자인'이라는 승부수를 던졌다. 2003년 5월, 차별화된 혜택을 탑재한 '현대카드M'을 선보였다. 당시 카드 디자인 개발 비용은 평균 20만원이었지만 그는 1억원을 투자했다. 그 결과, 이 카드는 출시 1년 만에 가입회원 100만 명을 돌파했고, 최종 800만명의 선택을 받았다. 신용카드 단일 브랜드로는 국내 최대 규모였다.


이후에도 카림 라시드, 레옹 스탁 등 해외 유명 디자이너들이 카드 디자인을 맡았다. 국내 최초로 색깔별 VVIP 카드도 선보이고, 라이프스타일에 따른 세분화된 카드도 마련하여 타 카드사에서 벤치마킹 되기도 했다.


현대카드라는 이름을 소비자에게 각인시킨 것은 '슈퍼카드 시리즈'였다. 마리아 샤라포바와 비너스 윌리엄스의 테니스 경기 '슈퍼 매치'는 숱한 화제를 몰고 왔다. 이후 플라시도 도밍고, 스티비 원더 등을 초청한 '슈퍼콘서트'도 이어졌다. 카드사가 왠 스포츠와 공연이냐 싶겠지만, 문화로 소비자를 공략하겠다는 아이디어였다.


현대카드 문화 공연

사진출처 : 현대카드 홈페이지(https://www.hyundaicard.com)


서울 여의도 현대카드 사옥은 모든 임직원의 자랑이다. 현대카드의 색깔로 사옥의 색을 통일했고, 사무실 인테리어와 집기도 일하는 사람의 동선과 행동양식에 맞췄다. 벽면은 모두 화이트보드로 되어 있어 언제든 글을 쓰고 지울 수 있다. 책상 하나, 의자 하나도 모두 임직원에 맞춰 디자인한 이 사옥을 구경하고 싶어하는 요청이 너무 많아 2만원을 받고 투어링을 할 정도다. 물론 그 2만원은 사회기부금으로 쓰인다.


카드도, 기업문화도 '심플'로 업그레이드


디자인 경영으로 현대카드를 본궤도에 올린 정 대표는 다음으로 '심플'이라는 키워드를 내놓았다. 그동안 카드에 적용했던 복잡한 서비스 제공기준을 폐지 또는 단순화하고, 포인트 적립과 캐시백이라는 투 트랙 전략을 발표했다. 2013년 7월 챕터2를 발표하자 출시 10개월 만에 200만 장에 가까운 발급 실적을 올렸고, 고객 1인당 이용금액이 기존 상품에 비해 27% 증가했다. 다시 한번 카드업계를 뒤흔든 것이다.


기업문화도 심플에 집중하고 있다. 'ZERO PPT' 캠페인을 벌여 보고에 들이는 시간을 줄였고, 업무상 리스크가 낮은 업무 항목은 결제 과정을 간소화했다. 여러 지점에서 따로 발급받던 서류를 한 곳에서 취합해 발급받는 시스템도 마련했고, 각 본부별로 수십 가지에 이르던 문서양식을 1/3 수준으로 줄였다. 업무 간소화로 효율성을 높인 것이다.


정 대표는 '누가 옳은지를 다투는 회사'가 아닌 '무엇이 옳은지를 다투는 회사'를 추구한다. "임직원 모두가 의견을 말하고, 받아들이는 문화가 흘러여 한다. 현대카드는 그런 문화가 있다. 글로벌 회사들이 우리를 찾아와 합작을 하자고 하는 이유다." 경영자의 마인드가 다시 한 번 강조되는 요즘, 정태영 대표의 경영철학에 눈길이 간다.